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의 마음치유 이야기⑦
    "힘들 땐 이렇게 기대도 돼"
        2012년 10월 26일 03: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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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저녁, 오랜만에 한진 수요 집회에 다녀왔다. 작년 이맘 때 즈음, 나는 한진 동지들과 함께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8주기를 맞아 솥발산에 갔었다. 그 때 한진은 새로운 집행부의 구성으로 몹시 고무되어 있었다. 열사 묘역을 참배하던 푸른 작업복의 한진 동지들. 뭔가 새로운 기운으로 투쟁의 의지를 다지던 한진 동지들의 벅찬 숨소리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난 한진 동지들은 회사 정문 앞 텐트 농성을 하며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9주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11월 9일이면 회사가 복직을 약속한 날인데 회사는 ‘건강검진을 하라, 전환배치를 인정하는 근로계약서를 서면 제출하라’며 조합을 자극하고 있었다.

    긴 투쟁, 지치지 않는 끈질김으로 새롭게 대오를 정비하는 수요 집회에서 나는 흰머리를 휘날리며 투쟁을 이끌고 있는 차해도 지부장을 만나고 왔다. 세 번째 한진 사랑방에서 만난 차해도 지부장은 장난기 가득한 소년 같았다.

    첫 날 첫 만남 때 나와 짝이 되어 배게뺏기를 하는데 잠시도 틈을 안 주고 밀어 붙이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여러 번의 배게뺏기 경험 덕분에 요령이 붙어 있어 웬만해선 밀리지 않는 나도 그만 그 힘에 휘둘리고 말았었다.

    차해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

    별칭을 영감이라 정하고 자신은 어딜 가나 흰 머리 때문에 금방 드러나기에 조심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던 사람, 그 하얀 꽁지머리를 마치 예술가처럼 묶고 나타났던 사람. 이야기를 시작하면 술술술 아무렇지도 않게 속내를 툭 드러내던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성이 차씨라 그런지 자주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영감은 과정 시작 두 번째 날, 상경투쟁을 하고 내려오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그렇지 않아도 투쟁으로 부실해진 몸에 부상을 입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문안을 갔더니 다음 번 모임에는 목발을 집고서라도 참석하겠노라 했고 그 다음 주 정말 목발을 집고 치유 과정에 참석했다.

    아마 한진 사랑방 3회기가 풍성하게 종결될 수 있었던 것은 현재 지부장인 영감이 그룹 안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내어놓았기 때문이리라.

    올 봄, 한진은 회사 측의 손해배상 요구와 복수 노조 등으로 몹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과정 중에도 영감은 많이 외로워했다. 빠져나가는 조합원, 부쩍부쩍 시끌시끌했던 조합 사무실이 조용해지고 어디서부터 일을 풀어내야 할지 고민이라던 지쳐하던 그의 얼굴을 대하면 영감의 외로움이 가슴에 다가와 찡해지곤 했다.

    어느 날 과정에서 영감이 자기 이야길 내어놓았다. ‘87년도가 없었다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20년 이상 노조활동을 하면서 잘 가고 있는가 되돌아보면, 어떤 때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스스로 잘 산 삶이다 위안을 하기도 하는데, 요사이 특히 분노가 가득차 있어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어진다’고 말하던 영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두렵기도 하고 결과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살아온 과정만큼은 후회 없이 열심이었노라고 스스로 자평하던 사람이었다. 동지들이 영감의 고백을 듣고 그 삶을 지지해 주었다.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스쳐 지나갔다.

    수배를 당해 지리산으로 숨어들었을 때 만났던 그림 같은 아내,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지리산이 밉다며 괜스레 지리산을 탓하던 사람. 그렇게 고마운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고사하고 퉁명스럽게 대하고 있다며 술이나 취해야 그나마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다고 쑥스러워 하던 사람.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준다고 하고는 20년 동안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노라고, 그러나 늙으면 시골에서 같이 고무신 신고 할머니 할아버지 되어 손잡고 다니자고, 당신이 있어서 힘들 때 마다 견딜 수 있었노라고 아내에 대한 마음을 동지들 앞에서 살포시 내어 놓았던 날이 있었다.

    핸드폰에 가족사진을 넣고 다니며 딸 이야기를 할 땐 얼굴이 확 펴지고 목소리에도 기쁨이 묻어나오던 영감. 그런데 아들 마음은 한 번도 제대로 읽어준 적이 없었던 거 같다고 미안해 하면서도 여전히 만나면 또 퉁명스러운 아빠가 되어버린다고 속상해 하곤 했다.

    그러던 영감이 어느 날 이제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조차 없다며 회사 앞에 텐트 농성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회사는 끔쩍도 안하고 조합원은 흔들리고 어떻게 힘을 모아야 할지, 어떻게 투쟁을 전개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이기는 싸움, 그리고 버티는 싸움을 해야 하는 심정을 무겁게 내어놓았다.

