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발 파리행 대륙횡단철도,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MB정권, 4대강 이어 철도 민영화 집요하게 추구
        2012년 10월 11일 10:17 오전

    Print Friendly

    막연한 꿈이 아니다. 70년 전만해도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만주를 넘어 북경으로,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 승객들이 출발시간을 기다리면서 김 서린 찻잔을 기울이던 서울역이다. 1936년 식민지 민중의 심장을 고동치게 했던 청년 손기정이 서울역에서 베를린 행 열차를 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잊었다.

    이미 70년전에 남-북-만주-북경-베를린을 연결하는 철도 존재

    부산을 출발한 특급열차 ‘히까리’를 탄 후 신징까지 가서 독립투사 안중근이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오 히로부미를 암살한 하얼빈까지 703열차를 타고 도착하면 유럽행 국제열차인 701열차가 대기하고 있다. 베를린까지 가는 3등석 열차 요금은 당시 돈 350엔으로 배삯의 1/3에 불과했다.

    일본제국주의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한국철도는 선로 마디마디, 침목 하나하나에 조선 백성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 한의 쇳 길이었다. 열차 이름도 일본어였고 운영자도 물론 일본이었다. 이 회한의 철길로 나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3등실 객차에 몸을 구부린 채 일본헌병의 눈을 피해 망국의 한을 삼키며 달렸다.

    일제시대 금강산으로 가는 관광열차 사진

    독립은 이뤘으되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다. 남과 북이 분단되고 참혹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일본이 물러간 후 비로소 철도는 우리 손으로 움직이게 됐지만 이번에는 갈라진 부모, 형제들의 찢어지는 가슴들을 안고 달려야 했다. 파란만장한 한국 근대사의 깊은 골짜기에는 이 땅의 백성들과 울고 웃으며 고락을 함께한 역사의 동반자로 철도가 있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눈부신 경제발전은 철도가 자동차 경적소리에 밀려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찬란한 경제발전의 빛에 가렸던 그늘이 드러나자 철도는 이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국토 파괴, 교통 혼잡비용,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철도가 국가의 중심 교통수단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륙철도 연결은 평화와 공존의 철도 의미

    한국 철도는 더디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갔다.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철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고, 무엇보다 남북의 대결을 끝낼 수 있는 현실적 수단으로 기적을 높이 울렸다.

    남북 철도연결이 확정되고 제일 먼저 철도 연결 부지의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됐다. 수 천 개의 눈 없는 살인무기 지뢰가 제거되고 군부대도 이전했다. 살벌하게 서로를 노리던 철조망은 평화와 소통의 새 길로 열렸다. 두 줄 선로가 남과 북을 단단하게 이었다. 철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과 북이 소통하자 주변 나라들도 움직였다. 러시아는 남북과 함께 북한 철도 개량사업으로 시베리아 철도 연결 사업에 나서겠다고 하고, 비용도 한국에 차관으로 갚아야 할 돈으로 부담하겠다고 했다. 중국은 중국횡단철도에 남북의 철도를 연결시키겠다고 했다. 당사국 철도관계자들이 만나 회담을 하고 협력을 다짐했다. 남과 북의 평화공존은 주변국을 대립에서 상호협력으로 견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부산역이나 서울역에서 파리 행 기차표를 들고 열차에 오르는 일도 불가능한 꿈은 아니게 되었다.

    남북철도연결과 중국과 러시아와의 대륙철도 연결은 수 십 년간 고립되었던 한국이 새로운 기지개를 펴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특히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보장하는 튼튼한 쇠줄로 작용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철도는 그 특성상 인접국간 상호 호환이 되지 않으면 운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특히 낙후된 북한 철도 개량사업과 만주를 넘어 중국으로 향하는 노선과 시베리아 철도로의 연결을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 남과 북이 상호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고 이것은 당사국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남-북-만주-중국-러시아-베를린-파리의 대륙철도 노선

    북한철도 개량에 한국철도와 관련 기업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신호체계개선, 선로개량, 기관차 및 객차의 보급 등 협소한 남쪽의 철도망에서 가졌던 한계를 극복하고 철도산업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출발점으로서도 의미가 그 어느 때 보다 크다. 철도가 그동안 지속된 반목과 오해를 불식시키는 기관차가가 됨은 물론이고 식민지 철도로 시작된 한국철도의 한이 비로소 풀리는 새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정권이 바뀌면서 물거품이 됐다.

    대운하를 꿈꾸던 정권은 이 땅의 혈관인 강을 파기 시작했다. 무려 22조에 이르는 건설비에 앞으로 들어갈 유지비용이 얼마가 될지 상상할 수도 없다. 4대강 사업비의 1/3만 들여도 한국철도가 만주와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토건재벌의 배를 불리는 사업의 중요성에 비하면 철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강바닥을 파내고 언저리를 콘크리트로 바르고 보를 쌓아 흐르는 강물을 썩게 만드는 사업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 댓가는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평화의 경의선 철도를 해체하고, 수익 수단으로 철도 민영화에 집착하는 MB

    뼛속까지 친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국일변도의 외교정책과 대북강경책, 중국무시 정책을 펼쳐온 결과 외교에서의 균형과 조화라는 기본을 무너지게 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대륙철도 연결협력도 도로묵이 되었다. 북한의 주요 개발 사업은 남한을 배재한 채 중국기업이 독점하는 상황이다.

