• "오카상, 사토가리 내린다"
    [어머니 이야기 ③] 미요코로 불렸던 내 어머니
        2012년 11월 02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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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내 어머니가 살아 온 얘기를 쓰려 한다. 어머니가 기억을 더듬어 말씀하시면 내가 글로 써 내려간다. 지금 어머니 나이가 77살이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당신 스스로는 성공했다고. 서울에 딱 쌀 한 말만 가지고 올라와서 아들 넷을 낳고 그 아들들이 모두 장가를 갔고 집까지 모두 사 주었으니 더 이상 기쁨이 없다고.

    한 가지 슬픈 일은 늘 막내아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막내는 태어나자마자 뇌성마비가 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고칠 수 있다는데 확률이 반반이었다. 막내 병을 고치면 그 동안 안 먹고 안 입고 한겨울에도 연탄 한 장 아까워 얼음장 같은 바닥에 자면서 모아둔 돈을 모두 들여야 했다.

    그 보다 더한 것은 막내아들 살리자고 위로 형들 셋을 공부도 못 시키고 먹이지도 못 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결심을 했다. 막내가 병원에서 꼭 낫는다면 집을 팔고 있는 재산 다 바쳐서 병원 치료를 받겠지만 그도 아니니 위로 세 아들을 살려야겠다고.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는 내 막내 동생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어머니가 다니시는 절에서 가장 용하다는 스님 말을 듣고 아주 비싼 한약재를 지어서 먹였다. 하지만 막내 동생은 그 한약 먹은 것이 더 안 좋았는지 다섯 살 때까지 말을 제대로 못했고 걷는 데도 힘들어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으면 당신이 살던 집은 막내 거라고. 어릴 때 막내 병을 고쳐주지 못 해 평생 한으로 맺혔다.

    하지만 막내 동생은 커가면서 영어 수학 공부는 못 했지만 손재주가 좋고 머리가 좋아서 나랑 같이 배워도 바둑이면 바둑, 볼링이면 볼링, 당구면 당구 뭐든지 잘했다. 말이 좀 어눌해서 처음 본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사는 데 크게 불편이 없다. 동생 얘기는 뒤에 다시 할 것이니 여기서 멈출까 한다.

    아무튼 어머니 당신은 지금도 새벽 2시면 일어나 남들이 버린 종이, 빈 깡통과 빈 병을 주우면 살지만 행복하다고 한다. 아직은 움직일 수 있는 두 다리 두 팔이 있고 아들들이 모두 가까운 곳에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더군다나 말 잘 듣는 머슴 같은 남편이 아직도 살아 있으니. 어머니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간극장’을 즐겨 보시는데 그곳에 나온 사람들보다 당신이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하신다.

    그래서 꼭 어머니 얘기를 나 보고 써 달라고 했다. 제목은 ‘성공사례’ 라고 하고. 책을 쓰면 잘 팔릴 거라고. 내가 꾸리는 책방 풀무질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써야한다고.

    이제야 어머니 소원을 들어주게 되었다. 이 글을 다 쓰게 되면 조금은 효자가 되려나. 난 어머니 네 아들 가운데 속을 제일 많이 썩혔다. 대학 다닐 때 맨 날 데모해서 끌려가더니 급기야는 책방 풀무질을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열었는데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판매죄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고 한 달 동안 서울구치소에 갇힌 일도 있다. 어머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면 좋겠다.

    해방 후 조선으로의 귀국선의 한 장면(사진=오사카 인권박물관 특별전)

    내 어머니는 1936년 음력 11월 4일 일본 오사카 아마사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태어나기 앞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일을 했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강제징용을 간 지 3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내 외할아버지 식구들은 경북 의성군 비안면 새기터에서 무척 힘들게 살았다. 외할아버지는 아내와, 다섯 살 된 딸을 데리고 오사카로 왔다. 그곳에 온지 1년 뒤에 내 어머니가 태어났다.

    어머니가 살 던 곳은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일본 말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나라 잃은 조선 사람들은 일본 이름으로 불렸다. 어머니는 미요코였다. 내 외할아버지는 6년 만에 낳은 아이가 또 딸이어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집을 나갔다. 그날 밤에 노름을 해서 모아두었던 돈을 다 잃었다.

