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세화 앞에 한없이 가벼운 진보신당
    기어이 돌아가야 할 '거기'는 어딘가?
    [투고] 당원이 대표님께…새 진보정당 ‘작명’ 영역 아냐
        2012년 05월 24일 02: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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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세.화.

    살아 있는 진보진영의 인물들 중 그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는 이름이 얼마나 될까. 명망가들이 떠난 진보신당의 자리에 홍세화가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를 역설하며 대표직에 앉았다.

    일부는 우려를, 다수는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홍세화의 이름에 기대서라도 9.4 당 대회 이후 이 당의 초라한 처지를 메울 수 있다면, 부활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순수한 바람이 당원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무난히 진보신당 대표직에 안착했다. 우스갯소리로 당원들이 대표에게 바라는 건 “탈당하지 마셔요”라는 소박한 바람과 함께.

    그리고 4.11 총선을 치러냈다. 비례대표 2번으로, 지역출마나 앞 순번은 결코 할 수 없다는 그는 꽤나 오랜 설득 끌에 비례 1번이었던 청소노동자 김순자에 이어 비례 2번으로 총선 후보로, ‘더’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른 것이다. 여기서 그의 두 번째 결단에 당원들은 감사했고 당은 활력을 찾는 듯했다.

    그리고 홍세화 대표는 정당 지지율 1.13%, 지역구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표 앞에서 당원들께 또 한 번 감동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우리는 기어이 되돌아가야 한다.”며 ‘전태일당’을 제안했다.

    기어이 돌아가야 할 ‘거기’는 어디인가

    하지만 그 감동의 글에 빠진 것이 있다. 1.13%라는 지지율, 도대체 이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 없었다. 그저 “기어이 돌아가야 한다.”는 낭만적 언사와 ‘전태일’이라는 진보의 코드만이 살아 있을 뿐이었다.

    유세 중인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사진=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상엽)

    ‘전태일 정신’,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인가. ‘전태일 평전’이 중고생 필독서에 오르고 그의 여동생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하는 시대, 전태일 정신은 반드시 다시 되새길 일종의 넋과 같다. 노동자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세대가 갖고 있는 열사에 대한 마음의 짐이 절절히 느껴진다.

    그러나 한 가지 묻고자 한다. 홍세화가 당원들에게 던지는 기어이 돌아갈 곳은 도대체 어디인가. 나는 그 답을 여전히 홍세화에게 듣지 못했다. 육체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공장으로 투신하라는 건가, 지역마다 전태일의 집을 만들라는 말인가, 아니면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의 거리 농성장인가, 나는 도저히 홍세화가 ‘기어이 가야 한다.’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한 당의 당수라면 자신을 믿고 따르는 당원들에게 구체적 전망과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이견이 있다면 논쟁해서 이겨야 한다. 전망은 있었으되 당원들에게 패배하고 떠난 이들이 조승수요, 노회찬이요, 심상정이다.

    그래도 그들은 전망이라도 있었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당을 떠난 이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낭만적인 언사로 당원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글은 현재 진보신당에게는 필요치 않다는 말은 꼭 하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 전망, 그를 믿고 따르며 함께 논쟁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다.

    ‘전태일당’, 새 진보정당은 작명의 영역 아냐

    물론 홍세화가 던진 다소 생소하거나 관념적인 제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당원 워크숍에서 갑자기 “당사를 ‘전태일의 집’으로 만들겠다, 내각제를 지지한다.”며 당내에서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은 내용을 발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낯 뜨겁게도 당 공식 문서에서 사업 실행의 근거를 “홍세화 대표의 발언”이라고 적혀 있는 것만 봐도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진보좌파정당 건설’과 ‘전태일의 집’이다.

    그 어느 당에서 새 정당 건설이라는 거대한 이슈의 근거가 당 대표의 ‘발언’일 수 있으며, 그것이 버젓이 공식문서에 오를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진보신당이 감당할 수 없는 홍세화라는 이름의 무게가 바로 여기 있다.

    그러고 나서 또 이제 홍세화는 ‘전태일당’을 외쳤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가 온 언론의 톱을 장식하고 민주노총과 노동현장이 요동치는 요즘, 그에 대한 정치적 기획을 진보신당이은 가지고 있는가. 통합진보당 비판 외엔 찾아볼 수 없는 진보신당의 앙상한 논리가 전당적으로 퍼져있음을, 그리고 이는 결코 진보신당에 이롭거나 건설적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전태일당’은 정세와 현장과는 관계없이 그저 그렇게 대표의 언사대로 실행되면 그만인가. 추후 진보신당이 함께할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은 노동, 빈민, 학계를 통틀어 통합진보당과 함께하지 않을, 모두를 아우르는 치밀하고 정치적인 기획 속에 건설되어야 한다. 이름만 던지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작명의 영역이 아니란 말이다.

    홍세화의 무거움 앞에 한없이 가벼운 진보신당

    진보신당 지도부는 정당 등록이 취소되고 중앙당을 정비하는 데만도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소비했다. 대표단 회의에서 중앙당 재편과 관련해 논의, 결정된 사안이 ‘모두 함께 가고 싶다’는 홍세화, 안효상 두 대표의 글로 한 번에 뒤집어져 한 때 중앙당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고 들었다.

    벌써 4.11 총선이 끝난 지 40여 일이 지났는데, 이제야 대표단은 전국순회 평가 간담회를 시작한다. 이러니 당원들에게 “중앙당 뭐 하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며칠 전 통합진보당 강기갑 비대위원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지지 철회를 논하는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을 찾아가 비대위 참여를 제안하며 “심장이라도 도려내는 각오로 혁신하겠다.”는 화려한 언사를 던졌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진보신당 창준위 지도부에게 이런 발 빠른 행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여전히도 중앙당 정비가 안 돼서 힘들다는 변명은 게임이 끝난 이후엔 필요 없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그러나 홍세화라는 이름의 무게는 여전히도 우리를 짓누른다. 몸이 무거우니 행동은 둔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홍세화라는 무거운 이름 앞에서 진보신당의 한없이 가벼운 정치적 무게를 느낀다.

    * 이 글은 레디앙에게 5월 23일 이메일로 들어온 진보신당 당원의 투고 글입니다. 

    필자소개
    진보신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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