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드리는 글
[어머니 이야기①] 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어머니 아버지
    2012년 10월 09일 06: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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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어머니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네 부모님들의 삶은 이름 있는 이들의 삶 못지않게 소중하고 아름답고 역사적인 삶이다. 다만 그 기억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만 공유한다. 나의 부모님, 당신의 부모님, 누군가의 부모님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부모님의 평전일 수도, 가족들의 고난한 삶의 기록일 수도, 추상명사 민중이 아닌 구체적 민중의 얘기일 수도 있다. 93년부터 명륜동에서 ‘풀무질’이라는 작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 은종복씨의 연재글이다. 날짜는 지금 시점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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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날, 새삼스레 글을 쓰니 부끄러워요. 평소에 부모님 집에 자주 찾아뵈었으면 이렇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아버지는 날마다 내가 일하는 책방에 오시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어디 아픈 데 없으신지 살필 수 있으니.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도 뵐 수 없어 늘 죄지은 마음이에요. 아버지를 통해 어디 몸 아프신 데 없는지 물어 보고 가끔 전화 목소리로 건강을 살필 뿐이죠.

올해 아버지 나이가 여든 살. 어머니는 일흔 일곱. 그 나이면 다른 집들에선 자식이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는데 우리 집은 아직도 부모님이 자식 뒷바라지를 해 주고 있어요.

아버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10시쯤 내가 꾸리는 책방 풀무질에 나오셔서 저녁 무렵까지 일을 하다가 들어가시죠. 책방에서 달마다 아버지께 50만 원을 드리지만 그 돈은 고스란히 어머니 통장에 들어가고 한 두 해 뒤에 어려운 책방 살림을 생각해서 목돈을 만들어 돌아와요.

아버지는 책방에 오시면 어머니가 싸 주신 반찬거리를 작은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으시고 책방에서 나온 종이를 정리하죠. 그리고 낮밥을 드시기 앞서 은행에 가서 통장 정리를 하거나 출판사에 가서 책을 사오세요.

낮밥을 드시고 나선 신림동에 가서 수험서를 주로 사옵니다. 아버지는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어요. 근데 신림동 고시 서점에 가는 길은 마을버스를 한 번 타야 해서 돈이 든다고 언짢아하세요. 아니 버스 카드에 한 달에 한 번쯤 만 원을 충전하려고 내게 돈을 달라고 할 때 미안해하세요.

그리고 책방 일로 밖에 나갔다 오실 땐 손에 빈병이나 버린 상자를 주워 오지요. 등에 맨 가방에도 책이 한 짐이어서 무거운데 두 손을 그냥 놀리지 않고 뭔가 꼭 들고 오세요. 그리고 저녁 무렵, 책방에 나설 때도 등가방 한가득 버린 종이와 빈병을 넣어서 집으로 가져가시죠. 책방에서 나서면서 꼭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얘야, 일찍 들어가라!” 당신이 먼저 집에 들어 가셔서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아들들이 피곤하게 일하는 것이 안쓰러운지 꼭 ‘일찍 집에 들어가라’ 는 말을 잊지 않으시죠.

그러면 책방에서 같이 일하는 둘째 형은 일을 하다말고 뛰어가서 몇 번이고 큰 소리로 “아버님, 잘 들어가세요.” 하고 절을 해요. 난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냥 “네, 들어가세요.” 하고 짧게 한 마디 하고 말아요. 참 못 된 아들이지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아버지께 살가운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아요.

엊그제 4월 1일이 제가 책방 풀무질을 꾸린지 스무 해 되는 날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1993년 4월 1일에 풀무질 일을 시작했으니 2013년 4월 1일이 풀무질이 스무 돌 되는 날이지요. 아무튼 그렇게 오래도록 책방을 끌어 올 수 있는 것은 어머니 도움이 제일 컸어요.

내가 1993년에 책방을 하려할 때 아버지와 형들은 모두 반대했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찬성을 했고 7,0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만들어 주셨어요. 난 어머니에게 달마다 이자로 130만 원을 드렸지요. 어머니는 그 돈을 따로 통장에 모아 두셨다가 몇 해 뒤 내가 혼례를 치르고 전셋집을 마련할 때 통장채로 주셨어요. 그리고 2000년도에 둘째 형이 책방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내가 집을 살 때 보태라고 3,000만 원을 주셨지요. 그 돈은 책방에 주는 것이니 책방 풀무질은 언제나 둘째 형과 함께 꾸려가라는 말씀을 하시며. 그 뒤로도 책방 살림이 어려우면 목돈을 주셨어요.

