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이 살얼음 꺼짓듯 무너지는 사회
    [책소개] 『희망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2012년 10월 27일 01: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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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에 이어 이번에 나온 [희망의 배신]은 팍팍한 사회 구조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에 매달리며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화이트칼라 구직자들의 세계를 통해, 빈곤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에서도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살얼음 꺼지듯 무너져 가는 현실을 고발한다.

    그동안 ‘배신 시리즈’는 긍정주의, 워킹 푸어, 중산층이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떤 식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바꿔놓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불평등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

    화이트칼라의 소박한 희망마저 배신당하는 시대상

    [희망의 배신]에서 저자는 기업에 몸 바쳐 충성하고도 버려지는 화이트칼라의 세계로 향한다. 1990년대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은 일상이 되었다. 어제까지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 스타벅스나 월마트 카운터에서 1시간에 고작 7~8달러를 받는 처지로 전락하는 상황이다.

    저자가 취재를 시작한 2003년 말 미국의 실업률은 5.9퍼센트였는데, 이 중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20퍼센트로 160만 명에 달했다. 높은 성과를 낸 사람들도 해고되고, 중간 관리자도 먹고살기 위해 ‘투잡’을 뛰는 경우가 늘었다.

    몰락하는 사양산업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또 경기가 좋아져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저자에게 이 같은 중산층의 상황을 취재해 보라고 권유한다.

    이에 저자는 의문을 품는다. 정말로 화이트칼라들이 회사에서 줄줄이 쫓겨나고 있나? 그런 사람들이 새 일자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이 그렇게 안 좋다는데도 왜 저항의 기미가 전혀 안 보이는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동의 배신]때와 같은 잠입 취재를 결심한다. 우선 연봉 5만 달러 이상에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세우고 결혼 전 성(姓)이던 ‘알렉산더’로 이름을 바꿔 합법적인 신분을 마련한다. 그 뒤 이력서를 꾸미고, 인맥을 만들고, 화장을 바꾸고, 인성까지 개조하는 대대적인 구직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이 책은 2003년 11월부터 약 10개월간 이루어진 저자의 구직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구직도 실직도 모두 ‘네 탓’?

    먼저 저자는 구직 세계의 법칙에 따라 자신을 취업의 길로 인도해 줄 커리어코치를 구하고 연줄을 찾아 네트워킹 행사를 쫓아다닌다. 그런데 그 세계에서 마주친 것은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다.

    저자를 코칭하는 커리어코치는 나이 때문에 걱정하는 저자에게 ‘본인이 37살이라고 생각하면 37살이 된다’는 황당한 믿음을 강요한다. 또 ‘전문직 이직’이라는 사이트는 ‘승리자의 태도’를 가지라면서 예전 고용주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취업하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구직자가 갖춰야 할 가장 ‘올바른’ 태도는 ‘순응’이다. 외모에서도 기업에 순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올바른 옷차림과 적절한 액세서리’를 갖춰야 한다. 이미지 매니지먼트 회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권위적이어선 안 되고 가까이 다가가기 쉽다는 인상을 주어야 해요. 같이 일하기 편하겠다는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저자는 인성 검사도 받는데 ‘고대의 지혜’가 담긴 에니어그램이나 MBTI 등 기업에서 널리 쓰는 이런 검사들은 실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기업이 선호하는 것은 ‘인성’을 강조해 직원들이 순응하게 만들려는 속셈이 깔려 있음을 간파한다.

