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비정규직 운동 : 고민의 탐방기
    [노동과 희망] 계급연대 핵심은 반(反)착취의 가치 연대
        2012년 09월 24일 0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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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으로

    간만에 울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마음은 무겁고 몸도 따라 무겁다. 대법원의 두 번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은커녕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멈추지 않고, 추가 정규직화 부담을 덜기위해 2년 미만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에 대해 계약 해지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정규직 지부와의 교섭 막바지에 정몽구 회장은 사내하청 노동자 3,000명을 연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겠다고 밝혔고, 언론은 이를 ‘통 큰 결단’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것이 참으로 치사한 ‘꼼수’임은 곧바로 드러났지만, 이 ‘꼼수’의 내용이 거의 그대로 원청 노사교섭에서 합의되고,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결국 이 사안은 분리해서 따로 다루기로 하고 ‘주간연속 2교대제’를 포함한 합의안이 나왔고, 거의 모든 현장조직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투표에서 과반수를 조금 넘겨 통과되었다. 내가 울산으로 향한 날은 그 조인식이 있는 날, 비록 형식적이긴 하지만 금속노조 위원장이 체결권자이니 본조 간부들도 아마 올 것이었다.

     두 개의 이데올로기, 그 효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지만, ‘주간연속 2교대제’는 전체 제조업의 작업방식과 장시간 노동체제에 큰 변화를 불러올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화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교섭 결과 그들이 “이번엔 얼마를 손에 쥐나”가 화제였다. 적게는 2,300만원에서 많게는 2,700만원까지라던가. 이번에도 그들은 웬만한 노동자 1년치 임금을 추가로 챙겼다. 평균 연봉이 얼마고, 연봉 1억 이상의 노동자들이 얼마라는 등의 이야기는 이미 식상한지 오래다.

    귀족 노조, 귀족노동자 이야기 나온 지도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본의 이데올로기임을 지적하기 어렵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변했다. 지금은 이 이데올로기가 노동진영 전체에,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기에는 현실의 양적 격차가 너무 커졌다. 양이 쌓이면 질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건 그렇다 치자. 내 머리를 무겁게 한 것은 그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 이런 것들이다. ①현대차와 같은 대기업 비정규직은 오히려 중소 하청기업 정규직보다 낫다. ②그들의 운동은 정규직이 되기 위한 개인적 욕구의 반영이다. ③정규직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조합활동 열심히 안 할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귀족 노동자’ 이데올로기와 대기업 ‘귀족 비정규직’ 이데올로기는 한 세트를 이룬다. 전자는 후자의 전제가 되고 후자는 전자를 강화한다. 양자는 함께 “원청 대기업 노동자들이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착취한다”는 더 큰 이데올로기의 일부가 된다. 사회적 주요 쟁점이 자본/노동 관계에서 자본/자본 관계와 노동/노동 관계로 전환된다. 자본/자본 관계는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 이슈로 수렴되고, 노동/노동 관계는 ‘정규직 양보론’을 거쳐 이제 ‘대기업 비정규직 양보론’으로 나아갈 판이다. 이것이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잡으면 노동운동은 더 이상 주체적으로 상황에 개입할 수 없다. 이미 우리 운동이 그 상황에 있다고 보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은 미련이 있다. 막바지 퇴조기의 고통 속에 있는 노동운동이지만, 이후의 반격(fight back) 지점이 어디일지는 생각해야 할 것이기에.

    현대차 비정규직, 다 끝난 운동이다?

    교섭 와중에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가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우선적으로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이 있었고, 그것이 사람들의 회의를 더 깊게 한 듯하다. 비정규직까지도 편협한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주도권 경쟁 속에 있는 비정규직 운동 내 활동가 조직들이 비타협적 갈등관계에 있어 조합원들의 이기심을 오히려 부추기고 문제를 더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서울에서도 그랬지만, 울산에서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지역 활동가들은 ‘이제 사실상 끝난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파로, 이해관계별로 분화되어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의 비정규 조직은 이후 특별교섭 과정에서 회사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떤 안을 던지느냐에 따라 계속 흔들리고 분열될 것이다. 결국 원칙을 고수하다 부서지거나 굴욕적인 방식으로라도 정규직화(의 가능성)를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그런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고민의 중심에 있는 비정규 주체들을 만났다. 비정규지회 활동가, 해고 활동가, 그리고 몇몇 지역의 주도급 활동가들. 이후 몇몇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주체들과의 대화 내용을 먼저 적는다. 사정에 따라 민감한 내용은 빼거나 간추리고, 발언자 이름도 명기하지 않는다. 내용과 순서도 편집한 것이다.