어머니는 새벽 3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시죠. 가볍게 몸을 푸는 운동을 하시고 새벽길을 나서서 길에 있는 버린 종이나 빈병, 고철 따위를 주우세요.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 한 달에 70만 원 가까이 벌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만두셨지만 낮엔 동대문구청에서 주는 일자리를 찾아서 어린이집이나 관공서 건물에 가서 밥도 해 주고 계단과 화장실 청소도 하면서 돈을 벌었지요. 그리고 저녁 해질 무렵엔 어머니 사시는 동네에 오는 오이, 쪽파, 배추, 무 같은 푸성귀를 파는 트럭 장수에게 차를 댈 수 있는 곳을 맡아 주면서 팔다 남은 푸성귀를 거저 얻어 오거나 아주 싼 값에 사지요. 트럭 장사꾼이 먹을거리를 배달 가면 장사도 대신 해 주시고. 아무튼 그렇게 받은 먹을거리를 밤에 갖은 양념으로 요리를 해서 다음 날 아버지 편에 책방으로 보내 주시죠.

난 낮밥을 먹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먹을거리를 보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이런 반찬을 어떻게 먹을까 싶어 눈시울이 뜨거워져요.

부모님이 사시는 곳 옥상에는 큰 화분이 오십 개가 넘어요. 그곳에서 언제나 싱싱하고 농약을 쓰지 않은 유기농 남새가 해마다 쑥쑥 자라지요. 물론 그곳에서 난 고추, 상추, 오이, 가지, 대파, 쪽파, 치커리, 부추는 어머니 손맛이 들어가서 책방 반찬이 되지요.

옥상에는 큰 거름통이 세 개 있어요. 하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담는 통이고, 또 하나는 설거지 물통이지요. 어머니는 설거지를 할 때 웬만하면 세제를 쓰지 않아요. 음식찌꺼기가 남아 있는 물을 담아다가 옥상에 있는 거름통에 모아 두지요.

다른 통 하나엔 한약재 찌꺼기가 있어요. 동네 약국에서 약을 달이고 버린 한약 찌꺼기를 모아다가 거름으로 쓰세요. 그 한약재를 바로 쓰면 독이 될 수 있으니 몇 달을 삭혔다가 통 밑에 있는 것부터 차례차례 꺼내서 거름으로 쓰지요. 몇 해 앞서서는 어머니는 당신 오줌도 모아두었다가 거름으로 쓰셨는데 그 일은 너무 번거로워 그만두셨어요. 그래도 안타까워해요. 당신 오줌이 거름이 되면 먹을거리가 더 잘 자랄 텐데 하시지요.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동네 편의점에서 유통기간이 지나서 버리려는 김밥이나 빵을 집에 가져 와서 드시고 있어요. 책방에 오는 반찬은 아버지가 가져 오시지만 밥은 내가 싸왔어요. 근데 서 너 해 전부턴 아버지가 드시는 밥은 따로 싸오시죠. 바로 편의점에서 버리려고 하는 김밥에서 나온 밥이에요. 난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고 죄스러워져요. 이렇게까지 아껴서 아들 책방을 도와주는데 난 너무 헤프게 쓰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참 부끄러운 일이지요. 내 나이가 마흔 여덟인데 아직도 부모님 도움으로 책방을 꾸리고 있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늘 말씀하시죠. “난, 책방에 나오는 게 좋다. 내가 너희들한테 잔소리 자꾸 해서 미안하지만. 나한테 월급 안 줘도 좋다. 이렇게 책방에 날마다 나와서 책을 사러 가면서 걷고 사람들 만나는 게 건강에도 좋다.”

어머니는 또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제 엄마가 힘들다. 너희들한테 더 많이 밀어 주고 싶은데 이젠 엄마도 힘드네. 그래도 엄마가 죽을 때까지 너희들 뒷바라지 할 것이니, 엄마가 살아있을 때 열심히 살아라. 엄마가 너희가 끄는 수레를 뒤에서 밀어 주고 앞에서 당겨줄 때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가라.”

어머니는 당신이 죽어서 지하에 묻혀도 아들을 도와주신다고 해요. 참 부끄러워요. 오늘은 어버이날. 이 글을 쓰는데 부모님이 사시는 모습을 보니 부끄럽고 고맙고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네요.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게요. 언젠가 어머니가 말씀하셨죠. 네 아버지 어머니 건강은 챙길 것 없다. 우리들은 잘 알아서 하니, 너희들 식구들 건강 꼭 챙기고 부부끼리 싸우지 말고 잘 지내는 것이 우리들이 제일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게 하는 것이다. 네, 알겠어요. 어머니 아버지, 우리 싸우지 않고 잘 살게요.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가 책방에 나오셔야 책방 문 안 닫아요. 부디 몸 튼튼하셔서 오래도록 책방 일 도와주세요. 염치없지만 부탁 드려요.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언제나 셋째 아들이 효도를 할 지 기약할 수 없지만 마음만큼은 늘 효자가 되고 싶네요.

2012년 5월 6일 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는 날 아침에 책방 풀무질 셋째 아들 은종복 씀.

필자소개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93년부터 일하고 있다. 두가지 꿈을 꾸며 산다.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과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을 맞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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