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누가'아니라 '무엇'을 물어야
    [책소개] 『당신들의 대통령』(김상봉 김민하 외/ 문주)
        2012년 10월 27일 01: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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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은 무엇인가?

    모두가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지 묻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대통령에 분노하고, 대통령 때문에 눈물 흘리지만, 개별 대통령 너머의 실제와 원리를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차선과 차악을 둘러싼 논쟁이거나, 공학적 이유로만 흘러나오는 개헌이라는 텅 빈 말뿐이다.

    지금, ‘무엇’이냐고 물어야 한다.

    대통령은 그저 제도나 인물이 아니다. 차선과 차악의 문제로 한정될 수도 없다. 한국사의 어느 시점부터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 되어 우리를 지배해온 대통령은 정치를 넘어 사회의 모든 영역에 투사되는 밑그림이기 때문이다. 총합으로서의 사회와 개별적 개인의 삶 전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자, 궁극의 권력이자 표상이다. 하기에 모두가 이 절대적인 권력을 둘러싼 쟁투를 벌이는 지금이야말로, 호흡을 가다듬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최초의 인문학적 성찰과 사회문화적 분석

    [당신들의 대통령]은 (비교)정치학의 제도 연구와 대통령학이라 불리는 리더십 연구를 넘어서서 한국의 대통령을 그 시원에서부터 정치와 경제, 역사와 철학, 사회와 문화라는 다양한 영역에 걸쳐 고찰한다. 여덟 명의 저자는 각기 다른 길을 경유하여 한국의 대통령과 마주한다. 그 시작은 우리 유년의 기억이다.

    하나, 우리는 한 때 대통령을 꿈꾸었지.

    유년 시절, 많은 우리들이 대통령을 꿈꾸었다. 광부의 딸 권수정도 그랬듯이. 그러나 그녀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고, 청와대에 가기 전에 감옥에 갔다. 현실은 생뚱맞게 흘러가고, 유년의 기억은 휴지조각 되어 나뒹군다. 더는 대통령을 꿈꾸지 않는다는 그녀는 우리에게 ‘나의, 너의, 그리고 각자의 대통령’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둘, 어째서 선출된 왕이 우리를 지배하는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그러나 실은 왕이 지배하는 국가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명목에 불과하고, 공화국은 오지 않았다. 너와 나의 나라를 일구는 뜻은 세워지지 않았고, 저마다의 뜻은 오직 폭력에 의해 멸절되거나 유지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너도 나라’고 말하지 못한다.

    거리의 철학자 김상봉은 선출된 왕에 불과한 한국의 대통령에서부터 시작하여,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국가와 나라, 한국 민중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그 근본에서부터 성찰한다. 그리하여 다음 나라를 향한 길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 모색한다. 결기마저 느껴지는 그의 고뇌는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과 어우러져 길을 찾는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셋, 대중은 왜 메시아를 꿈꾸는가?

    현실적인 대중은 너무도 현실적이기에 꿈을 꾼다. 벗어날 방도가 없어 보이는 지금, 이 현실을 넘어서게 해 줄 구원을 갈망한다. 박정희와 노무현은 그런 열망과 만나 신성을 획득한 우리들의 메시아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대중과 신성 사이를 매개하는 자들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정치화된다.

    민중신학자 김진호는 정치신학적 방법을 통해 한국 정치의 독특한 현상인 메시아주의 정치를 박정희와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통해 분석함으로서 대통령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현상에 새로운 비평적 지평을 제시한다.

    넷, 표상, 그 뜨거운 전쟁터

    전규찬에게 대통령은 명백하게 ‘환상’이다. 그러나 이 환상은 권력을 권력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저자가 표상 정치라 명명한 역동적인 장(field)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 시작된 순간부터 대통령을 둘러싼 표상의 제작과 유통, 해석과 재해석을 둘러싼 전쟁을 벌여왔다.

    그것은 때로 권력과 인.민의 경쟁이며, 보수와 진보, 세대와 세대의 전투이며, 기호와 기호의 경합이다. ‘어디에나 있는 각하’에 대한 회고로 시작하는 전규찬의 글은 대통령 표상의 연대기적 분석을 통해, 지금 현재도 진행 중인 이미지 전쟁의 맥락과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한국의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어떤 특정한 풍경을 재현한다.

    다섯, 대통령과 경제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들

    박정희가 없었다면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나? IMF 사태는 김영삼 때문인가? 한윤형이 보기에 이런 질문들은 처음부터 다시 복기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경제 발전을 둘러싼 ‘서사’들은 때로 ‘사실’을 주조하고, 꿰어맞춘다. 필요한 것은 사실과 서사 사이의 간격을 회고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우리 현재를 재인식하는데 유용한 목록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승만과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에 이르는 역대 대통령들의 경제 정책과 통치 행위들을 당대의 정치 사회적 맥락과 자본주의 세계체제와의 연관 속에서 재해석한다. 그리하여 공동의 삶을 통제하기 위한 정치의 기술이 무엇인지 묻는다.

    여섯, 대중은 무엇을 열망하는가?

    선거는 예외적 상황이다. 그러나 그 시공간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이라는 이름으로 경합하는 다수의 사람과 집단, 세력의 경쟁이다. 김민하는 역대 대통령과 대통령 선거를 회고하며 대중들의 열망이 무엇이었고, 각각의 정치 세력들이 그 열망을 어떻게 조직하려 했는지 점검한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른바 경제 정책이다. 상이한 이념을 가진 정치세력과 관료집단, 그리고 그들과 마주한 대중의 열망이 ‘경제’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해왔는지 분석한다. 김민하가 보기에 필요한 것은 오지 않을 초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다.

    일곱, 늑대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김항은 대통령제의 원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소설가 김승옥으로부터 시작한다. 작가론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제도와 인물 뒤에 가려진 대통령제의 궁극적 원리로까지 나아간다. 그것은 예외를 자신의 존립 근거로 삼는 초법적 권력이며, 법치 내에 온존한 반(反)법치의 힘이며, 규칙 안에 살아 있는 예외다. 집요하리만치 치열한 논증을 통해 대통령이 실은 한 마리의 늑대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김항은 필요한 것은 공포의 기억이라 진단한다.

    여덟, 당신들의 대통령은 무엇인가?

    이택광이 보기에 오늘의 대통령 직선제가 보호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쾌락의 평등주의와 공리주의다. 그러나 평등은 모두가 불평등한 상황과 맞닥뜨렸고, 공리는 다수를 빙자한 소수의 희생 위에 군림한다. 이 불가역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는 도덕성을 명분으로 ‘대통령 보수주의’에 빠져 있다. 극복하기 쉽지 않은 이 현실은 그래서 ‘대통령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다시, 정치다.

    선출된 왕과 민주주의, 그 이후

    한국의 대통령은 차라리 선출된 왕이다. 민주주의는 명목에 불과하고 공화국은 여전히 도래하지 않았다. 87년 이후에도 여전히 그렇다. 그럼에도 오늘의 대통령은 신화와 허구, 열망과 신성이 뒤엉킨 선량하거나 사악한 초인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초인은 결코 구원자가 아니다. 이 퇴행적 현실은 현재의 대통령을 그대로 두고는 고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차라리 ‘대통령의 문제’를 아는 대통령, ‘대통령제 그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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