    외할아버지는 비단 장수였다. 조선에서 비단을 사 와서 등짐을 지고 일본 사람들에게 싸게 팔았다. 자주 조선과 일본을 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장사를 했다. 그래서 어머니 식구들은 일본 땅에서 밥을 굶지 않고 살았다.

    어머니가 태어나자 외할아버지는 다시 조선으로 건너가 내 외증조할아버지에게 이름을 호적에 올리라고 서류를 놔두고 왔는데 1년 뒤에 다시 조선에 와 보니 그 서류가 책상에 그대로 있었다. 왜 호적에 올리지 않았냐고 했더니 내 외증조할아버지는 지집아를 뭐 하러 호적에 올리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어쩔 수 없이 내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어머니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내 어머니 강금선은 1년 뒤인 1937년생이 되었다. 이름은 조선말로 올렸지만 미요코로 불렸다.

    아무튼 내 어머니를 외할머니는 밤 11시쯤 낳았는데 외할아버지는 미역 한 줄기도 사 주지 않고 집을 나가자 혼자 남은 외할머니는 눈물로 며칠 밤을 새웠다. 어느 날 이웃에 살던 할머니가 오셔서 미역을 한 두름 주시며 다음에는 꼭 아들을 낳아달라고 삼신상을 차려 천지신명께 빌라고 했다.

    그래서 내 외할머니는 흰쌀과 생미역을 놓고 삼신할머니께 두 손을 비벼가며 “꼭 아들을 낳게 해 주세요” 하고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했다.

    그 뒤로 내 외할머니는 아들만 넷 내리 낳았다. 모두 해방이 되고 나서 한국에서 낳았다. 하지만 큰아들과 막내아들을 빼고 둘은 죽었다. 둘째는 세 살 때 홍역을 앓다 죽고 셋째는 낳자마자 죽었다.

    아무튼 외할머니는 법 없이도 살 분이었다. 늘 외할아버지 말을 고분고분 들었고 외할아버지가 노름에 빠져 살아도 끽소리 않고 집안 살림을 꾸렸다. 내 어머니가 머리가 좋고 돈을 모으는 재주가 있는 것은 내 외할아버지 피를 받았고, 아끼고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하는 것은 외할머니 피를 받아서이지 싶다.

    아무튼 내 외할머니는 내 어머니를 낳고 이웃에 사는 마음씨 좋은 조선 사람 덕분에 아들 점지 해달라는 새벽 절을 하고나서 그 미역줄기를 조금씩 뜯어서 눈물을 삼키며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딸이 태어나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외할아버지는 아기 얼굴이 무척 예뻐서 차츰 마음이 바뀌었다. 내 어머니는 커갈수록 얼굴이 점점 더 예뻐져서 동네 사람들은 서로 안아 보려고 했다. 그럴수록 외할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 하게 했다.

    어머니 언니인 내 이모는 일본에서 조선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내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도 배울 수 없었다. 그냥 집에서 외할머니랑 소꿉장난을 하면서 놀았다. 어머니가 살던 곳은 한국 사람들이 수 백 가구가 몰려 살아서 일본 사람들 텃새가 심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던 집은 나무로 되었다. 일자씩 평면 집인데 방바닥에는 다다미가 있고 창문이 여럿 있는 전통 일본식 집이었다. 전쟁 중이라 멀리서 폭탄 떨어지는 소리가 자주 들렸지만 누구도 일본이 전쟁에서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을 일본에서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일본이 망하자 조선 사람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하늘이라도 올라갈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배가 없어서 모두들 발을 동동 굴렀다. 어느 날 내 외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더니 서둘러 집을 떠나서 한국으로 가자고 했다. 식구들은 몸뚱이만 빠져 나왔다. 길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겨우 배를 타고 부산항에 내렸다. 1945년 11월이었다. 하늘에는 하얀 가루가 내렸다.

    어머니는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오카상, 사토가리 내린다. 어서 퍼 담아라!” 어머니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처음 봤다. 오사카에선 눈이 오지 않았다. 사토가리는 일본말로 설탕이다.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이 어머니에겐 달콤한 설탕으로 보였다. 이렇게 어머니에게도 나라 찾은 기쁨이 달콤한 먹을거리로 다가왔다.

    2012년 10월 28일 하루가 다르게 나무가 울긋불긋해지는 아침에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필자소개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93년부터 일하고 있다. 두가지 꿈을 꾸며 산다.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과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을 맞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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