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의당 오래 못 갈 것
    1세대 진보 리더들 환멸, 기대 접어“
    [인터뷰-박상훈③] “진보정당 없으면 정치안정도 없어”
        2012년 10월 17일 10:20 오전

    Print Friendly

    * 새진보정당(추)를 언급한 부분은 진보정의당이 발기인대회를 거치고 당명을 정했기 때문에 진보정의당으로 표기했다. 인터뷰 1부2부를 링크한다. 인터뷰 3부가 다소 길지만 한번에 게재한다. <편집자>

    ***

    시민들 짜증나게 만드는 정치

    조현연 : 정당이 우리 사회로부터 유리돼 있는 현상을 지적했다. 그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진보파는 정당을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인데 그게 무망하다면 다시 운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박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니 좀 더 열심히 해보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겠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 상황인 것 같다.

    박상훈 : 우리 정치에서 변형주의가 일상화되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고, 이것을 풍부하게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모든 것을 다 변형적으로 통합해나가고, 나중에는 모든 정당의 세계관이나 조직화 방식이 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중들의 정치 불신은 높아지고, 이런 정치를 수동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 놈이 그 놈이다.”라며 정치적 동질화를 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치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시민 교육을 하는 것인데, 오히려 정치가 정치 담론을 망치고 시민들을 짜증나고 화나게 하고 있는 꼴이다.

    조현연 : 플라톤 이후 정치학의 고전적 테마 중 하나가 좋은 정치가 좋은 시민을 만든다는 것인데, 한국 정치는 민주화 이후 25년 동안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박상훈 : 나쁜 정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시민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한다. 그냥 착한 소비자가 되자, 윤리적 소비자가 되자, 생협을 만들어서 우리끼리 유기농하면서 살자면서 시민되기를 벗어나 개인, 소비자, 조합원 같은 범위로 자신을 규정하게 된다.

    이는 정치와 전체 공동체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작은 공동체에서 자족을 찾는 경향이 커지게 된다. 그나마 이런 일들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나 소득이 일정 수준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방식이다. 그렇지 않은, 정치가 보호해줘야 할 사람들은 절망하게 될 것이고, 이를 방관하면 사회가 해체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못난 박근혜 비판

    조현연 : 이번 대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만약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경우, 그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박상훈 : 잘 모르겠다. 다만 그가 이명박처럼 자의적인 통치를 한다면, 우리가 그걸 막을 힘은 있다고 본다. 사회를 재조직하는 데는 우리가 무능력하다는 것을 드러냈지만, (막아내는) 그럴 힘은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잘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현연 : 사람들이 박근혜를 비판하면서 이명박근혜라든지, 아버지 후광을 업은 유신공주, 수첩공주 운둔하면서 공격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과거를 불러들이는 것이 때론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박근혜의 지금 얘기를 중심으로 비판하고 공격해야 된다고 본다. 과거를 매개로 박근혜를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그를 살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박상훈 : 그런 비판 방식이 박근혜를 살려주는 측면도 있지만, 그 전에 우선 윤리적으로 못난 짓들이다.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해서 정치적 방법으로 사회를 조금 더 평등하고 자유롭게 하려는 자신들의 정치적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길인데, 남을 야유하고 모욕하는 정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것의 부작용도 크다.

    조현연 : 그런데 이런 현상에 대해 박 대표 책임도 있다. 박 대표의 글을 읽거나 강의를 들은 어떤 사람이 정치 세계에서는 “악마와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박 대표의 표현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에서 윤리적인 것과 이 표현이 어떤 관계인지 얘기를 해 달라.

    진보정치와 권력정치

    박상훈 : 그건 오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맑은 영혼으로 착하게 살고, 인생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이타적이고 헌신적으로 살아야 된다. 그런데 인생을 그렇게 다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구도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주 소수이듯이, 소수일 수밖에 없다. 아니면 부모가 유산을 많이 물려준다면 모를까, 평균적인 보통사람은 그렇게 살기가 어렵다.

    우리에게는 개인적 삶과 함께 사회적으로 부여된 역할이 있다. 가장으로서 역할일 수도 있고, 회사원, 군인, 경찰 같은 역할일 수도 있다. 그런 역할들은 착하기만 해서는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사회적 존재에 우리가 부여 받은 한계이자 현실이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것과, 개인에게 부여된 과업을 과감하고 단호하게 실현하는 일 사이에 딜레마와 도덕적 긴장이 있으며, 그 속에서 사람의 인격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좋은 정치가, 진보적 정치가라면, 사실 진보적이라는 게 뭐 별 것이 있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정치적 실천을 해보겠다는 것일 텐데, 그건 좋은 신념이다. 그런데 정치가로서 살다보면 우리 편을 키우고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도덕적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둘의 긴장 관계 속에서 일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만약에 ‘악마와 손을 잡을 일’이 필요하다면 굳이 진보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권력정치를 하면 된다. 좋은 정치를 하려는 대의를 가진 사람이 정치 세계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도덕성을 기준으로 괴로움을 겪더라도 자기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얘기지, 결과만 좋으면 무조건 좋다고 한다면 뭐 하러 진보정치를 하나?

