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 문학교실
    노숙자와 함께 배우는 글쓰기
        2012년 10월 16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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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월 또는 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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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1초도, 한 순간도 한 찰나도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평생 “나는 바보”라는 콤플렉스 굴레에 묶여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미물에게 학생들과 교실을 맡겨주신 학교들에 미안해서, 그냥 오래오래 앉아, 오래오래 읽고, 오래오래 글을 씁니다. 오래오래, 이 방법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이 정도의 미물에게 교실에 서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모든 존재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제 새로운 ‘교실 이야기’를 네 편의 일기로 전해보려 합니다.

    2012년 9월 8일 곡우(穀雨)

    “무조건 할게요.”

    미물에게 노숙인 대상으로 문학 강연을 해달라는 당부가 와서 이렇게 답했고, 곧 ‘민들레 문학특강’을 시작했습니다. 노숙인들이 4주간 문학 강연을 듣고 나서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내면 서울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빅이슈>가 ‘민들레 예술문학상’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수상하는 노숙인들께는 임대주택이 제공되고, 서울시에서 일자리도 준답니다.

    80년대 말에 영등포 가리봉동 등지에서 열었던 노동자 문학교실, 일본 도쿄 우에노나 오사카 니시나리에서 홈리스와 밥 나누던 일은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었습니다. 일본에는 구조조정형 노숙자가 많고, 한국에는 생계형 노숙자가 많은 게 특징입니다.

    귀국한 이래로 이제 숙대입구역 가까이에 있는 ‘시립 다시서기상담센터’에서 매주 한번 노숙인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합니다. 제가 노숙인에게 문학이나 인문학을 강연하는 것이 그분들을 ‘위해서’ 하는 일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깨닫고 싶어서입니다. 제 문학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좀더 ‘삶에 밀착된 강의’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정확히 제 지금 나이 쉰 살 때 톨스토이가 <참회록>(지만지, 2012년)에 썼습니다.

    ”나는 내가 속한 계층의 삶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 단지 삶의 모방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외적인 삶인 기생충 같은 삶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하는 순박한 민중의 삶을 이해해야만 한다.”(105면)

    노숙인들 곁에 가지 않는다면 제 인생은 제가 자라온 중산층의 계급적 한계에 고착될 겁니다. 뭣도 모르고 매주 토요일 이태원에 있는 물 좋다는 라이브러리(디스코텍 이름입니다)를 꼬박꼬박 갔던 20대 초반 젊은 시절을 반성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부르주아로 태어나 황폐하게 젊은 시절을 보냈던 톨스토이는 또 이렇게 썼죠.

    ”나는 무식한 농민 순례자의 신, 신앙, 삶, 구원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나는 삶과 신앙에 대한 민중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가까워졌고, 그들에게 가까이 갈수록 진리를 더욱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117면)

    내일, 1828년 9월 9일에 태어난 톨스토이가 쉰 살부터 농민과 노숙인들과 함께 지내며 <참회록>(1880) <부활>(1899)을 썼지요. 저도 홀수 금요일에는 연구실에서 가까운 강연장에서 1시간 반 정도 노숙인들께 배웁니다. 높은 하늘 반대에 있는 밑바닥의 뿌리들도부터의 큰 배움입니다. 물론 노숙인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잘 준비해야겠죠.

    노숙인과 함께하는 일은 보통 3단계로 나눕니다. ‘응급보호⇒재활자활지원⇒사회복귀’로 이어지는 시스템입니다. 제가 일본 우에노 공원 등지에서 밥이나 약, 담요를 전하는 일을 했던 것은 ‘응급보호 단계’이고, 지금 하려는 노숙인 글쓰기 프로그램은 ‘재활자활지원 단계’입니다. 응급보호 단계가 생존을 위한 긴급한 나눔이라 한다면, 재활자활지원 단계는 영혼과 정신 그리고 자존심에 근육을 만들어주고 척추를 세우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곡우(穀雨), 일 년 중 모심기에 필요한 비를 말한다죠. 오늘 아침 단비가 내립니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뭐라고 하는지요? 제 마른 영혼에도 곡우가 내리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나는 학생들, 일반인들, 노숙인들의 영혼에도 곡우가 적셔주면 좋겠습니다. 밤새 내리는 이 비가 모든 이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비가 되면 좋겠습니다.

