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주의, 국가를 하청계열화"
중도좌파 정책 비판 ③
    2012년 10월 08일 01: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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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석씨의 중도좌파 비판 1편과 2편을 보려면 사민주의, 정치계급으로 재탄생! 중도좌파 정책 비판 ① 과 “경제의 금융화는 경제위기 가속화” 중도좌파 정책 비판②를 보세요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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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 구조조정 : 행정에서 경영으로?

이명박 정부가 KTX 민영화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국토해양부는 민영화를 통해 선진적인 기법으로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더 큰 혜택을 주는 것이라 선전한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맥커리에게 인천공항 운영권을 매각하려다가 저지당하기도 했지만 이 매각건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서울 지하철 9호선 건설 및 운영과 관련된 쟁점 또한 공적 서비스 민영화의 중요한 사례라 하겠다.

이명박 정부의 유별난 점은 사업추진 과정에서 자신과 연결된 이해관계자들에게 국고를 헌납한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은 자신의 동기동창들에게 넘어갔다면 인천공항 매각은 조카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어차피 민영화할 대상이라면 조카나 친구들에게 사업을 할당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본 듯하다.

그러나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는 비단 이명박 정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민영화는 이미 전두환 정권 때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장기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사공일 내각에서부터 국영기업 민영화는 시작되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주요 국영은행들이 민영화 되었으며, 이명박 정부는 이제 공공서비스마저 민영화 하는 것이다.

민영화는 사유화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사유화란 KT나 포스코 같은 국영기업들의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소유권 자체가 민간 기업이나 기관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민영화는 사회서비스의 공적 성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운영의 주체가 사적 기업으로 바뀌거나 사적 기업의 원리대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시장원리에 따른 공적 서비스의 제공. 이 경우 시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시장의 소비자가 된다.

민영화의 진척은 신자유주의의 정착과 궤를 같이 한다. 신자유주의가 불황기에 조응한 자본의 공격적 이데올로기라면 공공재의 민영화는 그에 조응하는 신자유주의적 정부개혁의 핵심을 이룬다. 저성장, 낮은 조세율, 늘어나는 실업층, 증가하는 노령인구에 직면하여 국가권력의 효율적 작동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민영화인 것이다.

한국의 ‘자칭’ 민주화 세력이나 진보주의자들은 KTX 민영화나 인천공항 매각을 예로 들며 민영화가 마치 이명박 정부의 독특한 사례인 것처럼 비난하지만, 행정 효율화와 공공기관의 민영화는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과정이다. 특히 민자 유치를 통한 사회간접자본 공급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가장 활성화된 사업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

올 2월 KTX민영화 반대 철도노동자 결의대회 모습

1990년대 이후 국가 권력의 구조조정은 서구에서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조응하는 신자유주의적 정부혁신의 구체적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행정’이 ‘경영’으로 대체된 것이다. 정부기구의 운영에 기업 조직의 운영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행정을 효율화하고 국가기구를 신축화 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행정 개혁의 핵심을 이룬다.

행정 혁신 역시 보수주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미국식 자유주의나 영국식 사민주의로부터 유래한다. 레이건과 대처의 ‘작은 정부’ 주장은 공허한 구호에 머물렀지만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국가권력을 실질적으로 구조조정함으로써 행정 혁신을 주도한다. 영국 노동당 역시 이에 뒤처지지 않는다. 노동당의 전략은 국가를 단지 축소시킨 것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원리를 새롭게 한 것이다.

앞글에서 나는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을유문화사, 2009)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적 지향성과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이 글에서는 [노동의 미래]에 제시된 신노동당의 행정 및 복지 개혁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노동의 미래]에서 기든스가 그리고 있는 신노동당의 행정 혁신은 ‘웨스트민스터 모형’이라 특징지을 수 있다. 더불어 [노동의 미래]에 나타난 행정서비스의 변화는 지금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겪고 있는 정부 구조조정의 핵심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도 덧붙을 수 있다.

민간기업, 공공재 공급의 주체가 되다.

기든스는 새로운 사민주의는 강력한 공적 제도와 적극적인 정부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41쪽) 노동당은 작은 정부만 외치지 않는다. 정부는 여전히 중요한 행위주체이고 변화를 주도하는 중심에 서 있다. 정부의 우선적인 의무는 “공공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73쪽)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는 경직되었고, 시민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권위적이고 변화를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러다보니 기업이나 세계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했고 고리타분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직은 조직대로 비대해지고, 구성원들은 과거의 관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정부를 변화시켜야 한다. 공공재를 공급하는 곳에서조차 “국가기관의 효율성, 민첩성, 투명성”이 실현되어야 한다.(74쪽)