    이것은 ‘내가 해고된 것은 결국 내 탓’라는 희생자 비난 이데올로기로 이어진다. 회사에서 쫓겨난 것도, 취직을 못하는 것도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된다. 이런 식으로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더욱이 전문직 실업자들에게는 구직 자체가 일종의 ‘직업’이 된다. 화이트칼라 세계에는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업’이 아니라 ‘이직’이며, ‘실업자’가 아니라 ‘구직자’다. 커리어코치나 네트워킹 회사들은 예전 직장 생활을 필사적으로 ‘모방’하고 바쁘게 지내면서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자리를 찾는 화이트칼라들은 구직자라는 ‘일’을 하느라 현실에 불만을 제기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한편 화이트칼라 구직 시장에서는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자는 쓸 만한 연줄을 만들기 위해 온갖 네트워킹 행사를 쫓아다니는데, 그중 많은 행사가 기업과 비슷한 모습을 한 초대형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

    실직도 구직도 ‘하느님의 뜻’으로 설명하는 교회의 모습은 인성 검사나 코치들의 뉴에이지 식 문화와 맞닿는다. 양쪽 모두 현실을 바꾸기보다는 구직자 개인을 바꾸는 데 온 관심이 쏠려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일상!

    구직 산업계가 요구하는 대로 다 해도 취직하기는 쉽지 않다. 거듭되는 ‘거절’에 좌절한 화이트칼라들은 구직을 포기하고 자영업자의 세계로 내려앉게 된다. 이른바 ‘비표준적 고용(nonstandard employment)’이라고 불리는 부동산 중개업, 프랜차이즈 사업, 수수료만 받는 영업직 등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저자의 주변에서도 친오빠, 형부 등이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험하지 않아’ 보이면서도 진입 장벽이 낮은 부동산 중개업은 화이트칼라가 ‘만만하게’ 뛰어드는 업종이다. 그러나 1년 만에 실패하는 비율이 86퍼센트에 달하고 ‘생존자’도 70퍼센트가 연 소득 3만 달러가 안 된다. 프랜차이즈 사업도 마찬가지다.

    2008년을 기준으로 자영업자 수가 559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31.1%에 이르고, 그 중 절반이 창업 3년 이내에 문을 닫는 우리나라의 현실 또한 미국과 다르지 않다.

    화이트칼라가 선택하는 또 하나의 일자리는 저자가 제안 받은 보험, 화장품 판매처럼 수수료만으로 먹고사는 영업직이다. 그러나 이런 업종에 발을 들였다가 사기를 당해 돈만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사기가 아니라 해도 수수료가 너무 적어 생활이 어려운 실정이다. 1년에 5만 달러 이상 버는 사람은 8퍼센트에 불과하고 절반은 1년에 1만 달러도 벌지 못한다.

    기업의 노예가 되거나 혹은 워킹 푸어로 전락하거나

    기업 밖으로 밀려난 구직자 못지않게 ‘생존자’인 기업 내의 화이트칼라 역시 ‘시름시름 죽어 가고’ 있다. 이제 기업은 직원을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본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언제든 내다 버린다. 그런 CEO에게는 주주에게 이익을 안겼다며 오히려 높은 보수가 주어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서비스직을 아웃소싱 한 50개 미국 기업 CEO의 보수 인상폭은 다른 회사 CEO에 비해 5배나 높다.

    이제 기업은 ‘포식자의 세상’으로 변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정’과 ‘에너지’와 ‘헌신’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특히 의사나 과학자 같은 ‘진짜’ 전문직과 달리 일반 화이트칼라들은 ‘임원실’을 차지한 이들에게 완전한 충성을 서약하고 ‘자기 자신’까지 판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자리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잃는 상황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충성을 바쳐도 ‘배신’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는 ‘가장 성격이 좋고, 충성심이 제일 강하고, 가장 복종적인 직원이 감원 1순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서 밀려난 화이트칼라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아래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일자리를 잃었다가 다시 취직한 사람들의 수입은 전 직장에 다닐 때보다 평균 17퍼센트 줄어든다는 통계 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일단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에 학력이나 능력과 무관한 저임금 전업 일자리, 즉 월마트나 스타벅스 매장 직원으로 취업한다. 하지만 이런 ‘생존용’ 임시 일자리에서 온종일 육체노동을 하는 동안에는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업 안에 있을 때는 ‘노예’로, 기업에서 밀려나고 나면 빈곤에 대한 공포를 안고 워킹 푸어로 전락하는 화이트칼라.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마저 무너져 가는 것이 오늘날 중산층의 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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