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의 다양성’ 둘러싼 정치학
    [교육이 만들 세상] 다양성 아닌 입시 위주의 획일화 강요
        2012년 10월 31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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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대선 정국이다. 우파 정권, 그것도 수준 이하인 이명박 정권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5년, 어찌 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데, 지난 5년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길게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다. ‘리틀 이명박’이라고도 칭해지는 사람답게, 이명박 정권에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서 교육부 차관을 거쳐 장관으로 요직을 거쳤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명박 정부의 최전선에서 마지막까지 전선을 이탈하지 않고 있다. 마치 이명박 정권과 함께 순장이라도 할 것처럼…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이주호 장관이 쓴 책의 제목이다. ‘획일화를 넘어선 교육의 다양성 추구’라는 명제는 참으로 당연한 말이다.

    인간이 다양한 만큼 교육도 다양해야 한다. 하지만 획일화된 교육에 대한 원인 분석, 해법이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에는 많은 집단들의 이해와 욕망,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권력’이 결부되어 있다. 이 글은 이에 대한 글이다.

    입시경쟁 교육을 비판하는 퍼포먼스(자료사진)

    다시 이주호 장관의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라는 책의 제목은 고교 평준화가 교육 획일화의 원인이고, 다양화를 위해서 고교 평준화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바로 이를 정책화한 것이다.

    하지만 국책 연구기관의 교수였던 사람이 쓴 책 치고는 지적 사기가 너무 심하다. 평준화가 교육 획일화의 주범이라는 이주호 장관의 주장은 비평준화 지역 고등학교의 획일화된 교육을 설명하지 못한다.

    대학 입시경쟁을 위해서 평준화든, 아니든 모든 고등학교가 (아니 중학교에서도) 말 그대로 획일화된 지식전달, 문제풀이 수업을 하고 있는 상황을 애써 무시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MB정부의 일제고사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도 문제풀이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고등학교 교육이 다양해졌는가? (물론 이글에서는 마이스터고는 논외로 한다). 기존의 특목고나 국제고에 더하여 자립형 사립고, 자립형 공립 고등학교가 만들어졌지만 그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이 이뤄졌다는 평가는 듣지 못했다.

    우리는 교육 내용은 별 차이가 없는데 상대적인 입시경쟁력이 높은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위계적 서열구조에 짜여 있는 상황을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해서도 안된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많은 고등학고 형태를 만든다고 해서 교육은 다양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모든 고등학교의 목표는 ‘대학입시’ 경쟁에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다양한 교육이 아니라, 입시경쟁에서 유리한 교육을 선호한다. 교육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교육이 다양화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대학서열 체제’와 ‘학벌주의’ 때문이다.

    학벌주의의 뿌리깊은 한 장면

    자율학교라는 것이 있다. 자율학교로 지정을 받으면 교육과정을 20%내에서 자율 편성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 과목별 국가 교육과정 시수기준에서 20% 내로 증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율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모두 국영수 중심으로 시수를 늘린다. 예체능 교과는 줄어든다. 자율성을 확대했더니 교육과정이 특정 교과로 편중되어 다양성이 후퇴한다. 우리는 자율성을 주면 교육이 다양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율성은 다양화의 한 조건일 뿐이다. 더욱 중요한 조건은 모든 교육의 성과를 서열화 시키려는 힘을 없애거나 최소한 줄이는 것이다.

    국가교육과정이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을 큰 범위에서 세부 내용까지 시시콜콜이 적어 놓은 지침이다.

    현재의 교육과정에서는 교육의 내용은 이미 국가가 정해준 것이고, 교사는 이를 퍼 나르는 말 잘 듣는 지식 전달자이다. 교사는 교육 내용, 교육방법을 선택할 제대로 된 권리가 없다.

    전교 석차를 내야 하기 때문에 같은 학년의 평가 내용은 동일해야 하고, 교사는 평가권을 상실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교사가 하는 교육내용이 별 차이가 없다. 진정한 의미의 ‘교권’이 없는 것이다.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적인 조건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입시경쟁 교육과 학벌주의의 힘이 약해져서 학생들이 자신의 특기와 적성에 따라서 자신의 교육 과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회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학력(벌) 차별 금지나 대학 서열체제 해소와 같은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 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최저임금을 대폭 높여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차원의 변화와 함께 교육 내적 변화도 필요하다. 가장 큰 지점은 교육과정을 변화시키고, 교사의 교육권과 전문성을 강화하며, 학생의 교육선택권을 보장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 교육과정의 개념을 대폭 바꿔야 한다. 국가 교육과정은 큰 틀거리만 정해주고,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권, 자유로운 교육자료 선택권, 평가권을 대폭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한 교사의 전문성 향상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무학년 학점제를 도입하여 학생이 정말로 자신의 적성과 특기에 맞는 공부를 위해 다양한 강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체계적인 진로교육과 학습계획 상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국가 차원의 하나의 교육과정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과정이 존재할 수 있다. 진정한 교육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쯤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나라의 ‘특권층’은 다양한 교육을 원할까? 정말 그럴까? 교육이 진정 다양해지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인간을 존중하고 말 그대로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다양한 생각들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타인의 생각조차 ‘국가보안’이라는 미명하에 법률의 잣대로 단죄하려는 사람들이 과연 다양성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진정 다양한 사회와 다양한 교육이 가능해지려면 학벌이 부족하다고, 못 배웠다고,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경영인이라고 해서 일년에 수십억원씩 연봉을 챙겨가고, 비정규직 학교급식 조리종사원은 한달에 100만원이 남짓 받는 사회에서 인간이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 다시 한번 질문해 본다. 그들은 진정 다양한 사회, 다양한 교육을 원할까? 혹시 그들은 오히려 더 획일화된 잣대로 사람을 차별하고, 교육과 인간을 서열짓는 것을 더 원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기본 명제 앞에서 위계 서열화된 학교를 만들어 놓고서는 다양성을 확보했다고 호도하고, 다양한 교육이 아닌 입시 경쟁력 있는 학교를, 권력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도구를 선택하는 것을 기본권의 보장이라고 떠드는 것이 아닐는지.

    필자소개
    오랫동안 교육운동에서 정책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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