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의된 정책은 당선 후 우선 집행"
    [인터뷰-정태인 원장③] "진보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2012년 10월 09일 05: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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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전의 인터뷰 게재 내용을 보려면 [인터뷰-정태인 원장①],  [인터뷰-정태인 원장②]를 참고하세요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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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연합정부론

    이광호 : 오건호 글로벌 경제연구소 연구실장도 곧 펴낼 복지국가 관련 책에서 복지정책은 안철수 후보가 가장 낫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정태인 : 안철수의 책에는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에 입각한 재벌 개혁, 보편증세와 보편복지, 이게 가장 큰 줄기다. 문제와 해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딱히 외부의 어떤 사람이 이 사람한테 그걸 집어넣어줬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여러 사람 의견이야 들었겠지만 짜깁기가 아닌 자신만의 굵은 정책 선이 있다. 적어도 책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이광호 : 시민사회가 대선에 한 주체로 적극 개입하고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정 원장은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관철하기 위한 시민들의 모임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평소에 주장하는 ‘시민연합정부’론의 역할과 주체 형성을 말하는 것일 텐데, 구체적 내용을 설명해 달라.

    정태인 : 2007년이나 지난 총선에서 말했던 단일화는 어떻게 단일화를 할 것인가를 주로 얘기했다. 정책 얘기도 했지만 합의된 문건을 신뢰와 효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민들도 우리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당과 시민사회 원로들이 만나서 만든 것이었을 뿐이다.

    시민적 주체 형성과 관련돼서는 최근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시민연대’라는 조직이 발족됐으며, 복지 분야도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 그 동안 활동해온 단체들이 연결돼서 시민운동 연합체를 만들었다.

    지난 9월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출범식 모습(사진=새사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시민연대’는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변 등 30개 단체가 참여했으며, 지난 달 12일 민주당과 10대 공동 추진과제에 합의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원·하청 거래 개선을 위한 하도급법 개정 △정리해고 근절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 △재벌 대기업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재벌 대기업 은행 지배 근절을 위한 금산 분리 강화 등이다)

    연합정치의 진보

    협동조합처럼 크게 하나로 뭉치기에는 어렵겠지만, 주요 정책에 대해서 이들이 스스로 책임지며, 백화점식 나열이 아니라 핵심 정책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 정당과 합의를 해내야 한다. 그럴 경우 캠프의 인선 기준도 어느 정도 나올 것이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후보가 단일화 돼야 시민사회에서도 우리가 만든 단일후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합의된 정책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우선적으로 집행해야 되는 정책이 돼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개혁에 강하게 반발할 것이 뻔한 조중동과 재벌 3각 동맹의 압력으로 좌절 위험에 빠진 정부를 시민사회가 지켜줄 수 있는 세력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막연하지만 연합정치가 한 단계 진보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진보정치가 제대로 돼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 진보정당에서 제시하는 그림이 시민단체 등에 매개돼서 합의된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면 다른 형태의 조직은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보정치가 자멸하는 상황이라서…

    안철수 현상은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전 세계에서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존의 정당이 구조화, 관성화되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실제로는 직접 민주주의 요소들이 모습들이 제도화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직접 민주주의는 참여예산제나 책임자 소환 정도였는데, 이번 경우는 정책 기조를 기준으로 대통령을 선택하고, 그 기조를 관철시키기 위한 내각 인선에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참여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 이는 정당이 약해진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다. 서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넘어서는 모델일 수도 있다.

    최장집 선생님이나 박상훈 박사가 정당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정당이 아닌 것은 모두 잘못인 것처럼 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진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서 말을 잘 못하겠다.

    대선 후보내면 진보 더 고립될 수도

    이광호 : 진보정당은 97년부터 후보를 내면서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알려왔다. 김대중, 노무현 후보가 나올 때도 이 두 후보의 지지자들이 온갖 비난과 저주를 퍼부어도 후보를 내고 끝까지 ‘완주’를 했다. 올해는 진보정당이 내파돼 상처의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게 됐다. 진보정치 진영이 이번 대선에서 후보 및 연합 전술을 어떻게 가져가야 될 것이라고 보나?

