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가 새롭지 않은 7개의 이유
        2012년 09월 21일 08: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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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안철수 씨는 낡은 정치를 선도한다.

    안철수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낡은 정치, 과거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할 것이며 미래 가치를 대변한다. 기성 정당들은 낡은 정치구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문제를 치유할 주체라기보다 문제 자체의 일부이다. 안철수씨는 새로운 정치를 통해 새로운 한국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씨 지지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다른 국가들에도 안철수와 같은 닮은 꼴 인간들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기성 정당을 비판하며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며 정당정치에 도전했다. 그 결과 한편에서는 해프닝이 다른 한편에서 비극이 발생했다.

    최근 경희대에서 강연을 한 임마누엘 왈러스틴은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을 했다.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게 아니다. 미국에서도 로스페로와 같이 정당정치 외부에서 기성정치권에 도전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는 현재 세계자본주의 위기에 대해 기성정당들이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자 대중들이 새로운 리더를 찾는 과정에서 비롯된 일이다.”

    안철수 현상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의 로스페로는 기염을 토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런데 베를루스코니는 실제로 권력을 잡았다. 미디어 재벌의 신화를 동원한 권력 장악이었다. 그 이후 이탈리아는 국제적 망신만 당했다. 이명박씨는 현대건설 신화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의 권력 장악으로 여러 비극이 발생했다. 안철수는 이런 사례의 2012년 버전이다. 뭐가 새로운가?

    둘. 덧셈의 정치란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오묘한 조화다.

    안철수 지지자들은 그가 내세우는 덧셈의 정치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덧셈의 정치란 갈등, 반목, 상호비방과 배제가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도 함께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 정치권에서 갈등과 반목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상호 존중과 배려, 결과에 대한 승복의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설레이는 말인가?.

    그러나 안철수 지지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보주주의자들, 신자유주의적 반동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덧셈의 정치를 한다는 것은 보수주의, 신자유주의 반동과 함께 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는 박근혜가 통치하든 문재인이 통치하든 자신이 패배하면 그 통치에 합의하고 존중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간에 합의를 한다는 것은 이미 그들과 공유하는 것들 내부에서 경쟁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갈등이 없는 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안철수씨가 덧셈의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맨날 정권을 두고 날선 대립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상호존중의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박근혜이든 민주당이든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체계는 반동적 축적체제의 유지다. 이런 세력들과 덧셈을 하는 정치란 결국 이 흐름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반목을 넘어서서 상호존중, 결과의 승복은 좋게 보인다. 그러나 그게 진짜 좋은 것인가? 2008년도 이명박이 권력을 잡았다.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이다. 우리는 덧셈의 정치를 위해 그에게 승복해야 했는가? 아니면 노무현에게 노동자들이 승복해야 했었나? 덧셈의 정치가 현존하는 질서의 강화를 위한 것이라면 우린 당연히 뺄셈의 정치를 해야 한다.

     셋. 빌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못했다.

    안철수를 소개하는 일본 언론은 그를 한국에서 IT신화의 주인공이라고 소개한다. 더불어 그가 주도하는 경제체제는 창의성이 실현되는 지식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이는 안철수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지지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그들은 낡은 재벌체제를 보다 혁신적으로 전환시키고 새롭고 창의적인 자본주의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미국 나스닥 신화를 이끈 IT호황은 2001년 붕괴되었다. 더 나아가 창의적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도 2008년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를 치유하지 못했다.

    현재의 위기는 창의적 자본가들이 등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창의적 자본주의의 전형으로 만들어진 미국 자본주의가 바로 붕괴 직전에 있다. 미국은 양적완화라는 마약을 투약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지경이다.

    안철수 씨가 말하는 창의성이 살아 있는 자본주의라는 구호는 좋다. 그리고 이런 경제체제가 한국 경제를 활성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은 나에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창의적 자본주의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한국의 창의적 자본주의는 미국의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초라하다. 차라리 재벌을 키우는 게 더 현실적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주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착각이다.

    넷. 안철수는 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안철수씨는 출사표에서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는 그들을 통해 현실의 아픔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시민의 요구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민들이야 말로 자신의 스승이자 앞으로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갈 동력이라고 했다. 가르치기보다 듣고 배우는 자세로 대한민국을 이끌겠다고 한다.

    그러나 안철수씨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미디어 정치가 중심이 된 이후 한국의 지도자들 중 서민을 만나러 가지 않은 후보는 없었다. 그들은 시장을 갔고, 수해지역을 갔으며, 대학생들을 만나고 시민을 만났다. 그리고 시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서민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했다. 안철수의 행보는 그의 선배 정치인들이 했던 그대로 했을 뿐이다.

    더불어 안철수씨는 파업 현장에 한 번이라도 방문한 적도 없으며, 시위 현장을 찾지도 않았다.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박근혜는 형식적으로라도 전태일 동상을 찾았다. 그러나 안철수는 이것도 하지 않았다. 더불어 그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낡은 시대의 것이자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안철수씨처럼 실행한 전임 대통령이 있다. 그가 바로 이명박이다. 노무현씨는 아시다시피 노동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법정에라도 섰다. 물론 대통령이 된 후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이명박씨는 노동자 노짜라도 들어간 집단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 점에서 안철수씨의 선배는 바로 이명박씨다.