    진보정당 더 나아질 가능성 없어

    조현연 : 진보정당은 내파됐다. 최장집 선생은 진보는 죽었으며, 전면적 쇄신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경고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진보정치 또는 노동 정치의 전략적 목표로서 진보진영의 동의 기반이었던 ‘독자적, 대중적, 합법적 진보정당’ 노선이 지속적으로, 유의미하게 존속할지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보정치 세력이 강력한 폭약을 터뜨리면서 스스로 ‘내파’ 됐기 때문이고, 이런 이유로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져 고립됐기 때문이고, 외과적 봉합도 내과적 치유도 상당 기간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정치에서 독자적 진보정당론이 최근 진보정당의 사태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을 보나?

    박상훈 : 현재 상황에서는 진보정치의 앞날이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방법을 찾아서 좋아질 가능성은 완전히 다 소진됐다고 본다. 그 징후로 몇 가지 몇 가지를 꼽아볼 수 있다.

    이광호 레디앙 대표와 조현연, 박상훈(사진=정민용)

    첫 번째, 왜 20년 가까운 기반을 가지고 있는 진보정치가 실패했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문제를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게 진보정치의 담론 상황, 의식 상황이다. 이건 심각한 일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진보정치가 왜 실패했는지, 광범위한 토론이 진지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게 없다.

    두 번째, 그 전에는 보이지 않게 진보진영 사람들이 갖는 우애 의식 있었다고 본다. 어디 가서 잘난 척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같은 진보라는 점에서,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 세계 안에 일종의 집단적, 공동체적 소속감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발견한 건 서로에 대한 증오와 적의가 다른 정치세력을 대한 것보다 더 커졌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 자신들의 대의와 신념이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지금의 진보정치는 너무 눈에 뻔히 보인다. 계산 방법이. 진보가 왜 다른 정치세력과 똑같이 전략적 계산에만 능통한 세력으로만 자신들을 설명하고 상대방을 설명하게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진보 1세대 이제 끝났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이정희가 나오면 망할 거야, 누가 나오면 몇 %를 얻을 거야, 저쪽 사람들은 장관직을 바라는 거 아냐? 대법원 판례 때문에…” 등등 이런 것이 우리 동네의 언어가 됐다. 이게 무슨 진보인가.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도구적 가치, 도구적 대상 수준이며, 대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대를 이뤄낼 수 있을까? 나는 어렵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그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모두 버렸다.

    진보 1세대는 이제 끝났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자신들의 책임이다. 나는 이제 2세대의 가능성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에 관심이 있다. 다는 아니지만 일부에서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려는 젊은 세대가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들이 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1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2세대 진보정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1세대는 모두 다가 문제다, 건질 만한 리더는 단 한 명도 없다.

    나는 통합진보당 탈당파는 망할 거라고 본다. 7명의 의원들이 있는데 도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것 없이 정당이 가능할까. 나는 그 7명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다. 김제남 의원이 왜 거기 있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말을 단 한 번도 못 들어봤다. 서기호는 또 누구인가. 나는 모르겠다. 이렇게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 사람들이 어떤 정치를 할지 아는 바가 없다. 이건 너무 심각한 상황 아닌가.

    통합진보당 탈당파는 어떤 조직이라도 가져야 하는 최소한 가져야 할 요소가 없다. 조직 지속성의 관점에서 보면 통합진보당보다 못하다. 통합진보당을 야유하면서 본인들이 정당성을 찾으려는 태도는 조롱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계속 그런 태도로 살면. 본인들이 왜 모였는지, 뭘 할 것인지가 없이는 곤란한 일이다.

    조현연 : 정당 조직의 지속성으로 보면 통합진보당은 자신들이 정체성을 가지고, 그래도 어려운 속에서 호오를 떠나서 지속하겠지만, 탈당파는 공통성이 없기 때문에 지속할 여지가 없다는 말인가.

    박상훈 : 최소한의 요건도 없다. 간단히 말하면 그 당의 대중 투표 권력은 구 참여당 계열에서 나온다. 나머지 그 위에 떠있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정치적 자산을 잃고 싶어 하지 않거나, 그걸 어떻게든 잘 발휘해서 더 많은 것을 보장 받으려고 하고 있다.

