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 시대, 시의 표정 ①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우리 안의 타자들
        2012년 09월 24일 02:3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월 또는 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편집자>
    —————————————————————

    민족 관념과 다문화

    한국 근대사에서 ‘민족’ 관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근대적 제도와 인식이 채 자리 잡기 전에 닥쳐온 식민지 근대가 우리로 하여금 ‘민족’을 탈환하고 재구성하려는 열정을 가지게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로도 우리는 단일민족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순혈주의적 민족 관념을 공고하게 형성해갔다.

    최근 일정하게 탈(脫)민족 담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민족의 동일성을 상상하고 실천하려는 에너지가 궁극적으로 소진될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사람들은 자신을 근대 민족국가(nation state)의 배타적 일원으로 귀속시키려는 의지와 열망을 양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의 키워드가 ‘내셔널’에서 ‘인터내셔널’로 또 ‘트랜스내셔널’로 옮겨갔을지라도, ‘민족’은 여전히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현실적 범주이다. 앤더슨(B. Anderson)은 그의 유명한 <상상의 공동체>에서 ‘언어’가 근대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핵심이라고 보았는데, 그만큼 ‘언어’는 민족국가의 통합과 활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일한 혈통과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민족국가는 최근 들어 매우 활발한 균열 과정에 놓여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글로벌 시대가 가시화되고 제도화되면서, 우리 안의 타자라고 부를 수 있는 요인들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섞여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타자(他者)란, 주류화된 존재들과 달리 동일성에 편입되지 못하고 그것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체의 요소를 지칭한다. 우리 시대의 소수자(minority)를 포함한 타자는 외국인 노동자, 성적 소수자, 장애자, 극빈자 등을 구체적으로 함의한다. 그 가운데 우리는 이른바 ‘코시안(Kosian)’이라고 불리는 범주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는 한국인(Korean)과 아시아인(Asian)의 합성어로서 국제결혼 2세나 한국에 거주하는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의 자녀를 가리키는 말로 대두된 개념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단일민족 안의 혼혈집단이라는 용어로 변질되어, 이제는 차별과 차이를 생산해내게 되었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이들에 대해 ‘결혼 이민자’로 명명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이제 이들 결혼 이민자 및 그들이 낳은 2세들은, 단일민족 신화가 견고하게 편재(遍在)해 있는 한국 사회의 감각과 무의식을 흔들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구성해가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다민족 국가’로 나아가는 도정에 놓여 있으며, 교육 과정에서도 ‘국어’라는 민족 관념의 개념보다는 ‘한국어’라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를 선호하게 되었다. 실제로 학교의 풍경은 어마어마하게 달라지고 있고, 결혼 이민자 자녀들이 재학하는 일도 점증(漸增)해가고 있다. 여성 이민자 대부분은 자신의 자녀가 한국에서 교육받기를 희망하고 있으니, 현재 국내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결혼 이민자 2세들 숫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교육의 양극화가 주로 계층 간의 차이에서 빚어진 문제였다면, 이제는 ‘혈통’이나 ‘인종’ 문제까지 매개되는 우리 역사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로서는 단일민족 신화의 재생산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융화하고 순혈주의의 관념에서 벗어나 ‘다민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방적 동화주의의 발상에서 전환하여, 동화주의가 결혼 이민자에게 얼마나 힘겨운 문화 흡수를 요구하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그런 후에 다른 문화가 서로 존중받는 쪽으로 정책이나 인식이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사회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이들이 한국 문화를 이해해야 하듯이, 한국인들도 결혼 이민자의 출신국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다문화 가족’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가 어우러지는 데서 장기적인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혼 이민자가 한국 사회에 통합되기 위한 소양 교육도 필요하지만, ‘토종’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양 교육 장치도 있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때 ‘언어’야말로 근대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핵심이라고 보았던 앤더슨의 통찰은, ‘다민족 국가’로 정체성을 전환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통합과 활성을 위해서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역상(逆像)이 되고 있다 할 것이다.

    한국 시의 다문화 양상

    한국 현대시가 처음으로 다문화 양상을 광범위하게 경험한 것은, 최근의 결혼 이민자 현상보다는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 같은 장기전에서 비롯된 혼혈 현상이었다. 한국전쟁이 남긴 혼혈아 문제는 해방 후 우리 문학에 광범위한 상처로 진입한 제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도 언론이나 대중 매체가 영웅화하려 했던 베트남전 역시 혼혈의 흔적을 우리 역사 안에 남겼다.

    자유주의나 실존적 기반에 바탕을 두고 창작을 한 일군의 시인들에게도 이들 전쟁이 남긴 상처는 매우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흔적으로 읽히게 되었다. 김명인은 그 비극적 형상을 한국전쟁과 그 후의 잔상(殘像)에서 일구어낸 대표적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우리 사회의 어둑한 구석을 사실적 필치로 기록하고 낭만적 비가로 노래한 그의 시편들은 우리 다문화 시편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명인 시인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 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일곱 살 때 원장의 姓을 받아 비로소 李가든가 金가든가
    朴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그 말이
    아직도 늦은 밤 내 귀가 길을 때린다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詩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

    이 强辯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얼마만큼의 거짓으로나 매겨지는지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고 가며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욱 괴로운 너의 모습 너의 말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 리 없는 合衆國이고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
    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 김명인, 「동두천 4」 전문(<동두천>, 문학과지성사, 1979)

