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서, 문화투쟁의 관점에서 읽기
    [책소개] 『금서, 시대를 읽다』(백승종/ 산처럼)
        2012년 10월 27일 01: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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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서는 정치, 도덕, 종교 등의 이유로 책의 간행이나 열람, 유통, 소지 등을 금지하는 것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한국 금서에 관한 책으로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금서를 통해 사회사상사를 살핀 것도 있고, 역대의 금서 정책을 다룬 책도 있으나 이 책 <금서, 시대를 읽다>에서는 문화투쟁이란 관점에서 금서의 문제를 바라본다.

    문화투쟁 즉 새로운 사상과 관점을 주장하는 금서의 저자들과 그들을 억압하는 지배세력 또는 기득권층 사이의 문화적 충돌에 주목하는 것인데, 문화투쟁에 대한 접근 역시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서사전략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고 있다. 따라서 금서의 저자나 독자, 금서 조치를 내린 권력자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며, 금서에 담긴 다양한 문제를 살펴보고 금서 조치를 초래한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맥락도 짚어본다.

    역사 속의 많은 금서에서 우리는 그 책이 권력을 자극한 불온성, 즉 책이 시대와 불화한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곧 금서란 시대가 당면한 과제들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며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문화투쟁의 도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서, 시대를 읽다>에서는 조선 후기에 등장하여 나라의 멸망을 예언했다고 금서가 된 <정감록>과 구한말 시국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금지된 <조선책략>, <금수회의록>, <을지문덕>, 그리고 해방 후에 숱한 금서들 중에서도 서정시로 알려져 있으나 저자가 북에 남았다는 이유로 읽을 수 없었던 <백석 시집>, 당시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공산주의 국가 중국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된 <8억인과의 대화>, 부패한 독재정권을 질타했다고 금지된 <오적>, 빨치산의 역사를 썼다는 이유로 논란이 된 <태백산맥> 등 8종의 금서를 소개한다.

    제1강 [정감록]- 평민지식인들의 역사적 진화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으나 금서가 된 <정감록>을 다룬다. <정감록>은 조선왕조가 망하고 정씨가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내용이다. <정감록>은 지역차별 정책에 의해 소외된 지역인 함경도에서 조선 영조 때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저자 백승종은 <정감록>을 읽고 퍼뜨린 배후 세력으로 평민지식인을 지목한다. 평민지식인은 성리학은 물론 의학, 풍수지리 등을 배운 유랑지식인으로 신분의 벽에 막혀 현실비판적인 <정감록>을 애호하게 됐던 것이고, 이들은 <정감록>을 도구로 삼아 지배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을 상대로 문화투쟁을 벌인 것이다.

    제2강 [조선책략]- 개화와 척사의 엇갈린 선택 <조선책략>은 중국의 외교관 황준헌이 일본에 온 조선의 수신사 김홍집에게 전달한 책으로, 한중일 3국이 미국과 연합하여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홍집을 통해 <조선책략>을 전해 받은 고종이 이 책에 크게 공감하자, 조선의 유생들이 1881년 신사(辛巳) 척사상소 운동을 일으키는 등 크게 반발했다. 이는 개화와 수구의 가치관을 둘러싼 문화투쟁으로, 기성의 성리학 중심 사회를 극복하려는 신지식인들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 집권층의 힘겨루기였다.

    제3강 [금수회의록]- 초기 기독교 신자의 제국주의 비판 <금수회의록>은 구한말의 인기 풍자소설이었다. 저자 안국선은 <금수회의록>에서 기존의 유교적 입장을 벗어나 기독교의 잣대로 여덟 동물 즉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새의 입을 빌려 인간 파헤쳤다. 당국은 이 소설이 치안에 방해가 된다고 금서로 묶었다.

    제4강 [을지문덕]- 영웅주의와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사학자 신채호는 <을지문덕>을 통해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을 조선의 영웅으로 되살려냈다. 일제는 식민화에 앞서 사상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1908년부터 1910년까지 <을지문덕> 등을 포함한 무려 50여 종의 도서를 금지시켰다. <을지문덕>은 신채호의 민족주의적 영웅사관이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많은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국한문혼용으로 썼을 뿐만 아니라 운문 형식이어서 누군가 큰 목소리로 읽으면 여러 사람이 같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제5강 [백석 시집]- 식민지 근대성을 거부한 모더니스트 백석의 시는 백석이 해방 이후 북쪽에 남았다는 이유로, 일제 시기가 아닌 6·25전쟁이 끝난 시점에 금지됐다가 1987년에 해금됐다. <백석 시집>은 시의 내용이나 그 저변에 흐르는 사상성 때문에 금서가 된 것이 아니라 냉전이데올로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금지된 것으로, 금서와 문화투쟁의 관계가 복잡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제6강 [오적]- 민주화를 넘어 생명의 철학으로 <오적>은 담시(譚詩)의 형태로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군, 장차관을 을사늑약 때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에 비유해 풍자와 해학으로 조롱했다. 시인 김지하는 조선 후기부터 성숙된 민중사상을 계승하여 민중적 표현 방법과 민중적 사상을 <오적> 안에 담았는데, 저자 백승종은 <오적>이 <정감록>의 내용과 형식을 패러디했다고 본다. 1970년 <오적>을 발표하자마자 김지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혔다.

     제7강 [8억인과의 대화]- ‘진실지상주의자’의 현대 중국 발견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의 편저인 <8억인과의 대화>는 당시 한국에서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금기시되며 죽의 장막에 가려졌던 중국의 민낯을 드러내려 했다는 이유로 출간된 1977년에 금서가 됐고, 리영희는 반공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혔다. <8억인과의 대화>를 집필하던 리영희의 당시 상황과 그 내용이 갖는 충격과 한계 등도 짚어본다.

     제8강 [태백산맥]- 망각의 강요를 뿌리친 빨치산의 역사 여순반란 사건 종결 직후부터 6·25전쟁의 휴전협정까지의 현대사를 그린 <태백산맥>은 당시까지 금기시되던 빨치산의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역사소설의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태백산맥>으로 저자 조정래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고발당하고 당국에 불려 다니는 등 고초를 겪었다. <태백산맥>은 서사의 중층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좌우익 등이 얽힌 토지개혁이나 6·25전쟁, 그 외의 분단까지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들을 층층이 엮어놓았다. 또한 허구와 사실을 섞어 역사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려고 했으며, 등장인물의 삶을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치밀하게 분석하는 등 대안적 역사학의 서술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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