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 있다
    책『민중의 집』 그리고 우리 동네 '마포 민중의 집'이야기
        2012년 10월 10일 10: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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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진아 마포구의원이 기고글을 보내왔다. 오랫동안 [민중의 집]저자인 정경섭씨와 활동을 같이 해왔고, 마포 민중의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한 오 의원이 [민중의 집] 책과 마포 민중의 집에 대한 얘기를 보내왔다. 이 글은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교육전문지 『오늘의 교육』2012년 9·10월호에도 같이 실렸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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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여름쯤인가. 1~2년 전부터 이탈리아 민중의 집을 입에 달고 다니며 마포에서 그런 집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이 책의 저자 정경섭은 “갈 곳이 있다”며 무작정 내 손을 이끌었다. 그를 따라 망원시장 근처 어느 골목길에 들어서자 이층집이 나타났다. 집주인에게 열쇠를 받아와 문을 따며 그는 “바로 여기가 민중의 집이 될 곳”이라고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빈곤하기 짝이 없는 내 상상력은 민중의 집이 정말 그런 ‘집’ 모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후줄근한 지역단체 사무실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진짜 집이 아닌가. 작지만 마당도 있고, 1층에는 넓은 거실과 주방도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쌩뚱맞게도 벽난로(!)까지 있었다.

    마포에 있는 노조와 단체, 개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전세금을 충당하고 그 다음부터는 오로지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리모델링이 이루어졌다. 제일 처음 한 일은 담장을 허물고 철문을 없애는 것. 그러자 동네 골목길과 민중의 집은 경계가 없어졌다.

    민중의 집에는 주인이 따로 없습니다. 너와 나, 너와 나의 이웃, 곧 우리 민중이 주인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민중이 주인인 작은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세상은 아직 아니지만 여기서는 민중이 주인인 것입니다. 아이, 어른 사이에 차이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 여유 있는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이며 서로에게 소중한 이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만나 함께 먹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책도 읽고 학습도 하고 또 즐겁게 놀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새로운 ‘희망의 거처’입니다. (민중의 집 창립 총회, 홍세화 민중의 집 공동대표의 인사말 중)

    2008년 11월 1일, 망원동 골목길에 있던 아담한 단독주택은 그렇게 민중의 집으로 재탄생됐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2010년 8월, 정경섭은 유럽 민중의 집을 직접 눈으로 보고와야겠다며 떠났다. 45일간의 일정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민중의 집을 둘러본다는 계획이었다.

    정경섭에 대한 무한신뢰를 갖고 있는 레디앙의 이광호 대표가 아니였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함께 동행하기로 한 김원정(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사실상 이 책의 공저자라고 할 수 있다)에 대한 신뢰가 보태져 지인들이 여비를 보탰다. 그런데 유럽행 비행기를 탔던 그들에게서 들려온 첫 번째 소식은 낭보가 아닌 비보였다. 첫 방문지인 스페인에 도착한지 나흘만에 가져간 짐의 대부분을 도둑을 맞았다는 것. 세상에!

    그렇게 좌충우돌 여행기가 될 뻔한 이 유럽 민중의 집 탐방기는 그로부터 무려 2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술과 이웃, 토론과 배움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책으로 나왔다. 국내에 관련 자료가 워낙 없었기에 현지에서 가져온 각종 자료와 참고서적들을 번역하는데 상당부분 시간이 할애됐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2년간 국내 진보정당들의 부침 역시 진보정당의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던 저자에게 글을 쓸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됐으리라 짐작된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 유럽 민중의 집 역사는 각 국의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유럽 민중의 집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면서 많은 지면을 진보정당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할애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 긴 역사와 각 국의 민중의 집 이야기를 이 글에서 다 담아내기도 어렵거니와 저자가 유럽 탐방에서 얻은 교훈이 향할 곳도, 독자들이 궁금해 할 곳도 결국은 지금 이곳의 민중의 집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이사를 갔지만 첫 출발할 때의 마포 민중의 집 모습

    그래서 이 글은 ‘민중의 집’이라는, 어쩌면 독자들에게 막연하게 다가올 이 공간에 대해 유럽이 아닌 ‘마포’ 민중의 집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정치’와 ‘일상’이 만나는 공간