    2012년 9월 20일 3번 절망, 3번 교정

    노숙인 문학 강연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니, ‘민들레 문학교실’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1시간반씩 서울역 주변에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합니다. 방금 노숙인이라고 썼지만, 행정용어로 ‘노숙인 1일 취침소’ 하는 식으로 쓸 뿐, 그들 한 분 한 분을 홈리스 혹은 노숙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저는 노숙인을 ‘선생님’ 혹은 이름을 불러 모셨습니다.

    오늘 제가 강의했던 민들레 문학교실에는 40대 초반부터 50세 후반 사이의 분들이 오셨습니다.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더니,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자신의 이름 뒤에 ‘00년생’이라고 써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 사람이 써서 모두 그렇게 쓴 걸까요? 무엇보다 글씨를 아주 또박또박 잘 쓰셔서 놀랐습니다. 자활해보겠다는 의지가 글씨에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편한 복장을 하고 갔는데도, 책에 나온 제 약력을 보고는 금방 거부감을 느끼신 분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시작하면서 산문 하나를 돌아가면서 읽자 했는데, 읽는 중에 어떤 분이 “그만 읽자” 하셨습니다. 뭔가 본능적으로 제게 거부감을 느끼시는 걸 감지했지요. 그러고는 제 처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엉뚱한 말들을 좀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은행빚이 많아서 며칠 전에 카드가 끊어졌어요. 그래서 모아둔 동전을 비닐에 넣고, (비닐을 보여드리면서) 모아둔 동전으로 여기 오다가 김밥 하나 사먹었는데, 그게 글쎄 경품김밥이라는 거예요. 경품으로 우유 하나 공짜로 먹고 상계역으로 지하철 타러 갔는데 어느 교회가 교회 나오라며 공짜 커피를 주는 거예요. 그래서 멋지게 커피도 마시고 여기 왔어요.”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지는 듯싶었습니다. 그리고 강의실이 덥다며 란닝구만 입고 강의해도 좋냐 하니까 그때야 몇 분이 함박웃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권위를 벗은 걸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노숙인 선생님들이 마음을 열어 조금씩 당신네 살아오신 이야기를 어떻게 글로 쓰는가 물으시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고 나서 그 글을 왜 낭송해봐야 하는가, 그래야 사람의 숨이, 혼이 들어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려운 표현이었던지 잘 이해들을 못하시기에, 다음엔 이런 말 할 때 좀 더 생각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고 맘에 들지 않으면 3번 절망하고, 3번 교정하면 이후에 그 글이 조금은 좋아진다는 말을 하니까 “세 번 절망, 세 번 교정”이라는 말을 따라 하셨습니다.

    노숙인들은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가 분명했고 질문도 명확했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냐고 해서, 그냥 입말을 쓰시라고 했더니, 사투리를 써도 되냐고 해서, 욕설을 그대로 쓰셔도 된다고 했더니 무척 반기시는 표정이었죠. “저는 일부러 재래식 시장을 거닐거나, 기차 화물칸에 타서 거친 말을 받아 적곤 했어요. 그곳에 아름다운 표현이 많아요.”라는 말씀도 덧붙였어요.

    어떤 분(54년생)은 표준어를 모르고 전라도 사투리밖에 할 줄 모르는데 글을 전라도 사투리로 써도 되냐고 물으셔서, “사투리는 언어의 보물창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분(65년생)은 35살 때부터 실패한 경험을 쓰고 싶은데 심각한 얘기도 있고, 잘못 쓰면 비밀이 있는데 어떡하냐고 물으셨는데, 그 이야기를 다음 주에 들려달라 했습니다.

    칠판에 큰 글씨로 쓰고, 영어나 한자는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발표문을 잘 만들어가거나, 글자를 또박또박 쓰면 먹물이라 하실까봐 크게 쓰되 흘려 썼는데, 다음주에는 발표문도 만들 생각입니다.

    “일단 흙, 모래, 벽돌, 철골을 사다 놔야. 집을 지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글 순서와 상관없이 일단 무조건 쓰시는 겁니다. 그게 집 지을 때 건축 자재 준비해두는 거랑 마찬가지죠.”

