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엄격함과 개방감이 동시에
[목수의 옛집 나들이]사람 손길이 머문 대청마루 "영주 괴헌고택"
    2012년 10월 03일 03: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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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봉을 안산으로 삼아 소쿠리형 명당터에 자리잡다.

괴헌고택은 경북 영주시 이산면에 있는 “ㅁ”자형 살림집으로 중요민속자료 262호다. 정조3년(1779)에 김경집이 지은 집으로 고종8년(1871) 증손인 김복연이 일부 중수하였는데 지금도 건축 당시의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1972년에 수해를 당해 사랑채 앞에 있던 월은정(정면3칸, 측면2칸)과 오른쪽에 있던 행랑채가 소실되었다. 지금은 김경집의 7대손인 김종국 선생 부부가 자녀와 함께 살며 집을 지키고 있다.

괴헌(槐軒)이란 당호는 김경집의 아들 김영이 예안현(지금의 안동시 예안면)에서 괴(槐)나무(회화나무)가 좋은 곳에 월은정사를 경영하며 스스로 괴헌이란 호를 가진 데서 유래한다.

고택은 외풍을 막아주고 낙엽이 쌓여 재물이 모인다는 소쿠리형의 명당터에 자리해 있다. 남서방향으로 나지막한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진 삼태봉이 고택의 안산이다. 고택과 삼태봉 사이로는 금빛 모래가 좋은 내성천이 굽이쳐 흐른다.

괴헌고택 전경: 괴헌고택은 낮은 구릉 사이에 자리해 있고, 앞으로는 들판이 그 너머로 내성천이 흐르는 소쿠리형 명당터에 있다.

괴헌고택 배치도: “ㅡ”자형 대문채가 앞에 있고 넓은 마당에 방앗간채가 있다. 튼“ㅁ"자형 몸채에는 사랑채와 중문간채, 안채가 연결되었다. 사당은 동북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

유교적 엄격함과 개방감이 동시에 있는 집

개방성을 가진 튼“ㅁ”자형 집이다. 일반적인 중부지방 사대부가의 구조는 폐쇄적인 “ㅁ”자형이지만 괴헌고택은 안마당이 완전히 막히지 않아 폐쇄적이지 않다. 특히 안채에서 중문이나 대문을 거치지 않고 외부와 통하는 구조가 두 군데나 있는데 이는 보기 힘든 형식이다. 하나는 안채의 뒷편 왼쪽담에 있는 샛문이고 다른 하나는 사당 옆에 담장에 있는 협문이다. 반가의 여성들이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의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고 외부 출입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가 되며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유교적 질서도 구현되어 있다. 괴헌고택은 “ㅡ”자형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된 튼 ”ㅁ“자형 몸채가 자리잡고 몸채 우측 뒤편의 높은 터에는 사당이 별도로 일곽을 이루고 있다. 조상의 공간인 사당, 남성의 공간 사랑채, 여성의 공간 안채가 유교사상에 입각한 위계질서에 따라 각기의 고유영역을 이루며 배치되고 구조양식도 이에 따라 격조를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높은 곳에 자리한 사당. 조상의 영역인 사당은 고택의 동북쪽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사랑채 오른편 협문을 통과해 좁고 가파른 자연석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사당에 접근할 수 있다. 사당에 접근하려면 협문을 두 번이나 통과해야하고 별도의 담장 담장으로 쌓여있어 더욱 신성한 장소로 느끼도록 하고 있다. 사당 전면에는 네 개의 둥근기둥이 있다. 위계가 높은 건물임을 상징하기위해 일반 사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둥근기둥을 세운것이다.

마당이 너른 사랑채.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 영역은 참으로 넓다. 대문칸을 들어서면 잘 관리된 잔디마당이 있고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한 팔작지붕의 사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는 너른 마당에 월은정이란 별채사랑이 있었다는데 홍수로 소실된 것이 안타깝다. 새로 복원될 날을 기다려본다. 사랑채의 뒤편은 안채의 마당이다. 남녀가 유별하다는 유교적 질서를 위해 내외벽을 설치해서 사랑방에서 안마당으로 문을 열어도 안채가 보이지 않게 해 놓았다.

실용적인 안채. 안채는 여성의 공간이다. 조상의 공간이나 남성의 공간보다 엄격함이 덜하다. 특히나 방을 넓게 쓰기 위해 안채의 좌우 내부기둥을 자유롭게 이동하기도 했다. 또 실용적인 살림살이를 위해 수장공간도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다.

사당으로 향하는 길 / 사랑채 옆 협문을 통해 자연석 계단을 올라야 닿는다.

사랑채 전경 / 위엄있는 너른 마당에 높은 기단 위 팔작지붕 사랑채

안채 뒤편 동쪽으로 난 샛문

다양한 수장 공간과 활용

괴헌고택은 공간 활용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다양하고 실용적이다.

