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치와 세대교체
    [중국과 중국인]七上八下... 중국공산당 정치의 룰
        2012년 10월 16일 04: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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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진행되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차기 권력층, 즉 정치국 상무위원 구성에 대한 관측 중 유력 후보의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는 광동성 위원회 서기 왕양(汪洋)이 상대 파벌에 의해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다는 이유(1955년 출생)로 견제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 그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연령 때문에, 그것도 젊다는 이유로 견제를 받게 되었을까?

    왕양 중국공산단 광동성 서기.

    마오쩌뚱과 떵샤오핑처럼 소수 한 두 사람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가 마감하고 집단지도 체제에 의한 권력분점 체제가 완성되고 또 한 ‘체제’의 임기가 암묵적으로 10년으로 확정되면서, 파벌과 개인능력 못지않게 연령(과거 임기가 거의 종신제에 가까웠던 시기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던)이 중국의 차기 지도부 선출에서 중요한 고려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역시 대다수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최고 권력자의 임기는 종신제에 가까웠다. 마오쩌뚱은 1935년 장정(长征) 도중 꿰이조우(贵州)성 준이(遵义)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당의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후, 1976년 8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문맹(文盲)인 인민공사 책임자 천용궤이(陈永贵)를 부총리에 임명했고, 샹하이의 한 면직공장의 초급간부 출신인 38세의 왕홍원(王洪文-사인방의 1인)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국공산당 부주석에 임명했으며, 리우샤오치(刘少奇), 린뱌오(林彪), 화궈펑(华国锋) 등을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다.

    심지어 별다른 정치적 능력과 정치적 기반이 없던 화궈펑은 마오쩌뚱의 유언에 의해 마오쩌뚱 사후부터 개혁개방 정책이 결정되기 전까지 2년 동안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떵샤오핑 역시 동료인 천윈(陈云-경제전문가, 중공부주적 역임)이나 리시엔니엔(李先念-중화인민공화국주석 역임)등의 협조를 받기는 했지만 결정적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떵샤오핑은 마오쩌뚱과는 반대로 고위 간부들의 종신제에 반대하면서 주요 직책의 임기제와 젊은 인재들의 발탁에 힘을 기울였다(젊은 인재 발탁의 첫 수혜자들이 바로 현 총서기인 후진타오와 총리 원자바오 등이다). 물론 떵샤오핑 역시 마오쩌뚱과 마찬가지로 1989년 완전히 은퇴한 후에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떵샤오핑의 첫 작품이었던 후야오방(胡耀邦-총서기)과 자오즈양(赵紫阳-총리)의 적극적인 정치개혁은 1989년 6월의 천안문(天安门) 사건으로 인해 좌절되었고, 그 결과 개혁개방의 선두주자였던 샹하이의 쟝쩌민이 발탁되었고(1989년), 곧 이어 떵샤오핑에 의해 쟝쩌민의 뒤를 이어 당의 총서기로 지명되었다고 알려진 신진 세력의 대표주자 후진타오가 파격적으로 1992년(당시 50세)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면서 쟝쩌민을 대표로 한 샹하이방과 후진타오를 대표로 한 공청단파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쟝쩌민은 심복 쩡칭홍(曾庆红-국가부주석 역임)을 비롯해 샹하이 당 위원회 서기를 역임했던 황쥐(黄菊-국무원부총리 역임), 우방궈(吴邦国-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 등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세력을 강화했다.

    후진타오 역시 쟝쩌민의 극심한 견제 속에서도 자신의 권력 기반인 공청단 출신들을 중앙보다는 지역 그것도 쟝쩌민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핵심 행정구역인 연안 지역의 성(省)과 직할시보다는 자신이 근무했던 티베트자치구(西藏自治区)나 꿰이조우, 깐수(甘肃) 성 등 내륙에 위치한 지역의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세력을 확대했다.

    문제는 쟝쩌민의 퇴임이 가까워지면서 발생했다. 쟝쩌민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혁명 1세대의 후예이자 자신의 심복인 쩡칭홍을 총서기 직에 임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샹하이방의 급격한 세력 확장에 대한 당내 반발과, 당의 명령에 복종해 비교적 낙후한 지역에서 묵묵히 근무하면서 큰 과오를 범하지 않은 후진타오에게 총서기 직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정적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정치국 상무위원의 연령제한이 생겨났다.

