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핵 총파업
    노동권과 녹색사회 위해
        2012년 10월 23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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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은 전쟁 중

    노동자들의 삶은 전쟁과도 같다. 쌍용차, 시그네틱스, 파카, 콜트-콜택 등 수 많은 기업의 노동자들은 기업의 흑자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이유로 대규모 정리해고를 당했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노동자들의 길고 긴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삶은 치유가 불가능할 만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중 20명이 넘는 이들이 자살을 하였고, 노동자들의 가족들도 가정불화,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민주공화국이라는 한국 땅에서 안정적으로 정당하게 노동을 해 나간다는 것은 치열하고 힘든 전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해 한 인간의 삶을 그리고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공동체는 송두리째 파괴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동안 한편에서는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삼성 반도체 공장 사례일 것이다. 삼성의 반도체 생산라인에서만 백혈병, 암 등의 질병을 진단받은 노동자들이 140명이고 이중 57명이 이미 사망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삼성은 그린피스가 주최한 “세계 최악의 기업” 3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이숙영씨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이 산재를 인정했으나 노동자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나서야할 근로복지공단이 오히려 이에 불복하여 아직도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최근 또 노동자들이 큰 위험에 노출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어난 구미 불산 누출 사고다.

    9월 27일 구미 산단 4단지 내 휴브글로벌 공장 화재로 인해 불산 가스가 누출돼 가스에 직접 노출된 2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이들을 포함해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였으며 18명이 부상당했음에도 노동자들에 대한 긴급조치는 없었다.

    추석이 지나 인근 마을 주민들의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그제야 정부는 긴급조치를 취하였고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산단 노동자들은 자산들의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준) 의원에 의해 공개된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불산 누출 사고로 인해 인근 노동자 1,359명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고현장과 인접한 공장들이 사고 이후에도 조업을 계속하여 그 피해가 더 컸다는 것을 반증한다.

    10월 20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탈핵집회(사진=장여진)

    원자력 발전소… 그곳은 숨겨진 노동자의 무덤

    1986년 4월 26일, 최고의 안전을 자랑한다던 구소련의 (현재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소방수 31명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6년간 발전소 해체작업에 동원된 노동자 약 90만 명 중 약 5만 5천명이 사망하였다.

    2011년 3.11 후쿠시마 사고의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정부도 끝내 주변 지역 오염 제거를 포기했을 만큼 광범위하게 방사능 물질이 퍼진 이곳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피폭을 당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목숨을 걸고 후쿠시마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죽음의 현장으로 다시 들어갔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투입된 이들은 누구였을까?

    일본의 원전노동은 하청구조로 되어있다. 하청의 하청, 재하청구조로 원자력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90%는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매일 할당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방사능 계측기의 경고음을 무시한 채 일을 해 왔다고 한다.

    후쿠시마 사고수습을 위해 투입되었던 노동자들은 하루 14만원의 일당을 받고 전장으로 향했다. 게다가 원전 노동자들에 대한 방사능 기준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반인에 대한 연간 누적 피폭량 기준치보다 250배 높게 상향 조정 되었다.

    어쩌면 이런 조치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사고 현장은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되어 기존의 피폭 기준치로는 현장 투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피폭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9년 울진원전에서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2007년에 처음으로 산재 인정을 받았다. 산재 인정을 받는 데만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산재로 인정되는 게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지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한 노동은 온전히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어 버린다.

    사실 요즘과 같이 원전사고가 많이 보도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원전이 노후화 된 것도 있지만 후쿠시마 이후 민감하게 작용하는 민심의 영향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민심이 없었더라면, 후쿠시마 사고가 없었더라면, 오늘도 그저 동종업계 사람들만 아는 종종 일어나는 사고쯤으로 쉬쉬하고 넘어갈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피폭 피해 노동자들의 수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원전을 폐쇄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100% 안전하지 못하니 사고라도 난다면, 이를 수습하기 위해 좀 더 나은 벌이가 필요한 노동자들이 나설지도 모른다. 그렇게 원전은 노동자들의 무덤으로 변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먼저 나서야 할 탈핵

    나는 노동권의 추락이 양극화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이 양극화의 굴레 속에서 노동자들은 점점 더 힘들고, 위험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어떠한 사회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이러한 노동시장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의 집합체이다. 동시에 에너지와 환경이라는 21세기의 중요한 화두와도 연결고리를 가진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노동자들이 탈핵을 외치는 것, 그것이 바로 노동계급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전 노동자들이 외치는 탈핵은,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에 대한 욕구를 희망하는 것이자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주요 사회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의 힘을 표출하는 것이다. 또한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싼 자본과 권력의 공고한 이해관계를 해체함으로써 자본 위에 노동의 깃발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감히 원자력 발전소 노동자들도 함께 나서서 탈핵을 외쳐주기를 바란다. 원전 노동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다면,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이 일제히 파업에 들어갈 것이다. 탈핵의 깃발을 든 총파업, 상상만 해도 아름답지 않은가?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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