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의 마음치유 이야기⑥
    스나이프건을 마음에 품고 산 사내
        2012년 10월 16일 03: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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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정이 진행되던 어느 회기, 한진에 복수노조가 생겼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분노가 가슴에 가득 찼다. 어떤 동지가 공공의 적인 사용자보다도 복수노조가 더 밉다며 욕을 했다.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르는 조합원이었을 때 너무 대단해 보이는 공인이었던 이가 조합원을 배신하고 복수노조를 만들어 선봉에 선 것을 보면 속이 다 울렁거리고 화가 난다며 지금 힘들게 노조를 이끌고 투쟁하는 형님들을 미안해서 바라보지도 못하겠다며 속상해했다.

    그러자 다른 동지 한 명이 슬슬 그룹 안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그 복수노조 그 새끼 해줄게, 나에게 퍼부어” 라고 말하자 자연스럽게 치료장이 펼쳐졌다.

    “야 이놈아 그렇게 살고 싶으냐. 나가 돼져라. 네가 하는 짓을 봐라.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나는 노동운동이고 뭐고 좆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처럼은 안 산다. 너 조심해라, 나에게 걸리면 넌 뼈도 못 추린다.” 며 앞에 나와 있는 동지가 마치 ‘그 새끼’인양 욕을 퍼부었다.

    얼마나 실감나게 욕을 하던지 다들 그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웃으면서도 슬펐다.

    그 다음 주, 실감나게 욕했던 동지가 얼굴이 환해서 들어왔다. 주말지낸 이야길 하는데 목소리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진짜로 어느 골목에서 지난 주 욕했던 ‘그 새끼’를 만났단다. 다른 때 같으면 더러워서 피하기도 하고 말해 뭐하나 싶어 무시하기도 했을 텐데 지난 주 과정에서 연습을 해서 그랬나, 겁먹지 않고 다가가서 욕을 퍼 부었단다. 말이 막히지도 않고 술술 나오는데 욕하면서도 신기하더란다.

    해야 할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해 대는 자기를 보고 나이가 훨씬 많은 그 사람이 놀라서 움찔하며 기분나빠하더란다. 그래도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또 만나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하더란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욕하지 않고 침착하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조합을 무책임하게 내려온 것, 회사 측 복수노조를 만든 것, 너무나 속상하고 실망스러운 것들을 이야기하고 돌아서는데 상대가 참 작아 보이고 오히려 초라해 보이더라고 했다.

    대우 동지들의 마음치유 과정 모습

    그 동지의 이야길 들으며 예전 대우차 판매노조와 같이 했던 치유 과정이 생각났다. 과정을 시작하며 노래를 불렀다. 대우차 동지들은 노래를 좋아하고 참 잘 불렀다.

    유독 한 동지가 노래책만 쳐다보고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어 마음이 갔다. 노래 뿐 아니라 모든 과정에서 말이 없었고 표정도 많이 어두웠다. 그 동지에게 마음이 어떤지, 동지의 이야길 듣고 싶다고 장으로 초대를 했다.

    10년 동안 투쟁을 하고 있는 이 동지는 가슴 속에 화가 꽉 차 있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마음을 푸는 모양인데 자신은 정말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혼자 산에 가서 중얼 중얼 거리면서 욕을 하기도 하고 그래도 안 풀리면 술을 먹고 한번 뒤집기도 하는데 그래도 시원하지 않고 미쳐버릴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누구에게 그렇게 화가 나느냐고 했더니 ‘이ㅇㅇ 개새끼’ 하면서 욕이 그냥 쑥 나왔다. 하고 싶은 이야길 다 해보라고 판을 벌려줬다.

    “똑같이 하루 세끼 먹고 똑같이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 마시고 사는데 왜 그랬어. 너는 나중에 안 죽을 줄 알아? 너 살면 몇 백 년 살 거야? 똑같은 인간이면서 싸들고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데. 당신, 나보다 나이 더 많지, 내가 당신보다 오래 살 자신 있어. 끝까지 지켜볼 거야. 네 새끼들하고 다 어떻게 사는지 내가 끝까지 지켜볼 거야.”