    다섯. 이명박도 성장과 복지를 이야기했다.

    안철수씨는 복지와 성장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간에 회자 되었던 복지 포퓰리즘과 거리를 두면서 안정된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강조한 것이다. 안철수씨는 성장을 통해 부를 창출하해야 하고 불안으로 고통 받는 대중들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것 하나를 배제한 채로는 성장도 복지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씨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명박씨야 말로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말했다. 747 공약은 성장을 통한 복지를 주장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명박씨는 성장은 투자를 낳고 투자는 일자리를 낳고 이는 노동자와 시민 모두의 복지의 토대가 된다고 주장했다. 747만 되면 구지 복지를 말하지 않아도 복지는 그저 굴러들어오는 것이라고.

    이명박씨와 안철수씨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공통점은 둘다 성장과 복지를 이야기한 것이다. 차이점은, 이명박씨는 성장의 방법을 얘기 했지만 안철수씨는 경제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명박씨가 제기한 성장 방법은 규제 철폐다. 시장에게 맡기면 뭐든 잘된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시장원리다. 물론 이것은 거짓말로 판정되었다. 그렇다면 안철수씨는? 아무런 말이 없다. 경제민주화는 성장담론이 아니다.

    이명박씨는 성장을 하면 복지가 저절로 굴러들어 온다고 한 점에서 복지론도 제시한 셈이다. 물론 이것도 거짓말로 판명된다. 그렇다면 안철수씨는? 성장도 하고 복지도 하자고 한다. 성장 자체가 곧바로 복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복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역시나 없다. 나는 안철수씨가 성장도 복지도 잘 못할 것이라는데 한 표를 기꺼이 던지겠다. 왜냐면 그에게는 방법도 수단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섯. 박근혜에게도 진정성이 있다.

    안철수씨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안철수씨는 정치가와 같은 이미지가 없다. 정치가들이란 무엇인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진정성이 없다. 그런데 안철수씨는 솔직 담백함과 진정성이 묻어나는 화법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큰 신뢰를 준다. 이것은 그가 기성 정치인들과 다른 새로운 리더라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그러나 이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솔직한 화법을 사용하는 점에서는 노무현을 따라갈 사람이 없고, 진정성이라는 점에서 박근혜 후보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기성정치가들이 말만 번지르르 하게 할진 몰라도 박근혜는 분명 솔직 담백함을 지녔다. 유신에 대한 그녀의 답변, 인혁당에 대한 그녀의 답변은 솔직함의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는 진정한 독재자의 딸인 것이다.

    누군가 솔직함을 지녔다고, 진정성을 지녔다고 그가 대단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솔직함이나 진정성은 무엇을 향해 있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판정되어야 한다. 박근혜씨는 박정희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판단으로 인해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그렇다면 안철수씨는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어떤 솔직함과 진정성을 말했나? 그가 한 것이라고는 고작 낡은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그의 솔직함은 어떤 점으로도 진보의 화법과는 관련이 없다.

    일곱. 모순의 해결 없는 치유는 기만일 뿐이다.

    안철수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국 사회는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자신은 불안을 잠재우고 한국사회가 내일을 긍정하는 그런 사회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희망의 어법을 통해 내일을 긍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삶은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씨는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 사회를 불안으로 끌어 들이는 원인은 경제 위기이며, 이 경제위기의 근원은 바론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이다. 결국 현재의 고용불안과 저임금, 실업은 자본의 저투자, 비용 절감, 금융화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거나 해결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라도 만들지 못한다면 근원적인 불안은 치유될 수 엇다.

    안철수씨는 문제의 원인을 정치로 돌리고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낡은 정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정치를 바꾸면 한국 사회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를 바꾸는 것이 한국 사회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길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불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원인에 대한 진단이 없이 정치만 바꾼다는 것은 상황의 치유가 아니라 또 하나의 헛공약일 뿐이다. 정치가 원인이라는 그의 현실 진단은 그저 자신의 권력 장악을 위한 수사일 뿐이다.

    안철수에게 새로운 것이 없다고, 진보에게 새로운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비판적으로 제시해 보았다. 나는 안철수씨가 낡은 것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것으로 포장했을 뿐이라고 본다. 전혀 새로울 것은 없다. 새로울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재벌 신화가 아니라 아이티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이겠다. 그러나 이것 새로운 정치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그저 ‘미디어 정치’의 원리들은 조합하여 성공한 사례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좌파가 안철수 현상에 조금이라도 맞설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의 좌파의 모습은 말 그대로 초라할 대로 초라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좌파의 무리들은 자신이 초라하다는 사실인식조차 별로 없는 듯하며, 어떻게 하면 이 초라함을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기획조차 없다는 점이다..

    안철수를 비판하기는 쉽지만 좌파가 새로운 대안이 되기에는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운 현실도 모르고 그저 차이에만 주목하여 미분만 관심을 두는 한국 좌파의 모습을 보면 한 숨이 나올 지경이다. 이제 적분도 좀 하자. 우리의 원칙과 전망을 제시하고 이에 동의하는 다양한 세력들을 규합하고, 힘을 키우자. 이런 통합과 연대의 기풍을 만들지 못하면 언제나 우리는 볼라벤 앞의 선풍기일 뿐이다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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