방의 윗부분을 고미다락으로 만들고, 광과 부엌, 아궁이칸도 위에 고미반자를 얹어 공간의 활용을 극대화했다. 이 뿐만 아니라 대청마루 앞과 뒤, 처마 아래 곳곳에 시렁과 선반을 만들었다. 심지어 안방문 위와 사랑채 마루 위에도 선반과 시렁을 만들었는데 다른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이 보인다.

방의 윗부분은 고미반자를 설치해서 이층의 공간을 만들었는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서적, 문서, 목판 등을 보관했었다. 이렇게 대대로 내려온 고서적, 고문서 목판은 2004년 소수박물관에 기증 되었다. 당시 기증된 자료의 양이 무려 1톤 트럭으로 세 대 분량이었다고 하니 그 양이 엄청나다. 기증품 중에는 “성학십도목판”이 있다. 이는 조선성리학의 요체를 도판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물급으로 평가 받고 있다. 소수박물관에서는 2007~2008년에 걸쳐 특별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광이나 부엌, 아궁이칸의 윗부분에 만들어진 공간에는 일제시대 공출을 피하기 위해 곡식을 보관하기도 했다고 한다. 열린 공간인 시렁과 선반에는 지금도 상과 제기 등을 보관하고 있다. 이것들은 손님접대 및 제사 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물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손님이 오면 겸상을 하지 않고 사람마다 각자의 상을 내어서 식사와 술을 대접했다. 그러기에 상이 얼마나 많은 지가 그 집의 위세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러 대청마루 앞 시렁과 같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상을 놓아두기도 했다고 한다.

안방문 위 선반 / 소쿠리와 채

대청 앞 시렁 / 나무함지와 상

안채 뒤편 / 상자에 담기 생활용구

사랑방 상부 다락 환기창

사람이 살아야 집이 산다.

목수는 좋은 집을 지을 때 기분이 좋다. 목수는 직접 지은 집이 잘 관리되고 사는 사람들이 행복할 때 기분이 더욱 좋다.

오 년 전, 괴헌고택을 처음 볼 때 고향집 대청마루가 생각났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생활하였기에 대청마루는 항상 반들반들 윤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반들반들한 마루를 괴헌고택에서 다시 만났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면 사람의 손길과 온기로 쉽게 그런 상태를 유지 할 수 있겠지만 나이 드신 종손 부부만이 살고 있으니 그 노고가 눈에 선하다. 여쭈어 보니 지금도 너른 대청마루를 하루 두 번씩 걸레질을 한단다. 사랑채 측면 마루방에 들어가서 바깥을 내다보니 너무나 반질반질한 마루에 바깥창호가 그대로 비친다.

종손부부의 손길로 윤이나는 마룻방 / 얼마나 잘 닦았는지 마룻바닥에 창호 문살이 비친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4대강, 괴헌고택을 내몰다.

괴헌고택의 대청마루 한 켠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있는데 바로 이게 성주단지다. 집을 지켜주는 가장 높은 신을 성주신이라 하는데 항아리 안에 해마다 햇곡식을 담고 그 위에 종이로 만든 성주신을 모셔 놓았다. 이제는 옛집을 가도 성주단지나 종도리 아래의 성주신을 보기 힘들다. 이렇게 된 이유는 집에 사람이 살지 않거나 살더라도 미신이라 생각하여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종손의 말로는 일제시대나 육이오 전쟁 때에도 피난으로 집을 비운 적이 없기에 여태까지 성주단지를 모실 수 있었다 한다.

건축문화재 뿐만 아니라 귀중한 고서적, 고문서와 목판, 그리고 성주단지와 같은 무형의 유산까지도 너무도 잘 보존된 괴헌고택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댐 건설로 이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영주댐 공사현장 / 내성천 바닥의 모래를 퍼내고 있다

처음엔 자그마한 저수지로 계획된 평은댐은 4대강 사업과 연계되며 영주댐으로 바뀌고 수몰되는 지역도 영주시 평은면, 이산면 등으로 넓어지며 괴헌고택도 물에 잠기게 된다.

총예산 8380억 원을 들여 2014년에 완공예정인 댐은 길이 380m에 높이 50m, 그리고 저수량은 1억8100만 톤이 될 예정이다. 공사는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댐 건설지 일대의 강과 산을 포클레인으로 전부 파헤쳐서 마을은 황폐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고향을 등지고 이사를 갔다. 댐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환경변화는 피할 수 없고 그로 인한 재앙은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다.

영주댐이 들어서면 막히면 괴헌고택을 비롯한 열채가 넘는 건축문화재는 본래의 풍광과 전혀 다른 곳으로 이건되어야 한다. 하류에 있는 무섬마을과 회룡포 강가의 금빛 모래 백사장도 더 이상 보기가 힘들어 질것이다.

이 정권은 참 많은 죄를 짓는다.

괴헌고택은 고택도 좋지만 사람도 참 좋다.
늦기 전에 한번 와 보시라.
이렇게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마루를 본적이 언제였던가

필자소개
진정추와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고, 지금은 사찰과 옛집, 문화재 보수 복원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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