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재원과 '증세',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아
[기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모두 증세 주장에서 철수 중
    2012년 10월 29일 11: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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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을 앞두고 모든 후보들이 조금씩 강조점은 다르지만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복지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는 다들 모호하게 말하고 있다. 한때 복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대선후보들의 캠프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고, 득표을 위해서는 증세라는 껄끄러운 담론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가 복지를 위해서는 증세를 정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기고글을 보내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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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캠프의 발 빼기 경쟁

눈에 보이는 주요 대선 주자들이 증세론으로부터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발을 빼는 형국이다.

먼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에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지난 10월 16일과 17일 각각 증세 문제와 부유세 신설 문제를 거론했다가 나란히 하루 만에 발을 빼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 바로 다음 날인 18일,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에서는 혁신경제포럼을 총괄하는 홍종호 교수의 입을 빌어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고려해 증세만이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대안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며 이른바 “3단계 재원마련 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 측의 경우도 사정은 많이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선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이로부터 며칠이 지난 2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원마련 방안과 관련하여 안철수 측과 비슷한 3단계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2인 1색 복지재정 마련 방안?

박근혜 후보 측의 경우 무상의료 등 보편적 복지의 확대 및 실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므로 복지재원조성과 관련해서 논외로 하더라도, 이에 찬성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문재인 후보 진영과 안철수 후보 진영의 경우 좀 더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단순화의 위험을 감수하고 위 표에 정리한 바와 같이 두 후보의 복지재원 마련 방안은 상당히 닮은 꼴로 진행되고 있다. 복지재원 마련 방안만을 놓고 본다면 당장이라도 단일화 논의를 진행하기에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일 지경이다.

먼저 복지재원 마련의 첫 단계인 예산 및 지출구조의 개편은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MB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회자되는 토건 및 사회간접자본 사업 관련 예산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이를 필수 복지예산의 증액에 사용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1단계 안은 정부지출구조 개편을 통한 정부예산의 자연 증가분을 활용하여 노인복지 및 교육 등 꼭 필요한 사업에 우선 사용하겠다는 안철수 후보 측의 1단계 및 2단계를 합쳐놓은 꼴로 매우 유사하다.

각 후보 측에서 효율적 예산활용의 다음 단계로 거론하고 있는 조세정의의 실현 단계 역시 고소득/대기업 위주의 조세감면 혜택 삭제 및 삭감, 법인세의 실효세율 현실화를 주장하는 등의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꼴이다.

각 진영의 마지막 단계인 증세 방안과 관련하여 문재인 측과 안철수 측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후보 측의 경우 예산의 효율적 활용과 조세정의의 실현이라는 조치를 취한 이후에도 복지재원이 부족할 것이며 부자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부유세와 같은 새로운 세목을 도입하는 것보다는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소득세 기능의 정상화, 금융소득 및 주식거래 양도차액에 대한 과세 강화 등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안철수 후보 측은 이전 단계가 모두 진행된 후에도 세수가 부족하면 증세를 “고려해보겠다”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듯하다. 또한 증세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철저한 국민적 합의와 사전 동의를 통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취약 계층과 미래 세대를 보호하는 방식에 기초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제시한 상태이다.

몇 가지 사실 관계의 확인

각 대선 후보 진영의 복지재정 마련 방안을 평가하기 위해 판단의 근거가 될 만한 사실관계를 몇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자.

문: 우리나라 복지재정규모는 이제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답: 부족하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복지재정규모를 판단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지표 중에 하나인 OECD의 총사회지출 규모를 보자.

우리나라의 총 사회지출 규모(공공사회지출+법정 민간복지지출+자발적 민간복지지출)는 199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온 것이 사실이나, 2007년 현재 GDP 대비 10.2% 수준이다.

이는 총사회지출이 가장 높은 나라들인 프랑스(31.3%)나 스웨덴(30.2%)의 1/3 수준일 뿐 아니라 OECD 전체 평균인 19.2%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는 OECD 통계에 포함된 32개 국가들 중에서는 멕시코(7.4%)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이며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규모로 추정되는 그리스(22.8%), 포르투칼(24.4%), 체코공화국(19.2%)의 절반 정도 수준이라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이들 총 사회지출에서 공공재정과 관련 있는 순 공공사회지출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GDP 대비 7.2%에 불과하며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 지위는 더욱 하락하는 현실이다.

보편적 복지의 과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면서 복지재정 부족분에 대해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추정치를 내고 있는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GDP 대비 OECD 평균 수준의 복지재정 지출을 위해 2011년 현재 약 130조원의 재정이 부족하다고 예측한 바 있다.

문: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이미 충분히 높다?
답: 착각하지 말자. 충분히 높지 않다.

이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답이 가능하다. 먼저 명목 법인세율의 경우 우리나라는 2012년 현재 약 24.2%로 OECD 평균인 25.4%와 비슷한 수준이며, 순위로 따지자면 34개 회원국 중에서 21번째로 낮은 편에 속한다.

