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의 마음치유 이야기 ⑤
    "미운 나도 봐야지, 그것도 난데~"
        2012년 10월 05일 10:3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한 동지의 눈물이 다른 동지들의 마음까지 툭툭 파도치던 날

    두 번째 한진그룹을 만들 때 삐딱이가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참 멋지고 근사한 동지인데 요즘 얼굴보기도 쉽지 않다며 주변에서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다며 관심을 보인 동지였다.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사랑방에 초대를 했다. 오겠노라 대답했다는데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연락이 없어 마지막으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유치원생인 아들이 전화를 받아서 심각한 목소리로 ‘우리 아빠 잠자고 있어서 못가요. 그냥 냅두세요. 깨우면 화내요.’ 라고 말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서 ‘아 같이 하기 힘들겠구나.’ 포기하려는데 지친 얼굴의 그 동지가 쓱 문을 열고 들어섰다. 참석하기 싫은데 오라 그래서 할 수 없이 왔노라면서.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더니 아주 심드렁한 표정으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자고 먹고 자고 먹고 하지 뭐~’ 대답을 했다. 과정 중에도 얼굴을 찡그리고 시니컬한 표정으로 불편한 기색을 들어내곤 했다. 마음이 쓰였지만 그냥 집 밖으로 나와 사람들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 심정이어서 봐도 못 본 척 마음을 내려놓았었다.

    4번째 만났을 때였다. 일주일 지낸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도 몇 곡 부른 후 가벼운 명상을 했다. 명상 중간에 자신의 몸을 만나 보기로 했다. 자신의 몸 곳곳을 마음으로 쳐다본 후 오른손으로 내 몸 중 가장 자랑스럽고 고마운 곳에 손을 얹고 왼손으로는 가장 많이 부려먹은 곳 혹은 부끄러워 미워한 곳에 손을 얹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둘씩 마주보고 자신이 얹어놓았던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심드렁한 그 동지가 내 짝이 되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어디에 손이 얹어지더냐고 묻자 가만히 있더니 ‘자신이 너무 밉고 못나서 오른손은 잡을 곳이 없었다.’고 말하며 ‘왼손으로 아무 것도 잡지 못하는 자신의 오른 손을 잡았노라’ 고 대답했다. 눈을 감고 자신의 모습을 보는데 깜깜하고 앞에 막이 껴있는 듯 안보이더라고, 자신이 참 못났다고 이야길 했다. 가만히 그가 하는 이야길 들었다.

    예전엔 자신을 멋지다고 생각했었고 얼굴 점도 빼면서 외모도 가꿨는데 지금은 거울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그런 기분이냐고 물어보았다. ‘6월 27일 한진 투쟁, 밀려서 현장을 벗어났을 때 너무나 답답하고 싫었었다.’며 ‘서너 달 만에 집에 왔는데 아이들이 막 달라붙고 반가워하는데 그저 다 귀찮고 답답했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 다음부터 자신이 싫었던 것 같다고 이야길 하는데 두 눈에 촉촉한 물기가 어렸다.

    둘씩 나누던 이야기가 끝나고 원으로 모여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때 그 동지의 이야기를 그룹 안에 내어놓았다. ‘막막하고 초라하고 자신이 잘 안 보인다.’고 말하며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르는 사람처럼 당황스러워했다. 그룹이 그 동지의 이야길 깊게 경청했다.

    치료장을 펼쳤다. 동그랗게 앉아 있는 사람 중에 가장 편한 얼굴을 찾아 그 동지와 무릎을 맞대고 다른 사람 눈 속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가장 편한 한 동지를 선택했다. 눈을 쳐다보며 눈동자를 맞추기로 했는데 눈을 이리 저리 굴리며 불안해했다. 그 동지를 쳐다보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라고 하자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앞의 친구가 그 친구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들은 그 동지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럽고 밉다’며 고개를 숙였다.

    봄비와 시내가 그 동지의 등에 손을 얹고 지지를 보내주었다. 다시 고개를 들고 앞에 앉은 동지의 두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로 했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미운 나도 봐야지, 그것도 난데~’ 라고 아주 조그맣게 이야기하자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맞추며 동지의 눈 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깊게 응시했다. 과정 안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소리 없이 그 동지의 씨름을 지지하는 침묵이었다.