    과거 진보신당 탈당파와 흘러간 노래 같은 인천연합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분을 더 얻으려고 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차라리 정상적이라면 유시민이 책임지고 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저런 거래나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걸 진보정당이라 볼 수도 없고, 뭐라고 부를 수가 없다. 도덕성에서도 심각한 하자가 있다. 자신들의 이런 행위를 설명하는 요소는 오로지 하나,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의 책임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남 핑계 대는 것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가 없다. 벌써 얼마나 오래 됐나.

    진보정당도 아니고, 뭐라 부를 수가 없다

    이제는 자신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이 저 사람들과 같이 하면 뭐가 되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조현연 : 진보정치 1세대의 종언을 얘기했다. 정당의 꼴을 갖추고 있는 정당은 세 개다. 진보 1세대가 그래도 가교 역할을 할 수는 있지 않나? 진보는 현재 분열로 망한 게 아니라, 망했기 때문에 분열된 것이다. 1세대 종언을 말하기에는 아직 역할이 있지 않나?

    박상훈 : 나는 개인적으로는 그런 길은 없다고 본다. 정치에서는 단절을 통하지 않고 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게 정치다. 왜냐하면 정치는 열정이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이성적으로 보면 그런 방법을 찾는 게 합리적이고, 모든 사람이 덜 상처받는 일이지만, 정치는 그렇게 하면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진보정치 실망과 좌절을 했지만, 그래도 진보정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과거 20년 가까이 진보정치를 이끌었던 리더들에 대한 심리적 의존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이 나서서 하지 않고는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 지렛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관용을 베풀어왔는데, 돌아보니까 사람들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그들 밑에서 성장했어야 할 사람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생활상 압박이 커지면서 진보정치 언저리에서 일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이게 큰 비극이다. 그들이 후배 세대들을 길렀어야 한다.

    1세대 리더들에 대한 의존심리 없애야

    30대 후반이나 40대 초중반으로 10년 이상 진보정치에 헌신한 사람들 처지가 어떤가. 보좌관으로 몇 명 나가는 것 정도다. 보좌관도 그렇다. 보좌관 역할을 했던 사람들 중에 진보정치의 한 축이 될 만한 인물로 큰 사람이 없다. 추레하게 매달린 가련한 존재가 돼버렸다.

    민주당이나 다른 캠프에서는 그 나이대가 되면 중견 역할을 할 수가 있고, 시간이 되면 비례후보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쪽에서는 이게 뭔 짓인가. 그런 재생산이 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한 심리적 의존 상태를 연장시킬 필요는 없다. 진보정치를 떠나도 좋다. 생활상의 문제가 있다면, 먼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신념은 없어지지 않는다. 조건이 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안철수 캠프에 가도 좋다고 본다. 진보에서는 그들을 건사할 수 없는 조건이고, 그들을 막을 도덕적 힘도 없다.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끊자. 그러면 비로소 생각이 들어온다. 그게 안 되니까 백날 토론해도 방법이 안 나온 채 계속 쳇바퀴만 도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여전히 진보정치를 생각한다면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적 사고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기존의 지도부를 인정할 수 없다. 정당 안에 있는 사람이든, 그밖에 있는 좌파든 뭐든 똑같다. 지도부 범위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신뢰할 만하거나 책임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정하고 싶다.

    부채감도 존경심도 사라졌다

    조현연 : 약간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 박 대표 지적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다. 근데 뭔가 동의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여전히 좀 있다.

    박상훈 : 내가 느끼는 건 인과적으로 정확한 판단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일단 내가 마음 속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 다른 방법으로라도 돕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존경심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부채감과 존경심이 있었고, 내가 대학원 다닐 때 고생한 그들에 대한 부채감과 존경심 같은 것들은 사라지고 그들에 대한 아우라도 사라졌다.

    지금 돌아보니까 인간적으로 하찮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정치라는 건 우리가 무슨 기대를 갖고 그 사람들을 믿고 따를 수 있겠나. 믿음을 주지 못하면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사라진다. 그런 사람들이 누가 있나, 우리에게 그 틀 안에 서라고 강요할 수 있나? 나는 다른 길을 개척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마음속으로 후원하고 싶다.

    조현연 : 내가 가교라는 표현을 자꾸 하는 것은, 진보정치에 대한 집단적 혐오감이 만연돼 있고, 확산되는 느낌을 받고 있지만, 문재인이나 안철수로 대표될 수 없는 진보정당 고유한 공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현실 때문이다.