    글 구성하는 방법을 집 짓는 노가다로 설명하니까 반기셨습니다. 아마 노가다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다음 주까지 짧은 글 한 편씩 써오기로 했는데, 한 분이 자기가 어떻게 이 꼴이 되었는지 실패한 과정을 써보겠다 하신 글이 기다려집니다. 다음주에는 이 분들의 글을 반갑게 읽어 보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문학교실은 실은 제가 배우는 시간입니다. 제 공부 시간입니다. 하여 나중에 ‘민들레 문학교실’에 대한 논문을 써보려 합니다.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해 작가로서, 문학 전공자로서 스스로 분석 반성해볼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살아갈 시간도, 배워야 할 시간도 짧구나, 모든 존재가 선생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하루였습니다.

    2012년 9월 29일 다시 읽고 싶은 글

    추석 연휴 전날 민들레 문학교실에 갔습니다. 지난주보다 많은 수의 노숙인 선생님들이 오셨습니다. 지금 ‘노숙인 선생님’이라 썼는데, 어색하게 들릴 수 있겠죠. 일본에서는 노숙인들을 “~상”이라고 이름을 불렀는데, 다시서기센터의 봉사자들은 노숙인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름을 알면 “~씨” 혹은 “~아저씨”라고 부르지만 교실에서는 “~선생님”으로 서로 통칭합니다. 성공회대 프란체스코 인문교실이나 경희대쪽도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기에 노숙인이건 대학교수건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처음엔 어색했는데 교실이라 그런지 오히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편했습니다. 이름을 알면 당연히 이름을 부르는데, 나이 많으신 분의 경우 저는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새로 오신 몇 분이 계셨습니다. 얼굴에 흉하게 칼자국이나 흉터가 있는 험상궂은 분, 머리를 뒤로 길게 길러 묶은 분, 노숙인 같지 않은 젊은 분, 깔끔하게 늙으신 분 등이 오셨습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분은 방금 지하철역 골판지 상자에서 기어나온 듯한 모습인데, 다른 분들은 노숙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치 깨끗한 외모였습니다.

    “10년 정도 했어요. 거리에서 반, 쉼터에서 반 정도예요. 그것 말고도 찜숙, 컴숙, 고숙, 만숙 다 했어요. 역도 서울역, 청량리역, 서울역… 잠자는데 두드려 패고, 누가 오면 도망가고 발길 닿는 대로 전국구였어요. 고숙, 만숙이 뭐냐고요? 고숙은 고시원에서 자는 거, 만숙은 만화방에서 자는 거지요. 찜숙과 컴숙은 아시겠지요?”

    이렇게 말한 사람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그 분도 앉아 계셨습니다. 화상당했는지 얼굴 군데군데가 붉게 벗겨진 분이었죠.

    지난주 민들레 문학교실에 이어 다시 강의해 달라 해서 글쓰기에 대한 열두 가지 내용을 다시 강의했습니다. (강의 후엔 보통 저녁식사가 제공되는데) 추석 연휴 전날이라 초코파이와 콜라만 나누는 글쓰기 교실이 스산했지만, 모두들 노트 필기하며 열심히 들으셨습니다. 먼저 우리 교실 이름을 ‘다시 읽고 싶은 민들레 문학교실’로 정했습니다. 지난주에 가장 좋은 글이 어떤 글인지 물었을 때, 1위가 ‘다시 읽고 싶은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숙인을 위한 ‘다시 읽고 싶은 민들레 문학교실’에서 저는 열두 가지 글쓰기 자세를 강조해서 전했습니다. 이제 차례대로 써보겠습니다.

    첫째, 글은 책에서 나오지 않고, 삶에서 나온다. 책 많이 읽은 사람에게 절대 기죽지 말자. 삶을 많이 읽은 사람을 존경하고 삶을 글로 쓰자.

    둘째 3번 절망하고, 3번 다시 쓰자. ‘나는 왜 이것밖에 못 쓰나’ 절망하고 다시 쓰고, 2번째 절망하고 다시 쓰고, 3번째 절망하고, 3번째 고치면 글이 쬐끔 좋아진다. 3번째 고치기까지 자기 글에 절대로 만족하면 안되고 포기해서도 안된다. 글의 근육도 다듬어야 한다.

    셋째, 주정할 때, 울 때 쓰는 말을 그대로 글로 쓰자. 사투리 농담 욕설도 그대로 쓰자. 농담, 욕설, 말실수가 가장 진솔한 표현이다. 쉽게 내뱉는 말을 그대로 쓰자. 그러다 보면 신기한 표현이 나온다. 시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언어들이 보석이다.

    넷째, 술어를 다양하게 쓰자. 예를 들어 “사랑한다”는 말을 내 맘대로 표현하자.

