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가 죽인 김주영 장례식
    장애인도 사람 대접받는 사회 언제?
    화재로 사망한 장애운동가 김주영 동지 장례식 열려
        2012년 10월 30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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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새벽 2시경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서 일어난 화재로 사망한 중증장애인 김주영씨의 장례식이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진행됐다.

    김씨는 현관까지 다섯걸음밖에 되지 않는 곳에 누워있었지만 10분만에 진압될 정도의 작은 화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죽음에 이르렀다. 그는 뇌성마비 중중장애인으로 활동보조인 없이는 혼자서 휠체어에 타거나 화장실을 가고, 옷을 갈아입는 등의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김주영씨는 화재가 발생한 직후 입으로 펜을 물어 스마트폰을 작동해 직접 119에 신고했으나 소방차가 도착하는 그 5분간 홀로 고통스럽게 질식사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12시간만 제공하기 때문에 김씨가 사망한 그 시간은 홀로 집에 있던 시간이었다. 만약 활동보조서비스를 24시간 제공했다면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장애인해방운동가인 김주영씨의 장례식이 열리던 30일 광화문의 날씨는 화창했다. 장례를 마치고 보건복지부 항의를 위해 행진할 때 사회자는 “오늘 날씨가 너무나 좋다. 주영이와 마지막으로 경복궁으로 소풍을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탄식했다.

    턱 없는 길은 오로지 차도 뿐

    약 700여명의 추모객과 유족이 보건복지부로 향할 때 경찰은 2차선 도로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활동가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안국동쪽으로 빠지는 우회로 길에서 3차선, 4차선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동지 가는 마지막 길을 막지 말라고.

    세종은 백성의 말글의 장애를 안타까워했다만, 우리는 오늘 신체의 장애마저 무관심하다.(사진=이상엽)

    그러고보니 휠체어가 턱에 걸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차도밖에 없다. 차도에서는 턱도 계단도 없다. 장애인활동가들은 경찰들이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고 길을 막아서자, “차가 조금 막힌다고 사람이 죽지 않는다”, “조금만 불편을 참으면 되지 않느냐”며 그들 스스로가 평생 들었던 “참아라”라는 말을 경찰들에게 소리쳤다.

    평생을 당신들에겐 ‘조그만’ 불편이지만 본인들에겐 ‘모든 것을 감수하고’ 살아야 했던 이들이 동지의 마지막 가는 길에서라도 장애 없는 길에서 시원히 내달려보자고 소리치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차가 아니라 억울한 죽음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막았고, 한 장애인은 차와 부딪히는 경미한 사고까지 발생했다.

    곳곳에서 도로를 확장해 행진을 보장해달라며 경찰들과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고 이 과장에서 또 다른 장애인은 경찰에 의해 휠체어에서 떨어졌으며 한 나이 많은 여성활동가는 실신하기까지 했다.

    최소 35만명이 평생을 본인 의지에 따른 의식주를 해결할 수도, 외출하지도 못한 채 쓸쓸한 삶과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는데, 고작 몇 시간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차량들이 지체된다고해서, 그 차들이 다른 길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렇게 큰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2002년 시청역에 벌인 철로 점거 투쟁 그리고 2012년

    김주영씨의 죽음은 사전에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가 지적했듯이 “사회적 타살”임이 분명하다. 노 대표는 이날 장례식에 참석해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모든 장애인은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누릴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진보신당의 김종철 대표 직무대행은 한 사연을 소개해주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장애인 동지들이 시청역 철로에서 본인들의 몸을 묶고 투쟁했던 적이 있는데, 알고 지내던 한 여성분이 왜 그런 투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결혼을 해 아이를 낳은 뒤 지하철에서 한 아이는 손을 잡고 다른 아이는 등에 업고 계단을 오르다가, 어느날 갑자기 생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왜 그런 투쟁을 했는지 이해하겠다고 했다”는 사연을 소개했다.

    민주통합당의 남윤인숙 의원은 “김주영씨는 2005년 목숨을 걸고 자립생활을 시작하며 활동보조제 전면 시행 등 장애인 인권운동에 앞장섰다”며 “활동보조 시간을 늘리고 부양의무자 제도를 폐지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 또한 “더 살아야만 하고 더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청춘이 너무나 안타깝고 허망하게 갔다”며 “차별 없는 세상에서 장애인도 한 사람의 주체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2002년 장애인들의 ‘이동할 권리’를 위한 투쟁이, 미약하나마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나 저상버스 도입 등의 일정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그 10년의 세월동안 바뀐 건 이 뿐인 것이었다.

