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하는 일본 정치의 속살
[일본의 일상] 아베 신조와 노다 요시히코...둘 다 보수 우파 성향
    2012년 10월 03일 04: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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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일본 지금은

일본은 이제 다음 총선거가 일년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2009년 7월 31일 54년만에 (실질적인 의미의) 정권교체가 일어났지만, 그 이후 일본 정계에서 새로운 일은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정권교체 그 자체는 큰 일이었다. 54년간 죽어라 자민당을 밀어주던 일본 국민이 자민당에 대해 ‘노(No)’를 선언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자민당 의원들은 멘붕에 빠졌다. 어떤 이들은 기존 정당에서 탈당하고, 새로운 인물들이 정계에 대거 입성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신당을 만들고 합종연횡하는 모습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2011년 3월에는 정권교체보다 더 큰 사건인 후쿠시마 대재앙이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일년 후로 예정된 정권의 향방을 누구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여당인 일본 민주당은 54년만에 바뀐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민당은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총력전으로 돌입해야 하고 이를 위해 양 당은 각각 총리와 총재를 선출하는 당 내 선거를 치뤘다. 일본 민주당은 다시 노다를 총리로 뽑았고, 자민당은 2006년에 총리를 지낸 아베 신조를 총재로 뽑았다.

자민당의 새 총재 아베 신조

일본 정계의 서러브레드(thoroughbred/영국산 말과 아라비아 계통 말을 교잡하여 개량한 말. 체질이나 체형이 뛰어나 경주마로 쓴다)라고 불리는 아베 신조는, 일본제국 시절 만주국 5인방의 한 명으로 2차대전 후 A급전범으로 재판을 받았고, 이후 자민당을 만들고 55년체제를 만들었던 키시 노부스케가 외할아버지이다. 친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숙부(사토 에이사쿠-61대 총리)도 일본의 유명한 정치가들이다. 앞에도 정치가, 뒤에도 정치가들로 채워지고 총리가 수두룩하게 배출된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민당의 새 총재로 선출된 아베 신조

아베 신조 본인은 철강회사에 잠시 취직했다가 정치가인 아버지(아베 신따로)의 비서로 지내며 정계입문준비를 하고, 1993년 급사한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러받아 정계에 입문했고, 2006년 9월 임기가 끝난 고이즈미 총리의 뒤를 이어 자민당 총재로 당선되어 총리를 지내다가 딱 일년만에 온갖 불상사를 일으키는 내각으로 인해 사임했다.

사임 당시에 도련님 총리라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굳이 불편한 총리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는, 말하자면 헝그리 정신이 없는 정치인이라는 비판이었다.

외할아버지 키시 노부스케가 만든 자민당의 소위 “55년체제”는 아베가 총리를 지낼 당시부터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임기 5년을 꽉 채운 고이즈미 외에는 일년을 제대로 채우는 총리가 없었다. 아베 다음에 선출된 후쿠타 총리도 일년만에 그만두고 그 다음의 총리 아소는 결국 일년만에 민주당과 사민당 연립정권에 권력을 내주었다.

일본의 의원내각제

잠시 일본의 의원내각제를 살펴보자. 양원제인 일본 의회는 하원인 중의원과 상원인 참의원으로 구성되며, 중의원의 임기는 4년이다. 의원내각제는 하원의 총선거를 통해 정권의 주체가 정해진다. 다수당이 여당이 되어 정권을 차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권을 차지하는 총선거가 제일 중요하고 국가 운영과 방향의 포인트가 된다. 물론 각 당이 누구를 총재(대표)로 내세워 선거전을 치르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누가 총리가 되냐는 인물 선거보다는 어느 정당이 1당이 되느냐는 것이 더 중요한 시스템이다.

총리는 국회의원과 임기를 같이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내각이 총사퇴한 후 재선출을 통해 바뀔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지 않고 총리만 바뀌는 일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면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다시 하는 일도 생긴다.

1946년 일본국 헌법이 제정된 이후 이제껏 국회 해산은 21회가 있었고 그 중 세번은 55년체제가 성립하기 전 초기 국회에서, 그리고 두번은 이 55년체제가 탄생하는 국회 해산이었고, 오키나와 문제를 포함한 안보투쟁 관련 해산이 세번, 선거구 조정에 의한 해산이 두번, 나머지 중 3분의 2는 임기말에 와서 레임덕을 방지하기 위한 정치적 국회해산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세금문제로 일어난 해산이었다.

55년 체제 이후로 일어난 국회해산은 레임적 방지를 위한 정치적 해산을 빼고도 무려 9번이나 있었지만 2009년까지 54년간 자민당 정권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상한 민주독재(?)의 국가인 셈이다.

