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핵 노동시간 단축법 3종세트 만들자
    [에정 칼럼] 탈핵과 녹색사회는 노동자의 삶 향상시켜
        2012년 10월 16일 01: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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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원자력합의’를 통한 탈핵에서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던 노동조합이 함께 입장을 바꿔오지 않았다면 사민당의 에너지 정책 변화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조합운동 내부에서 지난한 논의가 있었겠지만, 독일의 노동조합은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시민사회의 탈핵 발걸음을 함께 해온 것 같다.

    특히 금속노조(IG Metall)는 탈핵운동에 동조적인 편이었는데, 이는 산하에 재생에너지 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들이 점점 많아졌던 탓이 컸다. 이에 비해 광산화학에너지노조(IG BCE)는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화석에너지나 핵에너지를 억제하려는 정책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였다.

    독일 노총(DGB)은 이 사이에서 조정자의 역할을 해왔지만 노총의 619만명 조합원 중 1/3이 넘는 금속노조(224만명)의 영향이 아무래도 컸을 것이다.

    2010년 '원전폐쇄운동'에 10만명이 참가한 독일 북부 원자력발전소 앞 집회

    독일노총이 주도하여 1999년에 ‘노동과 환경을 위한 동맹’을 건설한 것도 이를 반영한다. 이 동맹은 기존 건축물의 개보수 등으로 에너지 절약과 효율성 향상을 통해 기후를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했다. 이는 녹색경제로 전환하면서 일자리와 지역사회를 함께 보호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탈핵에 관하여 아직 적극적인 입장 표명이나 실천이 보이지 않는다. 핵발전 옹호든 반대든 간에 독일에 비해서는 조직률과 조합원의 절대 숫자 모두가 사회적으로 영향을 갖기에는 너무 작기 때문일 것이지만, 핵에너지와 관련된 노동조합이 여러 상급단체로 나뉘어 있는 사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전력노조는 한국노총, 발전노조를 포함하여 한국전력기술, 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의 노동조합은 민주노총 소속이며, 한수원은 상급단체를 두지 않고 있다. 총연맹 간의 경합 속에서 핵 발전의 문제는 서로 안 끄집어내는 것이 노조에게도 편한 일인 게 사실이다.

    조합원들이 직접 핵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조합에서 탈핵 이야기를 꺼려하긴 하지만, 탈핵이 조합원들의 일자리에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핵발전소를 20-30년 동안 단계적으로 폐쇄할 경우, 그 이후 수십년 동안 시설과 폐기물의 사후 처리가 진행되어야 할 텐데 이를 담당할 것은 어차피 그 동안 핵산업의 기술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발전과 송배전 시설의 설치와 유지 보수는 재생에너지라고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이웃 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과 같이 노사정 사이의 신뢰가 취약하고 노동이 일방적으로 공격받는 사회에서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지만, 미루고 피해서 될 일은 아니다. 노동자 가족과 지역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고, 탈핵 과정의 피해를 최소화 할 제도적 보완책과 재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10%의 조직률에 머물고 있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에서도 탈핵에 구체적인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에너지 수요 관리와 결합하는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그것이다. 이는 지난 해 5월 “밤에는 잠 좀 자자”라는 요구로 파업투쟁을 벌인 유성기업의 사례와, 뒤이은 토론에서 이미 실마리가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력 소비는 제조업이 49%, 서비스가 30%, 주택용이 15% 정도를 차지한다. 전력대란이 예고되면 전기요금 누진제가 적용되는 일반주택 거주자들이 스트레스를 받지만, 관건은 제조업의 전력수요 조절이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요금은 제조업 경쟁력을 이유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되어 수요를 더욱 늘리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로 산업용 전기 판매단가는 전체 전기 총괄원가 보다 14.4%나 저렴하며, 특히 산업용 전력 사용량의 약 40%는 판매단가가 kwH당 45-50원대로 생산원가의 약 70%인 경부하시간대 전기다.

    경부하시간대는 전체 전력예비율이 높은 심야시간대를 의미하는데, 정부는 낮은 전기요금으로 기업주의 심야시간 조업 선호를 유도해 온 셈이다. 제조업 시간대별 전력사용량을 보면 심야시간대(23시-09시, 10시간)가 약 48%로, 주간시간대(09-18시, 9시간)의 34%에 비해 단위 시간당 사용량이 훨씬 많다.

    제조업뿐 아니라 일반 사무와 판매서비스업도 전력수요와 관련해서 의미가 작지 않다. 대형할인점과 편의점의 야간 영업이 늘어나면서 일반용 전력 수요를 급격히 높이고 있고, 대도시 사무직 노동자가 일하는 사무실이 입주하는 건물이 점차 초고층화되어 에너지 소비를 더욱 크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계절별, 시간대별 전력수요 편차가 큰 나라에서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서는 피크 시간대의 관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피크 시간대의 전력 공급은 일년 내내 거의 동일한 출력으로 계속 운전을 해야 하는 기저발전원인 핵발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피크 시간대라고 핵발전소를 더 가동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비 피크시간대에 주로 작용하는 기저부하의 수요를 낮추면 탈핵을 더욱 쉬이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밤 시간대와 휴일이 바로 이 때다. 심야시간과 휴일에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제조업 공장과 IT업체의 사무실, 대형할인유통점, 편의점들이다. 심야의 조명 아래서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가족끼리의 얼굴맞댐을 가로막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탈핵을 하면서 노동의 인간화도 달성하는 노동시간 단축법 3종세트를 제안해봄직 하겠다.

    제조업 노동자에겐 심야노동 제한법, 사무직 노동자에겐 칼퇴근법, 서비스유통업노동자에겐 대형매장과 편의점의 휴무 의무화와 운영시간 제한법이 적절할 것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탈핵에 나서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노동시간 단축하여 탈핵도 하고 인간답게도 살아보자.

    필자소개
    진보신당 녹색위원장.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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