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진영 내 스토킹 사건을 겪으며
    공동체 유지위한 진보진영의 윤리와 가치, 조건 무엇일까
    By 토리
        2012년 10월 26일 02: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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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나 그리고 나와 같이 진보신당에서 활동했던 친구가 트위터 상으로 심하게 스토킹을 당했다. 나와 같이 진보신당에서 활동했던 친구는 진보신당에서 활동한 후 근 3년 가까이 계속 트위터에서 사칭계정이 만들어지는 스토킹을 당해야 했고, 나 역시 최근에 전화번호가 유출된 사칭계정이 만들어지는 곤욕을 겪었다.

    스토커는 수많은 익명 트위터 계정을 생성하여 나와 내 친구를 공격했는데, 공격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유영철이 살인을 한다.”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혐오범죄에 노출되고 있고 너만큼 차별을 자행하는 인간도 드물다”

    내 친구의 경우 여성주의자에 대한 공격으로 주로 일관하고 있고 나의 경우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 “이태원에 출몰”한다며 “남자들이 싫어하니 이반 행세를 한다”는 내용의 성소수자 혐오에 가깝다.

    아직 범인이 누구일지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게시판에서 벌어진 진보신당 성폭력 사건과 각종 여성주의 논쟁에서 극단적 반여성주의를 표방하며 공격했던 무리들 중 일부로 짐작된다. 공격 내용이 진보신당 활동 내용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접한 주변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악질적 무리가 끈질기게 진보라고 불리우는 집단에 살아남아 있는지를 궁금해 한다.

    나는 ‘진보에서 이런 방면에서 가장 악질적 무리들’이 제일 많이 모이고, 살아남은 곳이 당이었노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보신당 게시판에 데이고, 상처받고 떠났으며 아직도 원색적 비방은 계속되고 있다.

    아마 과거 현재 어떤 한국의 진보 관련 게시판보다 불쾌지수가 가장 높은 게시판이 진보신당 게시판이었을 것이다. 여성활동가와 당원들은 다른 게시판의 경우 마초 관련 글로 넘쳐나면 게시판을 떠나면 되지만, 이 게시판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말 많이 싸웠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09년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 기자회견 모습

    싸움과 논쟁은 예상했었지만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은 내가 싸웠던 ‘이들’이 이번 스토킹 건에서 알 수 있듯, 수많은 포르노사이트, 성인(?)사이트의 자원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능력으로 포르노사이트를 하나 만들어서 운영하지, 왜 진보신당에서 개거품 물고 계속 게시판 싸움을 벌이고 그저 활동가 하나를 스토킹하는 것인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간 진보진영 여성주의 싸움의 상대가 그저 무지하거나 실수에 관용적인 사람, 혹은 이를 관용하는 진영 내 구조였다면 ‘이들’의 경우에는 단순히 무지나 실수가 아닌 ‘악의’와 ‘혐오’를 가진 집단인 것이다.

    물론 진보진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들’ 역시 ‘진보진영에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이며 일종의 도덕적 붕괴라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진보진영 ‘시민권’을 덜 갖고 있는 편이나 시민권을 보다 갖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공동체에 위해적인 인물들도 많으며, 그릇된 모함과 자기 독단으로 일관된 인물들도 많다.

    그러나 공동체에 위해적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해서 개별 위해 정도를 무감각하게 ‘동질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일관되게 증오해서 스토킹까지 서슴없이 벌이고, 페미니즘이란 하나의 진보이념을 반격해야 할 이념으로 명명하며 공격을 퍼붓는 이들은 나와 내 친구를 스토킹하는 ‘이들’이 처음이라 할 만하다.

    크게 두 가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이제 ‘폭력’이란 광의의 범주만이 아닌 ‘혐오’라는 것을 공동체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이다. 비단 ‘이들’만이 정신나간 혐오의 집단인가, 아니면 진보라는 공동체에서는 ‘혐오’ 문제를 다룰 만한 충분한 자원과 기준, 규칙을 갖고 있는가. 혹은 일반 폭력과 다르게 취급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진보진영 활동가가 자신의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혹은 여타 이유로 무차별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잘 다룰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이제 물어보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스토킹 범죄에까지 이른 ‘혐오 집단’이 생겨나게 된 원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흔히들 한 사회에 대한 기대-보상 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생겨난 분노가 여성, 동성애자, 미혼모 등 성적 약자에게 혐오범죄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비슷하게 소위 도덕적 가치로 무장된 진보진영의 결속력, 유지체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특히 이러한 혐오 집단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덕적 가치로의 재무장 역시 몰락 과정에서 보수적 회귀의 움직임이다. 작년에 상흔을 많이 남겼던 낙태 논쟁 역시 ‘도덕적 가치로의 재무장’을 외치는 우익적 분노에 기초한 바가 크다.

    우린 이 분노를 무력화할 수 있는가? 혹은 기존과 다른 기대-보상체계, 도덕적 가치만이 아닌 다른 진보진영의 공동체 조건, 윤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피해자인 나로서는 스토킹 사건의 법적 처리 말고도 또다른 막막한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피해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필자소개
    LGBT 인권운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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