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말 협동조합 발달했나?”
[리에쥬에서 쓰는 편지 ②] '배분 불가능한 적립금'이 개인의 이해관계를 제어
    2012년 10월 11일 02: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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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벨기에에는 추석이라는 명절은 없지만, 예쁜 보름달은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1년에 12번 떠오르는 여느 보름달 중 하나였겠지만, ‘한가위 보름달’이라는 프레임을 이미 가지고 있는 제게는 정말로 더 크게 보이고, 더 아름다운 달이었습니다.

오늘은 퀴즈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다음 이야기에 나오는 A 나라와 B 나라는 각각 어느 나라를 말하는 것일까요?

A –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과 보호를 통해 협동조합이 발달해왔습니다. 단일 협동조합의 규모로는 세계 9위 규모인 협동조합을 보유하고 있으며, 부문별 협동조합의 국제연맹 본부 2곳이 이 나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편 협동조합 금융이 전체 금융기관 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비단 협동조합 부문의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을 보아도, 사회운동에 기반한 새로운 협동조합 운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유기농산물과 친환경제품 등을 매개로하는 대안적인 지역공동체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협동조합의 경험을 바탕으로 취약계층 노동통합을 위한 대규모 정부정책이 수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B – 협동조합 간판을 붙인 매장들이 곳곳에 있지만 이용자들은 일반 슈퍼마켓의 하나로만 생각합니다. 계산할 때 보여주는 협동조합 조합원카드는 여러 대형마트 포인트 적립카드 중 하나일 뿐입니다. 매장에서는 조합원을 위한 별도의 교육과 문화프로그램도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조합원인 협동조합에서는 CEO와 일반 노동자의 임금격차도 작지 않고, 여느 기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위계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로 인해 적지 않은 수의 협동조합들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정답은? A는 한국이고, B는 이탈리아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A를 이탈리아라고 하고, B를 한국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리다고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유럽은 정말로 협동조합이 발달했는가? 이런 질문은 흔히 ‘발달했을 것이다’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한국언론에 소개된 협동조합의 사례들, 특히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의 아름다운 사례들은 유럽을 협동조합이 잘 발달되어 있고, 개별 협동조합들도 경쟁력과 민주적 운영을 병행하면서, 그리고 협동의 정신으로 가득찬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진보의 대륙’으로 소개해주었습니다.

저 또한 소개된 내용들이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똑같은 ‘협동조합이 발달했을 것이다’라는 가정 혹은 기대를 가지고 바라본다면,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례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전통적) 협동조합들은 진정한 협동조합이 아니라구요? 그런 가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한국 협동조합들이 겪는 문제와 비슷한 문제들을 유럽의 협동조합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에 대한 학술적 접근들도 비슷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협동조합에 대해 비판적인 이론들은 ‘어찌어찌 해서’ 결국 협동조합은 망하거나, 일반기업의 형태로 왜곡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를 입증하는 사례들을 열거합니다.

반대로 협동조합을 옹호하는 이론들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이 존재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일반기업들보다 ‘이러저러한’ 측면에서 더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마찬가지로 이를 증명할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는 두 접근 모두 일정 정도의 사실에 입각해있고, 자신 나름의 입장에서 출발하여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이기에 목숨걸고 서로 우길 주장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유럽에서 협동조합이 발달했는가 아닌가는, 질문을 던지는 분들의 가정과 바램이 투영된 렌즈 속에 이미 답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이 질문에 대한 제 입장을 기대하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좀 실망하셨겠군요…

저 또한 유럽은 협동조합이 발달해있고, 거기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별로 근거없는, 그러나 강한 가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대책없이 공부를 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요. 하지만 직접 유럽의 협동조합 운동에 참여하면서, 이런저런 환상이나, 오해, 편견들이 하나하나 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9명의 기계공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이몰라 지역에 위치한 기계제조 노동자협동조합 사끄미(SACMI)그룹. 9명의 지역청년 기계공들이 1919년 설립한 사끄미는 현재 전 세계에 걸쳐 4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그룹으로 성장하였다. 아래는 사끄미에서 제작된 기계제품 모델