    <대화>

    문: 우선 현재(9/5) 상황을 정리해보자. 사내하청 의제 분리했고, 정규직은 타결하여 오늘 조인식 한다. 여기까지 이르렀는데, 어떤 상황이라 보는가?

    답: 교섭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겠지만, 1, 2 주 후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 추석 전에 좀 진행될 것이다. 과거 경험으로는 날을 몰아 집중적으로 교섭할 수도 있다고 본다. 회사도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교섭은 그렇고, 조합원 상태, 현장 상태는 아시겠지만 별로 좋지는 않다. 사내하청 8천 중 조합원 천이백, 적극 참여 조합원은 그 중 약 4백 정도? 조합원 다수도 ‘신규’로라도 정규직으로 채용되기 바랄 것이다. 교섭이 시작되어 채용의 시기, 비율, 조건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크게 동요할 것이다.

    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비정규지회의 생각은 무엇인가?

    답: 함께 연대했던 정규직 활동가들도, 비정규 지회의 간부들 중에서도 정규직 타결 이후 비정규직 동력만으로는 회사의 양보를 끌어낼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교섭 분리는 과도했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 정규직 지부를 매개로 3각 교섭을 해온 셈이고, 대부분 원청 노사가 담합한 결과를 비정규에게 강요하는 구조였다. 이번에는 어떻든 그것을 제친 것이다. 원청과의 직접교섭을 위해 넘어야 할 다리 하나는 넘었다. 물론 특별교섭도 또 하나의 난관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은 불가능했다. 정규직 활동가들도 포기할 것이 아니라 더 지원해야 하지 않나?

    문: 비정규지회의 요구는? 간략히 정리해보자. 그 이유도 함께.

    답: 회사는 불법파업을 대법 판결에 따라 인정하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 공정 재배치는 안 되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받아들인다. 이 내용이다. 이유도 분명하다. 두 번의 대법 판결에도 불복하다는 것은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 상식을 거스르는 것이다. 3천명 신규채용을 용인하면, 현대차 내 나머지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제조업 사내하청 100만을 팔아먹는 것이 된다. 10년 동안 투쟁해왔는데, 이 투쟁의 자기 역사성을 다 부정하는 것이고 비정규직운동 전체의 후퇴다. 3천 정규직이 이후 얼마나 운동에 기여할까? 안 될 거다. 빠르게 노쇠화하고 있는 정규직 운동, 더 가속화할 뿐 아닐까?

    문: 조합원 우선채용 이야기는 무엇인가?

    답: 8월 26일 확대운영위원회에서 나온 이야기다. 신규채용이 아니라 ‘전환’을 전제로,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내부 논쟁, 비난도 심하다. 이건 양보안이고 결국 신규채용 받아들이면서 조합원 우선을 조건으로 할 것이라 의심하는 동지들도 많다. 우리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고, 전환을 단계적으로 하게 되면 조합원들을 우선하라는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고육지책’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교섭 중 원청노사 담합의 기로에 처해 그것을 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잘 설득이 안 된다. 결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문: 교섭이 시작되어도 회사는 정규직 교섭 다 끝난 상황이니 이 교섭 서둘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답: 이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도 쟁점화될 것이다. 검찰도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현재 소송이 줄줄이 걸려 있어 결과가 나올 때마다 회사는 부담이 될 것이다. 헌재 결과도, 언제일지 모르나, 나올 것이다. 회사도 털고 가고 싶을 것이다.

    문: 그러면 회사가 양보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답: 신규채용 방식은 절대 고수하려 할 것이다. 숫자나 시기 정도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사내하청 불법성은 인정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공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활용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대상자 8천 중 3천 신규채용하면 나머지 5천, 지금 촉탁계약직이 1,500이니 대략 7천 정도는 비정규직으로 두어야 생산량 변화에 따른 유연성 확보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신규채용의 전제조건이 사내 전환배치, 공정재배치다. 타타대우처럼 현행법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블록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본다.

    문: 이후 진행 과정을 한번 예측해보면?

