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문·안, 세후보의 정치개혁
    “대중 배제, 엘리트 중심”
    [인터뷰-박상훈①]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 도입 필요”
        2012년 10월 15일 1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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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이른바 ‘시대정신’ 운운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대중의 현실로 들어가 그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정치화하지 않고, 소수 엘리트들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이를 자신들이 해결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는 또 주요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좋은 소리’들은 그 요구들을 함께 수행해나갈 정치적 시민적 주체와 결합되지 않는 한, 공허한 소리에 그칠 수밖에 없으며, 말로만 정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각 정파들의 언술이 비슷해지는 것은 필연적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박 대표는 또 여야, 안철수 진영 모두 정치개혁은 인사이더들(정치 엘리트 그룹)에 의한 정치 개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진영도 야권연대, 공동정부 운운하면서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에 편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는 자신들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을 정당화해주는 역할만 해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이번 대선에서 야권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야권이 승리한다고 우리 사회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기대’일 뿐이라고 말했다. 야권이 승리할 경우 다만 ‘변화의 가능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레디앙>은 이번 대선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지난 11일 박상훈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는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가 진행했으며, 이광호 대표가 정리했다. 인터뷰 전문은 앞으로 몇 차례 나눠 싣는다. 강조는 편집자.<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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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 사회적 요구를 오히려 해체해

    조현연 :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 대선 이후에 대한 전망, 혼란을 겪고 있는 진보정당들의 선택 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나 상당수 언론에서는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로 내세우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대정신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선거 과정에서 이를 둘러싼 정책 대결의 프레임이 형성될 것으로 보나? 증세와 재벌개혁의 내용과 수준에서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선거 국면에서, 대중적으로는 차별성을 찾는 게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조현연 박사와 박상훈 박사(사진=정민용)

    박상훈 : 나는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같은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치의 전도 현상 같은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라는 것은 결국 그 사회 구성원들이 문제로 제기하는 것을 받아서 다양한 정책으로 실현하는 정치 과정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대중들은 현재 불평등하고 지나치게 불합리하다며, 그야말로 거의 내전 수준의 요구를 하고 있는 중인데, 이런 요구를 받아내는 정치의 방법이라는 게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하다못해 진보정당, 더 나아가 조선일보나 한겨레 같은 곳에서까지 ‘동일한 말’로 얘기되어진다는 것은 그런 요구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표되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꾸로 우리 사회는 정치를 향해서 강력하게 항의하고, 구체적으로 요구하는데 정치는 이 문제를 해체하고, 펑퍼짐하게 동일화시키는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무슨 책임 있는 대화가 정치 세계에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지금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담론은 우리 사회의 절박한 요구를 문제가 안 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아래로 쏟아내는 게 정치 아니다

    조현연 : 한국사회 보통사람들의 절실하고, 내전 수준에 이른 요구가 무엇인가?

    박상훈 : 그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핵심 문제다. 사람들이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이 말은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이는 시대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어떤 것이 있고, 정치권이 그걸 받아서 수행함으로써 역사를 발전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는 그런 언어가 아니다.

    대중들의 요구가 있는 곳에 조직이 있고, 그 조직 있는 곳에서 그 조직이 원하는 어떤 대안을 찾아내고, 정치는 그 속에서 존재하면서 그것을 집약해내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내가 이거 해줄게, 이게 시대정신이야.”라면서 위에서 아래로 쏟아내는 게 정치가 아니다.

    만약에 어떤 것이 문제라면, 당장 그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결집돼야 한다. 예컨대 자영업자들이 대형 마트 진입에 저항하고 있다면, 그들의 그 요구 자체부터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해야 되는데, 우리는 갑자기 ‘유통산업 발전’이라는 과제를 가져와서, 대중들의 살아있는 요구를 자신들이 원하는 이데올로기적 틀 안에 거꾸로 가두고 있다. 그리고 그 틀 안에서 대화를 강요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민주주의는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인데, 경제 주체들 사이의 관계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이 문제가 갑자기 ‘노동시장 발전’이라든가 하는 것으로 거꾸로 역순으로 담론화되면서 거꾸로 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사진=정민용)

    답은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지식인에게 물을 것도 아니다. 지식인이든 정당, 정치인들은 요구가 있는 곳에 가야 한다. 그들의 요구가 밑에서부터 조직되고, 거기서 대안이 구체적으로 올라와 주고, 그것을 정당은 자신에게 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른 의견을 가진 쪽과 맞서고 싸워나가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정치세력 간 차이가 안 날 수가 없다.