    지정학적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강대국들을 인접국으로 두고 있는 한국이 지혜로우면서도 당당하게 외교정책을 펼치지 못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서민들의 몫이다.

    남과 북은 과거로 돌아가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고 매일 문산과 개성을 오가던 경의선 철도는 운행이 중단됐다. 남북철도연결구간인 경의선 승무를 담당하고 있던 철도공사 서울기관차 승무사업소의 기관사들로 이루어진 개성행 열차 담당 승조는 해체됐다. 군사분계선에 어렵게 열렸던 육중한 철문이 닫히고 선로는 두꺼운 녹으로 덮여갔다. 북의 해안포가 연평도 땅에 떨어지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고 당장이라도 전쟁이 벌어질듯 했다.

    대륙철도의 한 모습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향후 평화와 소통의 견인차 역할을 할 한국철도를 재벌들의 수익창구로 전락시키는 일이 경쟁체제란 이름으로 추진됐다. 민간자본의 선진 경영기법이란게 고작 높은 이자놀이요,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 빼먹기요, 시민들에게 요금부담 전가라는 것이 서울 지하철9호선을 비롯한 수많은 민자사업에서 보여주었음에도 말이다. 국토부는 여전히 KTX 민영화를 정권을 이어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WTO GPA(정부조달) 협상을 통해 한국철도의 모든 분야를 외국자본에 개방하는 길을 열었다. 협상과정은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진행됐다. 내용마저 뒤늦게야 밝혀졌다. 협정내용을 보면 철도시설의 건설, 설계, 엔지니어링, 감독, 운영 등 철도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렇게 개방이 완료되면 한국철도의 미래 운명은 우리의 손이 아니라 수익만이 최고의 가치인 외국의 거대자본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공공성 파괴에 앞장서는 정부를 어찌할 것인가?

    이런 일련의 작업에 선봉에 선 것은 국토해양부다. 국토해양부가 KTX민영화 추진과 더불어 줄기차게 밀어붙인 철도공사로부터의 철도 관제권 환수나 역사 및 시설 환수라는게 철도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향후 한국철도에 들어올 거대자본들에게 철도의 각 분야에 대한 자유로운 운영권을 주기위한 방편인 것이다.

    WTO GPA 협상 막판 행안부의 초기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의 강요에 추가로 도시철도부분이 개방되었다. 서울, 부산, 대전, 인천, 대구, 광주 등의 모든 지하철공사에도 적용되어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회기반시설 민자사업뿐만 아니라 공기업이 담당하고 있는 사업에도 자유로운 외국자본의 투자가 가능해져 온 나라를 민영화된 시스템으로 뒤덮는 사태가 예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WTO협정은 FTA 협정 같은 양자 협상이 아니라 다자간 협상으로 이 협정이 발효되면 WTO회원국 누구든 제한 받지 않고 한국철도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또 한미 FTA 협정에 근거해 다른 국제 무역 협상이 조약될 경우 이 기준에 따른 개방을 보장해야 한다. 선진 기술과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철도선진국들에 비하면 한국의 철도산업은 대형마트 앞의 골목길 구멍가게 꼴이나 다름없다.

    그동안의 WTO 협정과정을 지켜보면 철도 선진국들의 한국철도에 대한 전면개방요구를 번번히 거부하고 한국철도산업에 대한 보호를 해왔는데 이 정권 들어 완전하고 완벽하게 개방의 물꼬를 텄다.

    국토부의 정책담당자는 지난 5월 23일 열린 토론회에서 지역노선과 화물열차도 경쟁 입찰을 통해 민간개방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철도를 갈기갈기 찢어서 수많은 철도 사업자의 하나로 전락시키겠다는 심산이다. 국가기간철도망 운영주체로서의 지위를 무력화 시킨 결과는 손쉬운 국내외 거대자본의 진출이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국토부가 증오의 눈길로 부실과 적자의 원흉이라고 몰아붙이는 한국철도 대신에 남북철도와 대륙철도를 달리는 열차는 미국과 일본, 유럽의 자본이 운행하는 열차가 될 것이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일본의 국제열차를 타고 달렸다면 21세기엔 한국철도의 이권 쟁탈전에서 승리하는 국가의 열차를 타고 달리게 될 수 도 있다.

    서울역에서 파리행 열차를 타고 싶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앞을 내다본다면 미래를 책임질 교통수단이 무엇이고 또 대륙을 달릴 수단으로서의 철도가 갖는 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한다. 철도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이를 바탕으로한 국가와 사회 주도의 든든한 공공철도가 가져올 성과는 민영화를 통한 일부 자본의 이익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사회적 자산이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고 그 구성원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질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탐욕의 손길이 경쟁과 효율을 명분으로 시나브로 펼쳐가는 민영화의 사슬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거대자본에 팔아넘겨져 민영화된 철도의 요금과 안전을 걱정할 것인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파리 행 기차표를 살 것인지?

    필자소개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