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캠프 세일즈맨 된 지식인들
    한국정치 심각한 무질서로 빠져들어
    [인터뷰-박상훈 ②] “문-안 당선돼도 사회 근본변화 없어”
        2012년 10월 15일 03: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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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1회 게재분  박·문·안, 세후보의 정치개혁 “대중 배제, 엘리트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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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안 당선돼도 사회변화 기대 난망

    조현연 : 이번 대선의 결과에 따라 한국 사회의 큰 흐름-신자유주의 정책, 민주주의, 남북 화해 및 대미/동북아 외교 정책 등-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하나?

    박상훈 : 정치 세계는 선의를 갖고 있는 어떤 정치인이 화폭의 여백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이익과 영향력을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힘들 사이에 부딪치는 갈등의 세계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정치다. 이런 정치 세계의 변화를 예측하려면 변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힘을 봐야 한다.

    우리가 말한 것처럼 의지는 차별화되지 않은 채 경제민주화나 복지가 담론 경쟁 수준으로 돼 있고, 주요 정파들이 말하는 개혁이나 남북문제, 경제권력 교체를 이뤄내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예컨대, 문재인 후보가 말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걸 우리는 경험에서 배웠다. 설령 정권이 이번 대선 결과 바뀐다고 해도, 구조적인 큰 변화는 가능하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박근혜가 당선이 된다면 우리는 그의 선의만 믿고 쳐다봐야 한다. 야권이 되면 요구하고 싸울 수 있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권 교체의 가치를 보는 것이다.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고 한국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를 갖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지식인 현실 변화보다 우월적 의식 과시

    조현연 : 백낙청 선생 등이 중심이 돼서 2013년 체제를 얘기하고 있다. 지식사회에서도 반향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대선 결과에 따라 열려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2013년 체제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사진=정민용)

    박상훈 : 나는 그런 말 자체가 오히려 우리 사회 문제를 역으로 드러낸다고 본다. 일종의 시대정신론과 비슷한 경우인데, 똑똑한 사람들 몇 명이 2013년 체제를 논문 써내듯 얘기하고, 이것대로 사회가 바뀌라고 명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거대한 파도 앞에서 고결한 수도사 한 명이 “파도야 멈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식인들의 역할이라면 사회적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조직해야 되는데, 모두 다 좋은 슬로건이나 요구를 가지고 정치 캠프에 세일을 하고 있다. 2013년 체제론도 그런 것이라고 본다. 이런 것들은 현실을 바꾸는 게 아니라 본인들의 우월적 위치를 과시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제발 지식인들이 연구하고 조사하는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모두 자기가 통치자 옆의 자문관이나 되는 것처럼, 그런 자기 심리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는 엘리트주의로 보기도 아깝다. 매우 잘못된 행태다.

    나는 우리 지식인들이 욕을 더 먹어야 된다고 본다. 백낙청 선생 같은 분들은 원로로서 역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젊은 지식인들까지 다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꼴불견이다. 공부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이른바 ‘폴리페서’를 부정하지 않는다. 방법이 문제라는 것이다. 모두 다 대접 받고 싶은 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식계급 지배론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 상당수 젊은 지식인들을 보면 거의 절망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안철수 세력의 ‘정당’화 눈여겨볼 필요 있어

    조현연 : 안철수 후보가 최근 발표한 정치개혁에 대해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새로운 정치보다 오히려 탈정치를 강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존 정당의 내부에 변화를 추동시킬 ‘충격’을 줄 수 있는 내용도 없는 것 같다. 또 이벤트 정치(청와대 이전 등) 행태도 엿보인다. 안철수의 정치 혁신 내용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

