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후퇴'는 생명의 새로운 '전진'
    [책소개]『아름다운 후퇴』(전희식 /자리)
        2012년 09월 22일 01: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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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기후, 이상 질병, 이상 사회 속에서 ‘이상 생활’에 빠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일이다. 재산, 교육, 건강, 집, 자동차, 직장, 전자기기, 지혜, 자존심, 성공 등 삶의 모든 욕망을 벗고 기꺼이 불편을 입는 일이다. 참된 행복, 참된 삶의 길은 바로 ‘아름다운 후퇴’에 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한 시골생활을 담담히 써내려간 《똥꽃》으로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해주었던 ‘농부’ 전희식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가 18년 귀농생활을 통해 깨달은 농사, 살림, 마음공부, 농업, 문명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삶으로 농사를 짓고, 삶으로 환경을 지키는 ‘농부’ 철학자 전희식의 삶과 철학이 담긴 책의 제목은 ‘아름다운 후퇴’이다.

    모두가 성장과 발전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할 때, 그는 우리에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설 것을 권한다. 지금 가진 것, 지금 이룬 것을 고스란히 내려놓자고 말한다. 그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물질문명이 초래한 위기 앞에 막바지에 다다른 인류문명을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의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농부 전희식이 내려놓자는 것에는 단지 명예와 권력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재산, 교육, 건강, 집, 지혜, 몸, 능력, 자동차, 직장, 꿈, 전자기기, 자존심, 가전제품 등 삶의 모든 부문이 해당한다고 말한다.

    욕망이란 이름으로, 풍요란 이름으로, 편리란 이름으로 포장된 숱한 물질문명의 끝이 결국에는 소외와 좌절과 실패와 분노로 귀결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길이 우리의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뒤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후퇴’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전진’을 의미한다. 길게는 200여 년의 자본주의 역사, 짧게는 수십 년의 고도성장사회가 인류문명 전체의 발전방향을 놓고 보았을 때, ‘후퇴’일 수 있다. 파괴된 지구환경, 파괴된 공동체 문화는 인류의 행복지수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성장과 경쟁 일변도의 사회는 대다수의 불행과 좌절을 발판 삼아 허울뿐인 경제지표만을 남기고 있을 따름이다.

    20세기 인류문명의 핵심인 석유문명과 원자력문명은 오히려 인류문명이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허상에 불과하다. 이처럼 뒷걸음질치고 있는 현대사회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삶의 방향을 정반대로 돌려세우는 것이다. 그러한 ‘전환’만이 인류문명의 새로운 전진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 바로 ‘아름다운 후퇴’에 담겨 있다.

    《아름다운 후퇴》는 농부 전희식의 18년 귀농생활의 종합보고서다. 1980년대 고난과 투쟁의 시대를 누구 못지않게 ‘혁명적’으로 보냈던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 1994년 전북 완주로 귀농했다. 그러던 중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기 위해 2006년 전북 장수로 내려왔다. 18년간 자연재배만으로 농사를 지으며 고집스런 농부로 살았던 그는 농사의 정신, 농부의 삶을 통해 공동체와 생명, 평화를 갈망하는 생태운동가로 거듭 났다. 그 18년의 생활이 오롯하게 담긴 책이 바로 《아름다운 후퇴》인 것이다.

    《아름다운 후퇴》에서 농부 전희식은 귀농歸農, 귀공歸共, 귀인歸人, 귀신歸神의 4귀의 삶을 담고 있다. 밥 한 그릇의 이치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마을 속에서 참다운 공동체 정신의 부활을 찾는다. 참 사람, 본래 본성으로 돌아가 하늘의 뜻에 따라 사는 지혜를 구한다. 바로 그곳에 우리가 찾는 참 행복이 있음을 자신의 18년 귀농생활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농부 전희식은 아이들과 함께 꾸려가는 ‘100일 학교’와 귀농운동본부의 ‘귀농학교’를 통해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을 모색한다. 이미 인류를 망치는 ‘공업’이 되어 버린 농업의 현실을 아프게 드러내면서 새로운 미래를 찾아 나선다. 구제역 사태를 맞아서는 공장식 축산과 육식을 금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조작된 원자력 신화를 폭로하며 탈핵을 위해 ‘절약’과 ‘불편’을 생활화하자고 호소한다.

    이러한 그의 모색과 호소는 대단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18년 귀농생활의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모색이며, 땅으로 돌아가 삶의 서사를 복원한 그의 지혜가 어우러진 호소이기 때문이다.

    농부 전희식의 《아름다운 후퇴》가 전하는 감동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삶에 천착한 지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재미, 현장에 기반을 둔 대안 제시는 이 책의 장점이자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처럼 환경, 생태, 생명, 마음공부, 평화를 한번에 아우르는 우리 시대의 양서(良書)를 얻었다. 이 책은 환경운동, 생태운동, 생명운동의 좌표와 비전, 대안을 외국의 번역책이 아닌 우리의 현실에서 건져 올린 역작(力作)으로, 새로운 미래운동의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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