54년만의 정권 교체와 일본 민주당

역대 총리 중 세번째로 긴 재임기간을 누린 고이즈미가 임기를 마치고 아베 신조가 바톤을 이어받아 총리를 지내는 일년동안 자민당 원로 정치인의 온갖 비리와 불상사가 끊이질 않았다. 어느 정치가는 여자문제로 어느 정치가는 돈 문제로, 일본 정계에서는 드물게 잡음이 많았던 시기였고, 전부 아베 신조가 총리였던 시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터졌다. 리더쉽의 부족이 불거지고, 유약한 도련님 이미지의 아베 신조는 연일 매스컴에서 두들겨 맞았다.

고이즈미가 역대 총리 중 세번째로 긴 재임기간을 지냈다는 건 그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는 얘기고, 강력한 리더쉽을 근거로 정권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에 비해 아베나 그 뒤를 이은 후쿠다는 정계의 도련님 출신이었고, 정권을 민주당에게 내어준 아소는 다소 강력한 리더쉽을 보이며 인기를 잠시 누리는 듯 했으나 정치적 패착이 이어지고 또 고이즈미 시절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부작용이 하나씩 불거지면서 50여년만에 권력을 야당인 민주당에게 내어주는 당사자가 되었다.

일본 민주당에 대해 설명하려면 오자와 이치로라는 다소 복잡한 인물을 설명해야 한다. 오자와 이치로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자민당의 세습 정치인이다.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 정계의 큰 손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젊은 리더로 부상했다. 그리고 언제나 정계 개편 등 파란의 중심에 오자와가 있었다. 파란이 있을 때마다 사건을 수습하거나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정계의 중심인물로 점점 커갔다.

일본 정계의 풍운아라 불리는 오자와 이치로

그러면서도 항상 개혁을 내세운 새로운 모임을 결성하면서 이미지 메이킹에도 일정하게 성공했다. 1993년에 자민당을 이탈하고 자유개혁연합을 결성, 1994년에는 공산당을 제외한 범야권 정당인 신진당을 창당했다. 이후 당권 투쟁이 일어나고 복잡한 당 내 사정 때문에 신진당은 6개의 파벌로 분열하고 오자와는 1998년 자유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된다. 그리고 1999년 자민당, 공명당, 자유당의 3당 연립내각이 세워진다.

한편 민주당은 분열된 신진당의 일파 민우련(민주우애태양국민연합)이 오자와가 1993년 자민당을 나오면서 만들었던 자유개혁연합 등의 야권세력을 규합하여 결성되었다. 자민당 공명당 자유당의 3당 연립내각이 와해된 2003년에 오자와의 자유당도 민주당에 합류하여 규모를 키운다.

그 후 하토야마, 노다, 칸, 오카다 등 일본 민주당 내 중심 인물들과 함께 민주당의 중핵이 되어 당을 이끌다가 2009년 드디어 정권교체를 이루게 된다. 이 하토야마, 노다, 칸 등의 민주당 내 중심 인물들은 이전에 오자와와 함께 자유개혁연합 등에서 함께 했던 인물들이고, 실질적으로 1990년대 자민당의 소장파들인 셈이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부동의 인기를 누린 고이즈미 정권 시절을 야당으로서 열심히 버티면서 성장한 민주당에 대해 세간에서는 오자와의 힘을 적당히 제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다는 평도 있다. 오자와의 별명은 “고와시야”(파괴자)이다.

2009년 정권교체 이후의 민주당 정권

2009년 조용하게 정권이 교체되었다. 자민당 공명당의 연립정권(공명당의 행보는 조금 복잡하다, 실질적으로는 93년 비자민을 부르짖던 호소카와 연립정부, 공식적으로는 98년부터 연립여당으로 참여했다)이 막을 내리고 민주당이 여당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토야마 내각은 오자와에 의해 발목이 잡힌다. 초선의원 때부터 굵직한 정치적 사건에 항상 엮였던 오자와는 정치헌금 부정 혐의로 연루되어 수사대상이 되고 검찰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일본 국회는 오자와에 대한 결의안까지 내게 된다.

이어서 소위 정부 공공사업 부문에 대한 쇄신책이 추진되고 이에 대한 행정관료들의 저항이 격렬해지고, 일본 사회에서는 드물게 여당과 관료가 대립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안정 지향의 일본사회는 흔들리면서 뭔가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되는 건 없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힘이 빠진 자민당에서 떨어져 나온 보수세력의 움직임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다시 일년만에 하토야마가 물러나고 칸 총리가 선출되었는데, 얼마되지 않아 2011년 3월 11일 사상 유례없는 대지진이 일어났고, 매그니튜드 9.6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에 무력감과 공포가 일본을 뒤덮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후쿠시마에선 지진의 여파로 인한 핵발전소 사고가 나고 사상초유의 피난민 행렬이 이어졌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재해 소식과 구호를 요청하는 내용으로 뒤덮히기도 했다.

일본 총리인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이제껏 겪어본 적이 없는 사태를 맞은 일본 정부는 관료나 정치인 할 것 없이 대응에 급급하고 그 와중에 정치력과 리더쉽을 발휘할 수 없었던 민주당은 2011년 8월 일년만에 다시 총리를 재무장관이었던 노다로 바꾸게 된다. 노다 요시히코는 일본 정치엘리트 양성소라 불리는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이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지하고 외국인 참정권을 반대하는 보수 우파 성향의 정치인이다.

