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값을 내야 할 것들
    [에정 칼럼] 값싼 전기요금이 좋기만 한 것일까
        2012년 09월 24일 03: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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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마니아급의 무한도전 팬이다. 상한가를 치고 있는 런닝맨은 어릴 적 술래잡기를 연상케 하고, 1박2일이 대학 MT의 감성을 자극하는 반면 무한도전은 일상적이어서 더 좋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늘은 뭐하고 놀까’궁리하는 걸 보면 ‘회사가기 싫은 사람 모여라’외치는 듯 현재적이다. 그래서 그들의 과장된 몸짓 하나하나가 내겐 지친 일주일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그런 무한도전이 요새 뭇매를 맞고 있다. MBC 파업기간 동안 수퍼7 콘서트를 기획했다가 높은 티켓가격으로 인해 네티즌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은 것이다. 급기야 콘서트는 취소됐고, 콘서트를 주도했던 길씨는 프로그램 하차를 선언했다. 파업기간 동안 기다려 준 무한도전 팬들을 위해 낸 기획이 오히려 무한도전을 휘청이게 만든 셈이다.

    나 역시 티켓 가격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콘서트를 한다고 해도 갔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된 게 너무 안타깝다. 수퍼7 콘서트가 무한도전이랑은 무관하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무한도전이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유지되어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방송사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고 멤버들이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콘서트였는데 거기에까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티켓 가격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쉬는 일정을 모두 콘서트 준비에 쏟아 부은 멤버들이나 찬조출연하기로 한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그닥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든 콘서트 준비를 자비를 들여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네티즌들이 지적한 말들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싼 게 모든 경우에 능사는 아니다. 이런저런 점들을 종합해 고려해보면 그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었다지 않은가.

    수퍼7 콘서트 논란을 보면서 더 씁쓸했던 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기요금 논란이 중첩됐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폭염으로 인해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일부 언론에서 전기요금 폭탄 운운하면서 전기요금 체계 논란을 증폭시켰다.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한 여론도 전기요금 인하에 동조했다.

    며칠간 전기요금과 관련한 뉴스가 쏟아지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한국전력은 백기를 들고 누진제 완화를 토대로 한 전기요금체계 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가뜩이나 한전 경영 방만화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긴급 대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한 가지는 나오지 않는다.

    과연 값싼 전기요금이 좋기만 할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전세계적으로도 싼 것으로 유명하다. 가정용, 산업용, 일반용 할 것 없이 모두 생산원가 이하에 판매하고 있다. 정부가 계속 손해를 보고 전기를 공급해주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전기사용량은 매년 최고 기록을 빠르게 경신 중이다. 전기는 이제 기본권 개념으로 보고 있으니 이것이 지극히 당연해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기요금엔 전기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각종 환경오염물질이 배출된다.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가 향후 파괴적인 경제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 대책 없이 전기요금을 낮추자고 얘기하는 건 무모하다. 그렇게 전기요금을 낮춰봤자 누적되는 전기요금 적자는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에 결국 다른 경로로 벌충해줄 수밖에 없다. 조삼모사 격이다.

    차라리 낼 거라면 더 많이 쓴 사람이 더 많이 내게 하는 체계가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정부는 에너지 수요 증가분은 핵발전소를 더 지어 충당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사회적 위험만 가중될 뿐이다.

    전기요금을 낮추자는 게 아니고 부조리해 보이는 누진제 폭만 완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우리나라 가구의 한달 평균 전기사용량은 300~400kWh로 약 40,000원에서 50,000원 상당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진제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구간은 400kWh부터고, 언론에서 언급한 20만원 전기요금 폭탄 가정이 되려면 600kWh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전기요금 폭탄을 맞은 가정은 과연 얼마나 늘었을까? 한전 자료에 따르면 지난여름 501kWh 이상(약 13만원) 구간에 새로 진입한 가구는 90만 가구로서 전체 가구 2,100만 가구의 4.2%에 불과하고 해당 구간의 전체 가구수도 7.5%에 머물고 있다. 반면 300kWh 이하의 가구는 전체 가구 중 52.8%로 지난해에 비해 6%가량 줄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폭염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에어컨을 돌렸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새롭게 20~30만원을 내던 가구는 예전에도 이미 평균 이상을 쓰고 있었던 경제력 있는 가구들인 것이다.

    고작 4.2%,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의 예만 가지고 전기요금 누진제를 손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저의를 의심스럽거나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주장처럼 누진제가 완화되면 수십조원에 이르는 한전 적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생산원가 이하의 전기요금도 같이 손볼 수밖에 없다.

    그럼 누가 전기요금 인상의 대상이 될 것인가? 200kWh 이하 사용가정이다. 현재 200kWh 이하의 구간 요금은 주택용 평균 생산단가 이하다. 누진제가 완화되면 적게 사용하는 가정은 더 많은 요금을 물게 되고, 많이 사용하는 가정은 전기요금이 줄어드는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야말로 서민들에게 돈을 뽑아 고소득층의 요금을 보전해주는 양상이 아닐까.

    단순히 사용량에 비례해서 내자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현재 전기요금에는 환경복구 비용 등 외부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전기 생산에는 필연적으로 오염물질이 배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비용들이 전기요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용량이 많은 사람들은 곱절로 전기요금을 내는 게 사회적으로도 정의로운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배출한 오염물질을 우리 모두가 나눠서 해결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산업용 요금을 올리는 것이 대안이라고? 그렇다 그게 대안이다. 그 얘기만 하면 된다. 괜히 그나마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요금체계를 걸고 넘어가지 마시라. 현행 전기요금 체계가 정말 문제라면 너무 자잘하게 나눠진 구간 요금제만 다소 완화하는 게 맞다. 대신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낮은 사용구간의 요금은 더 낮춰주거나 에너지복지 대책을 강화하고, 높은 사용구간의 요금에는 누진제를 더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거 아닐까.

    경기는 어렵지만 물가는 고공행진을 하는 스테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 몇 만 원의 위력은 나도 소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미친 듯한 폭염에 부채 하나,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나야 하는 서민들의 고충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수퍼7 콘서트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나친 요구가 어떤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퍼7 콘서트와 전기요금 논란을 보면서 난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바로 ‘제 값 내기’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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