    2004년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을 계기로 진보파들은 이제 ‘광장’이 아닌 제도권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몇몇 스타 국회의원들의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는 진보정당이 여전히 제3의 정치세력으로서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지역에서 노동조합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는 유럽 각 나라에서 100년 이상의 이어지고 있던 민중의 집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민중의 집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 운동, 노동자 운동이 결합된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탈리아의 Casa del Popolo, 포루투갈의 Casa do Povo, 독일의 Gewerkschaftshaus, 스위스의 Volkshaus, 스위스와 프랑스의 Maison du Peuple 또는 Bourse de Travail, 영국의 People′s Palace, 오스트리아의 Volksbildungshaus, 네덜란드의 Volksgebouw 등 모두 ‘민중의 집’이라고 해석되는 동일한 명칭의 공간들이 나라마다 존재했다. (18쪽)

     당시 유럽 민중의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자 민중의 일상생활과 정치·경제·사회적 활동이 복합적으로 연결되는 장소였다는 점이다. 1차적으로 민중의 집은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노동조합, 정당 등 다양한 조직이 공식·비공식 회합을 개최하는 장소였다. … 그러나 민중의 집의 기능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 자본주의와는 다른 원리로 가난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협동조합 운동은 여러 나라에서 민중의 집의 출발점이 되었고, 여기서 판매하는 값싼 빵과 와인은 노동자들의 가장 기초적인 요구를 충족시켰다. 나아가 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한 병원과 약국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스포츠 활동, 연극, 음악회,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 활동도 이루어졌다. 노동자의 사회참여를 위한 첫 단계인 문맹 퇴치 교육을 시작으로 다양한 정치교육과 직업훈련도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이처럼 민중의 집은 정치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가 노동자들의 생활 속에서 분리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18∼19쪽)

    ‘정치’와 ‘일상’이 만나는 공간. 이 보다 더 매력적인 공간이 있을까. 그동안 ‘정치적인 것’은 우리의 일상과는 괴리된, 청와대와 여의도 어디쯤에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전부터는 권위주의 정치가 물러난 자리에 ‘생활정치’란 화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정치는 우리네 일상과 분리될 수 없다. 동네 구의원으로 일하는 나에게도 정치란 거대한 ‘이념’이기 보다는 동네주민들의 ‘일상’을 바꾸는 일이다. 정치가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2010년말, 국회에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면서 국고로 지원되던 결식아동 급식비가 전액 삭감되는 사건이 있었다. 국회에서 방망이질 한번에 우리동네 아이들 밥그릇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정치가 밥 먹여주냐고? 맞다. 정치가 ‘밥’ 먹여준다.

    ‘밥’과 ‘노동’ 그리고 ‘놀이’

    내친 김에 밥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마포 민중의 집에서는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좀 별난 ‘밥상’이 차려진다. 매주 밥상을 차리는 사람도 바뀌고 당연히 메뉴도 바뀐다. 정해진 순서도 없이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다음 주의 주방장을 자처해 자신만의 메뉴를 선보인다. 어떤 날은 꽁보리 비빔밥을 쓱쓱 비벼먹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이름도 생소한 로즈마리 통삼겹구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형마트에 맞서 싸우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농성장에서 회원들이 화요일날 모여 상인들과 주먹밥을 나눠먹기도 했다. 찾아가는 ‘화요 밥상’이다.

    마포에서 민중의 집이 초기에 ‘밥상공동체’라고 불리울 정도로 이곳에서 밥을 나눠먹는 일은 중요했다. 서먹한 사이라도 밥 한 끼를 같이하고 나면 친근해지지 않던가. 밥상머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정치 경제 사회 이슈에서부터 최신 영화와 연애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했다. 민중의 집에서 밥은 일용할 양식이자 정신적 허기까지 채워주는, 밥 그 이상의 것이다.

    유럽 민중의 집이 초기에 “싼 가격에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밥을 먹으면서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중요했고, 지금도 어느 나라 민중의 집이든 1층에 식당과 바(bar)가 있는 것은 대중들의 경제적 요구와 사교의 공간으로서의 기능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밥만 먹고 사나. 밥을 위한 ‘노동’이 있어야 하고, 그 노동 뒤에는 ‘놀이’가 따라와야 한다. 민중의 집에선 밥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노동과 수많은 이들이 벌이는 놀이가 공존한다. 그리고 이때의 노동은 누군가 누군가를 고용하거나 반드시 돈으로만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적인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며 이루어지고 있다.