    그것도 모든 지하철역과 버스에 도입된 것이 아니다. 또한 턱없이 많은 ‘턱’과 계단으로,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지하철과 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에게는 허울좋은 전시행정일 뿐이었다.

    본인부담금-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하고 활동보조 24시간 제공해야

    현재의 정부 정책은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은 최소 35만명이지만, 활동보조의 대상을 1급 장애인으로 제한할 뿐더러 엄격한 판정기준을 가지고 그마저도 추리고 추려 5만명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 문제점이다.

    사진=이상엽 작가

    김주영씨처럼 중증장애인이 아니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해 가족들의 희생으로 감내하거나, 본인 스스로 시설로 입소하는 경우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활동보조서비스를 24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에 활동보조인이 퇴근하는 시간 이후에는 화재나 불시에 발생하는 사고 등의 위험에는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난 달 최중증 근육장애인인 허정식씨가 활동보조인이 없는 상황에서 호흡기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도 김주영씨와 유사한 사례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양의무제 제도는 최중증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가족과 같이 사는 경우에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약 100시간을, 최중증 장애인으로 독거 상태인 경우 한달 180시간으로 서비스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어, 가족이 잠시 외출한 상태에 있거나 자립해 혼자 사는 장애인들은 늘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만 한다.

    고 김주영씨의 경우 활동보조지원제도 인정조사점수에 따라 기본급여 월 100시간에 최중증 독거 추가지원 월 80시간을 받아 약 월 180시간의 서비스를 제공받았으나 재조사를 통한 수급자격 갱신 과정에서 제공시간이 하락될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다.

    본인의 장애 여부와 얼마나 삶이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기준 ‘점수’를 받아야만 부족한 서비스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와 별도로 지난 8월 음독자살한 이씨 할머니의 경우는 사위의 소득이 발생한 이유로 수급권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씨 할머니의 경우 사위의 소득과 상관없이 극빈층에 속해 수급권 자격이 충분했다. 그런데도 2005년 기준 수급권 탈락 사유의 25%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한 것으로, 중증장애인을 평생 가족의 부양대상으로만 살아가도록 강요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본인부담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활동보조 서비스 수급 자격을 가진 사람 중 25%에 해당하는 이들이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과중한 본인부담금 때문이다.

    기존 장애인활동보조사업이 2011년 10월 장애인활동지원제로 전환되면서 급여량 확대는 미미한데도 본인부담금이 2009년 최대 월 4만원에서 2010년 최대 월 8만원으로 인상됐다 2011년에는 최대 월 12만원 이상으로 인상됐다.

    본인부담금을 최대 15%로 상한선을 정해두었지만 부가급여에 대해서는 상한 제한없이 추가 본인부담금을 부과하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본인부담금의 상한선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중증장애인일수록 추가서비스가 필요하며, 그만큼 본인이 감담해야 하는 본인부담금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등은 지난 8월부터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대상 제한을 폐지하며 활동보조서비스 24시간 무상제공을 주장해왔다. 고 김주영씨도 이 같은 투쟁을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 해왔다.

    장애 등급이 없는 일본 등 해외 사례의 경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밝힌 활동보조서비스와 관련한 해외 사례의 경우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방식이다.

    스웨덴의 경우 자기관리 원칙에 의해 본인이 활동지원서비스 필요성을 기술하고 그것을 사회복지사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고, 영국은 사회복지사 등의 전문가가 판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이 경우 의사의 진단서가 동반되나 참고 정도에 불과하다.

    캐나다의 경우 본인이 서비스를 신청 리포트를 제출하면 장애인으로 구성된 ‘동료판정위원회’에서 심사해 판정결과를 주정부와 신청자에게 통지한다.

    일본은 한국과 가장 유사하지만 장애등급에 의한 서비스 제한이 없다. 장애정도 구분이 판정에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장애인의 환경과 욕구를 감안해 지자체 심사위에서 서비스 제공 여부를 결정한다.

    행진 중 차에 부딪힌 장애인(사진=장여진)

    넓은 도로로 나가려는 장애인과 막는 경찰들(사진=장여진)

    경찰의 봉쇄에 휠체어에서 떨어진 장애인(사진=장여진)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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