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의 금융화는 경제위기 가속화"
    중도좌파 정책 비판②
        2012년 09월 28일 11: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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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도좌파 정책 비판1은 여기

    기든스 비판 Ⅰ: 정치계급으로 재탄생한 사민주의

    기든스는 미국을 모델로 삼아 영국 노동당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정치적 중도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그 핵심이다. 기든스는 앞에서도 보았듯이 집권을 위해서는 중도파 전략을 지녀야 하며 이는 대중들이 탈이념화, 중도화한 상태에서 집권을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이것이야말로 당파적 이해를 초월한 것이다.

    그러나 기든스의 주장은 기만일 뿐이다. 그가 대중의 중도화라고 표현한 것은 정당의 중도화의 결과이지 그 역은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 민주당은 점차 중도좌파에서 중도파로 전환했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 때의 개혁은 거의 대부분 레이거노믹스를 수용한 결과다. 사실 복지 지출 축소, 균형재정 확립은 레이건도 하지 못하던 것을 클린턴이 밀어붙인 것이다. 더 나아가 경제의 금융화를 실질적으로 진척시킨 것도 클린턴 행정부 때이다. 당연히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이 이탈한다. 그놈이 그놈인 상황에서 굳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영국 노동당도 마찬가지다. 80년대 후반 키녹 시절부터 시작된 영국 노동당 변화의 주요 목표는 노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영국 노동당은 중간계급 정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계급으로부터 후퇴한 것이다. 블레어 1기 집권은 이를 정확히 보여 주었는데, 그는 대처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당연히 노동자계급이 노동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어졌다. 스페인 노총이 스페인 사회노동당과 단절한 이유도 사민주의 정권이 긴축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사민당들은 권력 잡고 모두 우파 정책을 복제했기 때문에 대중들이 사민당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대중의 중도화는 사민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전위가 되면서 이에 반발하며 나타난 것이다. 대중들은 노동당이 권력을 잡아도 진보적 정책을 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특히 지금과 같은 재정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대중의 중도화는 대중의 정치적 환멸의 다른 표현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어떤 권력이 들어서도 대중의 정치적 불만을 해소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의 ‘사기 행각’은 더 분명해 진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서구의 어떤 정당과도 다르게 자신들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들이 권력을 잡으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길을 갈 것임을! 서구 사민주의 정당이 모두 그렇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는 충분히 예측가능한 행보이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노동당의 중도노선 전환은, 과거 그들이 대표하고자 했던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당의 집권 그 자체’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동당은 더 이상 보수당과 다른 정책을 실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일자리 확보’를 위해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당은 더 이상 계급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계급으로 자기 지위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게 되었다는 말이다.

    정치계급이란 여기서 수사적으로 활용되는 개념임을 인정하자. 이 개념은 정당이 자신들의 직업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정권을 잡으려는 상태를 지칭하는 서술적인 것이다. 그러나 정치계급은 사민주의자들이 중도파로 전향한 것, 녹색당이 여피정당으로 전락한 것, 미국 민주당이 주류정당이 되기로 결심한 것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수단이 된다.

    한국 정당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념에 따라 정책을 실현하기보다 ‘정치인으로서의 자기 지위 유지’를 더 큰 목적으로 사고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동일한 정책을 실행하면서도 상호 이전투구 하는 것은 정치계급으로서의 자기 재생산이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이 우파 정책에서 좌파적인 정책까지 모두 실천하겠다고 호기를 부리는 것이야말로 정치계급으로서의 자기 지위를 확보하려는 노력임을 우리는 안다. 최근 통진당 사태가 보여주는 바는, 이제 진보진영조차 정치계급으로서의 자기 재생산 노선에 결합했다는 점이다. 비록 참담하게 끝났지만 말이다.

    기든스 비판 Ⅱ : 파산한 친시장 모델

    기든스는 미국 경제의 미덕을 찬양하며 유럽도, 영국도 미국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영국 노동당이 세금을 낮추고, 일자리를 신축적으로 운영하며 과감하게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안정된 경제성장, 낮은 실업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그는 블레어 정부가 미국 모델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환자상태에 있던 영국 경제’를 구해냈다고 한다.(51쪽)

    그러나 기든스의 주장은 시간의 검증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가 그렇게 찬양하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신경제’는 2001년 IT 호황의 붕괴로 끝났다. 물론 그 이후 주식시장 케인즈주의로 인해 다시 일시적으로 회복했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다시 2008년의 붕괴를 예비하는 것이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금융체제 중심으로 구조를 개혁한 영국은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경제들 가운데 하나다. 영국정부도 양적 완화를 통해 통화를 찍어내지 않으면 경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거기다가 최근 카메론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긴축 재정, 기든스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균형재정 정책은 모든 면에서 영국 경제를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이 그나마 버티는 것은 긴축이 아니라 엄청난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돈을 풀고 있기 때문이다.

    신노동당의 경제정책이 근본적으로 실패한 이유는 신노동당이 영국 시티(런던 금융가의 명칭)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대변했기 때문이다. 신노동당은 대처가 주도한 금융주도 경제를 더 급진화 시키는 일련의 정책을 통해 금융자본의 철저한 동맹군임을 자임했다. 뉴욕에 대항해 런던의 시티가 세계 금융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그 결과로 금융 불안정성은 훨씬 높아졌으며 영국경제는 금융위기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상태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와 같은 남부유럽이나 아일랜드, 아이슬랜드와 같은 국가들을 제외하면 EU의 주요 국가 중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와 긴축을 겪고 있는 나라가 영국이다. 그 중심에 노동신축성과 경제의 금융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기든스의 주장대로 자본소득, 기업소득에 대한 세금 감면은 일자리를 위한 투자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 투기로 이어질 뿐이다. 이는 대중의 소비 증대로도, 생산적 투자로도 연결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정부의 균형재정, 긴축재정이 더해지면 경제의 불황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기든스식의 자유주의 경제 모델은 현재의 파국을 증대시킬 뿐 그 역은 아니다.

    경제가 생산적으로 굴러가려면 채권 시장의 부양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투자가 잘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업투자는 규제철폐로 성장하는 게 아니다. 유휴자본이 생산부분 외에 투자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본소득, 배당 소득에 대해 높이 과세하고, 금융 소득 과세율을 최고로 높여야 한다. 금융부분에 자본이 유입될 수 있는 동기를 제거해야 한다. 외국 투기자본의 유입도 차단하고 한국에 들어온 투기 자본도 ‘관리되는 과정 속에 점진적으로 이탈’시켜야 한다.

    금융억압이나 배당을 억압하는 것은 소비를 위축시키지도 투자를 위축시키지도 않는다. 어차피 배당이나 자본소득의 증대는 다시 금융 투자로 이어지거나 부유층의 소비를 낳을 뿐이다. 금융투기는 신규 일자리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높은 세율로 과세하여 정부지출이라도 늘리는 게 차라리 더 낫다. 정부 수요는 일자리라도 창출한다.

    또한 부유층의 한계소비성향은 저소득층의 그것보다 훨씬 작게 나타난다. 부유층의 소득을 노동자 서민으로 이전시키는 것이 유효수요를 확대시키는 방법이다. 당연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상승시키고 최저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이 소비를 늘이는 방법이다.

    부르주아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것보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높이는 게 현재 국면에서 소비확대와 경기부양의 수단인 것이다. 자본 파업이 지속되는 현재의 국면에서는 금융소득, 배당소득, 상위 계층의 개인 소득에 대한 강력한 과세와 정부지출 확대, 저소득층의 실질임금 확대가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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