노다 총리는 취임 후 소비세를 현행 5%에서 향후 10%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겠다는 안을 발표하여 민심이 급격히 얼어 붙었다. 또한 소비세 증세안으로 오자와와 격하게 대립한 이후 결별했고, 민주당의 내분은 격해지고 오자와는 탈당을 했다.

2012년 들어서는 토쿄도지사 이시하라와 첨각제도(일본명 센카쿠, 중국명 다오위다위)문제로 대립하여 여론이 양분되고, 5월 이후 점검을 위해 중단했던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 문제로 국민들의 시위가 총리 관저 앞에서 계속 되는 상황이 현재 전국적 규모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거기에 이시하라 도지사가 강행한 첨각제도 조사선 파견 문제로 중일관계도 급격하게 악화되어 진퇴양난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2012년의 일본정계

9월에는 자민당을 빠져나간 보수세력들의 창당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또 한편에서는 자민당, 민주당에서 새로운 총재(대표)를 뽑는 일이 있었다. 민주당은 노다 총리가 재선출되고, 자민당은 아베 신조가 결선투표에서 역전하여 총재가 되었다.

자민당으로서는 별 대안 카드도 없고 안정적이고 귀족적인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아베를 선택한 듯하다. 이미 총리를 한 적이 있어서 신선한 인물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아베 신조 본인이 총리 시절에 크게 사건을 저질러서 내려온 것도 아니라는 점(공식적으로는 건강악화였다)과 세대교체의 이미지에도 맞고 또 안정적인 자민당 정치의 상징인 로열패밀리 출신이라는 점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의 당 내 화합보다는 민주당을 압박하는 선택이라는 평가가 다수이다.

민주당의 경우도 역시 특별히 내세울 대안 인물이 없다는 점 때문에 노다 총리의 재선출로 이어진 듯 하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당 내에 남아있는 당원들의 결집력은 어느 정도 보여준 듯 하다. 작년 소비세 정국이 이어지면서 참의원 선거 때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에서 엄청난 질타를 들으면서도 이건 꼭 이루어야 하는 정책임을 역설했지만 자민당에게 패했다.

이번 자민당의 총재 선출이나 민주당의 총리 선출은 약 반년 정도 남은 총선거를 대비한 선출이기 때문에 정권탈환과 정권유지를 위한 각 당의 결의를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내년 정권의 향방이 어느쪽으로 향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독도와 첨각제도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원자력발전소는 과연 정부 발표대로 제로가동 시대를 순순히 맞이할 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생각해보고 싶은 것

일본에서 한 14년 살면서 처음에는 일본의 정치 상황이 잘 이해가 안되었다. 강력한 대통령제에서 살아오던 나로서는 정신 없이 자주 바뀌는 일본 정치제도에 대한 이해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총선거의 풍경 또한 매우 낯설었다. 빠르게 이합집산하는 연립정권과 정치세력들의 행보는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적응이 되고 나니, 정당 정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생기기도 했다. 인물이 아니라 정당 중심의 정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의원내각제가 정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정당정치의 전통이 거의 없고, 인물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사회에서는 인물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선거제도가 아니라, 정당들이 자신의 정책을 놓고 격돌하고 그 평가를 통해서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가 더 제대로 된 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정치에서 인물이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신뢰받고 있다면 사람들은 인물보다는 시스템을 신뢰하기 마련인데, 그런 신뢰가 부족하니까 객관적 정보보다는 직관적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연예인이라든지 유명인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사회적 잣대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시스템이 신뢰받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걸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성공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남보다 유명하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이 잘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성공한) 사람들이 나보다 더 대단한 실력이 있거나 더 대단한 인격적 완성도를 갖고 있기를 기대하게 되고, 심지어 요구하게 된다.

나보다 더 월등히 학벌이 좋기를 기대하다 보니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처럼 요구하게 되고, 나보다 더 인격적으로 훌륭하기를 기대하다보니 당연히 더 도덕적이어야 하는 것을 요구하게 된다.

대체 노래를 하는데 왜 학력이 높아야 하고, 연기를 하는데 왜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와야 하며, 그런 학력을 갖춘 사람이 노래나 연기를 할 때 더 고평가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인물에 대한 기대심리와 강박심리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인물이 평균치보다 나은 인물이라는 약간의 지표와 증거가 제시되면, 그에 대한 과대한 기대가 이루어지고 과대평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안철수는 물론이고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가수 싸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인물에 대한 강박-그 흔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말이다-이 있는 사회에서는 정치조차 병들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에 재외국민 선거 등록을 하러간다. 이번 대선에서 의원내각제 개헌 공약이 나오기를 꿈꾸면서…

필자소개
토끼뿔
일본 후쿠오카에서 14년째 살고 있으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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