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 위기의 출발
그리스의 끝나지 않는 비극
[분석] 불투명한 유로존의 미래 ①
    2012년 05월 24일 04: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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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리스에서 최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동안 트로이카의 긴축 조치를 수용해왔던 신민주당과 범사회주의 운동당이 전체 의석수 가운데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고 다음 달 중순 다시 한번 선거를 치뤄 정부를 구성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와 더불어,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당 대표이자 현 대통령인 사르코지를 누르고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가 당선되었다. 올랑드 대통령 당선자는 그동안 독일과 프랑스의 보수당 정부가 남부 유럽 국가들에게 강요했던 긴축 위주의 구조 개혁 노선을 비판해 왔고, 유로존의 재정 통합 방안과 관련해서도 경제 성장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와 같은 정치정체의 변화가 있자 그리스를 포함한 남부 유럽 국가들이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고 조만간 유로존에서 이탈할 것이며, 그 결과 유로존 전체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국제 금융 시장에 팽배해지고 있다.

레디앙은 (1) 그리스의 재정 위기에서 시작된 유로존의 위기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최근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2) 이 과정에서 유로존의 헤게모니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의 보수당 정부가 강요한 긴축 정책이 어떻게 사태를 악화시켰고, (3) 재정 정책과 금융 정책의 영역에서 유로존의 바람직한 개혁 방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4) 그리스를 포함한 남부 유럽 국가들이 무질서하게 유로존에서 이탈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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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두되는 그리스 발 재정위기

그리스의 비극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은 채 유로존은 물론 세계 경제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리스는 자국의 재정 문제가 불거진 2009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긴축 및 구조 개혁 조치를 연이어 단행해 왔고, 그 댓가로 올해 1월 유럽엽합과 유럽 중앙은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 일명 트로이카로부터 €130 bn에 달하는 세 번째 – 2010년 5월 초 1차 구제 금융 €110bn과  2011년 7월 2차 €109 bn에 이어 세번째 – 긴급 구제 금융을 지원받는 데 합의했다.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그리스의 시위대

더 나아가 올해 3월에는 90% 이상의 그리스 정부 발행 국채 민간 보유자들이 보유 채권 액면가의 50%를 손실 처리하는 데 합의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 정부가 지금까지 진 빚의 50%를 탕감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또 다시 그리스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점쳐지고, 이번에는 급기야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련 기사 “파국은 어떤 모습으로 오고 있나?”와 “휘청거리는 유로존 어디로 가나?” 를 참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스는 과연 유로존 채권국 정부들과 구제 금융 조건에 대해 다시 협상을 벌일 수 있을까? 아니면 비관주의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불가피하게 유로존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가?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쫓겨난다면 그리스와 유로존의 남은 나라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그것은 세계 경제 전체 그리고 동아시아와 한국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약진과 연립정부 구성 실패

그리스 재정 위기가 다시 거론되는 직접적인 배경 가운데 하나는 얼마 전 있었던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다. 지난 5월 7일에 있었던 그리스 국회의원 선거 결과 신민주당 (New Democracy)과 범 사회주의 운동 (Panhellenic Socialist Movement; Pasok) 진영은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했다. 이 두 개의 정당은, 2011년 12월 초 게오르게 파판드리우 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다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과도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각종 구제 금융 지원 조건들을 집행해 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 신민주당과 범 사회주의 운동이 전체 국회의원 의석 300석 가운데 108석과 41석을 얻는 데 그쳐 산술적인 의미 이상의 안정된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범 사회주의 운동 진영을 제치고 제2의 정당으로 발돋움한 급진좌파연합 (Coalition of Radical Left; 그리스어로 시리자Syriza)은 전체 유효 득표수의 16.78%를 얻어 52석을 자치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스 정당 분포 및 최근 선거 결과

정당명

신민주당 범사회주의 운동 시리자 독립그리스당 공산당 황금빛 여명 (Golden Dawn)
당수 (취임일) 안토니스 사마라스 (2009년 11월 30일 이후) 에반젤로스 베니젤로스 (2012년 3월 18일 이후) 알렉시스 치프라스 (2008년 2월 9일 이후) 파노스 카메노스 (2012년 4월 3일 이후) 알레카 파파리가 (1991년 2월 27일 이후) 니콜라스 미할로리아코스 (알려진 바 없음)
2009년 11월 총선 의석수 (총유효득표율) 91 석 (33.47%) 160석 (43.92%) 13석 (4.6%) 신생정당 2012년 4월 3일 21석 (7.64%) 0석 (0.29%)
2012년 5월 총선 의석수 (총유효득표율) 108석 (18.85%) 41석 (13.18%) 52석 (16.78%) 33석 (10.60%) 26석 (8.48%) 21석 (6.97%)
의석수 (총유효득표율) 변동 17석 상승 (14.62% 하락) 119석 하락 (30.74% 하락) 39석 상승 (12.18% 상승) 신생정당 5석 상승 (0.94% 상승) 21석 상승 (6.68% 상승)