    답: 지부와의 단협에 의해서도 신규채용은 해야 한다. 봄에 약 2백 뽑아 현장 투입까지 3개월 정도였으니, 나머지 8백 9월 말에서 10월 중순에는 채용에 들어가야 한다. 정규직 지부도 3천 신규채용에 의지가 있었지만 비정규 단위의 항의에 발목을 잡힌 거라면,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 이번 투쟁에 따른 징계 문제, 그리고 이미 두 곳 공고된 업체 폐업 문제, 3천 제시안 수용 여부, 회사 일정에 따른 신규채용 발표, 이 4가지가 맞물려서 지회를 압박할 상황이 올 것이다. 이걸 잘 견디고 넘으면 해고되면서도 끝까지 갈 수 있다. 그게 우리가 보내는 사회적 메시지가 되고, 여기에 사회적 연대가 얼마나 강하게 형성되는가에 따라 가닥이 잡힐 것이다. 연대형성이 안 되면 쌍용차처럼 그냥 가게 될 거고. 지회가 이 고비를 못 넘고 타협할 수도 있다. 즉 신규채용 조건 정도 조정해서 수용하고, 내부적으로는 1사1노조로 가거나, 그러면서 신규채용 형태로 하도급 문제 정리하는 것이 사회적 기준이 되어 버리는 거다. 이 두 길이 있고, 지회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 한 걸음 물러서서, ‘2교대제’ 합의와는 어떤 관계인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가?

    답: 비정규직 입장에서 보면, 3가지 모두 걸린다. 인원 충원 문제, 노동강도 문제, 복지문제 모두. 지금 비정규직 노동강도는 정규직의 120% 수준인데, 7% 이상 상승하면 극에 달할 거다. 복지문제도 당장 출퇴근 문제부터 어떻게? 하지만 이번 합의에 비정규직은 크게 신경 쓸 여력이 없어 그냥 넘어갔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문제 발생하겠지.

    그런데, 정규직 지부가 공장 내 전환배치를 열었다. 나쁘게 보면 3천으로 정리하는 건 지부의 요구이고 회사는 공정 재배치를 원한 것이라 볼 수도 있고. 그렇다면 이것은 담합이다. 즉, 공장 내 부서 간 전환배치는 공정블록화와 연동된다고 본다. 2015-16년까지 8-8로 가는 과정에서 이 시스템을 완성하려는 계획 아닌가? 지부 집행부가 ‘심야노동 철폐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회사의 요구를 100% 수용한 것 아닌가 의심되는 부분.

    문: 비정규직 조직 내에 입장의 차이가 있을 터인데? 해고자들 의견도 궁금하고.

    답: 3지회 중 한 곳은 신규채용 방식을 받고 정리했으면 하는 입장이 강하고, 다른 한 곳은 그 반대이고. 규모가 큰 울산이 문제인데, 지도부 입장은 원칙론이지만 조합원들 입장은 서로 갈린다. 현장의 생각은 조건 맞추어 수용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맞다. 따라서 몇 가지 기준에서 양보 못한다는 것은, 집행부 의지가 절대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회사는 해고자들은 일단 해당 업체로 복귀하게 하자는 것인데, 지도부가 이번 주 해고자들과 간담회 할 텐데, “업체로의 복귀는 없다”고 선언해 달라 왜냐면, 조합원들에게 전환을 위해 투쟁하자면 해고도 감수하자는 것인데, 그래 놓고 해고자가 업체로 복귀하면 웃기는 일이 된다. 싸울 만큼 싸우고 져서 밀려나면, 정몽구 회장과 담판을 요구하면서 서울 양재동에 가마솥 걸자. 그 정도는 보고 가야 한다.

    문: 가능한 이야긴가?

    답: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정도는 내다보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득하려 한다.

    문: 정치적 엄호가 절실히 필요한 사안이다. 정당이나 정치인들과 관계는?

    답: 진보정당들은 지금 그렇고···. 개별 의원실 단위로 접촉이 있다. 민주당의 입장은 잘 모르겠다. 박00 박사가 자주 왔었는데, 그의 안이 이번 회사 안과 거의 같다고 느껴지고, 민주당에서도 그런 정도 내용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적절히 봉합하고, 사내하도급법은 받자는 분위기 아닐까?

    문: 사회연대의 강화 역시 매우 중요한데, 그것을 위해서는 싸움의 폭이 훨씬 넓어야 할 것이다. 지금 상황은 당사자의 이익의 크기와 연대의 폭이 반비례할 가능성이 큰, 안타까운 형국이다. 대기업 비정규직, 특히 현대차 비정규직에 대한 특수한 시각, 혹은 이데올로기기도 작용하고 있다. 이 부담이 오롯이 비정규 주체들의 어깨를 누르는 모습이다. 어떻든 연대 확산을 위한 메시지가 이 운동 내에서 나와야 할 듯하다. 가능할까?

