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당파 갈등과 그 교훈 ②
    [조선생의 역사이야기] 붕당정치, 당파싸움...지금 얘기
        2012년 09월 26일 10: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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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남규 선생의 수업 이야기 ‘조선의 당파가 나뉘어지는 이유’를 두번에 나누어 싣는다. 앞 부분에는 조선의 당파가 갈라지고 합쳐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중심이고 두번째 글에서는 그것과 조선 이후의 현실과 함의에 대해 다룬다. 앞의 글 조선의 당파갈등과 그 교훈① 을 보려면 여기를.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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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의 개혁정치와 견제없는 세도정치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영조의 손자 정조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왕의 직속 군대인 장용영을 키우고, 노론-벽파의 돈줄이 되는 시전상인의 특권(금난전권)을 폐지하고, 규장각을 설치하여 자신의 직속 신하들을 키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조 개혁정치의 마지막 카드가 수도를 화성(수원)으로 이전하는 것이었는데, 그 직전에 정조는 죽고 맙니다. 그래서 독살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많은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정조는 독살이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조의 개혁 정치는 200년 넘게 이어온 노론의 집권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조 이후 순조, 헌종, 철종이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건, 왕인 본인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노론의 수준이 그만큼 세련(?)되고 완전히 정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노론은 이제 굳이 왕을 견제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지요.

    조 선생의 도표

    정조가 독살로 죽었건 정말 종기로 인해 죽었건, 정조의 죽음 이후 순조, 헌종, 철종의 3대에 걸쳐 안동김씨와 풍양조씨가 번갈아 집권하면서 왕은 그야말로 허수아비가 되고 맙니다. 이제 권력은 서인, 동인, 남인, 북인 정도가 아니라, 노론, 소론도 아닌 일개 가문이 독점을 하게 됩니다.

    조선은 당파싸움으로 망했다는 식민사관의 극복

    일제시대에 일본이 정리한 조선사관은 식민사관이라고 불립니다. 제일 간단히 말하면 조선은 당파싸움하다가 망했다는 것이고, 좀 자세히 설명하면 조선은 발달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데 일본이 때리고 달래가며 가르쳐줘서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처음에 말한 것처럼 붕당정치에는 장점도 있었고 단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점과 단점을 아울러 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저는 이러한 우리의 입장이 좀 궁색하다는 느낌입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면서도 반성할 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설명은 이런 것입니다. 조선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권력이 분점되는 상호 견제가 시스템으로 갖추어져서 오래 유지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게 조선의 최대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은 성리학에 기반하여 구상한 정치체제를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왕조시대의 어느 나라나 왕이 최고의 권력을 갖게 되지만, 조선은 경국대전에 ‘왕이 아니라’ “의정부가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조선 초기 배울 때 열심히 외웠던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 3사라고 불리며 왕권 견제의 기능을 하였다거나,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기록하여 조선왕조실록이 남을 수 있었던 것도 다 당시에는 왕권 견제의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극에 보면 신하들이 “전하, 아니되옵니다. 신의 목을 베어주십시오.”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도 신하들과의 합의없이 왕 독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웠던 점을 보여줍니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입헌군주국 비슷한 형태를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신하들도 철저한 관료제에 따라 역할이 분담되어있었고, 신하들끼리도 권력이 집중되지 못하도록 감찰 기능이 발달하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감사원에 해당하는 기능이 발달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권력의 집중을 막고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있었기에, 일시적으로 외척이나 몇몇 그룹이 권력을 장악하지만, 오래 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반성해야 할 지점은?

    반성해야 할 지점은 오히려 이러한 기능이 약화되거나 정지된 점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상설기구화한 ‘비변사’가 의정부를 대신해 국가의 중요 정책을 결정했다는 것 기억나나요? 이 비변사를 장악한 서인-노론 세력이 조선의 후기 대부분의 권력을 쥐게 됩니다. 어찌보면 비변사 때문에 권력이 신하들에게 집중된 게 아니라, 반대로 권력이 신하들에게 집중된 결과가 비변사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입니다.