    리더답지 못한 리더들에게 당신들 책임지고 빠져라, 하는 것보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어떤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상훈 : 내 생각에는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1~2년 동안 노력을 했으면 한다. 노동운동을 생각하면, 현장 조합원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통합진보당 탈당 이후 형성된 조합원 사이의 적대감 때문에 회의조차 안 되는 상황 아닌가.

    우리나라 무당파는 무관심파가 아니다

    조현연 : 노동계 일각에서는 중도 사퇴 없는 노동자 후보를 출마시킬 것을 결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노동정치의 실패를 인정하고, 정치에서 철수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에서 제시하고 있다. ‘노동 있는 진보정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 입장에서 이런 움직임이나, 의견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사진=정민용)

    박상훈 : 노동조합 운동이 자기 요구를 정치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민주노동당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이후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지도부가 현장 내에서 나오는 정치 열정을 통제할 만한 힘을 잃었을 때, 그걸 당연히 버려야 한다. 철수론이 정확한 용어는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정치를 끊어야 한다.

    내가 1세대 운동이 끝났다는 말한 것은 정치운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에도 적용된다. 민주노총이 최근 정치 흐름에서 취한 정치 행위는 애매했다. 그들도 그 흐름에 연동돼서 같이 망한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책임이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양쪽 지도부 모두가 허망하기 그지없다.

    정치는 조건에 영향을 받지만 조건을 만들어가는 면도 있다. 진보정치 지도자들에게 느끼는 불만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역할을 여러 가지 전략적 고려에 (조건을 만들어내는 적극적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한국정치는 지금 있는 정당들로는 결코 안정될 수 없다. 그만큼 기존 정치가 포괄하지 못하는 항의 목소리가 크다. 우리나라의 무당파는 무관심파가 아니라 아주 비판적인 사람들이다.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200만 표를 얻었다. 거기에 진보신당이나 다른 세력도 있다. 문제는 그걸 읽어내는 사람들이다.

    쪼잔한 진보정치인들

    문재인은 이제 국회의원이 된 지 몇 개월 안 된 사람이다. 안철수는 초등학교 반장선거나 나가봤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쪽은 통합진보당까지 포함한다면 재선 의원도 몇 명 있고, 당 대표를 두세 번 한 사람도 있다. 사실 정치세계에서 이런 경력은 화려하다. 그런데도 왜 자신들에게 맞는 역할을 못하고, 만날 이런 저런 계산만 하고, 먹을 것만 챙기는 것처럼 보이나. 너무 좀스럽다. 못 봐주겠다. 진보 쪽에서 가진 자산이 없는 게 아닌데, 안철수는 하는데 왜 여기는 못 하나. 우리가 오랜 동안 존경심을 보여준 지도부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진보정치의 길을 열려는 적극적 의지도 과감함도 담대함도 없이 쪼잔하다.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연합정치도 추레하다. 끼워주기를 바라는 그런 심리에 머물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좀 멀리 보고 차분하게 다시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자세가 진보파의 기개라고 본다. 그런 것 없이 이번 대선에서 뭘 하려하면 안 된다. 아무런 부대도 조직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자는 건가?

    조현연 : 박 대표는 이전에 이정희도 나오고, 통합진보당 탈당파들도 대선후보를 내서 평가를 받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박상훈 : 내가 그런 얘기를 한 것은 정당이면 제대로 후보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진보가 분탕질을 쳐놓고 무슨 염치로 후보를 내느냐고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을 하기 위해서였다. 진보가 처벌을 받은 측면도 있고, 지금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선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탈당파도 대안정당을 만들어서, 선명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내고, 후보도 내서 싸우고, 지지자들도 안철수와 문재인 싸움을 곁에서 힐끗 쳐다볼 게 아니라, 진보로 다시 모여서 움직이자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내가 발견한 것은 탈당파 리더들은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너무 실망이 컸고, 기대도 하지 않게 됐다. 생각을 바꾼 것이다.

    지도자에 대한 환멸 과감하게 드러내야

    조현연 : 지금까지의 이야기 맥락으로 보면 정권교체, 연립정부 고민조차도 사치일 것 같다.

    박상훈 : 그런 고민을 하다보면 계속 의존적 심리를 벗어날 수 없다. 진보적 시민은 또 들러리가 되거나 수동적 구경꾼이 되고, 결과에 대해서 또 한 번 실망할 것이다. 차라리 이런 단호함 보여주는 게 지도부에게 경각심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당신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그런 신호를 보여주는 게 낫다. 그들도 자신들의 지지자들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게 차라리 결과적으로 선한 일이 아닌가 싶다.