    박상훈 : 그 문제도 몇 개 차원으로 나눠서 얘기를 해보겠다. 담론 자체는 얘기한 대로 행정주의적 접근, 반정치적이고 도덕주의적인 것들의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세력이 진심으로 반정치, 행정주의, 도덕적 세력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들이 지금 정당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과거 문국현 현상 같이 새로운 외생 정치세력들의 경우 기존의 정당 체제 밖에서 새롭게 형성되는데, 대부분 이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이클이 꺾이는 경향을 보였는데,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여기에 호남의 일부가 붙고, 특히 부모가 호남이든 영남이든 수도권의 교육 받은 상층 엘리트의 정서와 점차 맞아가는 걸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들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세대는 그렇게 중요한 변수가 아닌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이들이 지배담론에 갇혀 있다고 보는데, 이제 점차적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지지 기반도 형성되고, 민주당 내부도 동요하는 걸 보면서, 이들이 어떤 정당의 길로 갈 것인가를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는 학습능력이 빨라지는 것 같다. 안철수 개인의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사회에서 정당을 만드는 열정 세 가지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사진=정민용)

    조현연 : 학계의 한 인사는 노무현과 안철수의 지지 기반이 유사하다면서, 변화된 현실에서 만들어진 ‘상식파’라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안철수는 실패를 해도 상식의 흐름에 기반하기 때문에 지속적일 수 있지만, 그의 참모들과 지지 기반 사이에는 일정 정도 긴장과 불협화음이 있는 것 같다는 견해다.

    박상훈 : 나는 그런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구식 정치학자’라서 그런지 그런 펑퍼짐한 판단은 믿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정당이 될 수 있는 열정을 끌어올 수 있는 자원은 세 가지다. 하나는 호남이다. 해방 직후 인구 기준으로 30% 정도가 되면서, 이들이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자신들의 집단적 정서를 공유했다. 이들이 한국 정치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또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노사모 또는 친노라 불리는 사람들의 열정이다.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주요 자원 중에 하나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에서 주변부 엘리트들이라 볼 수 있다. 한국사회가 워낙 중앙집권적이고 학벌 중심적이며, 이런 신분적 사회에서 지위재를 갖지 못하는 중산층의 소외와 저항 의식이 있다.

    나머지 하나는 진보적 이념과 노동에 대한 열정이다. 그동안 진보정당이 민주화 이후 첫 단계부터 제도 야당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배제되고 소외된 민중의 기반과 이런 열정 때문이었다.

    이런 세 종류의 열정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 주요 축인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당권이 지나치게 친노와 호남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여기에 대한 불만이 (안철수 지지 흐름이라는)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으로 작용됐다. 다른 하나는 진보의 약화다.

    안철수 현상은 이것을 빼고는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만드는 데 10% 정도밖에 기여하지 못했다. 나머지 90%는 통합적이지 못한 민주통합당 내부의 이해찬, 박지원, 문재인 등 파워블록에 대한 강력한 불만과 민주당 쪽으로 가지 못하는 좌절된 진보가 합쳐진 것이다.

    결국 안철수 선거 운동은 민주통합당과 진보가 해준 셈이다. 이것을 표현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상식,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상식이라는 공허한 발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그런 힘의 변화라고 본다.

    문재인 정당정치 강조 우스운 까닭

    조현연 : 박 대표는 추석이 지나면 문재인과 안철수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그대로 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안철수 진영이 ‘무소속’ 대통령 문제를 놓고 논쟁을 시작했다. 안철수가 무소속 대통령의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안철수가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여야로부터 자유로워서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박상훈 : 우선 문재인 쪽에서 갑자기 정당정치를 말하는 것이 우스꽝스럽다. 한편으로는 민주정치라는 게 사람을 교육시키는 객관적인 압력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도 그 동안 정당정치를 약화시킨 장본인들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우스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전에 열린우리당 때부터 시작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당적을 버리고, 당정회의도 하지 않았으며, 정당을 공격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무소속 안철수를 만나고 나서 정당정치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엄밀히 말하면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모두 무당적이었다. 차기 대선에서는 현직 대통령들은 당으로부터 배제되고 비난받아 왔다. 본인들도 버젓이 그렇게 했으면서 이제 무소속 대통령은 안 된다고 하니 안 웃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론 말도 안돼