    정태인 : 방법이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는 백의종군해야 한다고 본다. 아까 얘기한 시대정신이라는 것들이 관철되게 하는데 진보정치세력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 개인적인 정서로는 진보진영에서 대선 후보를 내는 것은 맞지 않는다. 오버다. 대중으로부터 냉소를 넘어 욕을 얻어먹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과연 지금의 진보를 회생시킬 길이냐 물어본다면 회의적이다. 진보는 지금 동맥경화다. 특히 그 중에서도 경직된 부분들만이 대선 국면에서 더 움직일 것이다. 진보의 외연확대보다는 고립의 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정희 쪽에서 몇 %를 득표해서, 그것을 지렛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그러면 정말 고립돼서 나머지 진보까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진보 시즌2는 내가 즉흥적인 성격도 없지 않았지만, 80년대에 만들어진 운동은 이후 계속 말로는 여러 번 쇄신도 하고 혁신도 했지만, 당시의 정파적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힘까지 빠져서 자멸한 것이다.

    확실한 건 훨씬 더 젊은 사람들, 과거 기억에 붙잡혀 있지 않은 젊은 이들이 자기들의 생각들을 주눅들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게 최소한이다. 선배들이라는 사람들이 옛날 얘기나 많이 하고, 줄줄이 계보 이야기를 풀어놓기 일쑤다. 젊은 사람들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옆에서 선배라는 사람들의 얼굴만 쳐다본다.

    새사연에서 20대 후반 30대 초반 대학원생들을 모아서 정책 훈련을 시키기도 하는데,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젊은 감각으로 정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을 한다. 요즘 내가 많이 만나는 친구들은 청년유니온, 청년연대은행 같은 곳에서 일하는 후배들이다.

    80년대 시작된 운동이 지금처럼 나간다면, 이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만, 앞으로도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청년 조직, 대학에 조직을 만들어서 폐쇄적 원칙을 주입시키고, 그러면 그 원칙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 또래 애들과 소통도 못하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도 못하게 된다.

    한미FTA 대선 이슈 부상 가능성 없어

    이광호 : 본인이 진보 시즌2를 주장했고, 분당 전 통합진보당 정책위 의장이 내정되기도 한 걸로 알고 있다. ‘새 진보정당 추진회의’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해오면 어떻게 할 건가?

    정태인 : 오지도 않은 부탁을 가지고 생각을 할 일이 아니다. 만약에 부탁을 해온다면 비교적 빠른 시간에 정책을 생산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요청일 가능성은 있다. 새사연은 정책을 만드는 집단이다. 공식 직함을 갖거나, 당원들의 뜻을 수렴해서 만드는 일은 하지 않을 거다. 당 쪽에서 기조를 잡는다면 우리 연구원에서 거기에 맞는 정책을 제공해줄 수는 있을 것으로 본다.

    이광호 : 정태인은 한미FTA 반대투쟁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반대는 했지만 협정문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공식 발효가 된 이후에는 대응책이 그 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입장인 걸로 알고 있다. 한미FTA의 부정적 결과들을 드러내고, 국민들이 폐기하는 데 동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인 것 같다.

    우석훈도 최근 펴낸 『FTA 한 스푼』이라는 책에서 비슷한 주장을 말했다. 1년 정도 시행 과정을 거치면서 이에 대한 평가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적으로 결정하자는 입장인 것 같다. 한미FTA가 이번 대선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나?

    정태인 : 그럴 가능성은 없다. 민주통합당은 협상 개시, 체결한 당이고, 새누리당은 비준안을 통과시킨 당이다. 양쪽에서 쟁점을 만들지 않을 것으로 본다. 2007년 선거에도 그랬고 아무도 쟁점으로 만들지 않으려 할 거다.