    지금은 그 과정이 빠져있기 때문에, 누구나 좋은 말만 하는 것이고, 결국은 언술 차원에서는 똑같아진다. 이게 바로 권위주의다. 좋은 말만 정치의 수용자들에게 해대는 것이다. 대중들은 강의 저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요구를 말하고 있는데, 정치는 강 건너편에서 경제민주화해줄게, 복지해줄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런 게 문제라고 본다.

    대안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이어야 한다. 거기엔 당연히 그런 대안이나 정책을 필요로 하는 사라들을 조직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런 것이 없으면 민주적 정책 결정 과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누가 주권을 가진 경제시민인지 말해야

    조현연 : 정당이나 정치의 역할이 대중 요구와 갈등을 재구성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대선 후보를 낸 정치 집단에서 대중적 사회적 요구이기도 한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요구를 받아 안아서 이를 재구성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담론이 노동문제나 사회 양극화 등 구체적인 수준까지 포괄시키고 연결시키지 않는 것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담론이 중심이 된 경쟁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박상훈 :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전문가나 지식인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구체적으로 보면 맨 먼저는 작명을 시작하고, 다음에는 작명에 맞게 내용 채워진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내용이란 것이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나 세력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게 발견되는 너무도 우스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마치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만들기 같은 우리 사회의 과제를 학자들 논문 쓰듯이 접근되고 있다. 예컨대, 경제를 민주화한다는 것은 경제 영역도 권위적, 권력적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주권을 가진 경제시민인지를 말해야 한다.

    경제시민이 인지되지 않고 추상화되면서, 정치영역에서 정책을 통해 이들에게 뭔가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되면, 이는 경제시민 없는 경제민주화와 같은 뜻이 된다.

    복지국가 이슈도 시민적 요구의 기초 없이 마치 정부가 예산 증액과 이런 저런 정책을 통해 방안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보편적 복지라고 얘기한다면 절반이 빠진 것일 수밖에 없다. 나중에 노동을 불러들이는 등 뭐를 해도 결국은 (정당 간의 관련 정책)내용이 비슷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거점이 사라지면서, 사회적 대중적 기반의 차이에 따른 차별화된 정책이 생산되지 못한 채, 대중적 에너지원의 바깥에서 진행되는 전문가들의 아이디어 경쟁 수준으로 민주 정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경제민주화, 복지담론 구름처럼 떠돌아

    조현연 : 프레임론을 강조하는 조지 레이코프는 사람 움직임에 하는 것 중 논리적 이성은 2%에 불과하면 감성이 98%라고 말한다. 감성은 듣는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의미한다. 박 대표가 지금 말하는 것이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선의 기본 프레임과 관련해서 이를 이해하고 공감할 만한 ‘사람’들이 빠져 있고, 허공에만 던지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으로도 들린다.

    박상훈 : 그렇다. 시민적 열정과 감성이 머무를 수 있는 집 같은 그런 공간적 기초 없이 경제민주화나 복지 담론이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 그러니 거기에 어떻게 사람들의 감성과 열정이 실릴 수 있겠나?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이 문제를 간단하게 풀 수 있는 측면 있다. 여러 사람들의 요구가 실려 있지 않고, 열정과 감성도 대변하지 못하고, 현재 정당 체제로는 전혀 ‘터치’가 되지 못하는 영역을 과감하게 말하고, 뚫고 나가는 다른 종류의 정치 세력이 이를 치고 나가면 된다.

    현대 민주주의 역사는 기존 정치가 대중이 요구를 대변하지 못할 때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 진보정치 세력이 그 동안 해온 방법도 역시 다른 정당들과 똑같은 공허한 담론 경쟁 장에서 자신들의 특별함이나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열정을 대변하고 집을 지어줘야 할 대상들을 다 상대화했다는 얘기다. 자신들의 토대로서 경제시민도 민중도 없으니 결국은 다른 정치 세력과 경쟁해봤자 똑같은 공허한 말만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같은 접근방법으로 정치개혁 불가능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사진=정민용)

    조현연 : 이번 대선에서 남북문제나 동북아 지역 안정 등 외교 안보는 물론 정치 개혁 문제도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는 것 같다.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 역시 첨예한 정치문제일 텐데, 이번 대선에서 주요하게 내세워야 될 정치 개혁 이슈는 무엇이 있다고 보나?

    박상훈 : 지금과 같은 접근 방법으로는 누구도 새로운 정치 개혁을 얘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 정치를 좋게 만든다는 것을 개혁이라면 그것을 접근하는 기존의 방법이라는 것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얘기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한국정치에서 지역이 문제니까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자는 지배적 담론이 한 시대를 풍미한 적이 있다. 또 하나는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돈 문제와 부패가 너무 심하니까 이를 막기 위해 선거운동 시간을 줄이고, 지구당을 폐지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 여론조사를 활용하면 돈 문제도 해결된다는 식의 해법이 나왔었다.

