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례 만들기와 조례 실천하기
    [진보정치 현장]자치단체 조례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
        2012년 10월 23일 0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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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장애인 문화예술 학술제에 토론자로 두 번 참석하였습니다. 이 학술제는 한국장애인연맹이 주최하고, 대구장애인연맹을 비롯한 장애인 관련단체들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등이 주관한 행사였습니다.

    제가 참석한 두 번의 토론회 주제는 ‘법률 속 숨은 용어 찾기’와 ‘유럽연합 장애인 정책의 현안과 과제’였습니다.

    첫 번째 토론회는 ‘대구광역시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를 중심으로 자치단체 조례의 장애인 차별어를 살펴보고,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자치단체의 구체적 노력을 어떻게 제도화, 사회화할 것인지를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지방의원으로 활동하며 자치단체 조례의 구조와 시행 메커니즘을 대체로 알고 있고, 또 현장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활동가와 장애인 차별을 직접 경험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에서 배우고자 토론자로 기꺼이 참석하였지요.

    장애인 문화예술 학술제 토론 모습(오른쪽 두번째가 장태수 의원)

    첫 번째 학술제 토론을 준비하면서 대구시 조례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조례가 상위 법령이 제․개정되면서 후속 조치로서 제․개정되고 있고, 그러다보니 자치단체의 특색을 반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조례 역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 자치단체 조례로 정할 것을 위임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조례가 제정되기 이전에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별도의 조례 제정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장애인단체 활동가들과 장애인 당사자들이 준비한 이 조례는 대구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는 장애인의원이 대표 발의한 현재의 조례에 밀려 의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습니다. 조례 제정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수렴되지 못한 것이지요.

    조례가 만들어진 이후도 문제입니다. 부족하나마 조례는 만들어졌지만, 정작 조례의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차별금지 및 인권증진 기본계획 수립, 차별금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연간 교육계획의 수립과 실시, 홍보물 제작․배부, 실태조사와 그 결과의 의회 통보 및 각종 자치법규와 지침의 정비 등 조례에서 강제조항으로 정하고 있는 각종 책무를 대구시가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의 조례는 대구시가 장애인 관련 정책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알리바이 이외에는 사실상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한 것이지요.

    두 번째 토론은 유럽연합의 장애인 정책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발표자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질문과 의견을 말씀드린 후 이번에는 대구시 기초자치단체의 장애인 관련 조례를 살핀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대구시에는 8개 구․군의 기초자치단체가 있습니다. 이들 단체가 제정․운용 중인 조례는 각 자치단체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결과 모두 1380개입니다. 그런데 이 중 장애인과 직접 관련된 조례는 14개에 불과합니다. 개수로는 1%에 불과한 셈이지요.

    게다가 이들 조례 중 대부분은 장애인 관련 시설의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입니다.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조례는 사실상 한 손으로 꼽아야 할 수준입니다. 두 군데 기초자치단체는 아예 장애인 관련 조례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요.

    물론 조례의 개수가 그 자치단체의 장애인 관련 정책의지를 모두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개수가 이정도 수준이면 어떤 자치단체장도 장애인 관련 정책을 진심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상위 법령에서 자치단체 조례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까지 지키고 있지 않는 실정입니다.

    장애인복지법 제13조는 자치단체에 장애인복지위원회를 두고, 그 운영에 관한 사항은 조례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복지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운용하고 있는 자치단체는 대구시 본청과 8개 기초자치단체 중 두 곳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6곳의 기초자치단체는 관련 상위법에서 강제규정으로 정하고 있는 입법사항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12조에는 자치단체에 설치하는 장애인복지위원회의 위원장은 그 자치단체의 장이 당연직으로 맡도록 하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상위법령에서 이렇게 규정한 것은,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부분 위원회의 장이 부단체장이 맡는 실정을 감안한다면, 장애인복지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법령에서 그만큼 높고 중요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시행하지 않고, 조례 제정 절차도 이행하지 않는 자치단체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장애인단체의 활동가는 대구시 본청에 설치된 장애인복지위원회는 벌써 2년째 회의를 소집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지방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할 때 조례 제․개정 발의 건수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조례 제․개정 활동을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회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입법 활동이 대단히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례 제․개정 발의건수도 중요하고, 조례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지만, 있는 조례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또 있어야 하는 조례가 제정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있어야 하는 조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친 법령 제․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를 자치단체가 이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이 사회적 합의를 지역에서 확산시켜야 할 우리의 기본적인 책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법령으로 정해진 것을 우리 지역은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동시에 이들 사회적 합의가 더욱 확장되고 내실 있게 진척되려면 우리의 참여, 당사자의 참여가 필요하므로 조례 운용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참여예산제 조례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여예산위원으로 조직하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참여예산제는 이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입맛대로, 또 그 사람의 개인적 정치적 성과로 끝나버리거나, 더 심하게는 참여예산제의 취지를 거꾸로 가로막는 강력한 장벽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조례, 역시 만드는 것보단 실천하는 것이겠죠.

    필자소개
    노동당 대구시 서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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