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불산사고의 교훈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만남
    [진보정치 현장] 노동부장관, 환경부장관 책임 물어야
        2012년 10월 19일 10: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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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불산 사태 현장을 처음 찾은 것은 추석을 막 지난 10월 2일이다. 9월 27일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여느 시민들처럼 화재라고만 여겼다. 불산 가스가 누출되었다는 보다 정확한 보도를 접했을 때 나는 추석을 쇠러 부모님댁으로 가고 있었다. 연휴라 발걸음을 빨리 떼지 못한 것도, 인근 공장 사정들을 파악하지 못한 것도 참 송구스러운 일이다.

    마을 입구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지역구가 아니라 지리를 잘 몰랐지만, 공단이랑 마을이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익은 벼와는 다른 누렇게 떠 버린 벼. 색감에 대해 형용할 순 없지만 육안을 통한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일단은, 사람이 살 수가 없다. 그러나 환경청의 결과 발표를 근거로 구미시는 이들을 마을로 불러들였다.

    이번 불산 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건 행정당국만이 아니다. 추석 연휴가 낀 탓에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늦었다. 녹색당 구미 당원모임은 마을 상태가 위험하니 대피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되돌아온 주민들을 일단은 다시 대피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지역 사회단체 중에는 가장 빨랐지만 이미 10월 3일이었다. 불산 누출로 말라죽은 농작물의 사진이 퍼져 나가고 미디어가 구미로 눈길을 주던 시점이었다.

    피해 구역이 지역구가 아닌 탓도 있고 마땅히 녹색당이 뛰어들어야 할 과제라서 의원으로서의 입장 발표는 하지 않고 정당 성명만 냈는데, 구미 지역 녹색당 담당자가 나이기 때문에 언론의 문의가 쉼 없이 이어졌다. 졸지에 지상파 전국뉴스 두 군데에 출연했던 사정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불산 전문가도 아니고, 시시각각 밀려드는 사태 관련 소식들을 종합하기에도 벅찼다. 그러면서도 10월 초순 내내 언론 인터뷰에 응하느라 분주했다.

    구미불산유출사고 인포그래픽(사진=환경운동연합)

    짧은 멘트를 남기는 영상 인터뷰는 그래도 나았고, 반면 질문지를 받아들고 답변을 준비해야 하는 전화 인터뷰는 부담스러웠다(내심 ‘비디오는 약하나, 오디오는 좀 강하다’고 자부하고 있었거늘). 인터뷰 가운데 한가지 실수가 있었음을, 열적지만 밝힌다.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미국의 경우 건강역학조사를 6년 실시한 사례도 있다”고 했는데, 하다가 6년까지 간 경우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원래 준비한 답변은 “2년”이다. 손석희 진행자가 “6년씩이나…”하고 놀라던 대목을 떠올리면 더욱 민망하다.

    더 부끄러운 건 사태 초창기 내가 창구 역할을 한 배경이다. 구미시는 환경운동이 부재하다시피한 곳이다. ‘환경’을 내건 단체가 몇몇 있지만 환경운동을 한다고 보긴 어렵다. 1991년 저 유명한 페놀 사태가 구미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낙동강이 남쪽으로 흐르는 것이 화근이었다. 정작 경각심이 두터워진 시민들은 대구 사람들이었다.

    크고 작은 오염문제로 골치를 앓는 공단도시에 환경운동이 없다. 4대강 공사의 주요 거점인 터라 막대한 준설토가 발생한 바 있으며, 강바닥을 파헤친 여파로 2011년에 터진 단수 사태도 환경운동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구미에 당원이 많지는 않으나 녹색당은 졸지에 생태 문제를 전면에 내건 이 도시 최초의 세력이 되었다. 빗대자면 민주노총이나 전농의 조합원이 별로 없는 지역에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부터 먼저 생긴 격이다. 녹색당 참여 이전 환경운동 경력이 전무한 나도 급작스럽고도 불가피하게 시 안팍을 연결하는 중매자가 되었다. 마침 대구환경운동연합의 정수근 선생이 낙동강공사 문제를 비롯해 부지런히 구미에 드나들고 있었다. 그렇게 환경운동단체와 구미 시내 시민단체가 만나기 시작했다.

    환경연합과 민주노총의 조우는 뜻 깊은 장면이었다. 피해마을 주민들의 고통도 막대했지만, 사고가 난 공장 바로 인근의 공단은 비정상적으로 정상가동되는 상황이었다. 최대 피해자인 노동자들의 수는 사망자 다섯 분으로 끝나지 않았다. 더구나 노동자도 구미 주민이다. 그런데도 겨우 돌려놓은 미디어의 눈길도 이들에게는 신속히 향하지 못했고, 당연히 민주노총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불산사태는 이리하여 생태와 노동 사이의 적록연대를 주선하고 말았다.