출처: 위키피디아 문서, 그리스 국회의원 선거, 2012년 5월,  (http://en.wikipedia.org/wiki/Greek_legislative_election,_May_2012)

 

과거 그리스 공산당과 범 사회주의 운동 진영에서 갈라져 나온 시리자는 지금까지 트로이카가 강요해왔던 “야만적인” 긴축 조치들을 반대하면서 구제 금융 조건에 관해 재협상을 벌이겠다고 선거 운동을 벌여왔다.  그리고 실제로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직후 시리자의 대표인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는 (1) 그리스 민간 은행들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실시하고, (2) 종래의 긴축 재정 조치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구제 금융 지원 조건을 재협상하겠다고 공언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좌파정당 시리자의 대표 치프라스

더 나아가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치프라스는 그리스인들의 진정한 요구를 단 한번도 경청하지 않은 채 지난 몇 년간 관철된 긴축 조치들 때문에 그리스 사회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었고 그동안 그리스 사회를 지탱해 오던 모든 “사회적 응집력“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로이카가 강요해온 양해 각서가 그리스 사회를 “지옥“으로 밀어넣었으며, “생사람들이 죽어가는 위기“(humanitarian crisis)를 야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가디언의 치프라스와의 2012년 5월 21일자 인터뷰에서 인용).

선거 이후 시리자는 신민주당과 범 사회주의 운동 진영과 함께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그리스 대통령의 주관 아래 연립정부 구성에 관한 일련의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채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삼자간의 입장이 확연이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고, 현재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다음 달 중순 다시 한번 국회의원 선거를 치루게 된 상태다.

이 때문에 그동안 그리스 연립정부가 구조 개혁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매일같이 점검해 왔던 트로이카 실사단은 새로운 정부 지도부가 구성될 때까지 활동을 사실상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번 선거를 통해서 드러난 트로이카의 긴축 조치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저항과 반감이 향후 선거에서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구조 개혁 조치의 이행을 전제 조건으로 삼아 지급하기로 했던 3차 구제 금융 잔여금 지급 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되게 되었다.

프랑스 사회당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의 대통령 당선

 정치적인 영역에서 유로존의 장래에 관한 불확실성을 높인 또 다른 요인이 있다. 그것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함께 지금까지 진행된 긴축 위주의 구조 개혁 조치를 그리스와 남유럽 국가들에게 강요해온 프랑스에서 사르코지가 연임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그 대신 공교롭게도 그리스 국회의원 선거와 거의 동시에 벌어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프랑스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Francios Hollande) 후보가 사르코지를 누르고 사회당 후보로서는 17년 만에 처음으로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올랑드 대통령 당선자는 2011년 말 독일과 프랑스가 중심이 되어 마련한 바 있는 유럽연합 차원의 새로운 재정 협약 (fiscal union)이 유럽의 경제 성장에 관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확대 재정 정책과 적극적 산업 정책 등을 포함한 정부의 정책 집행 능력을 재정 안정(fiscal consolidation)이라는 미명하에 과도하게 긴박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올랑드 대통령 당선자의 이와 같은 발언이 선거 운동 국면에서 사르코지 후보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유럽연합이 처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진정성 있는 비전을 제시한 것인지 여부는 조만간 밝혀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올랑드 대통령 당선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중도 보수당 지배 하에 놓여 있던 독일과 프랑스가 지난 몇년 동안 추진해 왔던 긴축 위주의 경제 정책이 어떤 식으로건 변화될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가설과 추측은 그리스 내에서 벌어진 정치정세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과 올랑드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관련 주요 공약 

중소기업 지원 중소기업의 투자를 지원하는 공적 은행 설립,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중기업 30%, 소기업 15% 세제 감면 혜택)
금융 시스템 유럽 고유의 신용평가기관 설립, 일반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 유럽연합 차원에서 논의되는 금융거래세 지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공적 은행 설립 지원
조세 정책 연간 1,000,000 유로 이상의 고소득자들에 대한 75% 소득세 부과, 소득세와 연기금 기여분(General Social Contribution; GSC)의 통폐합, 자본이득과 보너스에 대해 누진적으로 일괄적인 세율을 적용함
고용 정책 동일 직종 남녀 임금 차별 시정, 대량 해고 제한, 60,000여명의 숙련된 교사를 채용하고 교육의 수월성을 증대 (new education pact),청년층 실업을 줄이기 위해 공공 부문 일자리 300,000개 창출
주거 및 연금 정책 연간 500,000채 이상의 장기 임대 용 공공 주택 건설, 연기금을 41년 이상 납부한 사람들의 경우 퇴직 연한을 60세로 회복
사회 정책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LGBT) 커플의 자녀 입양을 지원
대유럽정책 프랑스-독일간의 파트너십 강화, 교통, 에너지 또는 환경 분야의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프랑스-독일 공동의 산업 기금 조성,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한 유럽연합 차원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
대외군사정책 아프간 주둔 프랑스 군인 연내 (2012) 완전 철수
출처: 프랑스 사회당 홈페이지(http://www.parti-socialiste.fr/)

 

 

필자소개
신희영
뉴욕 뉴스쿨 대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Wright State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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