    답: 그런 고민 심각하다. 원하든 아니든, 이 싸움의 결과가 사회적 기준이 될 것이니까. 지금 당사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번에 수정안을 말하면서 욕 왕창 먹었다. 집중포화라 할 정도로. 원청노사 담합 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말했으나 믿어주지 않는다. 어떻든 절대로 기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우리가 불신임 당해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래도 간다. 그런데 그 투쟁의 부담이 모두 주체에게 있고,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다. 50명 해고자가 생계비 없이 1년인데, 아무도 관심 없었다. 이번에도 최소 100명은 해고된다는 각오인데(“지도부 방침이 그렇다”, 웃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역반응도 있다. “밖에서 원칙 강조하고 논평하는 X들, 믿을 수 없다”, 이런 역반응이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추스를 것인가가 과제다.

    문: 금속노조는?

    답: 영향력 없고, 중재자도 못 된다. 내려 와도 밖에서 겉돌 뿐이다. 지금은 미비실도 개입력이 없음을 알고 포기 상태라 한다. 금속 간부들이 지회 간부들에게 무시당한다. 평소 지회의 요구는 안 들어주고, 사안이 있을 때는 중재자가 되어 딱 나타나니까, 신뢰가 없다.

    문: 다른 연대 단위들과의 협력 관계는?

    답: 아까 말씀하신 사회적 메시지, 이런 문제 때문에 민교협, 참여연대, 건약, 건치, 참교육학부모회 이런 데에 연대제안서 보내고 지역 단체 다 찾아갔다. 해고자들이 울산 16개 지역, 전체 20개 지역 다 돌았고, 투쟁사업장은 다 찾아갔다. 함께 플래카드 걸고, 투쟁방침 걸고, 집회 연대발언 하고, 컨셉은 “비정규직이 기본은 있더라” 이런 거였다. 어느 정도 효과는 본 듯하다. 이런 문제를 사회적으로 쟁점화하는 것도 우리 몫이 아니냐? 절반은 성공, 절반은 과제로 남았다고 본다. 근데 잘 안 움직인다. 참여연대든 어디든. 시민사회단체들은 무엇인가 대책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하는 강박이 있나 보다. 뭔가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고. 그리고 원칙이 맞기는 한데, 그게 과연 회사가 수용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이 강한 듯하다.

    문: 결국 주체의 상태 문제겠다. 조합원들, 그리고 내부 활동가들. 어떤가? 그리고 마무리 발언도 부탁한다.

    답: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다.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10년인데, 정규직 갈망 심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밟는 것이 되면 안 된다. 또 하나는 불법파견을 인정 안하는데, 우리 평균 근속이 10년, 정년퇴직 앞둔 조합원도 많다. 10년의 착취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 물론 이번 아니면 언제 정규직 되겠나, 이런 불안감 많은 것 사실이다. 10년 투쟁해도 안 되었는데, 올해도? 그래서 이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자고 설득하는 중이다.

    활동가들을 보면, 지금 현장에는 거의 모든 정파가 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갈등, 대립 많았다. 얼마나 지지고 볶았나? 근데, 올해는 좀 다르다. 협력하자. 우리 싸움으로 조합원들이 흔들리면 안 된다. 그래서 서로 말을 아낀다. 초기 주장을 접고 다른 입장 수용하고, 단합하고. 이번 판은 그게 차이다. 주장하면 실천도 하자. 그런 자세가 보이니까 신뢰도 높고. 그리고 지도부도 잘 버티는 중이다. 과거 깨끗이 잘못 인정하고,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다, 이렇게 나서는 자세가 있다.

    부탁이 있다. 우리가 여론화에 젬병이다. 현안에 집중하기에도 손이 딸린다. 그 역할 도움이 필요하다. “원하청 공동투쟁” 구호를 외치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주체가 주체를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원하청 연대는 멀고 종속관계다. 정도 차이일 뿐. 누군가 “지금 비정규직의 요구는 실제로 무리한 것이 아니다”, 이걸 증명해주면 좋겠다. 왜 이렇게 요구할 수밖에 없는지, 정규직이 어떤 태도와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그걸 누군가가, 전문가 집단이면 좋겠고, 양비론적 시각이 아니라 비정규 주체적 입장에서 분석하고 주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뒷 이야기

    (1)
    두 연구자와 만났다. 모두 노동문제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 분들. 두 사람의 첫 마디는 각각 이랬다. (A) 조합원 우선 채용을 요구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B) 원칙만 고수하다가 결국 대책 없이 물러앉는 것, 이번에는 다를까? 모두 비정규 주체들이 이제는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하고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내가 물었다. 그럼, 전환 포기하고 신규채용 받고 끝냈어야 했나? 비조합원➝관망 조합원➝참여 조합원➝해고자 순으로? 그게 사회적 연대의 원칙인가? 모두 침묵·····.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나, 우리 모두 앞에 말한 두 개의 이데올로기, 즉 대기업 정규직 ‘귀족 노동자’ 이데올로기와 대기업 ‘귀족 비정규직’ 이데올로기로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듯했다. 게다가 상당한 수준의 ‘정파 혐오증’도 공유하고 있는 듯했다.

