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두번의 선거로 보수주의 극복 안돼
    [책소개]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조윤호/ 오월의 봄)
        2012년 10월 27일 1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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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전에 혁명을 통해 독재자를 권좌에서 쫓아낸 나라.
    30년 넘게 지속된 군사독재를 마침내 시민항쟁으로 물리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나라.
    1996년 전 세계가 깜짝 놀란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이 벌어졌던 나라.
    불과 5년 전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민주화와 과거청산, 인권 증진의 모범으로 꼽혔던 나라가 한국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아직도 보수의 나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남긴 말이다.

    보수주의가 지배하는 보수의 나라

    15대 대선에서 1.6%, 16대 대선에서 2.3%의 차이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탄생했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야권연대, 후보단일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고서야, 그것도 가까스로 보수 세력을 누를 수 있다. 그렇게 두 차례 정권을 연이어 잡았음에도 보수 세력에게 밀려 제대로 된 진보적 정책 하나 펴지 못했다.

    반면 온갖 비리가 터져 나오고 수차례 무능함이 증명되었음에도 보수 세력, 새누리당의 지지층은 견고하다. 새누라당의 대선 후보 박근혜의 지지율이 등락을 거듭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콘크리트 지지율’이라 불리는 40%는 확고부동이다. 비단 정치에서만이 아니다. 보수언론은 신문시장 70%를 장악하고 있고 대기업의 횡포는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종교와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보수는 기세등등하다.

    “더 기가 막힌 노릇은 (…)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의 노력이 먹혀들어가고, 많은 이들이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보수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보수단체에 가입하고, 거의 무조건적으로 보수 정치인을 지지하며, 돈 많은 자본가와 기업인들을 존경한다. 가진 게 많은 기득권뿐만이 아니다. 돈 없고 가난한 이들 중 많은 수가 보수를 동경하고, 존경한다.” -p7

     어쩌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살게 된 것일까? 대체 무엇이 한국 사회를 보수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들었을까?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그들은 보수를 지지하고 동경하고 존경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점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대한민국 보수의 적통, ‘모태보수’ 박근혜를 통해
    한국 사회 보수의 정체를 파헤친다

     박근혜에 대한 보수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근혜에게 보내는 열광적인 지지의 이유는 무엇인가? 박정희와 육영수의 생물학적인 딸이므로, 경제 성장과 유신독재의 정치적 계승자이므로, 원칙과 신뢰 혹은 고집불통의 정치인이므로….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러나 IMF 사태 직후 “아버지가 일으켜 세운 나라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정치를 시작한 박근혜는 그동안 새누리당을 두 번이나 벼랑 끝에서 구해냈고, 국가보안법과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세종시 이전 문제 등 각종 현안과 이슈에서 보수적 정치인으로서의 확고한 정체성과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박근혜의 반대자들은 ‘공주’라고 비난하지만 박근혜가 가진 고귀한 이미지와 위기에서 발휘되는 고도의 절제력은 백성의 고달픔을 헤아리고 어루만져 주는 어진 성군과도 같은 지도자로 서민층에게 어필한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유는 박정희의 딸이자 여성이자 서민의 편인 그녀가 ‘진짜’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박근혜는 원칙과 소신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신뢰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p114

    그러므로 우리는 박근혜를 통해 한국의 보수 세력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박근혜가 꿈꾸는 나라를 통해 박근혜 지지자들이 바라는 국가와 사회가 어떠한 국가와 사회인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보수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

    반공 국가에서 시장 국가로…
    보수주의자들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보수주의는 인간 이성에 근거한 진보를 불신하며 현실과 전통을 중시한다. 혼란스러운 다수의 지배보다 현명한 소수 엘리트의 안정적인 통치를 선호한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는 한국 보수주의자들에게 전성기이자 신화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신화를 재현할 21세기형 군주, 믿음직한 보스를 찾아왔다. 이회창에서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로.

    박근혜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절대왕정 군주 리더십,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으로 보수 세력에게 안정감을 심어주었으며 동시에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국민 행복도우미 리더십’으로 지지층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한국 보수 세력과 서민들은 믿음직하고 든든한 지도자,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애로사항과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강력한 힘과 자상함을 동시에 갖춘 리더로 박근혜를 호명한다.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통합되고 단결하는 국가, 기회의 균등과 공정한 경쟁이란 미명 아래 시장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사회. 이것이 바로 보수가 꿈꾸는 대한민국, 박근혜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국민이 되는 길은 험난하다. 시장과 국가, 사회구조나 시스템 따위에 딴지걸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히 일하는 사람만이 국민이 될 수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성공을 위해 뛰어야 한다. 하기에 박근혜와 보수 세력은 끊임없이 과거의 적과는 화해를 시도하고 통합을 외치지만 현재의 정치적 반대자는 비국민, 종북 좌파, 국가의 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박정희가 김대중을 탄압하던 시절이 아니라, 박정희가 죽고 김대중도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이후에야 김대중과 화합할 수 있었다. 박근혜는 노무현이 죽고 나서야 노무현과 화해했다. 박정희가 노동자들을 때려잡던 시절에는 전태일과 화합할 수 없었다. (…) 박근혜는 과거와 화합할 수 있어도 현재와 화합할 수 없다.” -p190

     “박근혜의 나라는 매우 편향적인 나라다. 박근혜의 나라에서 국민이 되는 건 너무 힘들다. 박근혜의 나라에 저항하다 죽으면, 박근혜와 싸운 뒤 수십 년이 지나고 나면 박근혜가 찾아와 국민으로 인정해주지 않을까?” -p200

    진보는 보수를 넘어설 수 있는가? 전략과 대안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가치와 상징을 넘어서는 것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하루가 다르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 한다. 야권연대, 후보단일화가 되면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까?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야권으로의 정권교체’에 대한 응답이 50%를 넘어섰음에도 대선 결과는 여전히 불투명하며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박빙의 승부가 이뤄질 것이라는데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또 다시 극적인 드라마를 통해 대선에서 신승을 거둔다고 한들 안심해도 좋을까? 한국 사회에서 단 한 번도 기득권을 놓쳐본 적 없는 보수 세력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세밀한 진단 없이 한국 사회는 제대로 된 진보를 꿈꾸기 어렵다.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진영의 아젠다를 선점한 보수 세력의 유연성, 경제 위기 속에서 점점 커지는 불안 심리를 잠재울 강력한 리더라는 상징성, 엄격한 아버지인 동시에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지도자 이미지를 넘어설 수 있는 진보의 전략은 존재하는가?

    “진보 진영은 박근혜의 상식과 원칙, 국가관을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 위기를 끝장 낼 방법이 무엇인지, 자본과 기업을 통제할 방법이 무엇인지 모색해야 한다. 박근혜가 내세우는 국익이 누구에게 이익이고 누구에게 손해인지도 낱낱이 밝혀야 한다. (…) 짓밟힌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국가와 지도자가 내세운 국익을 넘어설 대안을 보여줘야 한다.” -p263

    보수의 가치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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