    한편,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왕권보다는 신권이 강한 것이 오히려 더 이상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왕 한명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 집중될 경우, 왕이 못나거나 포악하면 그 왕 물러날 때까지는 백성들이 다 죽어날 것이니, 차라리 신권이 강한 것이 나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최소한 신하들은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고, 한 명에게 집중되지 않고 서로 견제할 것이니 말입니다.

    신하들이 반성해야 할 지점은 자신들에게 돌아온 권력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결국은 당파싸움으로 귀결된 것입니다. 특히, 사림에게 권력이 주어지자마자 동인과 서인이 나누어지고, 악순환으로 보복의 강도가 높아지고, 한쪽이 권력을 잡기만 하면 거의 대부분 자신이 또 분열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동인과 서인과 남인과 북인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각각 이론적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이황, 이이, 조식 등이 그들입니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은 우리가 지금 이기일원론이네 이기이원론이네 하는 이론적 논쟁도 벌이고, 위에 말한 것처럼 예송논쟁도 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쟁은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성장 발전해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논쟁은 논쟁대로 있고, 이론은 이론대로 있고, 붕당은 붕당대로 있어서, 막상 현실에서는 상대방의 허점에 대한 비난에 몰두하기 일쑤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아직 어느 붕당이나 개인도 반성하는 글 하나 보지 못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부모님이 동시에 아팠던 그 많은 신하들 누구 하나도 반성문이 없었습니다. 병자호란 때 주화파나 주전파나 그 이후 어느 누구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는 글을 쓰고, 반성하는 지점을 실천에 옮기는 양반 한 명을 보지 못했습니다. 노론은 북벌을 외치면서 끝내 실천하지 못하고서도 반성하기는커녕, 북벌을 위해 길렀던 군대를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았습니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언행일치하는 지도자가 그리울 지경입니다.

    자만하지 말자

    지금 우리가 이러한 역사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권력을 잡았을 때, 분열하는 모습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말한다면, 좀 잘 나갈 때 자만하지 말자라고나 할까요?

    솔직히 자만하지 않기라는 게 쉬운 게 아닙니다. 저는 바둑을 잘 못둡니다. 18급이 제일 아래인데, 17.5급이라고 하며 웃습니다. 잘 못 두니, 늘 눈 앞에 보이는 상대편을 잡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내가 죽습니다. 가끔 제가 잡을 때도 있습니다. 이 때 말입니다. 제가 알아요, “아, 이럴 때 자만하면 안된다”라고요… 머리 속으로는 자만하지 말자, 방심하지 말자고 외우는데, 이미 입은 헤- 벌어지고 있고, 마음은 느슨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내 것이 잡혀야지 정신을 번쩍 차립니다.

    사실 가만 보면, 어느 사회나 모임이나 파벌이 나누어질 수 있고, 오히려 나누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는 다들 합심단결했는데 우리나라만 나누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그 나라를 그 모임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나누어집니다. 적극적이고 의욕적이고 근본까지 변화시키려는 쪽이 강경파이고 급소(急少)이고 청남(淸南)이고 골북(骨北)이고 벽파(僻派)입니다. 천천히 조금씩 그래서 변화가 이루어지는지 아닌지 모른다고 비판받는 쪽이 온건파이고 완소(緩少)이고 탁남(濁南)이고 육북(肉北)이고 시파(時派)입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에서도 강경파인 산악파와 온건파인 지롱드파가 나뉘어졌고, 러시아혁명 때에도 강경파인 볼세비키와 온건파인 멘세비키가 나뉘어졌습니다. 영국도 대대로 휘그당과 토리당으로 나뉘어졌고 지금은 노동당과 보수당이 나뉘어져 정치를 이끌고 있습니다. 미국도 자유당과 민주당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나뉘어지는 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닙니다. 나뉘는 것은 오히려 필연입니다. 다만 한 쪽이 다른 쪽을 100% 배제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방법 – 미국과 중국의 사례