    요즘 각광 받는 다른 하나는 이른바 시민정치 이론이다. 하지만 이것도 간단히 말하면 기존 정치권 바깥에 있는 시민운동 엘리트들, 즉 법률가나 전문가들이 정치권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얘기로, “정치 엘리트를 순환하자.”는 얘기다. 이들이 양심적인 정치를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이다.

    정치개혁, 정치엘리트 순환론 불과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인사이더 범위 안에서의 정치 개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틀 안에서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 지역주의 극복의 대안으로는 영호남에 기반을 둔 세력들이 어떻게 하면 의석이나 권력을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지역적으로 분배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부패 문제의 경우 대중들과 만나는 지점에서 돈과 부패 문제가 발생되므로, 대중 속이 아닌 인터넷 같은 곳으로 정치의 영역을 옮기고, 시민정치 이슈도 기존의 정치권 주변에서 이런저런 압력을 넣고나 조언, 자문을 하던 그룹이 더 많이 직접 정치 영역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초기에 포괄했던 사회의 부문, 그 안에서 권력을 재분배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기존의 정치 개혁은 여기에 국한돼서 논의가 진행됐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는 이미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다 나온 상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대중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대통령 정치인을 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담고, 이를 풀어나가는 거다. 따라서 기존 정치가 포괄하지 못했지만 넓게 포진돼 있는 아웃사이더들을 (정치 영역, 정치 과정에) 불러들이지 않고, ‘인사이더 정치’ 내부의 권력 재분배 방식으로는 새로울 것도 없으며, 정치 개혁을 이뤄낼 수도 없다.

    그 동안 진보정치에 대해 기대했던 것은, 이들이 기존 정당 체제 밖에서 머물고 있는 아웃사이더들이 사회적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정치 사회 안으로 들어와서 정치 변화의 새로운 에너지원이 될 수 있도록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지금 여든 야든, 안철수 진영이든 모두 정치개혁은 인사이더들에 의한 (그래서 인사이더들을 위한) 정치 개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진영도 자신들이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야권연대 공동정부 운운하면서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에 편승하고 있다. 진보는 자신들을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인사이더 중심의 정치 개혁을 정당화해주는 역할만 해주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정치세력 진입문턱 낮춰야

    조현연 : 현재 조건에서 아웃사이더를 불러들일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박상훈 :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제도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새 정치세력들의 진입 문턱을 낮춰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시민들의 정치적 선호와 정당 의석으로 전환되는 비례성을 높이는 일이다. 결국 비례대표 후보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정 그게 대통령 중심제와는 맞지 않는 제도라는 주장을 한다면, 결선투표제라도 도입해서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선호가 억압되지 않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무도 비례대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게 인사이더들만의 정치다. 정치적 문턱을 낮추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잘 나가는 엘리트들에게만 개인적으로 기회를 주는 정치 개혁일 뿐이다. (정치적으로 소외된) 집단이 들어갈 입구를 낮추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하나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제도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해왔던 진보정치인들이 그런 의지를 상실했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과연 그들이 다른 종류의 정치를 지향했으며, 지금도 지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그들은 ‘인사이더가 되고 싶은 열망’을 진보의 언어로 포장해온 위선자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제도 변화에 대한 노력도 없고,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도 약해진다면 누가 어떻게 정치 개혁을 하겠나.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로서는 정치 개혁의 대안을 얘기하기가 답답하다.

    진보 언어로 포장한 위선자들

    조현연 : 정치개혁과 관련해서 정치계급화된 관료의 정치에 대한 개혁은 민주주의의 원리적 측면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될 것이라고 보는가?

    박상훈 : 우선 원론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할 수밖에 없다. 맨 처음의 정치 개혁 단계라고 볼 수 있는 관료 개혁의 경우 공식적인 담론으로 된 건 아니지만 기존 관료정치 상층을 야당 인사로 바꾸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안기부를 포함한 호남 출신 관료들을 등장시켰으며, 노무현 정부 때는 흔히 말하는 거버넌스 개념을 확장시켜 비관료 출신의 등용에 적극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여러 가지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위원회에 들어가는 예산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관료 개혁을 위해 청와대의 인력과 예산도 확장했다.

    하지만 이런 두 가지 방법은 성공하지 못했다. 결과를 보면 두 정권의 집권 말기에는 대통령 본인 스스로 관료들에게 더 의존적이 됐다.