    (칼자국 난 노숙인은 “내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기가 우습다”고 썼습니다. 68년생 현 씨는 “내 맘 알제”, 59년생 조 씨는 “쥑여도 그런 말 몬한다”, 56년생 박 씨는 “말을 해야 아나~”라고 하셨죠. 서울역에서 7년 살았다는 젊은 노숙인은 “너 많이 좋아해”라 했습니다. 그게 가장 좋은 문학적 표현이라 하니까 모두 좋아하셨습니다. 밥 이상으로 사랑에 주려 있는 이 분들의 표현에 저는 말하다가 가끔 숨이 막혔습니다.)

    다섯째, 구체성을 높여서 쓰자.

    (오늘 점심에 뭐 먹었냐고 물으니, 한 노숙인이 콩나물국밥 먹었다 합니다. 반찬은 없었냐 물으니, 국밥 외에는 없었다 합니다. 그래서 반대로 먹고 싶은 걸 쓰시라 했더니 떡볶이, 짜장면, 돈까스, 오뎅 등 엄청 많이 나열해서 쓰셨습니다.)

    여섯째, 조사를 바르게 쓰자.

    (“당신은 코가 이뻐요”라는 표현과 “당신은 코는 이뻐요”의 차이점을 물었더니 “당신은 코는 이뻐요”가 기분 나쁘다고 한 어르신 노숙인이 말씀하셨습니다. ‘은/는=대조보조사’라는 말처럼 비교하는 주격조사입니다. 비교하지 않고 평가하는 ‘이/가’와는 다릅니다. 이렇게 같은 주격조사라도 들으면 기분이 다릅니다.)

    일곱째, 다 쓰면 3번 이상 읽어보자. 최소한 세 번 이상 낭송해자. 그때 내 ‘숨’[호흡]이 들어간다. 글에 내 호흡이 들어가면 글이 숨을 쉬기 시작하고 리듬이 생긴다. 낭독해봐야 글이 숨을 쉬고 글이 살아난다.

    여덟째, 글의 제목은 글의 반이다. 글 밖에서 헤매며 제목을 찾지 않는. 제목은 글 안에 있다. 글 안에 숨어 있던 제목은 3일 뒤에 “저를 제목으로 해주세요”하고 조용히 다가온다. 차분하게 쓴 글 다시 읽으며 제목과 만나야 한다.

    기타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일은 조금 어렵습니다. 아홉째, 형용사와 부사를 덜어내자. 열째, 모호한 낱말이나 접속사를 피해서 쓰자. 열한째, 꾸미는 말이 너무 길지 않도록 하자. 열둘째, 우리 한국어 말법에 맞는 말을 쓰자.

    아홉부터 열둘째 점검사항은 깊게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 따지다가 노숙인들이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할까봐 실은 간단히 줄였습니다. 그리고는 노숙인들께 “지금 당장 쓰자” 했습니다. 가제를 ‘집’으로 했는데 너무도 쉽게 글을 쓰시기 시작했어요. 쓸거리가 너무 많은 거죠. A4 용지를 몇 장이고 써서 저에게 갖고 오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읽어 주고 몇 가지 수정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분들의 틀린 맞춤법, 엉망인 글 그대로 모두 귀한 삶의 반영이었습니다. 고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치다가 훅, 목울대를 치밀어 오르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교실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가슴으로 잠깐 울었습니다. 그중에 두 번째로 잘 쓴 글을 곧이어 올리겠습니다.

    2012년 10월 2일 꼬마방

    아가에게 미음을 먹일 때는, 환히 맛있는 표정을 지어야 합니다. 눈으로 환히 웃으면서 환히 입맛 다시면, 아가도 환히 웃으면서 환히 받아먹습니다. 강의할 때도 마찬가지 아닐지요? 제가 인상을 쓰면 듣는 분도 인상을 씁니다. 제가 웃으면 듣는 분도 환히 웃으며 듣습니다.

    왜 민들레 문학교실을 하는가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 제가 노숙인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하기에 묻지 않으실 거 같아요. 그런데 반대입니다. 제가 노숙인들에게 배웁니다.