    물론 무소속 대통령으로도 잘 할 수 있다는 안철수 후보의 발언은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그건 본인이 제왕이 되고 싶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아니고. 본인도 진지하게 정치를 하려면 정당이 되는 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당은 단순한 법률적 조직 형식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 사회를 조직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세계관이다. 시대정신이라든지 상식을 반영해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전체주의로 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고 대결하면서 산다. 내가 대변하는 사람들과 열정과 신뢰를 통해 우애를 다지고, 개인과 공동체의 비전도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파, 예컨대 진보파로서 여러 가지를 감수하면서 각자가 정치적 선택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지, 전체파나 국민파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이건 아무것도 안 하거나 전체주의를 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 문재인이나 안철수 측에서 하는 얘기들은 언젠가 스스로에 의해서 배반당할 처지에 놓을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해온 것과 할 것과는 다른 얘기들을 하고 있다. “놀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안철수 정치개혁 요구 다 들어주면 끝나는 일

    조현연 : 이른바 ‘야권 후보’들과 그들의 지지 정당(그룹)이 어떤 경로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보며, 그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조국 교수가 문재인, 안철수 캠프가 공동으로 ‘정치혁신위원회’를 꾸리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박상훈 : 양쪽 캠프에 사적으로 의견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좋은 방법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뭐냐?) 문재인 쪽에서 안철수가 얘기한 거 100%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다 되는 거다. 안철수의 정치개혁 내용이 충격적인 것도 없고, 눈길을 끌 만한 별 내용도 없다. 민주당에서 문제될 것도 없다. 결국은 단일화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단일후보로 될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두 후보와 그 진영 사람들은 지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뭔가 차별화시키고 상대방보다 우세한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내용을 갖춘 물건들은 나오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말 장난’을 하는 수준이다. 웃기는 일이다.

    그리고 야권의 승리를 보장하는 단일화? 어떻게 하면 될지 잘 모르겠다. 내가 두 사람들의 조건이나 생각을 잘 알 수 없다. 일단 객관적으로는 안철수 출마 자체가 후보단일화 내지 야권 단일후보 전망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제는 야권 단일화라는 것은 기획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시간은 너무 짧다. 시간이 너무 짧은 짧다는 것은 야권 단일화의 절차적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조건이 너무 나쁘다는 의미다.

    이광호 레디앙 대표와 조현연, 박상훈(사진=정민용)

    지금 조건에서는 단일화가 언젠가 이뤄진다 해도 정당성은 훼손, 결핍되고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양쪽을 지지했던 에너지들이 단일화를 다 좋아하고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단일화가 두 후보의 지지 기반을 통합하고 플러스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 게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단일화는 두 후보의 지지 기반이 통합돼야 한다고 가정하면, 두 후보는 게임이 아니라 실제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마이너스 게임이 안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국 교수의 제안은 다른 말로 하면 이른바 라운드 테이블을 만들어서, 권력 자원을 공유하는 동의기반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성공을 보장해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우리가 왜 그런 것까지 고민하고 신경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 건 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진보파들까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게 속상하다.

    단일화? 결론은 권력분점이 될 것

    조현연 : 후보 단일화가 되긴 될 것 같다는 전망이 많은데, 그 과정에서 상처를 줄이고 마이너스 효과를 최소화하는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선으로 갈 경우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룰을 정하는 과정 역시 지루한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박상훈 : 방법이 뭐가 있겠나. 경선은 열정과 열정이 부딪치는 과정이다. 부작용이 따를 가능성이 있다. 여론조사는 정당성이 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승복이 안 될 수도 있고, 투표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 남는 게 뭔가? 권력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밖에 안 남을 것이다. 권력분점을 멋지게 하기 위해 이런 저런 위원회 같은 것들을 꾸리는 그런 짓들을 할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정당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으며, 대선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럼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큰 책임은 문재인 측에 있다. 넓게 보면 민주당에 대한 에너지로 민주통합당을 만들어 놓고, 본인들 이외 나머지 부분은 소외를 시켰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플레이어로 나온 안철수에게도 책임은 있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야권 전체가 정권 교체 실패하면서 붕괴하고, 동시에 진보도 붕괴하는 것이다. 진보를 포함한 세 세력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기를 위한 정치를 하는 자들

    이들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대변하고, 보호해야 하는 세력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이들이 2013년 체제니 뭐니 좋은 말을 많이 붙이고 있지만, 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도덕성도 발견할 수 없다. 말로만 하는 것에 신뢰를 보낼 수 없다. 신뢰는 보여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현재로는 보면 최악의 경우도 상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일화해도 실패할 수 있다. 만약에 정권교체와 그 이후를 준비한다면 그것에 맞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하는데, 솔직히 문재인 쪽은 시간 지나면 안철수가 고꾸라지지 않겠나, 좀 빠져줘라, 하면서 무책임하게 바라보는 수준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왜 정부를 맡아서 꾸려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강한 확신도 없다.