    1세대 진보정치 리더들의 한계는 있지만, 그럼에도 가교 역할 주문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실망과 허탈, 공허, 더 나아가 환멸까지 과감하게 드러내고, 결과적으로 지도부가 거기에 반응해서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대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도부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증오는 아니더라도 지도부로서 우리가 가진 기대는 버려도 좋다. 그게 지도부가 자신 역할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시민으로서의 주권성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조현연 : 노동계 일각에서는 중도 사퇴 없는 노동자 후보를 출마시킬 것을 결의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 있는 진보정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 입장에서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박상훈 : 부족하지만 진보정치를 이끄는 지도적 힘이 존재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이미 상실된 상황에서 누구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본인들 목소리를 내겠다면 격려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그것이 무망한 일이라고 본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안타깝게도 단순히 득표율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운동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시민연합정부론의 한계

    조현연 :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내는 흐름이 대선 이후에도 지속될지 미지수다.

    박상훈 : 성과는 내기 어렵다. 기존 민주노총 지도부, 정규직과 명망가 중심성에 대한 비처럼 소극적 비판으로는 정치를 할 수가 없다. 정치는 적극적 가능성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런 에너지를 만드는 데 본인들이 익숙해지는 심리를 갖고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라는 건 정말 인간이 갖고 있는 미칠 것 같은 열정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길은 내는 사람들은 화만 내면 길이 안 열린다는 걸 잘 알아야 한다. 괴롭지만 나와 같이 가면 비를 피해가고, 우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그런 선택을 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하겠나?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사진=정민용)

    조현연 :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최근 시민연합정부론을 주장하고 있다. 야권 2당과 시민사회가 집권 후 시행할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주요 부분의 공동 정책을 같이 마련하고, 대통령 선거 이후 집행도 공동으로 하자는 일종의 거버넌스 개념 같다. 그러면서 최장집 선생님이나 박 대표께서 정당 정치를 너무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보이기도 했다.

    정 원장은 “시민사회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정치 개입이 정당이 약해진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다. 서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넘어서는 모델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산층 중심 정치 정착화

    박상훈 : 정치에서 보통 시민연합, 시민정치라고 하는 흐름은 압력정치를 특징으로 한다. 본인들이 다른 정당에서 대표될 수 없는 열정이 있지만, 지지 기반이나 균열 기반을 조직해서 사회 권력구조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당 체제에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압력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전형적인 시민운동의 한 방법이다.

    이런 흐름이 있는 것 자체가 유해한 것은 아닌데, 그게 만들어내는 부정적 효과가 늘 있다. 주체들이 스스로 조직하는 걸 잘 못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시민운동 엘리트들의 이력을 보면 결론적으로 정치권에 이렇게 저렇게 차명하는 것 이외 다른 정치적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다른 방안이 없다면 여러 요구를 기존 정당에 ‘인풋’하는 걸 나쁘게 볼 수는 없는데 그것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결국 진보정당 없는 길을 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 틀 안에서 전문가 중심의 다양한 형태의 투입 압력 활동으로 역할을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나아가 시민연합정부론이 기존의 대의 정치를 대신하는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정당 정치를 보완하는 무엇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설명할 수 있는 중산층 중심의 정치의 고착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존 정당 체제에 충격을 주려면, 스스로 권력 자원 없는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응집을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동원하는 방법밖에 없다. 시민운동은 전세계적으로 교육받은 중산층 운동이다. 가난한 보통사람들은 어렵다.

    또한 정당의 실패와 관련해서도,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의 실패일 따름이다. 정당은 강해지고 있다. 안철수도 결국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다. 현대정치에 적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직적 무기는 정당이라는 것이 오히려 확인되고 있다.

    진보정치 1세대 실패는 세계적 현상

    인사이더 정치를 계속 얘기했지만, 시민정치 연합론은 인사이더를 좀 더 참여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자본주의라는 사회경제 토대 위에서 실현하려면 권력자원이 머릿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정치적 결사를 통해야 한다. 교육도 받고, 자기를 설명하는 말도 배우고, 일정 수준의 소득도 있는 중산층을 통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말해봐야 우리 쪽은 실패했다.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런데 진보정치 1세대는 실패한다. 유럽도 그랬다. 영국에서만 성공했다. 나머지 국가들의 경우 1차 대전 이후 집권 가까이 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나갔다. 근데 다 망했다. 우리도 실패를 학습의 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온건한 사민주의적 이념에 바탕을 둔 제3정당이 50석 이상이 돼야 한국정치가 안정될 수 있다고 본다. 진보정당이 정당 체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 기간 내내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수준이라면 보수정치인들도 진보정치가 들어와야 보수정치도 안정된다고 생각해야 된다. <끝>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