    가령, 민들레 문학교실에서 강의할 때 한 분이 “선생님처럼 저희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해서 글 잘 못써요”라고 말하셨어요. 그때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책에 앞서, 우리의 삶을 읽고 그 삶을 그대로 쓰세요.” 제법 멋지게 답했습니다다. 그러곤 무너졌습니다. 저는 숙명여대 학생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거든요. 무조건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좋은 글귀를 외우고, 필사하고, 이용하라고 권했거든요. 왜 학생들에겐 책만 많이 읽으라 강조했었던가, 책보다 중요한 것이 삶이 아닌가, 이렇게 노숙인 선생님들을 반성하는 겁니다.

    추석 지난 오늘 아침, 친척 아이들이 모여들어 픽사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2004)을 보며 갖가지 과자 먹으며 쨍알쨍알 깔깔 웃습니다. 아내는 꼬마들 긴 머리 땋아주고…. 이런 행복한 풍경을 몇 만 년만에 보는 듯합니다.

    저는 종일 책상에 앉아 노숙인 선생님들이 쓰신 글을 입력합니다. 제가 입력해서 수정해서 드리면 이번주에 다시 그분들이 글에 내용을 더 삽입하거나 해서 고치면, 또 제가 수정해서 나누어 드리고, 세 번 수정해서 완성본을 만들 예정입니다.

    세 번 수정해서 완성된 글을 10월 15일 마감인 서울시 주최의 노숙인 대상 ‘민들레 예술문학상’에 보낼 예정입니다. 수상자에겐 임대주택에 들어갈 기회를 주고, 서울시에서 직장을 알선합니다. 제 교실에서 한 분이라도 취직되기를 바라며, 지금 많은 노숙인들의 글을 입력하고 있습니다. 등 뒤에서 아내와 아들이 보고 있는 <인크레더블>의 초능력자들처럼 제 손가락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로케트처럼 빨라지면 좋겠습니다.

    이제, 서울역 근처 다시서기센터 노숙인 글쓰기 교실에서 제가 2위로 선정한 글을 올립니다(1위 글은 저 혼자 있을 때 눈물 쏟게 한 글입니다). 이 글은 60대의 노숙인이 쓰셨습니다. 추석 연휴 이 노인이 홀로 꼬마방에서 지낼 걸 생각하면서 열심히 입력합니다. 물론 수정될 것이고 두 주후에 완성될 초고입니다. 초고만 보고 어떤 분이 이렇게 평하셨습니다.

    “무학(無學)이 노숙하는 게 아니라, 노숙하는 사회가 무학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이 글 제목은 <꼬마방>입니다. 사실 ‘꼬마방’이 너무 밝은 표현 아닌가 합니다. 고시원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많은 사람들은 감옥 혹은 이승의 관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아랫글은 개인적으로 희망스러울지 모르나 자칫 구조적 체계적 환경을 개인이 참아내야 할 문제로 치환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꼬마방이라고 표현하고 싶어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나락의 공간을 이나마 기쁘게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 공간을 어둡게 표현하기를 바라야 할까요? 물론 이 글은 초고이기에 또 변할지도 모릅니다. 다음주에 만나면 더 어두운 글을 쓰실지도 모릅니다. 일단은 그 할아버지 뜻 그대로 살리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하여 초고 그대로 올립니다(틀린 표현이나 오자 등도 그대로 두었으나 맨 끝에 바로 잡은 표현을 덧붙입니다).

    꼬마방

    작디 작은 꼬마방에서 기거한지도 1년이 넘었구나. 볼품없는 방이지만, 멀떼같이 키만 덩그렁이 큰 방. 그래도 나에겐 고맙고 고마운 터전.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눈이 펑펑 쏱아질 때나 비가 억수 같이 퍼부을 때도 너는 나를 쉬게 해주는 매력있는 녀석이지. 고맙다.

    정말 나에겐 멋진 녀석이야. 네 이름이 고시원이지만 나는 왠지 싫다. 무어라 이름을 지어줄까. 거창하게 작명소는 못 가더라도 내가 쉽게 부를 수 있으면 되겠지. 꼬마방, 어때 맘에 들어.

    왠만해선 헤어지지 말고 지금처럼 살자. 캄캄한 방이고 작은 곳이지만 나에게는 대굴 같은 보금자리니까.

    꼬마방, 너에게 해주는 것은 청소밖에 없지만 너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고 있잖니.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한 곳이 너야. 꼬마방아. 잠을 청해 본다. 매일 하듯이 말야. 꿈 속 여행 즐겨볼까나.

    *멀떼같이→멀대같이, 덩그렁이→덩그러니, 왠만해선→웬만해선, 대굴→대궐

    필자소개
    숙명여대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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