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의 마음치유 이야기 ③
    "버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2012년 09월 21일 10: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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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어떤 주제로 토론을 하거나 입장을 밝힐 때는 논리적이고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한다. 그런데 심정을 말하거나 느낌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묵묵, 침묵이 흐른다. 비교하고 판단하고 추측하고 분석하는 머리로는 가슴에 물결치는 감정과 느낌을 알아챌 수 없다.

    소통은 머리에 가득 찬 생각을 가슴으로 표현할 때 만날 수 있는 선물이다. 왜냐하면 가슴 안에는 느낌이란 녀석이 살고 있는데 느낌은 맞고 틀리고로 판단할 수 없이 그냥 물결치고 흐르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잘 그 감정하고도 논쟁을 한다.

    ‘슬프다’ 고 말하는데 ‘왜 슬프냐고’ 따진다.

    ‘억울하다’고 토해내는데 ‘뭐 그 정도 가지고 엄살이냐’고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지쳐버린 내 가슴이 느끼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점점 딱딱해지고 두꺼워지고 무감각해져버린다.

    그래서 ‘느낌’을 만나보기로 했다.

    느낌을 만나는 훈련은 상대방의 느낌을 ‘그냥 그대로’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받아주는 것, 상대의 느낌을 듣고 물결치는 내 느낌을 찾아내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는 것. 듣는 귀가 두개고 말하는 입이 하나니까 듣는 것은 말하는 것의 두 배가 되어야 하는 것.

    둘씩 마주보고 앉아 지금 느낌, 있는 그대로의 느낌 하나를 툭 내던져보자고 했다.

    ‘너 보니까 짜증나’ 장난스럽게 던져진 느낌, 짜증나~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얼굴을 확 찡그린다. 그냥 있는 데로 받아보자고 토닥토닥하니까, ‘짜증나는구나.’ 라는 상대방의 말에 ‘네가 짜증난다고 하니까 나는 화나’ 더 큰 감정을 던진다. 가볍게 짜증난다고 말했다고 화난다는 감정으로 되받은 친구가 ‘어, 화나는 구나. 화난다고 하니까 겁나고 쫄리는데~’ 슬쩍 뒤로 물러서자 ‘겁나고 쫄리는구나. 겁나고 쫄린다고 하니까 싱겁고, 장난으로 말했는데 화난다고 해서 미안해’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미안하구나. 미안하다고 하니까 내가 더 미안한데~’

    순간 그룹이 파~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짜증난다고 했을 때 같이 짜증을 내고 쫄린다고 하니까 같이 쫄렸는데 둘이 미안하다고 하니까 그룹 안에 있던 긴장이 빠지고 웃음이 나온다.

    낯선 작업이지만 그룹이 진행될 동안엔 생각보다는 느낌으로 소통해보자고 약속을 했다. 동그랗게 무릎을 맞대고 앉아 머리가 아닌 가슴의 이야길 나누려고 하면 어색해지고 멀뚱멀뚱해진다. 말도 느낌도 생각까지도 멀리 도망을 가 버린 것 같은 표정이다.

    그래서 말이 아닌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던 크레파스로 평소에 좋아하는 색을 하나 쥐고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버리고 싶은 것’을 생각나는 대로 그려보았다. 사느라고 살아내느라고 내 안에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다 볼 틈도 없었던 시간들, 어릴 적엔 꿈도 있었고 젊을 적엔 패기도 있었는데 지금 내 안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려 놓은 그림, 그림조차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를 때는 투박하게 적어 놓은 글씨를 서로 바라보았다.

    버리고 싶은 것엔 ‘담배, 술 ,욕심’ 이 제일 많이 나왔다. ‘한진, 회사, 마음속 칼’을 그린 동지도 있었다. ‘아이들을 뛰지 못하게 하는 아랫집’ 을 그린 그림에선 모두 크게 웃으며 공감했다. ‘급한 성격, 모난 마음’ 등 자신을 향해 겨누는 비난이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갖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은 ‘시간, 여행, 느긋한 마음, 시골집’ 등이 많이 나왔고 무엇보다도 ‘돈, 복직’등을 가장 절실하고 다급하게 원하고 있었다. ‘돈’이 있고 ‘복직’이 되면 지금 갖고 있는 어려움, 난감함이 순식간에 사라질 일이었다. 동그랗게 앉아 심리치유를 받지 않아도 불뚝 새 힘이 솟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지, 이미 살면서 쌓아 놓은 무거움도 있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림을 그리던 한 동지가 ‘나는 가족과 여행을 간 기억이 한 번도 없다’며 ‘그냥 명절에 본가에 가거나 처가에 가는 게 전부였지 여행을 가려고 생각조차 안 해봤다’ 고 말했다. 자신은 동료들과 낚시도 가고 등산도 가고 했는데 가족들과는 뭔가 해보려고 는 안했다며 ‘집에서 속상했겠다. 내가 잘 해줘야 하는데 성질만 부렸’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또 한 동지는 갖고 싶은 것에 ‘행운’을 적었다. 자신은 참 행운이 없다고, 가는 공장마다 문을 닫았고 결혼해서 처음 얻은 집도 사기를 당했었노라고, 게다가 보증을 서서 힘겨운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면 자신에게는 행운이 빗겨간다고 말했다. 다들 그 친구에게 ‘행운’이 가득차라고 이미 지어놓은 이름을 바꾸고 ‘행운’이라고 부르자고, 자꾸 부르면 ‘행운’이 몸에 붙는다고 별칭을 바꿔주기도 했다.