명목 세율과는 다른 측면에서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을 살펴볼 수 있다. 2009년 현재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3.7% 정도로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호주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새누리당과 기획재정부, 전경련 등이 복지재원마련 방안으로 제기되는 법인세 인상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선대인 경제연구소의 선대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을 들어 이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지난 1982년에서 2010년 사이에 법인 당 과세소득금액이 4.7배 늘어난 반면, 과세금액은 2.9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일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가중되면서 소수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급증한 반면, 일반 가계의 소득 증가율은 정체상태를 면치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전체 부의 총량에서 법인의 몫은 급증한 반면, 가계의 몫이 크게 늘어나지 못하는 부의 양극화 현상이 진행되면서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늘어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이 주장과 관련하여 좀 더 합리적인 비교를 위해서는 OECD 비교국가별 영업소득분배율과 노동소득분배율을 비교분석한 자료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가별 법인세와 개인소득세 분류 기준의 상이함도 이런 혼란을 가중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에서는 법인세로 잡히는 상당 부분이 법인세 비중이 가능 낮은 것으로 나타나는 다수 국가들에서는 개인소득으로 잡히고 있어 단순 추계방식만 보정하더라도 우리나라의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 추가적인 증세 없이도 보편적 복지의 실현이 가능하다?
답: 전혀 가능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복지재정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함은 앞서 논의한 바와 같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경우도 표를 의식하여 증세를 통한 복지재정 확보를 최후의 카드로 숨겨놓고는 있지만, 지출구조 개편과 조세정의 회복만으로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걸 모르고 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대략적인 계산에 따르면 지출구조 개편에 해당하는 토목과 국방예산의 축소 등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재정규모는 약 13조 정도이며, 조세정의 회복 방안에 해당하는 부자감세의 철회와 조세감면 감축 등으로 약 20-25조 정도의 추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경제규모에서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재원이 약 130조원 규모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결국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재원마련을 위한 증세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증세를 위한 시기와 구체적 방법의 문제로 귀결된다.

위에서 제시한 사실관계들을 파악하는 데에 특별한 전문지식이나 분석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의 실현을 위해 오랫동안 해당 영역에서 정력적으로 연구 활동을 펼쳐온 전문가들이 넘치도록 모여 있는 각 후보의 캠프에서 보통사람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위의 사실 관계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세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필시 말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 내부적으로 어떤 논의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간간히 언론을 통해 들리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가장 유력한 세 후보 진영 내부에서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마련을 주장하는 세력이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심지어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는 증세가 금기어의 반열에 올랐다는 소식도 흘러나온다.

You-know-who? 이제는 그 이름을 말할 때다

전 세계를 마법판타지의 열풍에 휩싸이게 했던 영국 출신 세 꼬마 마법사 이야기 해리포터를 기억한다. 해리포터 이야기에는 누구나 다 그 존재를 알고 있지만 차마 입을 열어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절대 악의 화신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이 볼드모트인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호그와트 학교의 마법사 지망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근엄하신 선생님들까지도 그에 대해 말할 땐 좌우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어 “You-know-who”라고 에둘러 말할 뿐이다.

다소 뜬금없는 꼬마 마법사 이야기였지만,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정치세력이 증세와 관련하여 취하는 태도를 접할 때마다 필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다.

외부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대통령 후보 진영에서 증세의 시기와 방안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 말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고 앞서 에둘러 표현했지만, 그 이유라는 것도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대통령 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있는 현실 정치세력으로서 다양한 정치공학적 계산을 안 할 수 없으리라는 사정도 충분히 이해되는 바이다. 그러나 증세의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는 한, 보편적 복지의 실현이라는 구호의 진실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회복지 목적세의 신설이든, 부자 중심의 소득세와 재산세, 그리고 법인세의 인상이든, 아니면 “나도 낼테니 너도 내라”는 식의 이른바 참여재정 방식이든, 그도 아니면 부가가치세까지를 포함한 간접세 중심의 보편적 증세 방안이든 일단 누군가 증세의 화두를 광장에 던져야 사람들이 모여서 말싸움이라도 해볼 것 아니겠는가?

한 가지 흥미로운 통계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글을 맺으려 한다. 2006년부터 2008년, 2010년에 걸쳐 격년으로 1200명의 응답자에게 “경제회복을 위한 감세 필요성”과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 필요성”에 대한 동의여부를 묻는 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안상훈 2011, “한국 복지정치의 지형”,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2011 춘계학술대회 자료집).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제회복을 위한 감세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다는 응답자는 2006년 49.1%, 2008년 48.3%, 2010년 36.2%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다고 응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각각 31.8%, 27.3%, 38.6%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08년에서 2010년 사이에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 모두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국민들은 이미 그 이름을 있는 그대로 들을 준비를 서서히 해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유력한 대선 후보 진영에서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던 그 이름을 이제는 있는 그대로 부를 때가 되었다고, 이제는 “You-know-who”라고 숨죽여 부를 것이 아니라 “증세”라고 그 본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증세”라는 것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초절정 무공의 대마왕도 아니지 않은가?

필자소개
서울여대 교수. 사회복지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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