    인파이팅을 세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웃사이더도 아니고, 그랬다고 안철수 쪽을 바라보면서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남들만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안철수는 이제 본격적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말의 내용이 없어 문제다. 의회한테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군왕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나는 그가 빨리 민주주의 언어에 적응을 했으면 좋겠다.

    한국의 보수정치가 사는 법

    조현연 : 박근혜가 김종인, 안대희 등 결이 다른 사람을 영입한 배경, 최근 내부 갈등을 봉합한 결과에 어떻게 평가하나? 한광옥 영입은 어떤 실익이 있어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보나? 개인적으로는 계산이 잘 안 되는데…

    박상훈 : 우리나라 정치에서 사람들이 의도된 목표와 거기에 적합한 전략적 행동을 해왔나? 상황에 몰려서 즉흥적인 선택을 하면서 이를 모면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민주화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이 20대가 어렵다고 하고, 사람들이 불평등이 이렇게 심해도 되냐며 분노하니까 박근혜도 경제민주화를 얘기하고, 전태일도 찾아가고 하는 것이지, 자신의 보수적 신념에 따른 사회통합적 행동이 아니다. 그게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게 보수다. 그들은 진보처럼 미래 비전을 가지고 사회를 재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것을 안 놓치려고 한다. 그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보수는 크게 보면 그나마 보수의 상궤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애초 민정당으로 출발해서 야당 일부 세력을 통합하고, 그 당시에는 참신하다고 받아들여진 조순이나 이회창을 필두로 한 개혁세력을 등에 업었다. 그 사이 민중당 일부 세력까지 흡수했다.

    이는 학술적으로 말하면 수동혁명적 계기를 통해 권위주의 정당에서 보수정당으로 전환의 길을 꾸준히 밟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당원 기반도 아직 훼손되지 않았고, 당과 보수적 시민사회의 링크가 약해진 것도 아니다.

    새누리당은 그런 기조 위에서 적응하는 것이다. 윤여준이 저쪽으로 가니까 한광옥 데려오고, 재벌 편드는 거 아니냐고 비판하니까 김종인 불러오고, 정치개혁 비전 없다는 소리가 나오니까 안대희 받아들이고…

    이들은 이렇게 사회적 요구에 대해 임시변통 적응하는 스타일로 처리한 것이다. 이것은 보수정치 자체가 일상적으로 해오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보수정당도 사회를 좀 더 넓게 반영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좋은 효과를 보여주는 측면도 없지 않다.

    심각한 무질서로 빠져드는 한국정치

    그런데 이런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정치가 이제 그야말로 심하게 무질서, 카오스의 세계로 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사람들이 정파와 정당을 옮기는 데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나, 도대체 윤여준이라는 사람은 뭘까, 그가 전에 살아왔던 삶과 이번의 선택은 무엇인가, 그 나이 들어서 해야 할 일인가, 이런 생각들을 안 할 수가 없다.

    한광옥 이 사람은 또 뭐하는 사람이고, 한광옥을 처벌한 안대희는 또 누구냐. 개인의 사회적 삶을 마무리하는 자세가 왜 이런가. 왜 인생을 저렇게 살까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나라의 정당 체제는 정말 사회와 무관하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정당이 사회에 닻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리 저리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산으로도 갔다가 제멋대로다. 정당이 사회적 기반을 버린다고 처벌할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의 정당정치는 근본적으로 민주적 정당체제에서 벗어나 있고, 사회와도 유리돼 있다. 사람들은 정치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투표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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