    긴 이야기 끝에 A는 현대차 비정규직 활동가를 직접 만나보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나서면, 누군가가 나서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제대로 전달해주기를 원하는 주체들에게 다소는 힘이 될 것이다. B는 지금의 투쟁주체의 진정성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결과에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을 고수했다. 노조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연구자로서, 그의 비관은 몇 년에 걸쳐 누적된 기대와 실망의 경험으로 단단히 뒷받침되고 있었다.

    (2)
    현대차 자본이 하려는 일은 무엇일까? 자본의 욕구에 한정이 있겠는가? 최대치로는 아마도 일본의 경우처럼 제조업 파견의 전면 합법화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 타산이 나올 상황이 아니라면, 현상을 동결(freeze)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➀배치전환이든 공정재배치든 합법도급의 조건을 만들어, 상당수의 비정규직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➁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신규채용’의 통로를 두어 완충지를 만든다. ➂미시적 유연성은 비정규직 중 단기고용자들을 통해 확보한다. 생산직 노동자의 정규직 입직 통로가 기업 외부가 아니라 내부 하청 비정규직을 향하게 되면 그 효과는? 좋은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에 잘 적응하고 견딘 소수에게만 선별적으로 열린다는 메시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메시지. 그런 것이리라. 아마도 완성차를 중심으로 1차 밴드 정도까지는 이 구조의 확산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3)
    밤늦게까지 지역의 주요 활동가 몇 명과 대화를 가졌다. 현대차는 물론, 지역과 전국조직에 이르기까지 두루 활동의 경험을 갖춘 이들 역시 답답함과 무기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현대차 정규직인 이들 역시 앞의 두 이데올로기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정규직 운동은 이미 끝났고, 비정규직 운동은 그 뒤를 빠르게 따라가고 있으며, 이번을 고비로 아마도 끝날 것이었다. 정규직 ‘귀족 노동자’ 이데올로기를 반박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더니, 순식간에 반박 댓글이 계속 올라오더라는 경험담도 있었다. 저주에 가까운 비난 댓글이 많았다고 했다.

    비정규 주체들에 대한 불신은 이들 역시 주로 ‘정파’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비정규 주체들을 그리 보면 안 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한 활동가 K는, 토론 내내 그 근거를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했다. 틈틈이 그들을 만나며 지내는 K의 진정성, 즉 그가 비정규직과 ‘정서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했지만···. 그것이 교육공간이든 상담공간이든 혹은 <민중의 집>이든, 자기 근거지를 가진 호흡이 긴 지역 활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어 보였다. 더 이상 ‘노조’도, ‘당’도 아닌 듯했다.

    (4)
    노동의 연대, 계급연대가 확장되면 사회연대(social solidarity)의 중심이 선다. 계급연대가 무너지면 사회연대의 가치 중심이 바뀐다. 계급연대의 핵심인 반(反)착취의 가치 대신에 공정성, 사회정의 등의 자유주의적 중산층의 가치가 그것을 대신한다. 입장의 차이, 소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착취의 요구와 투쟁이라면 모두 함께 연대하는 운동의 기풍이 살아 있던 기간이 있었다. 이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정의롭고 공정한 착취’일지 모른다. 2012년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동이 노동을 향하여 “같이 살자!”고 외치는 기막힌 형국에 있다.

    (5)
    이 글을 쓰는 지금, 현대차에서는 비정규직과 회사 용역이 맞붙었고, 서른두 살의 비정규 노동자가 스스로 목을 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병든 부친과 동생을 부양하는 가장이었고, 10년을 하청업체에 일했다 한다. 노조 활동에도 열심이었고, 현대차와의 소송에도 참가하고 있었다 한다. 다리를 다쳐 3개월을 쉬고, 복귀하자마자 투쟁에 참여했었다 한다. 사랑하는 여인도 있었다 한다. 유서도, 유언도 없었다 한다. 연대가 무너져 고립된 기업의 울타리, 그 도가니 속에서 이렇게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나 스스로가 싫다. 이제는 좀 다른 세상을 말하고 싶다.

    필자소개
    임영일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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