    끝나지 않은 투쟁이 한창인 금속노조 KEC 지회 노동자들을 농성 천막에서 만났다(바로 얼마 전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가히 기적적인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냈다). 불산을 취급해본 사람들이었다. 수년간 안 되던 임신이 파업 기간에 된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게 불산 탓이라고 콕 찍을 순 없으나, 노동자들이 평소 얼마나 고된지는 능히 짐작할 만하다. 파업 중 임신은 불산을 다루는 이런 사업장 외에도 꽤 있을 것이다.

    “그거 위험하니까 조심해라” 정도의 안전교육, 불산이 튀는 바람에 즉시 빠져버린 손톱, 사실상 비치용으로나 존재하는 보호장구…

    언론이 흔치 않은 불산 전문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각종 풍문과 세설이 부딪히던 그 순간에도, 불산을 다룬 노동자들은 이렇게 우리 가까이 있었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한 환경운동, 노동자의 건강을 좌우하는 환경 문제에 둔감했던 노동운동이었던 게다. 하지만 우리는 찬찬히 반성할 겨를이 없었다.

    민주노총은 플랜카드를 걸고 사고 현장 부근 4공단 일꾼들의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작업중지권>이 적시된 것은 누군가가 철거했다. 게시물이 어지럽게 나붙은 것도 아니니 행정당국이 굳이 걷지는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 (작업중지 등)

    ①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②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③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 규명 또는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중대재해 발생원인을 조사하고,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진단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수 있다.

    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하여 제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법은 불산을 맞고 죽었다. 사업주는 제1항을 죽였고 노동부는 스스로를 작업중지시키며 제4항을 죽였다. 제3항, 제5항은 이와 함께 순장되었다. 제2항에 나오는 근로자는 노동조합원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그러나 일본 자본의 영향력이 막강한 4공단에 그들이 싫어한다고 전해지는 민주노조는 없었고, 어떤 우산도 보장받지 못한 개별 노동자에게 이 법은 무실하다.

    나도 지역구 사무실이나 이메일로 제보를 접수했다. 가장 기가 막힌 내용은 제보자가 누군지 밝혀지기 쉬워 공개하지 않겠다. 다만 사고 내용 당시를 차치하고 평소의 노동조건만 봐도 어이가 없었다. 최저임금? ‘이것은 임금이 아니다’. 그리고 4공단은 역시나 ‘비정규직 특구’였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을 수밖에 없는 제보도 있다.

    사고 당시 불안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관리자는 알아보겠다며 한참을 나타나지 않았고, 찾아보니 경리 직원 한명만 태워 급히 도망갔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바로 위 상급자에게”만 “보고하”고 사라졌다면 더욱 웃긴 일이다.

    농작물과 가로수가 말라버리는 꼴을 억지로 견뎠던 봉산리와 임천리의 주민들은 자발적인 결정을 거쳐 공공시설로 대피했지만, 달랑 건강검진의 기회만 누렸던 노동자의 시련은 끝나지 않을 예정이다.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남을 사람들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앞서 거론했던, 제보내용을 아직 공개할 수 없는 노동자는 조만간 가족회의를 거쳐 일을 그만둘지 말지 결정한단다. 퇴직하면 그 길로 최저임금 위반 여부부터 대놓고 따져 마땅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나는 그만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간접고용으로나마 취직한 아는 형은 사고 직후 며칠 앓았고 이제 공장을 떠나기로 다짐했다.

    환경연합이 환경부장관 퇴진을 주장하자 민주노총 지역 관계자 왈, “우리는 노동부장관을 쳐야겠네. 뭐 안 그래도 칠 만한 게 너무 많지만.” 그런데, 발상을 바꿔도 좋을 것 같다.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몰고간 데는 환경행정의 책임도 크고, 공장 안전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노동부가 크게 져야 한다.

    민주노총이 환경부장관 퇴진을, 환경연합이 노동부장관 퇴진을 밀어붙이는 것도 괜찮겠다. 사소한 아이디어지만, 이런 실천이 앞으로 필요하다. 생태환경운동과 민주노동운동의 섞임과 스밈을 일일이 명분을 들어 더 강조할 필요는 느끼지 못하겠다. 구미공단의 오늘이 온몸으로 웅변하는 중이다. 우리가 그것을 귀담아 듣지 못했을 따름.

    필자소개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 스스로를 정당인보다는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녹색당 소속. 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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