    한 참 후에 ‘시원하다’는 말이 나왔다. 보기 싫고 밉고 초라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야길 깊게 들어주고 자신의 등 뒤에 손을 얹어주니 마음이 따뜻해졌노라고 했다. 누군가 도와준다면 다시 설 수 있겠다는 마음도 생겼노라고도 했다.

    한진중공업 동지들과의 단체 사진

    그 친구의 눈물을 보며 다른 동지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미운 나도 봐야지~’ 할 때 그 말이 자신에게 깊게 울렸다는 동지도 있었다.

    해고 싸움을 할 때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에게 갔는데 어머니를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나서 펑펑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 참 시원했었다고 이야기 해주는 동지도 있었다. 다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을 보니 힘들었던 때가 기억나 자신도 눈물이 핑 돌았다는 동지도 있었다.

    ‘남자니까 울면 안 된다, 약해지면 안 된다.’ 고 생각했는데 ‘울어도 되네~’ 라고 말해 긴장된 분위기를 가볍게 바꿔준 동지도 있었다. 한 동지의 눈물이 다른 동지들의 마음까지 툭툭 파도치듯 자극을 준 과정이었다.

    그 다음 과정이었나, 과정 시작 전 그 동지의 전활 받았다. 친가 어머니 댁에 왔는데 자장면을 먹어야 해서 오늘 참석할 수 없다고 했다. 모두 ‘안 되는데 ~ 어서 와~ 자장면 내가 사줄게~’ 하며 아쉬워하는데 문을 쓱 열고 ‘안녕~’ 하며 그 동지가 들어왔다. 심드렁하고 삐딱해서 몸이 문 밖으로 반은 나가있었던 동지였는데 농담하며 들어오는 모습이 아이처럼 해맑고 가벼워보였다.

    또 어떤 과정 때는 시작 전에 동료들과 볼링 시합에 나가게 되어 연습을 해야 한다며 이번엔 진짜 참석할 수 없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에도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할 수 없지, 뭐 ~ 시합 잘 해서 꼭 상금 타라고 전활 끊었는데 과정이 시작되고 20여분이 흘렀을까 헐레벌떡 그 동지가 뛰어 들어왔다. 과정에 참석하려고 연습이 끝나자마자 씻지도 않고 왔노라고 하는데 얼굴이 말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집나갔던 가족이 돌아온 것처럼 모두 반가워했다. 그 동지의 등장에 함께 과정을 하는 동지들이 신이 나고 힘이 났다.

    그 동지의 주말을 지낸 이야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기도 하고 아들과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고 했다. 무슨 일이라도 해볼까 싶어 알아보기도 하고 다시 집회에 나가 동지들을 만나기도 한다고 했다.

    물론 여전히 삐딱한 구석은 있어서 ‘키 크고 멋있다’고 하면 자신은 비율이 안 맞는다고 쳐내고 ‘잘 생긴 얼굴이라’고 하면 점을 빼서 그렇다고 쳐내고 ‘머릿결이 좋다’고 하면 안 감았는데 무슨 이야기냐고 쳐내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때도 냉소적이고 차가운 느낌이 아닌 농담과 유머로 다가 오는 게 그냥 느껴지곤 했다.

    그 친구가 이야기 했던, ‘똑바로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는데 이젠 바로 보는 훈련을 해야겠다.’는 말, ‘칭찬을 받으니 참 좋네. 나도 아이들에게 틱틱거리지 말고 자주 칭찬 해줘야겠어.’ 라는 말이 기억난다.

    상황은 여전히 바뀐 게 없지만 생활은 많이 바꿨다고 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자고 먹고 자고 먹고 건드리지 마 ~’ 였던 자신이 뭔가를 해 보려고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과정을 마칠 때도 ‘일이나 생활이나 가족에게 잘하려고 노력’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동지, 매주 수요일 한진 집회에 참석하면서 지친 동지들의 어깨를 두들기고 있다고 한다.

    참 보고 싶다. 아무개 !!

    필자소개
    홀트아동복지회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아리랑풀이연구소 그룹 상담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