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천 커밍아웃 12년,
    세상은 얼마나 변했나?
    By 토리
        2012년 09월 27일 10:15 오전

    Print Friendly

    어제 9월 26일은 홍석천이 커밍아웃한 지 12년째 되는 날이다. 12년 전 홍석천은 드라마 <남자셋 여자셋>에 ‘쁘와송’으로 출연하면서 주가를 날리던 연예인이었지만 2000년 9월 17일 일간스포츠에서 그의 성 정체성을 자신의 동의 없이 기사화하면서 소위 ‘아웃팅’을 당한다.

    26일 그는 공식 커밍아웃함으로써 ‘커밍아웃 연예인 1호’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지만 그 후 모든 출연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근 4년 가까이 방송생활을 타의에 의해 접게 된다. 그 후 2004년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젊은 영웅’에 선정되기도 하고 최근 예능프로 ‘커밍아웃’ 진행, 드라마 ‘보석비빔밥’ 출연 등으로 방송 활동을 그럭저럭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12년 전 홍석천이 커밍아웃했을 때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는 살짝 흥분이 감돌았다.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가시화된 지 약 5년 만에 이루어진 커밍아웃이라 더욱 뜻깊은 것이기도 하였다. 드디어 한국 사회에서도 공인으로 커밍아웃한 사람이 생긴 셈이다.

    또, 홍석천이 커밍아웃했을 때만 해도 연이어 다른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커밍아웃 선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이 펼쳐졌다.(연예계 내부의 성 정체성을 둘러싼 소문들을 보라)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현재 한국 연예인으로서 커밍아웃한 경우는 홍석천이 유일무이하다.홍석천이 진행하던 ‘커밍아웃’ 프로그램에서 커밍아웃했던 모델 겸 배우 김지후의 경우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지금 돌이켜 보았을 때 당시 연예인의 커밍아웃이 이루어지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아웃팅이라는 나쁜 방법이었지만 폭로전이 있었고, 홍석천 개인의 커밍아웃 결심이 있었다.

    12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성 정체성을 둘러싼 황색언론의 폭로 경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 정체성에 관한 의구심을 언론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더욱 더 발달하였다. 물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보기에 성 정체성(혹은 성별 정체성)을 의심할 만한 연예인들의 수는 홍석천 커밍아웃 당시보다 훨씬 많으며,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주류적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의 행동을 방송에서 즐기고 기꺼이 소비한다.

    그러나 이들이 커밍아웃할 거라는 기대는 별반 없으며, 개개인의 공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혹은 성 정체성을 언론이 다룰 필요성을 못 느낀다. 공인(public figure)의 성 정체성을 스타일화 하여 즐긴다는 점에서 한국은 이 부분에서 서구보다 훨씬 소비자본주의적 욕망에 충실하다. 마치 ‘성 정체성을 드러낼 필요는 없어, 스타일만 즐겨’의 경구를 자본가와 소비자가 동시에 실천하는 듯 하다.

    돌이켜 보았을 때, 홍석천의 커밍아웃은 한국의 연예산업 확장 초기 성 정체성을 스타일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고와도 같다.

    성 정체성이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것이 좋은 세상일 수 있지만, 대중 앞에서 성 정체성을 드러낼 기회가 사전에 차단되는 것은 또 하나의 빗장이다. 남들보다 조금은 보이쉬한 여성 연예인이나 조금은 여성스러운 남성 연예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같은 성별을 사랑하고 섹스할 수 있다는 것은 공론의 장에서 차단되어 있으며, 그를 즐기는 이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세상에 남성적인, 혹은 여성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이 존재한다면 이들이 이성만을 사랑하고, 섹스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이건 어떤가, “당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세요. 마음껏 지지해줄게요”. 홍석천 커밍아웃 후 12년, 이제 성정체성을 지지해주는 흐름이 더 가시화되고 LGBT 아이콘이 또 탄생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필자소개
    LGBT 인권운동 활동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