    속에서는 분노가 막 터져 나오는데도 말은 “복 짓고 살아, 복 짓고 살아” 덤덤하게 나왔다.그걸 바라보는 동지들이 답답하다고 했다. 화가 난다면서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느냐고, 그 사람 앞에 가면 한마디도 못할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말이 나오지 않을 땐 몸이 나서줘야 한다. 그래서 동지들 중 가장 덩치가 좋은 친구가 ‘이ㅇㅇ’가 되어 그 동지 뒤에 딱 붙어 안 떨어지기로 했다. 그 동지를 꽉 붙잡고 분노 속에서 살고 있는 그 동지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온 힘으로 동지를 막았다.

    큰 덩치에게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잡힌 동지가 몸을 비틀며 ‘놔, 놔 ~’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입에서 ‘개새끼, 씹새끼 ’소리가 마구 나왔다.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될 것 같은 사람을 몸으로 비틀어서 떨어트려 버렸다.

    몸으로 기운을 빼고 나니 더 깊은 속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전 재산을 털어서 스나이프 건을 사고 싶어. 덤프트럭을 하나 사서 그 새끼 행동반경을 다 알아 두었다가 제일 먼저 그 새끼 자식들을 갈아 버리고 싶어. 그 다음에 그 새끼 부모를 갈아버리고 그 다음에 그 새끼 와이프,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그 인간을 갈아버리고 싶어. 그 녀석에게 고통이 뭔지, 그게 어떤 건지 고대로 알려주고 싶어.”

    스나이프 건을 사고 싶다던 동지에게 다른 동지들의 공감어린 피드백이 이어졌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스나이프 건을 사고 싶다던 동지에게서 나온 이야기

    “난 그 사람이 나에게 딱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어. 그 때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그 한마디만이라도 하면 내가 이해해 보겠어. 뻔뻔스럽게 있는 놈이라도 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 그 놈이 몇 백, 몇 천 명에게 못 되게 했어. 반성할 줄도 모르고 미안한 줄도 모르는 게 인간이 아니잖아.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

    그 당시 자기 입장에서 할 수 없었다. 죄송하다, 미안하다. 그 한마디만 했으면 좋겠어.

    상황이 닥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한마디만 했으면 좋겠어. 그럼 그냥 다 마음이 누그러질 것 같아. 이렇게 독한 맘을 갖고 있는 것이 난 힘들어.”

    10년 동안 사측에게 무시당하며 억울하게 견뎌왔던 세월 이야길 하며 긴 한숨을 내 쉬던 그 동지, 과정이 끝날 때 즈음 얼굴도 많이 밝아지고 노래도 곧 잘 따라 부르곤 했다.

    과정이 끝나고 나서는 ‘세상을 어렵게 생각하기만 했다. 쉬운 데 답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걸 느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너무 어렵게 생각한 원인을 발견한 것 같다. 내 원칙만이 아니라 쉽게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느끼고 싶은 나를 발견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주위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에게도 이 과정을 권하고 싶다.’ 며 ‘사실 그 동안 스나이프 건을 그 사람에게 겨눈 게 아니라 나에게 겨누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는 피드백을 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이 있다.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우리 시대 가족 심리학’이란 부재가 붙은 책이다. 그 책에는

    ‘누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마땅히 내게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았을 때,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이런 일들이 오래 반복되었을 때 분노는원망이 된다. … 원망은 ‘독은 자기가 마시고 병은 다른 사람이 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 원망이 우리에게 치명적인 이유는 원망을 품은 상태에서는 현실을 냉정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원망하는 감정을 놓는다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용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이상 그 때문에 나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나의 원망으로 상처를 입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오직 나 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과정을 통해 분노를 만나기만 해도 그 분노가 나에게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떨 때는 더 적극적으로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배게로 방바닥을 내리치기도 하고 둘이 맞붙어 서로 배게로 상대를 치기도 한다. 그렇게 속에 있는 분노를 내어놓고 나면 분노를 싸안고 분노에 휩싸여 자신이 분노에게 먹혀버리는 것에서 거리를 두게 된다.

    필자소개
    이수경
    홀트아동복지회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아리랑풀이연구소 그룹 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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