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논쟁’ 아닌 ‘정치 경쟁’ 필요
    2012년 10월 29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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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쇄신 논란을 보며

중앙당 폐지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안철수 후보의 정치쇄신안이 대선 정국을 달구고 있다. 정치학자와 정치권, 시민단체 등이 국민의 정치혐오에 편승한 포퓰리즘이라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자, 국민의 열망에 귀기울이는게 포풀리즘이냐 반문하고, 포퓰리즘 운운한 정치권은 교만하다며 강도 높게 반비판하였다.

안철수 후보의 이와 같은 대응에 꽤나 많은 사람들, 특히 정치학자들과 단일화를 추진하는 이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정치쇄신에 대한 입장의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체로 안후보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 무지해 그런 것이 아니냐며 ‘꾸짖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 정치학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교과서에 충실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치는 원래…… ” “정당이란 모름지기 ……”란 식의 논법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한 태도로는 -설득할 의지와 필요성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를 떠나 안철수 후보를 -정치쇄신안의 수정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후보는 이미 정계입문을 위해 정치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정치를 실제로 하고 있는 ‘직업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러하다.

정치개혁 담론을 던진 안철수 후보의 인하대 강연(사진=안철수대변인실 페이스북)

안철수 후보의 그와 같은 대응은 그 자신의 ‘반정치적 신념’ 혹은 그것에 의해 강제받고 있는 ‘정치학적 사색의 빈곤’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략적 판단과 노림수가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측의 무소속 후보 한계론-민주당 입당론과 단일화 프레임에서 벗어나면서도, 향후 단일화 논의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자 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NLL 시비와 국감이 진행되면서 정국이 문-박, 민주당-새누리당 양자 구도로 형성되어 존재감이 약화되자 뭔가 임팩트를 가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전략적 고려는 그가 반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직업정치인이 된 이상, 그리고 대권 경쟁에 들어선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미 안후보는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단일화를 해도 ‘자신이 이기는 단일화’를 하겠다는 ‘권력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작금의 정치쇄신안 논란은 생생하고도 치열한 현실 정치의 문제인 것이다. 이때문에 나는 안철수 후보의 정치쇄신안을 둘러싼 공방은 ‘정치학 논쟁’이 아니라, ‘정치 경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누가 ‘보다 잘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보다 잘 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안후보측의 정치쇄신안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민주당과 문후보 등 안후보의 경쟁세력들에겐 나름 전략적 유용성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후보의 정치쇄신안이 포퓰리즘을 위한 것이든 아니든, 안후보의 경쟁세력들은 ‘안철수 현상’에 기성 정치권에 대한 깊은 불신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국민이라는 이름을 안후보가 선취하고 있는 현실을 냉정히 바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후보와 민주당, 그리고 진보정당 세력들이 국민을 앞세운 안후보의 반정치 담론에서 자유로울려면, 자기 자신(정당)을 쇄신하고 사회적 갈등을 실제로 해결해내는 ‘실력’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정국 자체가 그러한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정권을 잡은 다음에 뭘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결코 안후보의 반정치적 공세를 이겨낼 수 없다. 그러기에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사회원로들도 단일화만 촉구할 것이 아니라, 정치쇄신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그것의 조속한 실행을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마도 그리 하는 것이 단일화를 위해서도 더 효과적일 것이다. 정권교체보다 정치쇄신을 더 중시하는(?) 안후보에게 가시적인 쇄신의 성과는 단일화의 가장 강력한 근거를 제공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덫붙이자면 정치쇄신을 촉구할 때, 정당, 선거, 정치자금, 국회 등과 관련된 이러 저러한 몇 가지 제도의 도입을 중심으로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실제적 삶의 고충을 해결하는 실제 ‘행동’을 우선 촉구하는 것이었으면 한다.

그 행동이 있고 나면, 아마도 그제서야 정치학에 기대어 정치를 논할 수 있는 조건이 한층 더 나아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필자소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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