변화의 방향은 공적 서비스 공급에 민간 조직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국가는 여전히 공공재, 공적 서비스를 제공해야하지만 그 같은 역할을 국가 기구만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공공재를 공급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존재하며, 이런 주체들을 국가 행정에 참여시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낡은 국가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단순하게 대비시킬 수 없다. 공공의 이익이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사적 기업, 비영리 조직에 의해서도 충족될 수 있다. 공기업은 공익을 훼손하고 자기 집단의 이익만 추구할 수 있는 반면 기업과 비영리 단체들은 정부기관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공공이익에 적합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위 인용에서 기든스는 공기업은 사익추구 집단이고 사기업은 효율적이라고 치켜세운다. 경직된 정부조직의 슬림화와 효율성을 위해 민간기업과 비정부기구를 참여시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기업의 비효율성, 정부 관료의 권위주의, 체계의 무능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114쪽)

정부기구 혁신은 다차원적으로 진행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역시 사유화이다. 사유화란 국영 기업 중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대기업이나 국내외 사모펀드에게 매각하는 것이다. 기든스는 사유화는 있을 수 있으나 독점적 지위를 갖는 공기업을 사적 기업들에게 매각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한국의 경우 KT, 포철, 한국중공업, 다수의 국영은행이 이렇게 매각되었다.

그러나 정부 구조조정의 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민영화이다.(108쪽) 민영화란 사적부분이 공공 서비스를 공급하고 그 운영을 정부가 보장하는 방식이다. 대중교통체계처럼 사기업이 운행하되 경영 손실분에 대해서는 공공이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는 공적 서비스의 안정적 제공과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동시에 실현하려는 방안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NHS 의료서비스의 80%가 대략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민영화의 구체적인 형태로 민간재정주도가 있다. 이는 “국가가 사기업에 의해서 제공되는 서비스를 장기적으로 구매할 것을 약속하고 사기업은 재정마련, 건설, 소유하는 것”이다.(112쪽) 기업들은 경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공공재를 더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공공재를 공급함으로써 운영의 효율성과 국가의 운영비 절감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재정주도는 대중교통체계와 같이 한국에서도 익숙한 영역만이 아니라 교도소, 학교 등 공적 기구 전반에 걸친 운영원리로 정착하고 있는 중이다.(113쪽)

민관파트너십은 지역 개발 및 사회개발에 정부 기구와 사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지역 개발, 철도 건설, 도시 인프라 건설 등에 민간기업과 행정 기구가 함께 지분참여를 함으로써 기업 조직의 효율성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민관파트너십은 공익사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은 유지하되 개별 기업들이 적극적인 수익모델을 창조함으로써 개발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공공재의 공급에 있어 민간 기업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민간 기업은 경쟁의 원리로 운영되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직접 집행하는 것보다 효율성이 훨씬 높고 소비자, 시민들의 요구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민간재정주도, 민관협력체제 등을 통해 공공재가 공급됨으로써 시민들이 보다 편리하고 쉽게 공공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과거 공무원들이 보여주었던 경직성은 민간 기업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에 열렸던 의료민영화 반대 기자회견 모습(자료사진)

복지 및 사회서비스의 공급도 외주화된다. 정부는 다양한 단체들을 지정하여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들 기관의 운영 자금을 지원한다. 이른바 제3섹터의 활용이 대표적이다. 민간 비정부기구들에게 사회복지관 운영을 맡기거나 공공 서비스를 공급하도록 하며, 운영비용은 정부가 지원하고 집행에 대한 행정 감시를 통해 민간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74쪽) 이는 70년대 이후 영국에서 꾸준히 진행되어 오던 비정부기구의 사회참여를 보다 확대시킨 것으로, 90년대는 정부의 신축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정부에서 거버넌스로

신자유주의 행정개혁의 핵심은 일반적으로 거버넌스라고 한다. 거버넌스라는 단어는 번역하기가 모호한데, 대략 협치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거버넌스는 국가 권력이 전문적인 기술관료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불만, 요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효율적으로 정책 어젠다를 시민사회로 전달하는 역능을 일컫는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정부가 입안한 정책을 통치 대상에게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피통치자, 비국가 기구, 경제 주체들을 참여시켜 합의를 효과적으로 조직해 내는 것이다. 거버넌스는 기술관료들의 역량을 중심으로 국가 기구를 움직이면서도 관료의 강요를 배제하고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라 하겠다.

기든스가 지지하는 거버넌스 관념도 이와 연결된다. 기든스는 책 전반에 걸쳐 국가의 과잉 팽창에 대해 극도로 경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곧바로 권력이 시장에 넘어 갔으니 우리는 할 일이 없다고 한 한국의 어느 대통령처럼 물러나지는 않는다.

기든스는 국가의 팽창과 관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국가의 역할, 공공영역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보수주의나 초자유주의자들의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이 중도좌파의 관점이다.