    원래 ‘혼혈’에 대한 한국인의 보편적 인상은 전쟁의 폭력성과 인간 욕망이 남긴 덧없는 상흔의 이미지로 집약된다. 흔히 ‘동두천’으로 상징되는 미군 부대와 그들의 욕망이 한국 여성들과 뒤얽히는 장면은, 혼혈이라는 비극적 씨앗은 물론, 미군 범죄로 상징되는 폭력의 거대한 성채로 우리에게 각인되기에 이른다. 시인의 눈에 ‘동두천’은 그러한 비극의 진원지이자 상처의 이미지로 가득차 있는 폭력적 공간이다.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한 혼혈 여자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화자는 적는다. 그 아이는 “연애를 하고/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 아이는 한때 웅변대회에서 모두를 울게 하던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일곱 살 때 원장의 姓을 받아 비로소 李가든가 金가든가/朴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하는 말을 박아놓고는 지금도 그 목소리로 시인의 “귀가 길”과 “詩”를 때린다.

    그 아이의 앞으로의 생 역시 험난한 세상에서 예측 가능한 하강 곡선을 긋지 않을까 하고 화자는 느낀다. 그렇게 그 아이의 진실은 선생인 화자도 매길 수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 있다. 따라서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고 가며/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라는 동류감이 화자에게 생겨나는 것은, 그 아이의 비극이 꼭 그 아이만의 것은 아닐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전쟁과 미군 주둔이 남긴 거대한 상처인 ‘혼혈’과 그들의 사회적 하강, 화자는 이 같은 폭력성의 분위기를 차분하고 쓸쓸하게 직조함으로써,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 리 없는 合衆國이고/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라고 전쟁과 혼혈이 남긴 거대한 구멍을 묻고 있다.

    여기서 그 아이가 동경했던 “合衆國”과 시인이 가르쳤던 “국어”는 날카로운 긴장과 갈등을 형성하면서, 우리의 왜곡된 현대사를 우화적으로 증언한다. 이처럼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시에 나타난 혼혈 양상은 제국주의적 폭력과 함께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서 다문화 양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를 첨예한 동시대로 건너온 이들에게 확연한 기억으로 자리하는 시인이 하종오일 것이다. 특별히 그의 시편들이 보여준 밀도 있는 경험적 실감과 강인한 민중적 생명력 그리고 우리 입말의 리듬에 맞추려는 철저한 운문 정신은 오래도록 그의 시를 민중적 서정의 한 정상으로 각인하게끔 하는 원천적 힘이 되었다.

    그런 그가 최근 펴낸 <아시아계 한국인들>과 <국경 없는 공장>은, 전자가 한국에 정착한 아시아계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었다면, 후자는 한국에 체류한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적극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다. 소설 부문에서 김재영, 공선옥, 전성태, 방현석, 손홍규 등이 이미 이들의 삶에 대한 세세한 형상화를 이루었지만, 시에서는 하종오의 시적 성취가 단연 돋보인다.

    하종오 시인

    남자가 카트를 밀고
    여자가 야채를 골라 실은 그들 동남아인 부부는
    역시 내가 카트를 밀고
    아내가 야채 골라 싣는 우리 부부를 앞섰다
    그들 동남아인 부부가 생활용품 코너에 멈춰 서서
    면봉 이쑤시개 나무젓가락을 들고
    라벨을 살펴보다가 심드렁하게 내려놓고 간 뒤
    우리 부부가 뒤따라가 그걸 카트에 실었다
    그들 동남아인 부부와는
    이따금 동네에서 스쳐지나 다닐 때
    골목 안 이웃집 지하 봉제공장에서
    미싱일 하겠지 짐작만 했을 뿐
    통성명할 일이 없어
    동남아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 부부가 앞서서 음료수를 카트에 실으니
    뒤이어 그들 동남아인 부부가 음료수를 카트에 싣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으로 보고 할인마트에서 나왔다
    나는 집에 돌아와 쇼핑백에서 물건을 꺼내 찬장에 넣다가
    면봉 이쑤시개 나무젓가락 라벨을 읽어보고는 고개 끄덕였다
    제조국가가 베트남이었다

    ― 하종오, 「베트남산(産)」 전문(<국경 없는 공장>, 삶이 보이는 창. 2007.)

    이 시편에서 베트남산(産)은 이중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하나는 베트남 출신일지 모를 이들 부부가 자신의 출신지를 부정하면서 스스로 한국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환기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베트남’으로 대표되는 동남아 전체를 그들도 지우려 한다는 점을 환기한다. 그 점에서 베트남은 이중의 타자의 위치에 있다. 이 동남아인 부부는 “생활용품 코너에 멈춰 서서/면봉 이쑤시개 나무젓가락을 들고/라벨을 살펴보다가” 그것이 베트남산임을 알고는 그대로 내려놓는다.

    하지만 “골목 안 이웃집 지하 봉제공장에서/미싱일”을 하지 않을까 짐작만 되는 이 타자들을 안아들이느라 화자는 그들이 내려놓은 물품들을 구입하고 그것의 “제조국가가 베트남”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처럼 국가간 노동시장 유연화로 말미암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량 유입에 따라, 우리 사회 곳곳에는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안의 타자들이 눈에 곧잘 띈다. 자본이 매개되어 다시 차별의 논리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존재 방식에 대해 시인은 ‘우리 안의 제국주의’가 있지 않은가를 성찰적으로 묻고 있다. 더불어 다문화 양상이 소수자 문제를 넘어 전면적 사회 장악의 면모를 드러내면서 그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가 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계속>

    필자소개
    한양대 교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