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의 선정성이 주도하는 전선,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기고]서울시 어린이 청소년 인권조례 심의과정을 보며
    By 토리
        2012년 10월 12일 09:5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서울시 어린이 청소년 인권조례> 통과 여부가 오늘(1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결정된다. 이 조례는 지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처럼 주민발의로 성사된 것은 아니며,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약에 따라 서울시에서 준비한 것이다.

    주민발의 등 직접 밑으로부터의 운동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슈화가 덜 된 측면이 있으나, 내용상으로는 대규모 실태조사와 각계각층의 간담회 등을 통해 충실하게 짜여진 부분이 많은 조례이다.

    아직은 생소한 ‘학교 밖 어린이 청소년’의 인권이나 그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나 서울시 인권조례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었던 어린이 청소년의 인권을 처음으로 명시하게 된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슈화가 덜 되어서 무난하게 통과를 예상했던(?) 이 조례에 대해 지난번 학생인권조례와 유사하게 ‘성적 지향’과 ‘임신 출산’을 들어 반대 협박이 일어났다.

    어린이 청소년 인권조례 정책워크샵의 박원순 서울시장(사진=홍성수님 트윗)

    현재 시의회 게시판에 가보면 작년 학생인권조례와 유사하게 이 조례에 대한 원색적 반대 글이 넘쳐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을 빌미로 민주당 시의원들이 조례를 수정하거나 보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임위에서는 참석 대상 의원 19명 중 10명만이 참석하고 과반인 6명만 찬성하여 가까스로 찬성에 이를 수 있었다.

    학생인권조례나 유사한 인권조례 출발이 민주당이 아닌 만큼 이들 조례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민주당 시의원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학생인권조례로 총선 때 피해를 보았다’는 검증되지 않은 이들의 두려움과 부담이다. 특히 성적 지향과 임신 출산이 포함되어 있다는 보수단체의 협박이 종교 신도들의 표로 이어질 것 같아 두려운 듯 하다. 이러한 부담과 두려움은 앞으로도 유사하게 인권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발현될 수 있다.

    아마 이들은 학생인권조례 반대하는 반인권 세력들의 입장에 100%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다.(물론 그런 의원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꽤 많은 의원들이 비슷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위 인권 조례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성소수자 청소년, 임신 출산 청소년의 인권을 존중하고 차별하지 말자는 것에는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예민’할 수 있으니 ‘순화’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적 지향/임신 출산이 포함된 조례에 관해 늘 수정안 논란이 있는 것은 ‘성소수자 청소년의 인권’‘임신 출산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인권’이 부담스러우니 순화될 수 있다는 정치적 취사 선택을 이들이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란’이나 ‘부담’이라는 두리뭉실한 외피를 벗기면 더 ‘논란화’시키고 ‘극단화’시키는 것이 누구인지는 분명하다. 보수기독교 단체들로 통상 말해지는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 연합’ ‘바른 교육을 위한 교수 연합’, ‘동성애차별금지법반대국민연합’,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 등 명칭만 달리 해서 계속 단체를 만들어내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공동사무국장을 두고, 일부는 박근혜를 지지하는 소위 ‘애국여성들의 모임 레이디블루’라는 단체에서 같이 활동하기도 한다. ‘좌파=동성애=선정성’ ‘우파=건전한 성문화=박근혜’의 전선을 분명히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진보/좌파 세력을 동성애로, 선정성으로 덧칠하면 더욱 더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보수 세력들이다.

    ‘일반 시민의 상식’이라 포장하면서도 그야말로 정치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박근혜에게 유리하게 여겨지는 전선이다. 박근혜가 유일하게 입법 발의한 법안이 성범죄자 전자발찌 법안이었던 것을 상기해보라. 성범죄를 부각시키고 소위 극단적 ‘성윤리’를 내세우는 것이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모럴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그에 맞서야 하는 야당, 혹은 진보세력들은 얼마나 이 이슈를 정면돌파할 자세가 되어 있느냐이다.

    인권조례에 당연히 소수자 인권, 성소수자 청소년의 목소리, 임신/출산 등의 경험들을 드러나고 담겨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이다. 그러한 전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계속 보수세력의 선정성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고, 성소수자 청소년, 임신/출산 경험 청소년의 목소리는 사장된 채 조항이 정치적으로 미묘하니 수정될 수 있으니 없으니 논란만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조례가 통과된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좀더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청소년/임신 출산 청소년 인권 지지 선언을 해 주길 바란다.

    서울시에서 추진한 조례가 ‘논란’을 극복하고 통과될 수 있도록 성소수자 인권단체 및 여러 인권단체들이 발벗고 뛰었으니 그게 합당한 예의가 아닐까.

    필자소개
    LGBT 인권운동 활동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