기든스가 주장하듯이 중도좌파가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것은 분명 현실적인 근거가 있다. 불황기에 세수는 줄어드는 반면 정부 지출은 늘어나고 정부 조직의 경직성은 행정체계의 동맥경화를 유발한다. 기든스가 열거하고 있듯이 영국 공공부분 서비스는 고질적으로 낙후되어 있었다. 정부기구들이 관료화되고 권위주의화 되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공무원들이 시민 위에 군림하던 시절이 불과 엊그제였던 것을 우리도 여전히 기억한다.

더불어 늘어나는 복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보다 효율적인 복지공급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영국 사회의 시급한 과제였다. 이는 우파 근본주의자들이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기 위해 복지를 대폭 축소하자고 말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문제이다. 복지비용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 더 큰 문제의 소지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복지행정을 효율화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을 단지 복지 축소를 위한 우파의 기획이라고 부정만 할 수는 없다. 복지는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복지비용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 시민을 위해 뭐든지 보장해 준다고 떠드는 것은 나라를 파산시키거나 거짓말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복지체계를 보다 슬림화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타겟팅을 잡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동일한 자원 내에서 최대의 효용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정부개혁은 단지 정부 축소도, 복지 부정도 아니다. 국가 행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다양한 세력들을 동참시키고, 정부도 그 과정의 한 파트너로서 참여한다. 복지는 근본적으로 자활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지 단지 무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비용절감, 효율적 집행체계, 시민 만족도 향상은 누가 행정을 책임지든 실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렇듯 거버넌스는 불황기에 직면하여 국가가 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새롭게 취한 통치 양식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세력들을 참여시켜 국가의 기능을 대신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를 구조조정하고, 시장 원리를 국가 기구의 운영원리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덧붙여 다양한 비정부기구를 행정체계의 하위 파트너로 통합시킴으로써 한편으로 시민사회의 불만을 내적으로 흡수하며 다른 한편으로 ‘효율적 행정’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통합 하는 것이다.

비정부기구(NGO)가 행정체계의 하위파트너로 재통합된 것은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노동조합을 계급타협의 대상으로 보았던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와 뚜렷하게 대조되는 점이다.

호황기에 부르주아들은 노동조합을 계급 대표로 인정하고 그들과 타협했다면 불황기에서는 노동조합을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비정부기구를 통치의 파트너로 삼음으로써 노동자계급을 억압할 수 있게 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실련이나 참여연대가 노동조합을 왕따시키며 통치의 하위파트너가 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제 안철수가 그렇게 할 것이다.

기든스 비판 : 국가의 수직적 해체와 공공재의 하청생산

[노동의 미래]는 불황기에 사회체제가 재생산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투자의 감소와 실업률의 증대, 인구의 노령화, 복지비용의 증대, 세수의 감소, 재정적자의 심화라는 객관적 조건 하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공공영역의 구체적 모습이라 하겠다. [노동의 미래]에서 그려진 정부 구조조정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행정의 신축성 확대와 공공재의 하청생산이라 하겠다.

신자유주의 행정 혁신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 기구의 역할을 사적 부분에 외주화하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모방함으로써 행정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경제 위기 이후 미국 기업들이 도요티즘을 따라 린 생산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부품을 하청생산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며, 적기 생산방식으로 재고를 관리하듯이, 행정 서비스 역시 기업 구조조정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다.

전후 국가는 공공재를 공급하기 위해 공사를 설립하고,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고용하며, 직접 발주하여 도로를 건설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는 도로는 민자 유치를 통해 건설하고, 학교와 감옥은 민간 기업들이 관리하며, 복지는 제3섹터 행위자들이 공급한다. 이들은 공공재를 공급하는 측면에서 준공공기관이지만 계약은 1년, 혹은 사건 기간별로 제한되고, 고용 체계는 하청의 하청 구조를 띤다.

정부가 스스로 담당하던 공공서비스 공급을 기업이나 비정부기구, 제3섹터에게 맡김으로써 체계는 축소되며 유연성은 확대된다. 이 체계는 공무원 같은 정규직 고용은 줄이고, 업체간 경쟁을 활용하며, 계약제를 통해 고용의 지속성을 사전에 봉쇄한다. 계약은 기간별로, 사업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노동의 ‘경직성’을 뿌리 뽑을 수 있으며, 비용절감 효과도 엄청나다. 비용절감만이 아니라 권력집단과 연결된 특정 기업, 특정 사업자에게 공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행정의 신축성’은 행정의 경영으로의 전환과 직간접적으로 맞물려 있다. 효율적 행정이란 기업 운영 원리를 행정의 원리로 수용하는 것이다. 공공영역이 기업 원리에 따라 움직임으로써 과거의 비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은 이윤도 축적할 수 있다. 국립대학과 국립 오페라단이 사단법인이 되고, 복지 공급은 ‘실업해소’라는 경제 정책 수단으로 전락한다. 비정규직 확대, 성과주의 도입, 비용 대비 효용이라는 평가 원리가 공적 조직을 지배한다.

