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8일, 중국의 새로운 10년 출발
    [중국과 중국인] 시진핑 시대의 권력 분포에 대한 예상
        2012년 10월 04일 12: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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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할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가 11월 8일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시진핑의 잠적(?)과 보시라이 사건 처리에 대한 당 내 이견 등으로 무성한 추측이 난무하던 중국정치의 일정표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중국 정치에 대한 한국을 비롯한 외부 언론의 보도 방식을 접하면서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자신들의 방식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설들을 전파 확산시킴으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보도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도 이런 매체들의 보도 특히 정치 관련 보도에는 좀 더 객관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난 해 10월부터 올 7월까지 진행된 31개 행정 구역(베이징을 비롯한 4개 직할시, 22개 성, 5개 소수민족 자치구)의 지역 당 책임자가 연임 또는 새로 부임하는 방식으로 1차 당내 정치 구도가 결정되었으며, 여름 휴가철의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를 거쳐 당 핵심 직책의 책임자가 교체되었다.

    물론 올 초 보시라이 사건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통상적으로 9~10월 중에 개최되었던 당 대회가 11월에 개최되고 대회를 한 달여 밖에 남겨두지 않은 지금까지 이런저런 설이 난무하는 것은 결국 현재 중국공산당 내 각 세력 간의 힘겨루기가 진행형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런 힘겨루기는 이제 막 시작된 보시라이에 대한 법적 처리가 진행되는 동안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최고지도자로 확정된 시진핑

    차기 총리로 확정된 리커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진행된 몇 가지 변화를 통해 후진타오 이후 시진핑-리커챵 두 톱 체제의 정치구도에 대해 예측해 보겠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자 정치의 본산이다. 중국공산당의 상징인 마오쩌뚱이 누워있는 천안문(天安门) 광장 바로 옆에 헌법상 중국의 최고 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근거지 인민대회당이 있고 도보로 5분이면 중국정치의 핵심인물들이 업무를 보는 종난하이(中南海)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지난 10년의 집권기간 동안 전임 쟝쩌민의 본거지였던 샹하이를 포함한 4개 직할시에 한 번도 자신의 측근을 진입시키지 못했다. 특히 정치의 본산인 베이징을 쟝쩌민의 측근들이 계속 장악하면서 당 중앙의 명령이 종난하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조롱까지 들어왔다.

    이 때문에 후진타오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궈진롱(郭金龙)이 비록 전임자인 리우치(刘淇)가 임기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조기에 사퇴하고 내부 승진의 형식으로 베이징시 당 서기에 취임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물론 궈진롱이 1947년생으로 비교적 나이가 많기 때문에 얼마 동안 활동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쟝쩌민 계열이 계속 장악해오던 수도 베이징을 접수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공청단파는 계속해서 다른 직할시나 광동 같은 영향력이 큰 지역을 접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후춘화(胡春华), 조우챵(周强) 등 후진타오의 최측근 인물들이 계속해서 베이징, 광동, 총칭 등 대도시의 당 서기로 이전할 것이라는 추측보도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후진타오의 최측근인 중앙판공청 주임 링지화(令计划)가 비교적 한직으로 여겨졌던 당의 통일전선부 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대신 리잔슈(栗战书)라는 중앙정치무대에 비교적 생소한 인물이 시진핑의 측근(?)으로 부상했다.

    많은 언론들이 ‘후진타오의 패배, 쟝쩌민 또는 시진핑의 승리’로 보도했지만, 중앙판공청 주임은 총서기의 최측근이 맡아 왔기 때문에 링지화의 전직은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당의 중요 직책인 중앙서기처(정치국과 정치국상무위원회의 실무기구) 서기 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후 통일전선부의 권력 강화 또는 18차 당 대회 이후의 또 다른 보직으로의 이동을 예상할 수 있다.

    반대로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임명된 리잔슈를 시진핑의 측근으로 평가하는 것은 조금 어색해 보인다. 시진핑의 핵심 비서 역을 수행했던 인물은 현 샹하이 정법위 서기인 딩슈에샹(丁薛祥)이라는 인물로 시진핑도 그를 먼저 중앙판공청 부주임에 임명한 후 입지를 다진 후 주임으로 승진시킬 예정이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중국정치에서의 연령이 갖는 미묘한 작용 때문에 1950생인 리잔슈는 시진핑의 첫 임기 5년 동안 후진타오와 시진핑의 관계를 원만하게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만약 시진핑이 좀 더 이른 시간에 확실하게 권력을 다진다면 리잔슈의 퇴진은 좀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후진타오도 자신의 첫 임기 5년 동안은 쟝쩌민의 측근이었던 왕강(王刚)에게 중앙판공청 주임 직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인적 구성으로 인해 샹하이방과 좀 더 가까웠던 태자당이 보시라이 사건의 여파로 공청단파와 유지해왔던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지도 관심사다. 태자당 성원이었던 보시라이와 쟝쩌민계의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정법위 서기인 조우용캉(周永康)의 시진핑에 대한 견제 계획은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공청단파와 연대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자격을 상실한 보시라이는 살인혐의로 이미 사형유예 판결을 받은 부인 구카이라이(谷开来)와 비슷한 판결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았고, 조우용캉 역시 보시라이 사건 처리과정에서의 잘못으로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주어지는 자신의 후임자 추천권을 박탈당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의 권력기반인 정법위는 이미 당 중앙과 지역 당 위원회에서 권한과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었다.

    쟝쩌민 개인의 힘에 의존해 유지됐던 샹하이방은 이미 후진타오 2기에 접어들면서 세력이 적지 않게 축소되었으며, 18차 당 대회 이후에는 의미 있는 정치 세력으로 존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시진핑의 권력 기반인 태자당 역시 내부 분열과 인적 자원의 한계로 세력 확장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혁명 유가족들의 끈끈한 인적 관계와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을 통치하면서 다져진 기반이 쉽게 허물어지지는 않겠지만, 평범한 중국인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거부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청단파는 공산당이 공인한 후계자 양성과정을 거쳐 성장한 엘리트들로, 어떤 개인이 아닌 당의 공적 조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시민들에게 거부감도 적을뿐더러 풍부한 인적 자원과 더불어 실무능력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전문 관료집단과 함께 중국정치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시진핑과 리커챵의 쌍두마차 역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파벌의 이익 다툼과 권력 투쟁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쟝쩌민과 후진타오 체제를 거치면서 치열한 권력다툼의 과정에서 상대방을 견제하기 위한 마련한 당내 합의들이 법적인 조치는 아니더라도 당 내부의 암묵적인 동의를 통해, 개인보다는 조직의 합의와 절차에 따른 권력행사를 강제함으로서 서구적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은 아니더라도 좀 더 많은 당의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또 동의할 수 있는 권력의 행사가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 떵샤오핑 시대의 마감과 함께 권력 분점과 계파 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능력과 계파 외에 연령도 상당히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 이유는 쟝쩌민 후진타오 시대로 넘어오면서 10년 집권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핵심 인물들이 힘 있게 정책을 집행하고 또 한편으로는 신구교체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연령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부 합의가 이뤄졌다. 최고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은 七上八下, 즉 당 대회가 개최되는 해에 연령이 67세면 정치국 상무위에 진입할 수 있고 68세 이상이면 진입하지 못한다. 또 정치국과 행정부의 장관급은 二上三下, 즉 62세까지는 정치국 신규 진입이 가능하고 행정부의 장관에 임명될 수 있지만 63세부터는 불가능하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지켜지고 있다.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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