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잭 런던의 사회 고발 르포르타주!
    [책소개]『밑바닥 사람들』(잭 런던/ 궁리)
        2012년 09월 29일 09: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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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명이 1000명의 빵을 만들 수 있는데도, 노동자 1명이 250명이 입을 면직물을, 300명이 입을 모직 옷을, 1000명이 신을 부츠와 신발을 생산할 수 있는데도 수백만 명이 굶주리고 있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탄생에 영감을 준 책!

    잭 런던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마흔 살의 젊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쏟아낸 작가이다. 미국 작가 중에서는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작품을 번역 출간한 인물 중 하나이며, 평단보다는 대중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모험가이자 스포츠맨, 대중연설가였다.

    남다른 그의 글쓰기는 자신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책상머리에 있기보다는 뜨거운 호기심으로 세상을 돌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 속에 담았던 만큼, 그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발로 뛰며 쓴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생생한 묘사와 감동이 깃들어 있다.

    그곳에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무엇, 이런 생생함이야말로 그가 문학사에서 가장 독특한 작가로 남게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밑바닥 사람들(The people of the abyss)』은 그동안 주로 소설로만 소개되었던 잭 런던의 작품들과 달리 르포르타주 형식의 논픽션이다. 그의 소설이 실화처럼 생생하다면, 그가 남긴 논픽션은 오히려 소설처럼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비친다. 허구를 짓는 소설가가 아무런 가감 없이 기록으로만 남길 수밖에 없었던 현실, 그것은 바로 산업혁명 후 자본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호황기 영국 런던의 가장 밑바닥 빈민가였다.

    오늘을 묘사한 듯한 100여 년 전 영국 도시 빈민의 참상!

    이 책은 1902년 여름 잭 런던이 직접 경험한 일을 담고 있다. 그는 탐험가가 된 심정으로 런던의 빈곤지역 이스트엔드로 잠입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직접 보고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부유하고 번성한 웨스트엔드와는 극히 대조를 이루는 이스트엔드는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곳으로 이민자, 불법체류자, 하급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밀려들던 곳이다. 잭 런던은 그곳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끼니를 때우며 거리의 노동자가 되어 그들이 사는 대로 체험한다.

    헌옷을 구해 입고 거리로 나간 잭 런던은 옷 하나 때문에 달라진 신분의 차이와 자신의 저치를 절감하게 된다. 더 이상 그는 ‘미국에서 온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 굽실거리던 사람들은 이제 동등하게 그를 대하거나 오히려 자신들보다 낮추어 보기 시작했고, 복잡한 교차로에서 차라도 만나면 더 적극적으로 피해야 했다. 작가는 옷 때문에 인생의 격이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 놀라워하는 한편, 밑바닥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 살 곳이 없는 사람들

    잠입생활을 위해 하숙집을 구하던 잭 런던은 빈집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단 한 가구가 사는 집에 대여섯 가구를 들이고 한 방에서도 침대 하나를 여러 명에게 주야로 임대하면서 집세를 더 많이 벌려고 한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두 다리를 제대로 뻗고 잘 수 없을 정도의 환경에서 삶을 연명한다. 그렇게 이스트엔드는 포화 상태를 넘어 부족한 건물 안에 인간들이 득실대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프라이버시라는 것을 누려보지도 못한다.

    * 노동자들 거리의 노숙자들

    과밀화된 런던에서는 일자리 경쟁이 치열하며 이 때문에 임금은 최하 수준까지 떨어진다.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되었다. 납에 중독되고 썩어가는 사지를 절단하는 등 산업재해로 고통 받지만 그들에게 사후관리를 제공하는 회사는 없다. 노동운동이라도 한 자는 일자리를 잃거나 심지어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결국 갈 곳 없는 노동자들이 찾는 구빈원까지 함께 가보지만 그마저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음을 몸소 체험한다. 결국 그들을 사지로 내몰고 방관하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무책임함과 어리석음에 분노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 소유물에 대한 범죄가 인간에 대한 범죄보다 훨씬 더 중대하게 여겨지는 현실

    잭 런던은 이스트엔드에 있는 동안 혹독한 생활고로 한 노파가 죽음을 맞이한 광경을 보았다. ‘최하층 계급’ 중에서도 노약자는 결국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기에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를 대하는 공무원들의 안일한 태도였다. 결국 사회는 그런 비참한 죽음을 개인에게 전가해버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굴러가고 있었다.