    그러나 어느 당이든 복지 문제를 내놓고 있는데, 이 문제는 한미FTA와 부딪치게 돼 있다. 그럼에도 두 당은 문제를 삼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이것을 이슈화한다면 비교적 여기에서 자유로운 안철수 후보 쪽에서 할 가능성이 있는데, 현재 캠프 인선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한미FTA와는 좀 다르지만 이미 협상이 시작된 한중FTA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된다면, 대선 캠프나 후보가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 정책과 남북 관계 구상도 함께 드러날 수는 있을 것이다.

    행동경제학과 진보

    이광호 : 가제목이 <이타적 경제학의 출현>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담 스미스 이후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새로운 경제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책으로 알고 있다. 행동경제학과 4박자 경제론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책으로 알려졌는데 어떤 내용인지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정태인 : 행동경제학 자체가 새로운 경제학 체계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곳은 주류 경제학을 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경우 두 개를 한꺼번에 해야 하는 경우였다. 대학원을 가기 위해서는 주류 경제학을 해야 했지만, 얘기를 하려면 마르크스 경제학도 모르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행동경제학이 기존 주류 경제학의 기본 가정을 부정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에서는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라는 책을 쓴 최정규 교수의 스승인 새무얼 보울스가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인데, 최근에는 그런 쪽 생각을 잊어버린 것 같다. 행동경제학이 방법론적으로 개인주의적이라서 여기에 구조적, 역사적 사고와 연결시키고 통합시키는 것을 고민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새무얼 보울스가 과거 주장한 민주적 기업론도 행동경제학과 직접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텐데, 과거 자신이 운동과 진보 쪽의 입장에서 만든 그런 이론과 현재의 행동경제학 기초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점점 생물학 등 추상적으로 가고 있다. 이 이론이 최첨단 이론이기 때문에 첨단에서 노는 거에 재미를 붙였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마 행동경제학과 진보적 이론을 연결시키는 것은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나는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과거 행동경제학적 기초가 없을 때 이해당사자론에 입각한 재벌개혁 논리도 행동경제학이나 민주적 기업론에서 나오는 얘기들과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거시경제학까지 갈 수 있다. 행동경제학이 최신 이론이라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용되고 있는데, 이게 체계화되려면 시간이 아주 오리 걸릴 것이며, 주류 경제학에 흡수될 가능성도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중요 명제들은 대안적 사회의 건설을 생각할 때 분명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성과 이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어떻게 거기에 반영돼야 할 것인지는 나의 오래 된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이 책에서 많이 반영됐다.

    나는 학문을 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 아니라 본격적이고 치밀한 논리로 쓰지는 못했지만, 정책적 실용적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발전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책을 썼다.

    행동경제학과 협동조합 운동

    또 하나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고 상호적이고 협조적이기도 하다는) 그런 얘기는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거나 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라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동하자는 것이 기본인데, 자본주의 300년 동안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만 너무 치우쳐왔으며, 그게 지금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인간은 원래 협동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붐’처럼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협동조합 운동은 또 우리나라 거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도 옳고,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올바른 거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독자들 가운데 협동조합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운동의 원리를 인식하고 자신감을 갖고 실천하면서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푸는 데 이 책에서 제시된 내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덜 익은 책을 내놓는 사람으로서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출판사에 진 빚을 갚는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다.

    이광호 : 마지막 질문이다. 대선까지 금주 중으로 알고 있다. 언제, 왜 금주를 시작했는지, 대선 결과와 금주는 어떤 함수관계인가?

    정태인 : 지난 총선 때까지 술을 많이 마신 편이다. 총선에서 허망하게 졌다. 왜 졌는지 따져보면 복잡하다. 내 자신도 되돌아보면서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술꾼들이 평소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처럼. 그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일찍 투표하고 나서 점심을 먹으면서 ‘음주’를 시작하 예정이다. 장소는 페이스북에 공개할 것이고, 원하는 사람들은 와서 같이 마시면 되다. 정권이 교체가 되면 2박3일 정도는 마실 거다.(웃음) 만약에 정권 교체에 실패하면 그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만 마실 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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