    느낌을 만나는 또 다른 한 방법, 감정단어를 이어 표현하기를 하기도 했다. 먼저 기쁜 감정을 이야기 하는데, ‘앗 싸~, 오 예’ 등이 표현되었다. 어느 순간 한 동지에게서 기쁨 단어가 끊겨버렸다. 그 동지에게 기뻤던 순간을 이야기 하자고 초대하자 노조활동을 할 때가 가장 기쁜 일이였다는 고백을 듣기도 했다.

    기쁜 느낌에 이어 슬픈 느낌을 표현하고 슬펐던 일이 언제인지 묻자 한 동지가 ‘2월14일’ 이라며 운을 띠우며 막상 한진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을 때 자신은 심각하지 않았는데 가족, 본가, 어머니 등 울면서 전화하고 힘들어할 때 가슴이 먹먹하고 쿵 내려안더란 이야기가 나와 자연스럽게 해고와 연관된 이야기들이 한참 오고 갔다. 그러던 중 순하게 생긴 한 동지 ‘미워’ 라는 감정을 내어놓았고 아주 짧게 치료 장을 펼치기도 했다.

    치료 장은 지금 올라온 감정의 우물을 더 깊게 파는 과정이다.

    내 안에서 물결치는 ‘지금 여기’의 감정을 바라보는 과정이다.

    분하고 미운 얼굴로 누가 떠오르냐고 묻자 조심스럽게 ‘배우자’라고 말하며 자신이 가장의 역할을 강조하거나 내세우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 앞에서 자신이 너무 작아진다고, 아내가 그렇게 만든다고 이야길 했다. 아들이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데도 시험에서 아들이 올 백을 맞으면 핸드폰을 사 줄 수 있느냐고 자신에게 물었다고 했다. 설마 올 백을 맞을까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 진짜 아들이 올 백을 맞아왔다고,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 아내에게 핸드폰을 사주자고 했는데 아내는 한마디로 무시해 버려 난감하고 야속하더라고 말했다.

    아들에게 아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해를 받기는 했지만 그 다음에 아들이 공부를 할까 싶어 마음이 쓰인다며 속상해 했다. 지금 아내에게 어떤 마음이 드는지 물어보니 섭섭하고도 미안하다며, 자신이 아내에게 많이 위축되어있는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해고가 내 잘못이 아닌데 이렇게 힘겨운 상황을 만들게 된 자신이 안타깝다고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길 들은 동지들이 아내에게 화날 수 있다고 감정을 받아주었다.

    다른 동지가 힘든 아내의 입장을 이야기하자 또 다른 동지가 ‘그럼 아내에게 ‘미안해’ 할 것이 아니라 ‘고마워’ 해야 한다’고 마음을 보내주었고 한 참 감정에 머물러 있던 동지가 아내에게 ‘고마워. 당신이 있어서 힘나. 우리 이 상황을 잘 이겨내자. 그래도 그렇게 말할 때는 속상해. 내 마음도 알아줘’ 라고 말했다. 말하는 동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다른 동지가 집에 가서 아내에게 이야기해야겠다고, 고맙다고도 이야기 하고 미안하다고도 이야기하고 사랑한다고도 이야기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주로 마음은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지만 실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도 오고 갔다. 과정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말도 나왔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었다. 게 중에는 ‘이게 뭐냐’며 불편해 하기도 한다. 아마도 감정을 만나고 마음을 만나는 일이 성가시고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슬그머니 빠져나간 동지 얼굴이 생각난다. 꺼벅 꺼벅 소같이 맑았던 그 동지의 두 눈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다.

    필자소개
    홀트아동복지회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아리랑풀이연구소 그룹 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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