    당연히 이러한 상황은 비단 노파의 죽음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작가는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과 살해 등 범죄행위의 실례를 들어가며 영국 사회의 물질만능주의를 꼬집는다.

    “대놓고 물질에 집착하고, 정신이 아니라 소유물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문명에서, 소유물을 정신보다 고귀하게 여기고 소유물에 대한 범죄가 인간에 대한 범죄보다 훨씬 더 중대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마누라를 떡이 되게 패고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것이 숙박비가 없어서 별빛 아래 자는 것보다 사소한 범죄행위다.
    돈 많은 철도회사에서 배 몇 개를 훔친 청년이, 일흔이 넘은 노인을 정당한 이유 없이 폭행한 냉혹한 청년보다 사회에 더 큰 위협이 된다. 일자리가 있는 척 속이고 하숙을 하는 나이 어린 아가씨는 너무도 위험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그녀나 그녀 같은 사람들이 소유의 구조를 완전히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자정이 넘어 피커딜리가나 스트랜드가를 음란하게 활보했다면 경찰은 그녀를 막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하숙비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처절한 경험의 생생한 기록이다. 고생이 될 줄 알면서도 그곳에 뛰어든 용기와 직접 부딪혀 문제를 이해하려는 열정이 아니었다면 1902년의 그곳은 이렇게 생생하게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 역시 그 비참한 상황을 꿋꿋이 잘 견뎠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는 솔직히 말한다. 옆 사람이 천연두에 걸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전전긍긍하다가 곧 뜨거운 목욕탕에 앉아 병균이 다 없어지기를 빌었고, 구빈원을 직접 체험해보려 했지만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절절했다. 빈곤을 체험하다가 견디지 못해 배불리 먹기도 했고 힘든 밤을 보낸 뒤에는 이내 깨끗한 이불이 있는 자기만의 공간으로 돌아가 길고 안락한 잠에 빠졌다. 그는 순간순간 자신이 그곳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놓고 안도했다. 북극의 설원 등 극한의 오지까지 체험한 그였지만, 이스트엔드만큼은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곳이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이 책에 체험만을 적지 않았다. 뛰어난 통찰로 당시 영국의 문제를 간파하고 특유의 명확한 상황분석으로 비판하고 분석하였다. 빈민을 상대로 소득, 주거비, 식비 등을 면밀히 조사했고 구빈원과 노동 현장, 심지어 부랑자 수용소까지 직접 체험하면서 빈곤의 구조를 현장에서 낱낱이 분석해 보여준 그의 글은 사료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그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인류의 희망을 발견하고자 했다. 가난한 노파에게 거의 공짜로 밥을 준 식당 주인, 자신도 구빈원을 전전하는 비참한 처지이면서도 먹을 것이 생기자 남들에게 나눠주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빈민, 제대로 된 자선과 복지를 실천하는 선각자들이 그곳에도 있었다.

    잭 런던은 마지막에 “문명이 인간의 생산력을 향상시켰는데 왜 인간의 운명을 개선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답은 딱 하나라고 답한다. 그것은 바로 “잘못된 관리” 때문이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주도한 영국이 누리는 부는 엄청나지만, 그 안에서 생산의 주체가 되는 보통 사람들은 착취만 당할 뿐 최소한의 생활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록문학이란 과거의 특정 사건을 생생하게 전달하기에 그 의미가 있다. 하지만『밑바닥 사람들』은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아직도 진행 중인 체제에 대한 고찰이며 예언이다. 그가 이스트엔드에서 본 괴물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숨 쉬며 꿈틀거린다.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뉴스를 보다가 접하는 ‘현실’로서 분명 존재하고 있다. 참상을 보고 놀라고 고개를 내저었으며 탄식해야 했던 그의 감정 역시 우리는 오늘 느끼고 있다.

    한 세기가 지났는데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 그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 가장 섬뜩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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