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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 가서 미싱 탈래?
    [기고] 10월27일 비정규직 없는 일터 10만 촛불
        2012년 10월 22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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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쳐다보기에도 아찔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지상 25미터 상공 위에 새 집도 아니고, 겨우 엉덩이 하나 걸칠 만한 나무판으로 의자를 만들고 올라앉은 두 명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외면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에 항의하는 투쟁의 일환으로 올라갔다.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씨가 309일 동안 크레인 위에 올랐다가 내려온 지 1년도 채 안 돼서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철탑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송전탑 공중에 불안스레 올라앉아 있는 그 모습이 바로 이 나라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송전탑에 위험하게 매달려 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사진=blog.jinbo.net/CINA)

    삶의 벼랑에 내몰린 사람들의 죽음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야만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서 하늘로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하늘에 매달렸다가 그대로 추락해버리는 노동자의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하늘에 매달렸다가 추락해버리는 노동자의 현실

    대한문에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곡기를 끊고 있는 김정우 지부장의 모습 위에 한동안 송전탑에 새처럼 올라앉은 노동자들이 겹쳐온다. 새는 올라앉았다가 날개를 펴서 날아서 사뿐히 지상으로 내려앉기라도 하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런 날개도 없지 않은가.

    인권 강연할 때 꼭 소개하는 것 중에 하나가 어느 여고 3학년 교실에 걸렸던 급훈이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 탈래?”

    기가 막힌 댓구를 활용한 급훈이다. 이걸 보여주면 사람들은 실제 교실에 걸렸던 급훈이라는 말을 믿지 못한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는 마음이다. 이걸 급훈으로 걸었던 선생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정말 나쁜 마음을 갖고 그랬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선생님이 더 솔직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은 노동자들을 천시하고 있고, 대학도 못 나오면 세상 살기 힘들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각인시켜주고 싶지는 않았을까? 도리어 이 급훈을 보고 경악하는 우리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를 천시하는 사회 현실

    왜? 우리 사회 어느 한 구석에서도 노동자는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900만에 육박한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지난해 초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던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만 해도 그렇다. 겨우 9천원을 한 달 점심값으로 던져주면서 밥 먹을 공간도, 휴식 공간도 없어서 화장실 한 칸을 쓰도록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문자 메시지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고 하나로 간단히 해고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임금도 똑같은 노동을 하고도 정규직의 절반 밖에 받지 못한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바뀌는 것은 없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마다 않는 구직자가 널린 세상에서 회사 경영자들은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 고강도의 노동, 위험한 노동에 으레 비정규직을 채용한다.

    믿을 수 없는 대선후보들의 비정규직 해법

    이제 대선 후보들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다들 해법은 다르지만 이 문제가 갖고 있는 심각성은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걸음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른바 유력 후보들이 말하는 비정규직 해법들은 모두 경제민주화에 종속된 방식들이다.

    노동자들을 사람으로 보고, 사람으로 대우한다는 전제가 아니다. 워낙 양극화가 심각하다보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 내미는 정책들일 거라는 불신부터 깔고 보는 게 문제일까? 그런데 경제위기가 닥치면 정치권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면 비정규직의 차별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지 않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도 비정규직의 피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해놓고는 비정규직의 양산을 가속화하는 걸 막을 엄두도 못 내고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손 들어버렸음을 상기할 때, 대선 후보들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 약속을 못 미더워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싸이의 말춤에 열광하는 것처럼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나섰다. 1천만 서명운동과 10만 촛불행진. 사실 가당치 않은 목표일 수 있지만 이 숫자가 모일 수 있다면 나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싸이의 말춤에는 열광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재미없어 한다. 절규가 들리지 않거나 아니면 괴로우니까 외면하고 싶은 심리일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제안한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 비정규직 없는 학교, 비정규직 없는 병원, 비정규직 없는 관공서, 비정규직 없는 백화점 등등을 넘어서 비정규직 없는 우리 지역으로 나아가자고 한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하자고 말이다.

    맞다. 이렇게 아래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 관심 갖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처럼 노동이 천시되고, 노동자가 모멸 당하는 그런 잘못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모이지 않을까.

    대선 후보만 바라볼 게 아니라, 대법원의 판결조차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업 경영주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제 이 문제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나설 때다. 우리의 삶터에서부터, 우리의 지역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없애는 운동에 나섰으면 좋겠다.

    오는 10월 27일,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울역 광장을 싸이의 말춤 공연 때처럼 가득 메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선판을 뒤흔들었으면 좋겠다. 참 그랬으면 좋겠다. 거기서 노동스타일 춤을 추면서 비정규직 철폐의 함성을 질렀으면 좋겠다. 10월 27일, 우리 스스로 그런 판을 만들 때가 되었다.

    필자소개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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