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평화의 섬 제주를
    모순과 역설의 땅으로 만드나?
    [책소개]『강정마을 해군기지의 가짜안보』(정욱식/ 서해문집)
        2012년 10월 13일 0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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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의 위협

    2012년 3월, 구럼비 바위 기습 폭파는 거대한 국가 폭력의 상징과도 같았다. 지역 주민들의 압도적 반대, 시민단체와 국제 평화단체 및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로 ‘국가 안보’와 ‘국익’을 들고 있다.

    그중 ‘말라카 해협 해적’의 위협은 이미 사라졌다. 제주 남쪽에서 인도네시아 말라카 해협에 이르는, 한국 수출 물동량의 60% 지나가는 이 해양 수송로에 해적이 출몰한다는 것인데, 2010년 이후 해적의 활동은 거의 사라졌다.

    일본 위협론 역시 제주해군기지의 필요 이유로 중요하게 제기되지만, 실제 일본과의 마찰 가능성으로 제기되는 독도 문제는 군사 갈등이라기보다 외교 갈등의 성격이 짙다. 설사 군사 갈등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동해 함대 사령부와 부산·진해 기지가 유사시에 더욱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다. 더욱이 해군은 2015년까지 울릉도에 해군기지를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 역시 제주해군기지와 연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북한 잠수정은 대부분 1천톤 미만으로 동·서해 우회 침투가 거의 불가능하며, 평택-목포-진해-부산-동해로 이어지는 남한 해군의 함대 사령부 및 한미연합군의 탐지·추적·차단 능력을 돌파하기도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들어 크게 제기되는 것이 중국 위협론이다. 이는 중국의 동북아 영향력 확대 시도 및 이어도 관할권 문제와 맞물려 더욱 확대되고 있다.

    여기서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이어도는 영토가 아니라는 점이다. 해면 4~5m 아래 있는 암초로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 있다. 따라서 이어도 문제는 협상을 통해 외교적 해결을 해야 한다. 실제로 중국도 협상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오히려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가시화된 이후 중국의 강경발언이 나오기 시작한 점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미중 패권경쟁 시대, 격랑의 한반도

    중국의 국력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정도로 커지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중동에서 10년 전쟁을 치른 뒤, 심각한 재정적자로 군비 삭감이 불가피해진 와중에도, 2012년 1월 ‘아시아로의 귀환’을 선언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군사력을 더욱 확충해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항모 추가 배치, 미사일 전력 강화 등 공군력과 해군력의 상당 부분을 아시아 지역에 재배치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으며, 추가적인 기지와 기항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인도로 이어지는 세 가지 3자동맹을 구축해 중국에 대한 포위·봉쇄망을 강화하고 있다.

    이 중 한-미-일 동맹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데, 최근 논란이 된 바 있는 한일군사협정 문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MD 체제에 한국이 깊숙이 편입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제주해군기지의 건설은 한국이, 미국의 중국 봉쇄 전초기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제주해군기지는 한국군이 보유하지도 않은 핵추진 항공모함(CVN-65급)을 전제로 설계되었고, 설계 적용은 주한미군 해군사령관(CNFK)의 요구를 만족하는 수심으로 계획되었다”고 폭로한 바 있으며,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미군은 이 기지를 한국 정부에 통보만 하면 사용할 수 있다. 미국에게 제주해군기지는 대만과도 가깝고 오키나와기지보다 규모가 큰 매력적인 기지이다.

    실제로 미군이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하게 되거나 한국군이 이어도를 지킨다는 목적으로 초계활동에 나선다면, 중국과 군사적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 제주해군기지를 겨냥한 미사일 배치, 공군 및 해군 작전 범위에 제주도 포함, 제주도 인근 수역에서의 군사훈련 실시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으며, 이에 대응해 한미동맹도 군사적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우리와 유일한 동맹이지만, 중국이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차지하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대중 교역액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으며 대중 무역흑자는 5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남북한 간 긴장이 조성됐을 때,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한반도를 군사적 충돌의 중심지로 만들고,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 제주해군기지는 국가 안보와 국익에 있어서 심대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해군은 기항지로, 강정마을은 생명평화마을로

    결론적으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국가 안보상의 전략적인 위험과 함께, 절차적 민주성의 훼손, 천혜의 자연환경 및 마을 공동체 파괴, 건설비와 전력투자비를 합쳐 7조 원이 넘는 예산상의 부담, 해군기지 찬반 갈등 격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 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그렇다.

    하지만 제주해군기지 건설에서 얘기한 안보적 실익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안보상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제기되어온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을 수 있는 융합적 대안이 필요하다.

    그것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백지화하는 대신에, 해군이 제주항과 화순항에 확장·신설할 예정인 해경 부두를 ‘기항지’로 이용하고, 강정마을은 세계 생명평화마을로 지정하며,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취지를 살려 ‘동북아시아 평화군축 포럼’을 창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국가 안보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파국으로 치닫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윈-윈’ 해법이자 포괄안보를 구현할 수 있는 기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나올 즈음,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강정에서 서울까지 도보 대순례에 나서고 있을 것이다. ‘생명평화대행진: 우리가 하늘이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해군기지, 쌍용자동차, 용산 참사 등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나고 차별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붕괴되고 위협받는 공동체들, 파괴되는 자연을 직접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선 후보들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국민들에게 호소할 것이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라고. _ 프롤로그 중

    ※ 이 책의 인세와 수익금은 강정마을을 위한 후원금으로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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