    요즘엔 박원순, 안철수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행정의 합리성이 강조되면서, 정치가 오히려 없어지는 문제가 생겼다. 행정의 그 자체 순수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정치적 욕심 없이 하겠다는 담론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입장도 결과는 유사하게 될 것이다.

    서울시처럼 정치적 요소가 약한 곳에서는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시 정도는 정치 세계로 따지면 큰 곳이 아니다. 거기는 이명박씨도, 오세훈씨도, 박원순씨도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에서 관료 세계를 다루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

    전문가 정치의 위험성

    관료 문제는 정치학의 오래된 논의 주제다. 현대 민주주의에는 세 가지의 권력 자원 공간이 있다.

    하나는 경제 권력이다. 자본주의 시장중심 사회에서 법인 기업이 중심이 된 불평등한 권력이다. 다른 하나는 행정 권력이다. (관료들이 다루는) 예산 규모로 따지면 경제 권력 못지 않다. 복지를 제외하더라도 이들이 관장하는 예산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공무원 숫자로만 따져도 수십만 명에 이른다.

    우리 사회가 점차 민주화되다 보니 이들이 단순히 민주정치 결과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모피아’처럼 스스로 자신들의 조직적 이익을 추구하게 됐다. 자신들의 이익을 포장하는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개발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불평등한 경제 권력과 위계적인 행정 권력이라는 두 개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민주정치이고 구 주체는 정치권력이다. 그런데 정치권력의 경우 힘이 약해지면서 비정치적 요소로 이것이 대체되고 있다.

    이광호 레디앙 대표와 조현연, 박상훈(사진=정민용)

    그런데 여러 가지 사회적 요구 가운데 정치가 보호해줘야 할 대상들이 빠지고 인사이더 중심의 엘리트나 전문가가 정치를 하다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행정 권력과 경제 권력을 제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다보니 말로는 검찰 개혁을 포함한 행정권력, 경제 민주화를 통해 경제권력을 제어한다고 하는데 결국 공허해지게 된다. (이해관계가 다른 주체들이 중심이 되지 않은) 정치세력 간 말의 차이가 줄어든다는 얘기는 말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니 실체 없는 개혁 담론들이 자신들의 진정성을 과시하기 위해 유통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검찰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각 정당 후보들이가 늘어놓고, 거기서 말하는 제도가 그럴 듯해도, 그걸 견제할 권력 자원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검찰 개혁의 제도적 대안을 물어오는데, 많이 물어지는 담론 상황이 되면 전문가들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대안을 찾아내라는 건 전문가 불러내자는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 우리가 경험에서 이들은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 말 그대로 ‘코딱지’만큼만 알고 나머지 분야에는 무지하기 짝이 없다. 또 시민생활과는 완전히 유리된 그들이 어떻게 국가정책을 잘 만들 수 있나? 차라리 보통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법률적 지식은 없더라도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접근과 정치적 해결책을 찾아내야 함에도 전문가를 우대하는 논리나 그런 방향에 대해서는 되짚어 봐야 한다.

    지방 모델 중심보다 전국적 큰 싸움이 필요

    조현연 : 서울시 집행하는 정책 가운데에는 박 대표가 얘기하는 아웃사이더나 보통 사람들한테 좋은 평가들을 받는 것들이 있다. 정치적 의미는 다르겠지만, 서울시의 그런 모델을 국가 영역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닌가?

    박상훈 : 난 거꾸로 생각한다. 민주정치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갈등을 줄여서, 합리적이고 유능한 행정을 제도화를 통해서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갈등과 사회적 요구를 더 많이 정치에 투입시키는 방식이다.

    물론 전자도 좋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제도적 합리성이나 행정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런 건 이미 정치 체제가 안정돼야 가능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는 정치는 사회 세력과 사회 요구와 조응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다. 사회적 요구와 갈등은 큰 데 그걸 받아 안는 정치는 아주 좁은 범위로, 비슷한 학연이나 비슷한 인생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중심이 된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갈등을 키워서 정치에 투입해야 한다. 지방정치 모델을 전국화하면 전국적으로 상층 위주의 정치를 확산시키는 꼴이 된다.

    전국적 싸움은 큰 싸움이 돼야 한다. 보통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의 요구를 정치 안으로 들여오고, 이걸 전국으로 확신시키는 게 필요하다. 괴롭지만 전국 차원의 큰 싸움을 통해 한국정치를 변화시키고 확산시키면서 이를 매개로 지방 토호세력들의 이익을 깨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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