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혁명의 이상과 시대정신,가족애
    [책소개]『어느 뜨거웠던 날들』(리타 윌리엄스-가르시아 저/ 돌베개)
        2012년 10월 13일 0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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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것은
    함께 살면서 사랑하기, 타고난 본디 자기를 해치지 않기.”

    1968년 어느 여름날, 방학을 맞이한 어린 세 자매가 7년 전에 가출한 엄마를 만나러 비행기에 오른다. 뉴욕에서 오클랜드까지 여섯 시간 반이나 날아간 끝에 만난 엄마는 할머니한테 들은 대로 쌀쌀맞기 짝이 없고,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 주지 않는다.

    게다가 엄마네 집에는 수상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눈치 빠른 첫째 델핀은 그들이 과격하기로 유명한 흑표범당(The Black Panther Party) 당원임을 이내 알아차린다.

    서먹한 동거가 계속되던 어느 날, 엄마는 흑표범당이 운영하는 여름 캠프에 아이들을 보낸다. 델핀은 텔레비전에서 떠들던 것과는 사뭇 다른 흑표범당 어른들의 열정적이면서도 온화한 모습에 안도하는 한편, 전에는 듣지 못했던 민중, 정의, 혁명 같은 말들의 의미에 대해 곱씹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들이닥쳐 엄마와 당원들을 끌고 가는데…….

    이 책 『어느 뜨거웠던 날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들끓었던 1968년을 배경으로, 자유를 찾겠다며 가족을 등진 엄마와 어린 세 딸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자 가족소설이다.

    부모의 본분을 팽개친 이기적인 엄마와 엄마 역할을 대신하려다가 애어른이 되어 버린 딸이 긴 이별 끝에 만나서 어렴풋하게나마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 이별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또한 이 작품은 흑인 민권 운동의 파란만장한 역사 중에서도 가장 뜨겁고 논쟁적인 발자취를 남긴 흑표범당의 참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린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테러를 일삼는 극좌 폭력 단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던 흑표범당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들춰내고, ‘흑인 민권 운동’, 나아가 ‘68 혁명’의 이상과 시대정신에 대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까지 매혹시킬 역작이다. 한때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으로 가슴 뜨거웠던 이들, 죄의식과 부채감을 안은 채 회색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 이도저도 아니고 그저 문학 애호가일 뿐인 이들 그 모두를 만족시킬 것이다.

    이 책의 주제를 묻는 어느 인터뷰에서 리타 윌리엄스-가르시아는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에 니키 조반니가 쓴 시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사람이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것은 함께 살면서 사랑하기, 타고난 본디 자기를 해치지 않기.” 결국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거나 늘 같은 길을 갈 수는 없을지라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서로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껴야 한다는 것, 바로 그 점일 것이다.

    2010년에 출간되어 문단과 독자 모두에게 격찬받은 이 작품은 워싱턴 포스트, 보스턴 글로브, 퍼블리셔스 위클리, 커쿠스 리뷰,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등의 숱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출간 이듬해인 2011년에는 코레타 스콧 킹 상, 뉴베리 아너상, 스콧 오델 역사 소설상, 페어런츠 초이스 금상 등을 석권했다.

    * 검은 표범들이 꿈꾸었던 세상

    이 책은 ‘5월 혁명’의 열기가 전 세계를 달구었던 1968년 어느 날의 이야기다. 미국 전역이 흑인 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의 물결로 요동치던 그때, 그리고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저격수의 총에 스러지고 반전 운동 진영의 지지를 받던 로버트 케네디마저 암살당한 지 겨우 몇 달이 지났을 무렵, 바로 그 미치도록 뜨거웠던 여름날,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 리타 윌리엄스-가르시아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열한 살 소녀 델핀을 앞세우고 믿기지 않을 만큼 격렬했던 44년 전의 역사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막내를 낳자마자 가출한 매정한 엄마를 만나기 위해 흑표범당의 본거지인 오클랜드까지 날아온 델핀과 보네타와 펀은, 흑표범당에서 운영하는 아침 급식 프로그램에 참여해 여러 인종의 아이들과 나란히 밥을 먹고, 여름 캠프에서 진보적인 가치에 대해 배우고, 대규모 민중 집회를 알리는 데 작은 힘을 보태고, 물밀듯이 몰려든 시위 군중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은질라로 다시 태어난 어머니의 시 「내가 낳은 겨레」를 낭독해 박수갈채를 받는다.

    세 자매가 좌충우돌하며 보내는 여름 한 달을 따라가노라면, 주류 언론이 폭력 집단으로 왜곡하고 한편으로는 희화화했던 흑표범당을 비로소 제대로 보게 된다.

    실은 그들이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무료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일찌감치 전인교육을 실시했다는 것,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모든 힘이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세상을 꿈꾸었다는 것, 무분별한 폭력을 일삼은 것이 아니라 공권력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인내하지만은 않겠노라 선언했을 뿐이라는 것 등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장면 장면과 에피소드들은 비록 픽션일지언정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리타 윌리엄스-가르시아는 다양한 책과 신문, 『흑표범당-인터코뮌 뉴스』 등을 폭넓게 참조해 한 시대를 눈앞에 펼쳐 보이듯 생생하게 재현한다.

    흑표범당 이야기 외에도, 보통 사람들의 일상, 그 시대 특유의 열띠면서도 낙천적인 분위기, 신구 세대의 갈등, 흑인 운동 진영과는 또 다르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히피들의 플라워 무브먼트,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문화 아이콘들―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 가수 제임스 브라운과 어리사 프랭클린, 음반 레이블 모타운, 드라마 『미션 임파서블』과 『돌고래 플리퍼』 등등, 그 시대를 보여 주는 온갖 요소들이 이야기에 절묘하게 녹아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욱 북돋운다.

    ‘작가의 말’에서 리타 윌리엄스-가르시아는 이렇게 말한다. “꼭 필요한 변화를 목격했고 그 변화의 일익을 맡았던 그때 그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예, 분명 거기에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긴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변화’가 절실한 지금, 그때 그곳의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금 이곳의 청소년들에게 세상을 움직이는 공동의 가치와 노력과 용기에 대해 귀한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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