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 시대, 시의 표정 ②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타자가 아닌 우리가 되어야
        2012년 09월 25일 09: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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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월 또는 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 유성호 선생의 앞편의 글 다문화 시대, 시의 표정 ①에 이어서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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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거주 외국인 시편

    다음으로 우리가 살피게 될 권역은 국내 거주 외국인이 쓴 한국어 시편들이다. 변화된 ‘한국어’ 상황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핍진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다문화 자료가 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다문화의 인적 기반인 결혼 이민 여성들은 한국어 지체와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양면의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들이 쓴 한국어 시편에는 이러한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새로운 생의 의욕 등이 잘 묻어난다. 먼저 옥천 지역에 살고 있는 이주 여성들의 작품을 읽어보도록 하자.

    여기서 시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키우느라고
    순식간에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연히 현관 앞에 있는 거울 속의 해바라기를 보았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딛고 당당히 살아가는 어머니
    미소짓는 해바라기였습니다
    ― 야스마쓰 유리꼬(일본), 「해바라기」 중

    고향 떠나
    머나먼 타국 한국 땅
    고향 생각 새록새록 납니다
    고향동무
    어릴 때 함께 하던 고무줄놀이
    아버지 사냥 가면
    졸래졸래 따라 다니면서
    뛰어 놀던 그리운 고향
    시집가서 신랑에게 잘해주고
    잘 살아라 부탁하던 어머니의 말씀
    걱정 마세요
    저는 잘 살아요
    ― 박향화(중국), 「향화농장」 중

    앞 시편에서 화자는,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를 ‘해바라기’로 묘사하고 있다. 그 “가련한 해바라기”를 모신다고 결심은 했지만, 정작 화자는 “너무 멀리” 이곳에 와 있다고 고백한다. 한국에 와 시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키우느라고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 화자는 “우연히 현관 앞에 있는 거울 속의 해바라기”를 바라보면서 “인생의 어려움을 딛고 당당히 살아가는 어머니”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리운 마음을 처연한 감상(感傷)으로 돌리지 않고 “미소짓는 해바라기”라는 상관물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버린 가편(佳篇)이 아닐 수 없다.

    뒤의 시편 역시 “고향 떠나/머나먼 타국 한국 땅”에서 새록새록 고향 생각에 젖은 화자의 마음을 아름답게 담고 있는데, “고향동무”와 어릴 때 함께 놀던 기억들, 아버지와 함께 사냥 다니며 놀던 고향의 기억들, 그곳을 떠날 때 어머니께서 “시집가서 신랑에게 잘해주고/잘 살아라”라고 말씀하신 기억들이 잔잔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제 “이원 묘목단지 복숭아 농사짓는/향화농장”에서 그녀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생의 건강한 희망으로 바꾸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내 귓가에 속삭여주는
    달콤한 사랑의 말 한 마디는
    고장난 내 수도꼭지에서
    또 눈물을 새게 만드는
    감미로운 물소리 같은 말입니다
    ― 글로리아(필리핀), 「사랑해」 전문

    포도 송송이
    과일 중에 제일 맛있지요
    언제나
    큰 쟁반에 가득 담아
    시어머니하고 남편하고
    아가하고 나하고 맛있게 먹고 싶어라
    ― 김지혜(베트남), 「금강포도」 중

    이주 여성이 새롭게 듣는 “사랑해”라는 말은, 이제 그들에게 낯선 ‘외국어’가 아니라 “내 귓가에 속삭여주는/달콤한 사랑의 말”이 되었다. 그 익숙해진 ‘한국어’를 통해 “고장난 내 수도꼭지에서/또 눈물을 새게 만드는” 일이 생겨나고, 그 눈물은 “감미로운 물소리” 같은 말로 이어진다. 감미롭고 슬픈 ‘한국어’의 이중성이 잘 드러난다.

    충남 태안군에서 진행하는 다문화가정 프로그램의 한 장면

    뒤 시편에서 우리는 과일 중에 제일 맛있는 포도를 “언제나/큰 쟁반에 가득 담아”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먹고 싶어하는 여성적 충동과 선명하게 만나게 된다. 마치 “포도 송송이”가 그녀 가족들이 어우러진 외관을 비유하는 듯하다. 이어서 음성 지역 결혼 이민 여성들의 작품을 살펴보자.

    배추김치 만든다
    배추를 잘라서 소금에 절인다
    무 양파는 채로 썬다
    생강 마늘 다진다
    새우젓 고춧가루와 양념을 만든다
    버무린다
    배추에 넣는다
    맛있다
    ― 레티 죠풍(베트남), 「김장」 전문

    아가가 잘 먹으면
    엄마가 행복하고
    밤새 아가가 울면
    엄마는 불안해
    울지 마라 안아주고
    노래 불러 자장자장
    아가 울면
    엄마는 힘든 거
    아가는 알고 있을까
    먼훗날
    아가가 훌륭한 사람 되면
    그때
    엄마 마음 알게 될까
    ― 하나미(베트남), 「아가야」 중

    ‘배추김치’ 담그는 과정을 통해 한국의 맛을 익혀가는 즐거움을 담은 시편이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자르다/절이다/썰다/다지다/버무리다/넣다”라는 한국어의 연쇄가 아름다운 기층언어에 대한 그녀의 감각을 잘 보여준다. “배추/소금/무 양파/생강 마늘/새우젓 고춧가루”의 연쇄도 구체성을 담고 있어 재미있다.

