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애 중지에 밴 첫 굳은살 같은 책
    [서평] 『디아스포라 기행』(서경석 /돌베개)
        2012년 09월 22일 01: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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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자의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본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한다.(『世界大百科事典』, 平凡社, 1981) 그러나 그것은 물론 사전상의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좀더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diaspora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13쪽

    나는 의왕시에 10년 간 살았다. 그러다 불어 닥친 재개발 열풍은 나를 홍성이란 시골로 쫓아냈다. 떠나면서 유일하게 들고 갔던 것은 소소한 추억들이었다. 10년이 더 지나 내가 대학생이 된 후, 추억들과 재회하고자 다시 의왕시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러나 내 어릴 적 살던 동네는 더 이상 나의 고향이 아니었다. 희미했던 추억들이 하나하나 조각났다.

    그 후 나는 의왕시를 거쳐 갈 때마다 눈을 질끈 감고는 한다. 처음에는 이 책이 그런 내 아픔을 글로 승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했다. 그 외에 ‘디아스포라’라는 단어와 나 사이에 기대될만한 공통분모는 없어 보였다. ‘디아스포라’는 재개발이 끝난 내 고향만큼이나 낯선 단어였다.

    그렇게 책을 폈으나 가졌던 일말의 희망마저 날아가는 듯했다. 책에서 그리고 있는 ‘디아스포라’는 보다 굵직한 것이어서 내 경험과는 거리가 있었다. 제도화된 폭력, 악의없는 실수, 타자화. 일상이 무거운 족쇄가 되어 디아스포라들을 옭아매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족쇄가 살을 뚫고 뼈를 죄여오듯 그들의 정체성을 압박해왔다. 이상을 잃은 많은 디아스포라들은 자살을 택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그려낸다. 나는 그들에게 닿을 수 없었다. 그들의 심연을 이해하기에 20년 된 나의 감수성은 너무나도 짧았다.

    “이렇게 나를 이 세상에 잡아매두는 끈들은 그 어떤 것도 인공적이고 불투명한 것이다. 내가 ‘죽음’을 향해 몸을 내밀었을 때 그 끈들이 나를 꽉 잡아줄 것인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내 쪽에서 손에 쥐고 있는 끈을 살짝 놓으면 그걸로 그만일 것이다. (…)그런 감정의 모습을 나는 디아스포라적이라고 생각한다.”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49쪽

    심연에 압도되어 꼼짝 못하던 나를 일깨워 준 것은 대학에서의 기억이었다. 어떤 궤적을 그리며 살든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거치는 통과의례가 있다. “나는 왜 혼자일까.” 이따금 더 센치해지면 수첩에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적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특별히 센치하지 않은 일상에서도 또한 고민의 잔상들은 발견된다. SNS야말로 결정적인 예시이다. Facebook에 들어가 친구들의 소식을 확인하는 것은 하루의 의식이다. 가끔 친구들과 있게 되면 누구누구와 같이 있다고 태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 류의 ‘나 잘 살고 있다’는 표식은 사실상 자기 자신에게 되뇌는 암시다.

    혹자는 페이스북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 마음 둘 곳을 찾고자 하는 욕망의 기형적 분출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사랑받고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론의 사실여부가 어찌되었든, 우리 대학생들이 하는 고민의 대다수가 심적 고향을 찾고자 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저 사람이 날 좋아할지. 저 친구가 인생의 동반자라고 부를만한 친구일지. 어떻게 하면 이 집단에 녹아들어갈지.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껴오지 않았는가. 심적 고향을 찾아 부유한다는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왜 그렇게 고뇌로 몸부림치던 인간이 이렇게 정돈된 표현을 하는가. 왜 좀더 끈질기게, 거친 몸짓으로 자기 고뇌를 분출하지 않는가.” 같은 책, 137쪽

    고단한 부유의 과정을 끝마치고 단단한 땅을 밟게 되는 구원의 순간은 언제 어디로부터 오는가? 대학교 3년차가 되어 경험적으로, 심정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내게 구원은 용기로부터 왔다.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것처럼 나 자신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왠지 싸구려 베스트셀러 제목같은 느낌이 나서 정말 쓰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안타까운 필력은 그 이상의 표현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과 제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부유한다는 느낌 없이, 존재 자체에 감사함을 느꼈던 때는 역설적으로 나의 모순적이고 비인간적이고 유치한 욕망들을 가감 없이 터놓았을 때였다. 물론, 3년 차가 되어도 여전히 모든 것에 용기를 갖고 살아가기란 어렵다. 하지만 너도, 미래의 나도 힘낼 것이다. 우리의 거친 몸짓이 숨겨야 할 치부는 아닐 테니까.

    ” ‘내부’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잘 이해해줄까? 과연 대화는 가능할까……. 실은 나는 낙관하지 않는다.” 같은 책, 9쪽

    글을 대강 마무리하고 다시 책을 읽어보다가 이 구절이 눈에 띄었다. 사실 내 글은 내부인의 폭력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확장시키면서 디아스포라를 마음대로 재정의했고, 그들을 경계의 안과 밖으로 강제이주시켰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화였다. 이것이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나의 거친 몸짓이었다면 아전인수일까. 어쨌거나 괜찮다. 우리는 성장해갈 것이다.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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