이와 같은 변화의 또 다른 측면은 시민이 소비자로 전환되는 것이다. 시민은 주권자로서 공공영역에 참여하는 능동적 주체이다. 그들은 지불 능력, 소유권과 상관없이 동등한 주체로서 공공재에 접근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경영 혁신을 기치로 내거는 공공재 공급 주체들은 이와 같은 주권자로서의 시민에는 관심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공급하는 서비스에 대해 지불능력이 있나 없나를 따진다. 공적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가 점차 축소되는 것이다.

행정의 외주는 공적 영역에서 원청-하청의 불평등 관계를 창조한다. 원청-하청 관계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는 복지와 사회서비스 부분이다. 정부는 비정부기구들에게 복지관, 유치원, 이런이집 등 다양한 기관을 외주하고 이들을 관리한다. 이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을 참여시키는 다양한 사업에 자금을 제공하며 이들을 관리한다.

제한된 예산, 경쟁하는 단체들, 단기 계약, 엄격한 관료적 감독체제 하에서 사회서비스를 위탁받은 업체들은 관련 공무원들의 엄격한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제한된 자원마저 중단되면 사업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기관들은 행정 감독에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비용 절감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복지 서비스 분야에 저임금, 불안정 고용이 일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평등 관계는 기업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과 공공서비스 공급에서도 고질적으로 나타난다.

관민 원하청 관계는 사업 집행의 지속성, 자주성에도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용한다. 정부의 외주 사업을 맡은 비정부기구들은, 국가로부터 배제되지 않기 위해 행정기관에 근본적으로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띠어서도 안 된다. 경쟁력이 없거나 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접수되어도 ‘하청’은 끝날 수 있다. 비정부기구는 더 이상 독립된 자주 조직이 아니라 권력의 하부 네트워크로 기생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노무현 정부때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이 보여준 그대로이다.

더 나아가 민간재정주도, 파트너쉽 과정에서 정부 관료와 인적 네투워크에 의존하는 사업 관행은 비리와 특혜의 온상이 된다. 4대강 사업, 인천공황 매각만이 문제는 아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이뤄졌던 수많은 이권사업들은 거의 대부분 권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집단들이 독점했다. 부영건설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거에는 뇌물을 받았지만 이젠 공적 권력을 통해 국가의 자산을 합법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좌파에게는 다른 대안이 존재하는가?

한국 사회에서도 국가의 외주는 시민사회 곳곳에 뿌리 내렸다. 도로와 교각은 민간 기업들이 건설하고, 정부는 이들 기업에게 안정된 수익을 보장함으로써 시민들의 세금을 기업으로 헌납한다. 공공기관들은 조직 운영과 관리를 외주한다. 지하철도 공항도 외주에 익숙하다.

사회 서비스의 많은 부분을 사적 비영리 기구들이 운영하고 있다. 유치원, 어린이집, 사립학교가 이런 기관이다. 대부분의 사립 병원들도 사실상 공적 서비스를 공급하고 정부에 청구한다. 민간재정 주도, 민관 파트너십, 제3섹터의 활용, 복지 공급 하청 등 한국 사회는 이미 그 자체로 국가의 하청화가 일상화된 사회이다. 최근에는 민간 운영 교도소를 도입하자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효율적 행정, 신축적 행정, 우등 행정 등 수많은 수사를 남발하며 정당화되고 있는 국가의 수직적 해체는 전통적인 전문 관료 중심의 복지 서비스 공급을 다수의 다층적인 주체의 업무로 분산시켰다. 시민을 향한 관료식 권위주의는 사라졌지만 정부기구의 관료들은 하청된 공급자들에게 군림하고,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통제를 남발하고 있다.

그러나 전후 사민주의 복지 체제의 경직성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 열거된 행정 혁신들 가운데 불가역적인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시민사회를 참여시키는 다양한 복지공급 체제는 분명 지역적, 사회적 적합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인 필요성이 현재와 같은 국가의 수직적 해체, 공적 서비스의 외주를 정당화시키지 않는다. 효율적 행정으로 정당화된 국가 구조조정은 국가의 부를 특정 집단에게 선택적으로 배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고, 복지 서비스의 외주 역시 이 분야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불안정과 맞물려 있다.

고전적 복지국가의 경직성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의 해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공공성 확보와 안정된 복지 서비스 공급, 능동적인 시민 참여가 보장된 합의적 행정이 동시에 성취될 수 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좌파의 전략적 고민도 시작되어야 한다.

※ 신자유주의 행정혁신에 대한 나의 비판은 과천연구실 연구원이자 사회학 박사인 박상현님의 빼어난 저작 [신자유주의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변화],(2012, 백산서당)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밝힌다. 물론 잘못된 해석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필자소개
남종석
부경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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