    힘들 땐 이렇게 기대도 돼.
    울고 싶을 땐 울어도 받아줄게.

    천막 투쟁을 앞두고 3번째 한진 사랑방은 1박2일의 집중 치유 과정을 준비했고 그 날 밤 영감을 위한 특별한 치료장을 펼쳤었다.

    어떻게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암담한 현실. 물론 스스로 옳은 일이라고 여기며 견디고 있지만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될는지 예상할 수 없어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영감 앞에 동지들이 한명씩 다가가 무릎을 맞대고 않아 속마음을 내어놓기로 했다.

    맨 처음 영감앞에는 한진 초기부터 운동을 해왔고 지난 85크레인에서는 사수대에서 힘차게 투쟁했던 맑고 든든한 선배가 다가갔다. ‘최선을 다하며 끝까지 해보자.’, ‘몸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자’ 고 말하며 영감을 감싸 안은 동지는 ‘한진은 25년 긴 세월동안 열심히 제 역할을 한 조직이니까 역사적으로 열심히 살았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니까 우리 편안하게 맘먹고 힘차게 투쟁하자’ 고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과정원 중에 가장 젊고 패기에 찬 친구가 영감 앞에 다가가 ‘영감~’ 하고 부르고는 ‘영감을 보면서 양심이란 걸 알게 되었노라고’ 고백을 했다. ‘영감 곁에 끝까지 있을꺼니까 잘 될 거라는 생각을 놓지 말고 끝까지 벼터내자고, 다시 시작하는 투쟁이고 일단 결정했으니까 앞으로 나아가자고, 자신은 끝까지 남는 사람으로 영감 곁에 있을꺼라’고 지지를 보냈다.

    뒤이어 오랜 시간 같이 투쟁했던 동지가 영감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힘을 건네주었고, 또 다른 동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열심히 노를 저어가자고. 우리가 확신에 차 있으면 바라보는 조합원도 확신에 찰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여기서 약하고 지친 자신을 내어놓고 투쟁의 한 길에선 담대하게 나아가자고 힘을 주었다.

    평소 영감과 가장 이야기를 깊게 나눈다는 어떤 동지는 영감의 무릎을 힘차게 잡으며 ‘우리는 어하든 대가리가 하는 만큼은 일단 다 따라간다, 그러니까 너무 부담 느끼지 말고 앞이 잘 안보여도 걱정 말고 나서라. 우리가 언제 앞이 보이는 싸움을 한 적이 있는가! 예전보다 더 앞이 안 보이는 거 같지만 가다보면 길이 있었지 않았는가. 가다보면 길은 나오게 되어 있는 법, 파이팅하자’ 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침묵으로 마음으로 동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영감이 ‘투쟁을 앞두고 집에 들어가 가족에게 이야길 했노라고. 아빠가 당분간 집에 못 올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가족들이 모두 말이 없어지더라고. 힘겹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밥 먹다가 조용해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더라’며 쓸쓸한 표정으로 마음을 한 켠을 내보였다.

    그러고는 ‘회사가 어용 노조를 내세워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해도 조합이 살아있고 투쟁하고 있으면 마음대로 휘두르지는 못한다’며 지금은 마음이 무거워도 투쟁이 진행되면 조합원들의 숨통이 확 터지는 힘 있는 투쟁이 펼쳐질꺼라고 ‘최선을 다해볼게. 결과가 어떤 형태로 나오든 최선을 다 해서, 자발적으로 내 문제로 이 투쟁을 만들어가자. 조건도 어렵고 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하지만 조합원과 함께 하는 싸움이 될 수 있게 힘내자’고 새롭게 힘을 모았다.

    무릎을 맞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눈 후 모두 일어서서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 원 안에 영감을 넣은 후 눈을 감은 영감이 어느 방향으로 쓰러지든 안심하고 쓰러질 수 있도록 원 밖의 우리가 영감을 받아 주기로 했다. 이리 저리 푹푹 안기는 영감, 몸을 날려 그 영감을 받아내는 과정원들.

    말이 아닌 몸으로 ‘힘들 땐 이렇게 기대도 된다.’고. ‘울고 싶을 땐 울어도 받아주겠노라’고 ‘잔치 집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아도 대동제처럼 신나지 않아도 끝까지 버티는 지구력만큼은 끝내줄 수 있노라’고 마음을 담아 기운을 넣어주었다. 그리곤 영감을 가운데 두고 모두 하나가 되어 한 호흡으로 깊은 포옹을 나눴다.

     처음 투쟁을 결의할 때 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이 된 영감, 영감과 함께 든든하게 투쟁하고 있는 한진 동지들.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있지만 힘차게 어깨 걸고 ‘다시 시작’하는 그들에게 지치지 말라고, 힘차게 투쟁하라고 작은 내 힘을 보낸다.

    으라차차, 으라차차 !!

    필자소개
    이수경
    홀트아동복지회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아리랑풀이연구소 그룹 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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