    저는 지금은 기밀해제된 미국 국무부의 1953년 한국에 대한 비밀문서를 번역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 국방부는 강경파이고 국무부는 온건파였습니다. 한국 문제에 대하여 국방부는 군사적 해결을 추구하였고, 국무부는 외교적 해결을 추구하였습니다. 국방부는 북진을 해서라도 공산주의 세력을 박멸해야 한다는 이승만 입장을 지지하는 한편, 국무부는 제3차 대전의 가능성이 있는 북진이나 만주에 원자폭탄 투하는 안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전쟁(6․25 전쟁) 막바지인 당시 한국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합니다. 주도권은 국무부가 쥐었지만, 국무부의 온건론만이 대안은 아닙니다.

    공통의 목표는 남한과 일본과 대만에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침을 보면, 일단은 휴전 협정을 맺어 현상유지를 하되(국무부 입장), 전쟁이 다시 시작될 경우 즉시 반격할 준비를 갖추고(국방부 입장), 혹시 이승만이 북진을 하려고 할 경우 이승만 제거작전(Eveready Plan)을 가동하며, 휴전이 장기화되면 남한에 경제지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방침이 부서별로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 계획이 조금씩 바뀌면서 더 구체화되고 우선순위도 바뀌고 정교해진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책 담당자가 바뀌어도 이 뱡식이 변하지 않습니다.

    중국 혁명을 이끌었던 마오쩌뚱(毛澤東)을 충실히 보좌하였던 숨은 실세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그 거대한 중국의 온갖 이해집단을 이끌어내는 방법,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외교에서 항상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같은 것을 우선적으로 합의하여 실천하고, 서로 다른 것은 일단 그대로 두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구동존이의 정신이 현실화되는 것이 불가능할까요?

    ‘무서운’ 국민이 권력 부패를 막는다

    결국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고, 권력을 가진 집단의 문화나 시스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게 자체적으로 안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현대적 의미로 본다면, 아마 국민선출권, 국민소환권 같은 것일 겝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국민이 뽑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리고 약 20년 전부터 구의원, 시의원, 구청장, 시장도 지방자치선거에서 뽑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국민의 목소리에, 시민의 목소리에, 구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학교, 영림중학교 교장 선생님 어때요? 맘에 들어요? 여러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교장 선생님이라는 느낌 들어요? 영림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서울에서 딱 두 학교만 내부형 교장공모제라는 제도에 의하여, 본인은 평교사였는데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투표하여 뽑은 교장 선생님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을 대통령이나 교과부장관이 임명하면, 그 교장 선생님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나 교과부 장관의 말에 충실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을 학부모와 교사들이 선출하였다면, 그 교장선생님은 당연히 자신을 뽑아준 학부모와 교사들의 의견에 충실하려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누구건 뽑힌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안하면, 임기 중에도 불러서 따질 수 있고, 심지어 물러나게까지 할 수 있는 제도가 국민소환제도입니다. 이건 거의 현실화되어있지 않은 상태인데요, 제도상으로 존재하고 가능합니다.

    제 욕심만 같으면, 중요한 직책은 다, 국민이나 당사자들이 직접 선출하고, 일 잘못하면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붕당이 권력만 잡으면 분열하고 지리멸렬하는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겠나요? 한마디로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좀 무서운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뽑을 때도 제대로 뽑고, 제대로 하는지 감시도 하고, 제대로 못하면 혼도 내주는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나라 잘 살게 하는 길이고, 우리 자신이 잘 살 수 있는 길입니다.

    필자소개
    한때 전교조 중앙에서 교선실장을 했었고 또 오랫동안 전교조 서울남부지회 지회장을 맡았다. 지긍은 영림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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