    재능 기부도 그러한 방식 중 하나다. 민중의 집 회원조직 중 하나인 가든호텔 노동조합은 조합원들 다수가 요리사인데, 이 조합원들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요리 교실을 열었을 때 강의료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노동과 재능의 단순한 ‘무료 제공’이 아니라 저자의 말대로 일종의 ‘품앗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무론 이들이 요리 교실을 열었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들은 강의료를 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내주었다. 우리의 노동이 늘 돈에 의해서 교환되는 세상에서 자신의 노동을 비자본주의적으로 ‘기부’한 것이다. 세탁소 가게 아저씨가 다리미질 강좌를 연다면 그것 또한 비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의 일환이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강의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던 주민은 자신의 재능을 ‘비자본주의 방식’으로 내어준다. 돈에 의해서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무엇’을 통해서 관계를 형성한다. 중국어를 잘하는 회원은 중국어 재능을 내어준다. 일본어를 잘하는 이주여성은 일본어 강좌를 열어줬다. 중국어를 ‘무료’로 배운 회원은 다른 회원들을 위해 ‘무료’로 무엇인가를 내어준다. 일종의 재능품앗이다. (356∼357쪽)

    ‘놀이’와 ‘유흥’이 없는 민중의 집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소박한 화요밥상을 물리고 나면 판소리 공연이 이어지기도 하고, 홍대 앞에서 잘 나가는 인디음악인들의 신곡발표회장이 되기도 한다. 민중의 집 앞마당(지금은 이사를 해서 슬프게도 마당이 없다)에서 열리는 ‘다정한 시장’(벼룩시장) 한쪽에서는 랩퍼들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고, 송년의 밤 행사에서는 회원들의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독립생활자들은 주말을 혼자 보내기 싫어 민중의 집에 모여서 생활경제를 공부하고, 긴긴 여름밤에는 아예 근처 성미산마을극장을 빌려 ‘맥주가 있는 영화상영’을 기획해 동네주민들과 함께 즐긴다. 자전거 좀 탄다 하는 회원들은 ‘초급 자전거 교실’이나 ‘무료 정비교실’을 열고,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들을 이끌고 한강변 라이딩에 나선다. 라틴아메리카 시민강좌를 들었던 회원들은 강좌가 끝난 뒤에 소모임을 만들어 라틴음악도 듣고, 라틴댄스를 추러 다닌다. 이들에게 민중의 집은 배움의 공간이자, 놀이의 공간, 사람냄새 나는 공간이다.

    구청장도 참여한 ‘동네단체 공동신년회’

    현재 민중의 집이 가장 비중을 두는 사업은 지역 내 크고 작은 단체들과 주민조직들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0년에 민중의 집은 마포에서는 처음으로 지역에 있는 단체들을 불러모아 ‘동네단체 공동신년회’를 열었는데, 매년 참가 단체가 늘어 올해는 40여개 단체에서 100명이 넘는 전업 활동가들이 모여 난장을 벌일 정도로 판이 커졌다(마포구청장과 구청 공무원들까지도 참여했다).

    환경단체, 여성단체, 생협 등과 함께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동체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겨울이면 함께 모여 김장담그기 행사도 한다. 우리동네 주치의 병원(마포의료생협)을 만들자고 동네 치과의사와 한의사, 주민들을 한데 모은 곳도 민중의 집이다. 최근에는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마포주민대책위’ 회의가 매주 민중의 집에서 열리고 있다.

    지역에서 진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단체와 단체를 소통시켜주고, 서로를 고양시켜줄 수 있는 일을 하는 단체. 그게 바로 민중의 집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역내 생활협동조합운동, 노동운동, 진보정치운동, 생태환경운동, 장애인운동, 여성운동, 성정치운동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상호간에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지역 활동의 비전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민중의 집의 목표다. (361쪽)

    마땅한 모임장소가 없을 때 주민들과 동네단체들이 민중의 집을 찾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오전시간 민중의 집에 모여서 소모임을 하거나 학부모 강좌를 듣는다. 노동조합에서는 조합원 총회를 열기도 하고, 사회복지단체의 자원봉사자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하며, 생협 모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주말엔 일본 평화활동가들의 도보행진 숙박 장소가 되거나 대학생들의 수련회 장소가 되기도 한다. 2010년 한해 동안만도 “67개 단체가 민중의 집 공간을 사용한 것은 모두 233차례”라고 한다. 이러한 ‘공간 나눔’을 통해 민중의 집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집이 되고 있다.

    마포에서 시작된 ‘집 만들기 운동’은 이제 중랑구와 구로구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같은 이름이지만 지역마다 특색있게 진화하고 있다. 저 멀리서 ‘농민의 집’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정치와 일상이 만나는 곳, 노동조합과 생협이 만나는 곳, 놀이와 밥이 만나는 곳, 어른과 아이가 만나는 곳, 너와 내가 만나는 곳. 그곳에 민중의 집이 있다.

    결국 민중의 집이란 공간은 누구나 올라와 원하는 것을 펼칠 수 있는 열린 무대 같은 곳이다.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시작되는 무대. 민중의집에서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은 성별, 세대, 인종, 계층 간에 간극을 넘어 서로 연결된 깊은 관계망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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