물론 이것이 ‘알고 보니 별 것 아니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유럽 협동조합에 대한 생각의 상당 부분은 한국이라는 조건에서 만들어진 제 바램이 상당히 투영되었던 ‘제 생각’이었고, 그것들의 근거였던 많은 자료들은 대부분 협동조합의 긍정적 측면을 알리기 위해 일종의 홍보수단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좋은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 좋다는 이야기만 찾아 봤으니… 그러다 맨살을 들여다 보니,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구나’ 정도로 진정이 되었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협동조합 운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을 꼽아보라고 하면, 저는 주저없이 ‘배분불가능한 적립금(indivisible reserve)’ 개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분불가능한 적립금 개념은 유럽 협동조합 운동에서 보편적인 개념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협동조합이 양적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해있고, 민간운동으로서 잘 조직되어 있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에서 공통적으로 제도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개념입니다 (참고로 이 개념은 한국에서 12월부터 시행되는 협동조합 일반법에서 규정하는 사회적협동조합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상호협동을 통해 제3자에게 수탈당하지 않고도, 합리적인 가격을 통해 각자의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조직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공정한 수준의 가격으로 조합원들이 혜택을 보았다면 남는 돈이 없어야 하겠지만, 일상적인 거래가격은 모든 가능성을 완벽하게 고려하여 책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어림짐작으로 매겨지게 되고, 따라서 한 해의 거래가 끝난 후 돈이 남는 것은 조합원들이 일상적인 거래에서 실제 공정가격보다 더 많이 지불했거나(이용자협동조합의 경우), 덜 지불받은(노동자협동조합의 경우) 결과인 것입니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추가로 지불한(또는 덜 지불받은) 돈을 돌려줌으로서 공정가격으로 사후정산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당연히 이용한 양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추가로 지불했을(또는 덜 지불받았을) 것이기에 더 많이 돌려받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협동조합에서 연간 결산 후 남는 돈은 노동의 댓가를 착취하여 자본이 전취하는 ‘이윤’이 아니라, 산술적으로 남게 된 ‘잉여’라고 불리며, 이를 이용한 양에 따라 돌려주는 것을 협동조합 배당(불어로 ristourne)이라 부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협동조합은 개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도구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의 협동조합들은 잉여를 배당하기 이전에, 연간 결산 후 남는 돈의 일정 비율(이탈리아 30%이상, 스페인 20%이상, 프랑스 15%이상)을 협동조합 내부에 적립하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적립금은 특정한 사유로 총회의 결의를 얻어야만 사용될 수 있으며,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떠날 때도 분배받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협동조합이 문을 닫을 때 이 적립금에 해당하는 돈이 남아있으면 조합원들이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 운동이나 공익적인 활동을 위해 귀속되어야 합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이러한 내용이 정관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해당 협동조합은 공공성을 갖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적립금은 다른 유형의 협동조합들보다 노동자협동조합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협동조합들의 경우에는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이용한 대가로 이미 지불한 돈을 처분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협동조합 적립금에 대한 이해관계가 크지 않게 느껴지지만, 노동자협동조합의 경우는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보상을 유보한 형태의 돈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것’으로 여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노동자협동조합 ‘파리의 목수들(Les Charpentiers de Paris)’. 1893년에 설립된 이 협동조합에는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개념은 노동자협동조합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배분불가능한 적립금의 아이디어는 생시몽주의에서 시작되었으며, 노동자협동조합의 원형을 제시한 것으로 간주되는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기독교사회주의자 필립 뷔셰(Philippe Buchez, 1796-1865)에 의해 정리되었습니다.

뷔셰는 1831년에 한 저서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조건 개선을 위해 2가지 형태의 작업장을 제안하는데, 하나는 숙련 노동자들의 자신들의 기능을 중심으로 연합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등장하기 시작한 생산기계에 종속된 미숙련노동자들의 작업장으로 자본/노동/국가가 함께 관리하는 형태였습니다.

이 중 전자의 형태를 모델로 하여, 뷔셰의 영향력 아래 파리 금세공노동자들의 협동조합이 1834년 설립되었는데, 역사적으로 이를 최초의 노동자협동조합으로 간주합니다. 배분불가능한 적립금 개념은 이 협동조합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잉여의 20%를 적립하고 해산 시에는 누적된 적립금을 지자체에 귀속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불어로 capital social이라고도 불리는 이 적립금은 요즘 흔히 관계망이 갖는 경제적 기능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사회적 자본’이 아닌, 자본이지만 여러 사람의 노동을 통해 형성되고 특정개인에게 소유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사회적’인 자본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의 오래된 협동조합들은 현재 일하는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출자지분보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적립금이 훨씬 크기 때문에, 이들 협동조합들은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위한 협동을 넘어서서, 사회적/역사적으로 형성된 자본이 현재 일하는 노동자들의 민주적/협동적 통제를 받음으로서 발생하는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통계적으로도 프랑스 노동자협동조합들은 일반 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배분불가능한 적립금의 힘입은 바가 큽니다.

한편 배분불가능한 적립금은 단지 개별 협동조합의 경쟁력 강화라는 의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개인도 지배할 수 없는 배분불가능한 적립금이 개별 협동조합을 벗어나면 ‘사회’에 귀속되도록 제도적으로 규정함으로서, 비록 개별 협동조합이 시장에서 개별적인 민간행위자로서 작동하지만, 점점 더 증가하는 적립자본이 ‘사회’의 것임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협동조합은 ‘사회적’인 프로젝트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기회주의적인 이유로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제도에 의해 ‘사회’의 이름으로 관리될 수 있는 경제력의 성장에 기여하게 되는거죠.

대부분의 관련 법률에서는 흑자청산 시 남는 배분불가능한 적립금을 협동조합 운동이나, 국가/지자체 등 공공기관, 공익적인 목적의 활동 등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다소 추상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관련 법률에 따라, 적립금을 협동조합 운동이 관리하는 기금으로 귀속시켜서 협동조합 운동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입니다.

협동하는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이익을 일부 유보하여, 공동의, 더 나아가 사회의 자산으로 만들고, 이를 제도로서 규정함으로서 기회주의적 의도를 차단하는 것. ‘기업의 목적은 이윤창출’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렇게 작동하는 조직과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가능케 했던 사람들이 존재했었고, 또한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을 존재케 할 것이라는 점에서 보다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노동운동과 협동조합/사회적경제의 관계에 대해 몇 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엄형식
대학생시절부터 진보정당의 꿈을 갖고 지역활동에 참여하면서, 소속되었던 정치조직에서는 개량주의자로, 활동하던 지역에서는 좌파꼴통으로 몰려 늘 소수파의 위치를 고수해옴. 노동자협동조합을 바탕으로 한 대안경제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활사업에 참여하였으나,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실험에 참여함. 현재 벨기에 리에쥬 대학 사회적경제센터에서 박사과정연구원으로 있으며, 파트타임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국제노동자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연맹에서 조사통계담당으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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