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이후 녹색과 적색의 과제는?
    [에정 칼럼] ‘탈핵’과 ‘노동’ 중심의 정치세력 연석회의를 고민하자
        2012년 10월 09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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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는 가슴 뛰는 세 번의 선거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함께 꾸는 꿈’은 이뤄진다는 것과 ‘진정성’을 갖고 임할 때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어떤’ 꿈을 ‘누구’와 함께 꾸느냐의 문제가 중요하고, 아울러 선거 과정에서 그 진정성의 공명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하는지, 활동의 ‘명분’은 무엇인지를 스스로와 지지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실리는 그러한 활동의 결과이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길 잃은 진보정치

    첫 번째 선거의 경험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로 있던 지난 2000년 낙선운동이었다. 낙선운동 이전 시민단체들은 공명선거 감시운동이나 정책선거 캠페인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법안과 예산을 실질적으로 다루는 국회 소위원회는 회의록을 작성조차 하지 않았고, 모니터를 위한 시민단체의 국감장 방청조차 허가하지 않는 후진 한국정치의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공명선거 감시를 넘어 낡은 정치인들을 퇴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민단체들의 문제의식의 공유가 있었고, 이것이 총선시민연대 발족으로 이어졌다.

    ‘구태 정치인 퇴출’이 명분이었고, 총선시민연대가 선정한 86명의 낙천․낙선 대상자들 중 59명이 실제 선거과정에서 낙천하거나 낙선했다. 그러나 낙선운동은 딱 거기까지였다. 새로 구성된 16대 국회에서 부정부패는 여전했고, 민생은 외면 받았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구태 정치인을 쫒아내는 것만으로 정치개혁을 이룰 수 없음은 자명했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낙선운동을 통해 얻은 교훈은 ‘시민 참여’의 힘이었고, 그 힘을 모아내는 출발은 분명한 명분과 새 시대의 가치라는 점이었다.

    현재 진보정당은 셋으로 분화됐고, 각각 대선후보를 낼 계획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예전의 감동이 없다. 이들 세 정당에는 적지 않은 시간 함께 진보정당운동을 해 온 동료들이 여전히 많이 있지만, 작금의 진보정당은 명분도, 실리도 잃고 안개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이들 세 정당이 싸워서 헤어졌다는 것 외에 무엇이 다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왜 지지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과정을 얻으려는 것이 무엇일지 대중에게 명쾌한 답을 내 놓고 있지 못하고 있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정과 해학이 필요한 진보의 재구성

    두 번째 선거경험은 민주노동당 기획부장으로 참여한 2004년 총선이었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표방한 민주노동당의 선거는 ‘A는 괜찮고 B는 나쁘다’는 식의 정보제공을 넘어, 이제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정치세력화가 필요함을 역설했고, 유권자들은 지역구 의원 2명과 비례대표 의원 8명을 뽑아 주었다. 마침내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진보정치의 오랜 숙원이 풀렸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현실은 냉혹했다. 전체 299명의 국회의원 중 10석의 미니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원하는 상임위에 배치될 수도, 의사일정 결정에 참여할 수도, 민생법안을 상정시킬 힘도 없었다.

    또한 진보정당 내부의 정파갈등과 패권주의는 당력을 심각하게 분열시켰고, 이러한 분열과 갈등은 유권자들에게 혐오감을 안겼다. 진보정당에서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정치세력화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가치는 물론이고, 시대와 소통하는 능력과 지역과 지지기반의 뿌리가 견고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돌이켜 보건데, 원내진출 당시 머리와 어깨에 너무 힘을 주었다는 생각이다. 최초의 원내진출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 과도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은 대중과의 소통과 자정능력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었다. 내가 혹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치와 최대치를 간과한 것은 아닌지, 작은 승리에 도취해 기득권의 방식으로 과정보다는 성과 중심으로 사고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에 인색했던 것이 진보진영 전체의 체질을 약화시킨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본다.

    긴 호흡을 위해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우정과 해학일 수 있다. 진보정당 당원들은 그 소속이 다르더라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지 않을까? 그리고 차이를 무시할 순 없더라도, 이를 감정적으로 극대화하는 상황은 무익하지 않을까?

    현재와 미래세대를 연결하는 정당운동

    세 번째 선거경험은 녹색당과 함께한 지난 4월의 19대 총선이었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충격에 각성한 풀뿌리 시민운동가들, 녹색의 가치에 주목한 신좌파 활동가들, 환경과 생명운동을 해온 활동가들, 그리고 녹색가치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모여 한국 사회에서는 불가능하고 시기상조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총선 한 달 전에 녹색당을 창당했다.

    올 7월 삼척에서 열렸던 탈핵 문화제의 모습(사진=진보신당)

    녹색당은 선거기간 동안 탈핵․농업․생명을 핵심 가치로 제시하고, 한국사회가 지속가능한 녹색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확고한 지지기반도, 재정적 여력도, 현실정치에 대한 경험도 부족한 녹색당은 총선에서 10만 여명의 지지를 받았다. 비록 의석을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행복하고 흥미로운 선거였다. 훌륭한 소양을 갖춘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들었으며, 함께 꿈꾸는 8,000여명의 당원과 10만 여명의 지지자를 확인했고, 무엇보다 선거과정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계기가 많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녹색당 운동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에서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감과 공동체의 가치를 신뢰하고, 지구촌의 평화와 생명을 존중하며, 적자생존과 양극화의 물질만능주의를 거부하는 땅에 발 딛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는 점에서 희망을 본다.

    다만, 아직 그 진정성이 신뢰를 기반으로 시민들 속에 확장되지 못했을 뿐이다. 녹색당운동은 노동과 환경을 고민하는 신좌파진영과 적극적으로 결합할 때, 좀 더 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녹색과 적색, 탈핵과 노동의 만남

    아무리 고민해도 명쾌한 해결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애당초 답이 없는 것이라는 얘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적어도 진보진영이 어떻게 하나로 묶여 이번 대선을 통해 진보적 정권교체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현재로서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해답과 과정이 다를 수 있다.

    모두가 대선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녹색과 적색의 만남을 통해 한국 사회전환을 얘기하자. 일단 차이를 인정하자. 당면 과제는 현장과 지역적 실천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대선 이후 진보정치의 과제를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면 어떨까?

    그 첫 번째 화두로 탈핵과 노동을 제안하고 싶다. ‘탈핵’은 사회시스템을 전환해야 가능한 영역인데, 현재의 주요 대선 주자들에게서 아직까지는 그러한 의지나 정책내용, 함께하는 사람들을 신뢰할 만한 징후를 찾을 수 없다. 또한 수식어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성장을 얘기하는 대선후보들에게서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대변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선이후 한국사회의 근본적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진보정치, 혹은 녹색정치의 유의미성을 확장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어려울 땐, 우선 명분을 취하는 것이 다음을 위해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30대 젊은 세대가 앞으로 20년 이상 활동할 수 있는 진보정치의 ‘큰 놀이터’를 연결해 주지는 못 할망정, 동네 놀이터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진보진영의 재구성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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