    1997년 쟝쩌민은 자신의 정적인 전인대 위원장 챠오스(乔石, 70세)에게 70세부터 정치국 상무위원 직에서 물러나자고 제안(자신은 총서기이기 때문에 제외)했으며, 챠오스는 다음 당 대회, 즉 2002년의 16차 당 대회에서 쟝쩌민이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을 조건으로 은퇴했다.

    쟝쩌민은 2002년에 다시 자신의 정적인 정협(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 주석 리뢰이환(李瑞环, 당시 68세)을 제거하기 위해 챠오스에게 제안했던 70세 규정을 수정해 ‘七上八下’즉 67세 까지는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될 수 있고 68세 이상은 은퇴하자고 제안했다. 리뢰이환 역시 쟝쩌민이 모든 공직에서 은퇴하는 것을 조건으로 물러났지만, 쟝쩌민은 이를 어기고 2년 동안 중앙군사위 직을 더 유지하다 2004년 완전히 은퇴했다.

    그러나 이 규정으로 인해 쟝쩌민의 심복으로 한때 후진타오를 위협했던 쩡칭홍은 2007년 17차 당 대회에서 자신이 만든 68세 규정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이 과정에서 쟝쩌민과 쩡칭홍은 역시 혁명원로의 후대인 시진핑(习近平)에게 총서기 직을 넘겨줄 것을 후진타오에게 요구했으며, 후진타오는 결국 쩡칭홍의 은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직계인 공청단 출신의 리커챵(李克强)을 총리로 내정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 쟝쩌민은 후진타오의 후임으로 시진핑이 임명되게 함으로써 공청단 세력의 확장을 견제했으며, 후진타오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총리로 내정된 리커챵의 권한을 강화하가 위해 2010년 2월 ‘국방동원법’(비상시에 총리의 군 병력 사용 요청권 명시)을 통과시켰다. 또 그는 11월에 개최될 18차 당 대회에서 자신의 또 다른 직계인 후춘화(胡春华) 현 내몽고자치구 서기가 시진핑 집권 이후인 2022년의 20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 직을 차지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68세부터는 새롭게 구성되는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 불가’규정은 물론 당내 상층부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일 뿐 당의 강령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파벌 간의 합의에 의해 효력을 상실할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이 내규가 무효화되었다는 내용은 들리지 않고 있다.

    동시에 정치국원과 국무원(행정부) 장관급의 63세 이상 진입불가 규정 역시 정치국 상무위원의 연령제한 규정과 함께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런 연령규정이 중요한 이유는 이미 한 지도부의 10년 임기가 이미 당 내에서 암묵적으로 동의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지도부가 출범하는 올해 시진핑과 함께 10년의 임기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새로운 지도체제의 핵심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예를 들면 총리 내정자인 리커챵 부총리와 리유엔차오 당 조직부장 또는 왕양 광동성 서기 등).

    앞에서 언급한 왕양에 대한 견제가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왕양이 이번에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면 현재의 연령규정에 따라 시진핑 이후의 새로운 지도부가 등장하는 2022년에도 정치국 상무위원에 잔류할 수 있게 되고, 결국은 새로운 젊은 지도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은 정치국원 급에 해당하는 인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권력의 핵심인 베이징 서기에 임명된 궈진롱(郭金龙)은 이미 65세이지만 아직 정치국원이 아니며, 따라서 이번 당 대회에서 정치국원에 진입하더라도 임기를 마치지 않고 새로운 인물로 교체될 가능성이 크고, 새롭게 중앙판공청 주임에 임명되면서 권력의 핵심에 접근한 리잔슈(栗战书) 역시 시진핑 임기 첫 5년 동안 후진타오와 시진핑의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 주는 역할 이상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정치적 인물의 운명을 그 사람의 정치적 역량이 아니라 연령으로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지만, 현재 중국의 정치구조에서는 이것이 그 인물의 정치적 역량의 유무를 떠나 꽤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따라서 현재의 중국정치를 좀 더 세밀하게 관망하기 위해서 파벌과 개인의 능력 외에 연령이라는 요소를 더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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