    뒤의 시편은 ‘엄마’와 ‘아가’ 사이의 극진한 사랑을 노래하는데, 가령 아가가 잘 자라면 엄마는 행복하고 아가가 울면 엄마는 불안해하는 과정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그 힘든 과정이 지나 “먼훗날/아가가 훌륭한 사람 되면/그때/엄마 마음 알게 될까”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얼핏 세월에 대한 불안감과 행복이 함께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거울 앞에서
    나의 모습을 보면
    대화하고 싶고
    하지만 답을 못하고
    거울 앞에서 가만 있어

    거울은
    내 마음 속의
    행복과 슬픔 알고 있어
    ― 낸시 데이모스(필리핀), 「거울」 중

    하늘이 선물예요
    매일 바라봐요
    고국이 많이 생각나요
    들에는 벼가 노래요
    들녘이 너무 아름다워요
    밥 먹을 때
    엄마 생각나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 파즈테나(필리핀), 「선물」 전문

    ‘거울’을 바라보면서 “대화하고 싶고/하지만 답을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화자는, 그 ‘거울’이 “내 마음 속의/행복과 슬픔 알고” 있다고 함으로써, 삶의 고단함과 불안을 흐릿하게 함께 내비치고 있다.

    뒤의 시편은 비록 “하늘이 선물”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아름다운 들녘에 벼가 익어가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엄마 생각이 물씬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임을 담고 있다. 그래서 “또/감사하게 생각해요.”라는 마지막 행은 고국에 두고 온 어머니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자신을 받아준 이곳 가족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 읽어볼 것은 이주 노동자들의 시편들이다.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이주자 타국인(metics)인 셈인데, 그들은 산업 연수생 신분이나 고용 허가제 같은 법규를 통해 입국하여 한국 사회의 3D 업종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환율 차이에서 오는 목돈을 마련하여 귀국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점에서 이들의 고통은 한국 사회 현실의 계층 구조를 고스란히 닮아 있고, 그래서 더욱 구체적인 통증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꽃을 사랑하는데
    나는 꽃잎을 사랑하는데
    나는 꽃향기를 사랑하는데
    그래서 나는 꽃과 꽃잎과 꽃향기를 노래하려고 싶은데
    내 마음 속에는
    가시만 있나 봐요. 가시 노래만 나와요
    ― 슈바스(네팔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의 노래」 전문

    나도 같이 그 사람들을 따랐어요
    영혼이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그 사람들은 처음에 나를 훈련시켰어요
    그런데 평범한 나는
    그 사람들의 말을 잘 몰랐고
    그래서 언제나 뒤에 있는 느낌
    그 사람들은 나에게 천사의 길을 따르라고 했지만 나는
    내 발하고 날개를 바꾸지 못하고 했어요
    나는 속도를 못 내오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나를 느리고 뒤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 모헌 카키(네팔 이주노동자), 「구원을 바라는 기도」 중

    ‘꽃’을 사랑하고 그것을 노래하고 싶지만, 마음에 ‘가시’만 생겨나게 한 현실의 중압이 잘 담겨 있는 시편이다. 상징적인 언어 처리가 돋보이지만, 그 뒤편에 한국 사회의 가학성과 편견이 흐릿하게 번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뒤의 시편에서는 “언제나 뒤에 있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밀도 있게 담고 있다.

    이들이 부르는 ‘가시’와 ‘구원’의 노래야말로,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씌어져갈 우리 시대의 ‘한국 시’의 첨예한 외곽의 사례가 될 것이다. 이들에 의해 씌어진 한국어 시편들은 이들의 이러한 삶과 언어와 고통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매우 소중한 파생적 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그들에 의해 한국 현대시의 권역도 불가불 넓어지고 있다.

    다문화 사회의 사유와 실천

    이제 ‘우리나라’는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이들을 무방비로 차별하면서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 알다시피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갈등의 원천은 계층, 지역, 성(性)을 매개로 하는 양극화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인종’이라는, 그동안 우리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별적 변수가 생겨났다.

    이들을 현대판 게토(ghetto)에 가둔다면 그 변수는 상수가 되어 한국 사회의 통합을 저해할 것이다. 연전에 일어났던 프랑스에서의 무슬림 폭동을 한번 떠올려보자. 2005년 11월 프랑스는 2주일 넘게 소요 사태를 치렀다. 파리 외곽에서 아프리카계 무슬림 소년들이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가 감전사한 것으로부터 사태는 촉발되었다.

    이들은 무슬림 빈민 거주 지역의 아이들인데, 폭동을 주도한 이들은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이민 2세들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이민자와 그 후손들인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는 국가 재건설과 경제 성장을 위해 과거 식민지로부터 값싼 노동력을 대량으로 받아들였다. 알제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은 프랑스 경제 부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들은 프랑스 기업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노동 비용이 저렴했고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에, 그들은 프랑스 젊은이들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이익을 창출해내었다.

    그런데 이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은 합법적 주거 신분이 되기는 했지만 거의 극빈자 생활을 면치 못했다. 정부에서는 아예 프랑스인들과 격리시켜 도시 외곽에 특별한 구역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가난을 대물림하게 하였다. 자녀들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못 받게 되었고, 그들이 자라 사회의 핵심적 불만 집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사회적 불만이 누적될 대로 누적된 이민 2세대들은 범죄 직전에 있는 사회적 화약고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처럼 정체성 혼돈과 사회적 차별을 겪는 과정에서 벌어진 이 폭동이, 이제 그들만의 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결혼 이민자 2세들 역시 우리 사회의 불만층으로 자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사유가 발본적으로 요청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인종 집단(ethnic group)’으로 등장하면 사회의 균열이 너무도 클 것이다. 제도와 인식의 차원 모두, 하루 빨리, 대안적 모색을 해야만 한다.

    필자소개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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